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준석 선임기자 | 최근 정부가 ‘장기 미사용 부탄캔 회수 사업’을 본격 추진하면서, 가정 내 방치된 가연성 캔류의 위험성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부탄캔뿐 아니라 모기향 스프레이, 방향제, 페인트캔 등 다양한 에어로졸 제품들이 화재 시 ‘2차 폭발 위험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소방 현장에서도 이러한 위험은 심각하다. 한 현직 소방관은 인터뷰에서 “화재 진압 중 부탄캔이 폭발하면 그 순간 공포로 인해 더 이상 전진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고 토로한 바 있다. 즉, 단순한 생활용품이 ‘보이지 않는 폭탄’으로 변하는 것이다. ■ 국가가 움직였다...그러나 해답은 ‘사전 제거’ 한국가스안전공사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회수 사업은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다. 하지만 회수 이전 단계, 즉 가정 내에서의 ‘잔류가스 제거’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주목받는 제품이 바로 잔류가스 제거기 ‘가스픽’이다. ■ 특허청 우수발명품 ‘가스픽’, 왜 주목받나 ㈜가스픽(대표 신승우)이 개발한 ‘가스픽’은 캔 내부에 남아 있는 잔류가스를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으로,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청주 미원의 산자락, 바람이 머물고 구름이 쉬어가는 그 자리에서 하나의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그 이름은 벽사초불정사. 이곳은 더 이상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기도만 드리는 공간도, 과거의 전통만을 간직한 장소도 아니다. 지금 이곳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미래세대를 하나로 잇는 살아있는 수행의 도량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웅장한 전각과 정갈한 마당을 배경으로 펼쳐진 풍경은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정돈된 자리에 가지런히 놓인 수백 개의 의자들. 그 의자들은 단순한 좌석이 아니었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 다가올 시간, 그리고 미래세대를 기다리는 ‘비어 있는 약속의 자리’였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는 15,000그루의 나무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생명의 숨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이 자리에는 약 800여 명의 시민과 내·외빈이 함께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단순한 참여 인원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미래를 심는 증인들이었다. 자연을 살리는 것이 곧 수행이다. 벽사초불정사가 선택한 길은 분명하다. 기도만 하는 도량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도량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법왕청신문 이준석 기자 | 세상에는 ‘기적’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불가에서 말하는 우담바라優曇婆羅는 3천 년에 한 번 피는 꽃이라 하여 오랜 세월 신비와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작은 흰 점이나 흰 꽃처럼 피어나는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출현을 알리는 징조인가” 하는 기대와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담화선창의 시선으로 이 우담바라를 다시 바라보려 합니다. 우담바라는 ‘현상’이 아니라 ‘징표’이다 . 우담바라를 단순히 희귀한 자연현상으로만 본다면 그 의미는 반쪽에 불과합니다. 불교에서 우담바라는 어떤 ‘꽃’ 자체보다 “깨어남의 순간을 알리는 상징”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꽃보다 중요한 것은 그 꽃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지금, 너의 마음은 깨어 있는가?” 이 질문이 바로 우담바라의 본질입니다. 담화선창이 말하는 우담바라 담화선창에서는 우담바라를 외부의 기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우담바라는 밖에 피는 꽃이 아니라, 마음이 맑아질 때 비로소 피어나는 내면의 꽃이다.” 사람들은 종종 어딘가에서 우담바라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열광합니다. 사진을 찍고, 기념하고, ‘복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와 끝이 보이지 않는 고민 앞에 서게 됩니다. 마음은 복잡해지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밤이 깊어도 쉬지 못합니다. “왜 나는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언제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께 한 가지 분명히 전하고 싶은 진리가 있습니다. 깨달음은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라, 단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홍로점설紅爐點雪, 즉 ‘붉게 달아오른 화로 위에 떨어진 눈’의 비유는 이 진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눈송이는 차갑고 고요하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뜨겁게 달궈진 화로 위에 떨어지는 순간, 그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본질입니다. 오래된 고민은 “시간”이 아니라 “집착”이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를 익숙하게 만들 뿐입니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집착, 놓지 못하는 감정, 끝까지 붙들고 있는 생각이 문제를 계속 살아 있게 만듭니다. 즉, 문제가 오래된 것이 아니라 놓지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청주 미원의 산자락, 바람이 머물고 구름이 쉬어가는 그 자리에서 하나의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그 이름은 벽사초불정사. 이곳은 더 이상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기도만 드리는 공간도, 과거의 전통만을 간직한 장소도 아니다. 지금 이곳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미래세대를 하나로 잇는 살아있는 수행의 도량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웅장한 전각과 정갈한 마당을 배경으로 펼쳐진 풍경은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정돈된 자리에 가지런히 놓인 수백 개의 의자들. 그 의자들은 단순한 좌석이 아니었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 다가올 시간, 그리고 미래세대를 기다리는 ‘비어 있는 약속의 자리’였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는 15,000그루의 나무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생명의 숨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이 자리에는 약 800여 명의 시민과 내·외빈이 함께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단순한 참여 인원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미래를 심는 증인들이었다. 