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각종 기록과 연보 은하수 동쪽에서 빛나는 일붕 별 “우리「국제 항성 등록청」은 다음에 명한 별을 일붕 서경보에게 불하하여 별의 새로운 이름으로 지정하였음을 증명하는 바이다. 별의 이름 : 어퀼라 따라서 이 별은 이 순간부터 영원토록 스위스 천체관측소에 등록되며 미국 의회도서관에 위의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등록사무총장 : 셀라스터스 도웨이쓰 이는 서경보 법왕이 하늘의 별자리 하나를 사들여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권 등록을 마쳤음을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별 주인星主이 된 것이다. 별 이상한 얘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면 어느 단체에서 주고 어떤 별을 '서경보 별’로 등록했는가? 마치 땅의 주인을 정하여 등기소에 등록하는 것처럼 하늘에 떠 있는 별자리에 주인을 정하여 불하 하고 등록까지 시키는 「국제항공등록청」은 어떤 단체인가. 미국과 캐나다 양국에 본부를 둔 이 단체는 세계적인 저명인사들을 회원으로 가입시켜 별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흥미로운 단체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순수민간단체의 성격으로 25년 전에 만든 이 단체에는 존경받을 만한 업적을 남긴 역사적인 인물들이 가입돼 있다. 별이 등록된다고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서경보徐京保, 회암悔巖 스님, 일붕一鵬 스님, 초대법왕初代法王이 삭발削髮(승려가 되기위해 머리를 깍는 절차)한 聖地성지는 어디일까? 당시 서경보徐京保 1914(출)~1996(열반)스님이 삭발하고 출가한 절은 서울의 큰 사찰도 아니다. 제주도의 산방산 산방굴사 바로 아래에 있는 광명사라는 암자였다. 그 암자는 바로 현재의 광명사光明寺이며, 일붕스님은 1932년 출가하면서 처음으로 삭발한 곳이 바로 이 사찰이다. 산방산山房山은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산이다. 산방山房이라는 말은 굴이 있는 산을 뜻하며, 높이 해발 395m에 남쪽 해발 150m쯤에 해식동굴이 있어서 산방산이라 불리 운다. 산방산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로 옛날 500 장군이 있었는데 이들은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의 아들들로 주로 한라산에서 사냥하면서 살아나갔다. 하루는 500 장군의 맏형이 사냥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나머지 허공에다 대고 활시위를 당겨 분을 풀었는데, 그 화살이 하늘을 꿰뚫고 날아가 옥황상제의 옆구리를 건드리고 말았다. 크게 노한 옥황상제가 홧김에 한라산 정상에 바위산을 뽑아 던져 버렸는데, 뽑힌 자리에 생긴 것이 백록담이고 뽑아 던진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1965년 3월 24일. 일붕은 컬럼비아대학을 떠나 캘리포니아대학 동양학과 교환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국내에서는 한일협정 체결과 월남 파병으로 데모가 그치질 않았고 하와이에서는 독재자 이승만이 숨진 을사(乙巳)년. 이 해에 일붕의 미국 포교는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캘리포니아대학은 그 당시 동양 언어학과장인 로저스 박사가 중심이 되어 해인사<팔만대장경>를 英韓 漢文의 3종으로 목록을 작성했고, 도서관에는 해인사 대장경 목판본 3천여 권을 소장하는 한편 대장경의 영인본과 한글본을 마련했을 정도로 불교연구에 대단한 관심을 쏟고 있었다. 일붕이 이 대학으로 옮긴 것은 연초에 道心이란 법명을 얻고 법제자가 된 완델(Wan Del)씨의 주선에 의한 것이었다. 완델씨는 캘리포니아에 사비를 들여 길을 닦아 완델路라고 붙였을 정도로 재력을 가진 미국인이었는데, 일붕의 제자가 된 이후부터는 禁酒, 禁煙, 1일 2식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참선을 하는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 그는 일붕을 흠모하여 자신의 별장에다<조계종 미국불교 선원>을 차리고, 일붕을 집에 모셔다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부인 완델 여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8. 큰 스승을 찾아서 1933년 10월 초순. 경보 스님은 전남 구례군 '화엄사'에 진진응이란 큰 스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여수로 향하는 목선에 몸을 실었다. 조그마한 목선이 망망한 대해에서 세차게 파도치는 물결을 뒤로 하고 둥둥 떠가는 모습은 마치 넒고 넓은 하늘의 한 조각구름 같았다. 목선이 바다 한 가운데 이르자 풍파가 심해졌다. 세찬 파도가 뱃머리를 때릴 때마다 목선이 도리질하여 여자들이 멀미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멀미가 심한사람은 먹은 것을 모두 선실바닥에다 토했다. 파도가 점점 심해졌다. 목선은 심하게 흔들렸고 사람들은 울부짖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무서워 떨었고 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경보 스님은 '이것이 고행의 시작이다'고 여기며 <천수경>과<반야심경>을 소리 내어 외웠다. 파도가 갈수록 거칠어지자 처음에는 태연하던 뱃사공들까지 파랗게 질려서 안절부절 했다. 경보 스님이 뱃사공에게 물었다. "왜 배가 방향을 못 잡고 제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이오?" "너무 짐을 많이 실어 우리가 배를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짐짝들만 없애면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7. 결혼에 이어 출가 일본에서 돌아와 집안일도 돕고 그동안 못 읽었던 책도 읽으면서 훌륭한 스승을 찾아 뭍으로 떠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경보를 찾으셨다. "할아버지, 저를 부르셨습니까?" 무릎을 꿇고 앉은 경보를 보고 할아버지께서는 조용한 말씀하셨다. "경보야, 나는 네가 더없이 자랑스럽구나. 내게 응석을 부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어엿한 청년으로 자랐구나. 이 할애비를 실망시키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더니 서당의 훈장까지 되었으니 그저 장할 뿐이다. 그런데 남을 가르치려면 어른이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이도 열여섯이나 되었으니 혼사를 치르는 것이 좋겠다. 또 나도 많이 늙었으니 증손자를 안아보고 이 세상을 떠나고도 싶고…." 눈앞이 캄캄했다. 경보는 온갖 핑계를 다 말하면서 할아버지를 설득하려 했다가 오히려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경보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권유를 받자 얼떨결에 육지로 나가 신학문을 배우겠다는 말을 했다. "뭐라고! 학교엘 가려고 장가를 못가겠다고? 고약한 놈 같으니라고! 그래 꼭 왜놈의 종살이를 하겠다는 것이구나?" "할아버지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6. 더 넓고 큰 세계로 서당의 훈장으로 명성을 얻어 가족들이 기뻐하는 것과는 반대로 경보는 답답함을 느꼈다.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서 집에 돌아와 뒷밭에 귤을 심던 경보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천하를 노려도 부족하거늘 어찌 좁은 섬 구석에서 코흘리개들의 훈장 노릇이나 하고, 귤나무를 심어 그 열매가 맺길 기다려야 되겠는가? 그렇다. 뭍으로 나가자. 넓은 곳으로 나가 훌륭한 스승을 찾아 더 깊은 공부를 하고 큰 뜻을 펼치자! 세계는 나날이 발전하는 데 어찌 옛 학문인 한자만 익혀서 앞서가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이 일어나면<장자>란 책의 <남화경> 첫 편에 나오는 붕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남화경>에는 상상의 새인 붕새를 이렇게 쓰고 있다. "북방의 조그만 새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커져서 날개 짓을 하니 태풍이 일어나고 태양빛을 가릴 정도의 위세로 바람을 일으켰고, 몇 차례 날개 짓을 하다가 남쪽을 향해 구만리 창공을 먹지도 쉬지도 않고 6개월간을 날았다." 경보는<남화경>에 나오는 붕새를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5. 훈장이 된 경보의 가르침 경보는 훈장이 되고 나서 재미있고 쉽게 가르친다는 원을 세웠다. 공부가 너무 딱딱하고 어려우면 학동들이 서당을 '지긋지긋한 곳'으로 여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외우고 쓰라고 하던 옛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예를 들면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가르치면서, 무조건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고 했고 순자는 사람은 원래부터 악하다’고 하지 않았다. 즉 성선설을 설명하면서 ‘어린이가 우물가에서 우물 안으로 떨어지려고 할 때 사람이면 누구나 뛰어가서 그 어린 아이를 구할 것이다.’고 풀어서 가르치는 방법을 썼던 것이다. 부모님의 은혜를 가르칠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해 저절로 깨닫게 했다. 옛날 가뭄이 심하여 나라 안이 온통 가난과 질병이 들끓게 되자, 임금이 '나이가 많은 노인들을 산에 대려가 구덩이를 파고 묻어라' 하는 명령을 내렸다. 어느 아들이 국법을 어길 수 없어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산으로 묻으러 갔다. 아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참고 그저 묵묵히 걸었다. 어머니는 자기를 땅에 파묻으러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이 무거워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3. 할아버지의 가르침 "할아버지, 저는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엘 가고 싶어요. 서당보다 학교를 보내 주세요." "뭐라고, 왜놈들이 가르치는 신학문을 배우고 싶어 학교를 간다고?" "할아버지, 학교엘 간다고 왜놈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안 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안 된다. 학교에 가 왜놈 말과 글을 배우면 왜놈의 종노릇 밖에 할 것이 없는데, 그놈들의 종노릇을 하려고 돈 들여 공부한단 말이냐?" "할아버지, 저는 학교를 다니고 싶어요. 한문은 다 배웠는걸요." "안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라. 다시는 학교에 간다는 말은 아예 입 밖에도 내지 마라." 경보는 그때까지 할아버지가 그처럼 화를 내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비록 배우지 못해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렸지만 기개가 높고 성격이 강직했으며, 남다른 의리가 있는 행동으로 주위의 신망을 얻는 분이었다. 때문에 결코 사사로운 일로 남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았고 이웃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도왔다. 경보가 태어난 제주도의 이천 서 씨 가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부지런히 일을 해서 비교적 넉넉한 살림을 꾸린 집이었다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존자님의 세계일화 2. 총명한 도사 아이 할아버지는 경보를 틈나는 대로 무릎에 앉혀 놓고 귀여워하고 잠도 데리고 잤다. 그러면서 늘 '우리 도사, 우리 도사' 하며 사랑스러워 했다. 경보는 한번 들으면 잊지 않고, 한번 본 것은 반드시 기억하여 동네어른들로부터 '총명한 아이'라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이런 경보를 잘 가르쳐 뛰어난 인물로 키워 기울어진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고 여긴 할아버지는 일찍 글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경보는 제주도에서 가장 뛰어난 글재주를 가졌다는 외삼촌 이지화 선생께 글을 배우다 동네 서당을 다니게 되었다. 6세가 되자 경보는 이미 어지간한 한문을 다 읽고 쓰게 되었으며, 10세 때에는 그 어렵다는 사서삼경을 줄줄 외우고 풀었다. 이렇게 공부는 잘했지만 경보는 도무지 아이답지 않은 행동을 자주 해 집안 어른들의 걱정거리를 만들었다. 바다와 가까운 마을인 도순동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바닷가에 나가 고기잡이 어른들을 거들기도하고 고기 잡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또 한라산에서 시작하여 서귀포로 빠지는 도순천에 나가 은어나 피라미 같은 고기를 잡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법왕청신문 관리자 기자 | 대한민국 최고의 미디어 불교컨텐츠 신문을 목표 우리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힐링컨텐츠를 제공하는 법왕청신문을 통해 불자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어렵고 생경生硬하게 느껴지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채널이 되겠습니다. 본 영상 채널은 불교다운 불교 신심나는 불교 존경받는 불교를 구현하겠습니다. 사부 대중이 꿈꾸면 불교가 달라집니다. 본 채널은 청청승가의 진면목과 수행가풍을 진작시켜 우리불교의 저력을 시방세계에 두루 나투도록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역사를 쓰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가치를 키우고 함께 성장을 위한 성장의 역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예하 비서실장( 현 2대법왕 권한대행) | 三多島에 태어난 慧星 일붕 서경보 큰스님은 佛家에 歸依한지 어언 半白年. 古稀를 넘긴 지금도 國內는 물론, 海外 여러 나라를 쉴 사이 없이 다니면서 布敎 및 講義ㆍ著述에 혼신의 情熱을 다하여 한국 佛敎를 五大洋 六大洲에 널리 傳法하시고, 나아가서 우리나라의 국위를 크게 선양하시는 스님께서는 열반에 드시는 날까지도 우리나라의 國泰民安과 護國理念을 고취하기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정진하고 통일촌 마을회관에 남북평화통일기원 일붕시비를 제막했다. 인생의 반이 넘은 나이에 學院에 다니며 영어를 배워 東西洋을 나들며 布敎活動을 벌인 스님의 강철 같은 의지는 누구나가 다 공인하는 근면과 參禪生活을 바탕으로 해가 거듭할수록 功績이 입증되었다. 1914年(甲寅年) 10월 10일, 그날도 끝없이 맑고 푸른 하늘아래 평화스런 하루가 저물어 가고 밤은 고요한 적막에 싸였고, 이어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영롱히 지구를 위해 비쳐 주고 있었다. 그 같은 수많은 별빛 속에 유난히 빛을 뿜는 별 하나가 제주도 서귀포시 도순동 利川 徐氏가문에 영광을 가져왔으니 섬마을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彗星의 탄생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