자연을 살리는 것이 곧 수행이다. 벽사초불정사가 선택한 길은 분명하다. 기도만 하는 도량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도량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 놓여 있다.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환경이 바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은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원래 이렇게 살아왔다” “예전에는 이렇게 했는데”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현재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란 말이있다. 배 위에서 칼을 떨어뜨린 뒤 그 자리에 표시를 해두고 나중에 그 자리를 찾아 칼을 찾으려 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배는 이미 흘러가고 있다. 칼이 떨어진 곳은 이미 지나가 버렸는데 사람은 표시만 믿고 같은 자리를 찾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음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상황은 변했는데 생각은 그대로이고 세상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멈춰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길을 잃는다. 불교에서는 말한다.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변하지 않으려 한다. 과거의 기억을 붙잡고 옛 방식만 고집하며 지금 이 순간을 놓쳐버린다. 그래서 괴로움이 생긴다. 변하는 세상에 고정된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과거를 붙잡지 않는다. 흘러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화 속에서 자신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이 세상은 겉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실상은 어둠 속에 덮여 있다. 사람들은 빛 속에 사는 것 같지만 욕심과 분노, 집착과 어리석음 속에서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간다. 그래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이 세상은 무명無明의 어둠 속에 잠겨 있다고. 그렇다면 그 어둠 속에서 누가 저 지혜의 빛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같은 하늘 아래 살지만 모두가 같은 세상을 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어떤 이는 아무리 설명해도 깨닫지 못한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단 하나다.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지혜의 빛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빛을 보지 못한다. 욕심이 눈을 가리고 집착이 마음을 막으며 어리석음이 자신을 가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화경은 말한다.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깨어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마치 새장 속에 갇힌 새들이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날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문은 열려 있지만 스스로 나가지 못하고 익숙한 좁은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몇 마리의 새는 결국 날아오른다. 두려움을 넘어 자신을 벗어나 하늘로 향한다. 그 새들은 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부와 명예, 권력, 그리고 남보다 앞서고 싶은 마음과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 부르며 그것을 위해 많은 시간을 바친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것들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남가일몽南柯一夢” 남쪽 나뭇가지 아래에서 꾼 한낱 꿈과 같다는 뜻이다. 한때의 부귀영화도 권력도 결국은 꿈처럼 사라진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무상無常이라 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 또한 시간이 지나면 모두 흘러가고 사라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영원한 것처럼 붙잡고 놓지 못해 괴로워한다. 성공을 이루어도 불안하고 잃을까 두려워하며 결국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잠시 머무를 뿐이다.” 남가일몽의 가르침은 단순히 허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다. 지나간 것은 이미 꿈이 되었고 다가올 것 또한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진짜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지금뿐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결과보다 마음을 바라보고 소유보다 내려놓음을 택한다. 가지려 할수록 괴로워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흰 새 한 마리가 있습니다. 어둠이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새벽, 그 새는 머뭇거리지 않고 태양을 향해 날아오릅니다. 땅의 습기와 안개, 바람의 흔들림을 뒤로하고 오직 빛을 향해 날아갑니다. 이 모습은 곧 수행자의 길이며, 깨어난 자의 모습입니다. 법구경의 말씀에 이르기를, “마라와 그의 군대를 처부순 이는 이 세상을 멀리 벗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마라는 단지 외부의 존재가 아닙니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 집착, 두려움이 모든 것이 곧 우리 마음속의 마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외부의 장애를 두려워하지만, 정작 우리를 묶어두는 것은 내부의 번뇌입니다. 수행이란 멀리 있는 어떤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내 안에 있는 어둠을 걷어내는 일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단지 빛이 없을 뿐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밝히고, 한 생각을 바르게 세우는 순간, 마라는 설 자리를 잃습니다. 흰 새가 태양을 향해 날아가듯, 수행자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날아오르는 용기’입니다. 많은 이들이 알고는 있지만, 날아오르지 못합니다. 익숙한 삶, 익숙한 고통 속에 머물며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하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와 끝이 보이지 않는 고민 앞에 서게 됩니다. 마음은 복잡해지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밤이 깊어도 쉬지 못합니다. “왜 나는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언제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께 한 가지 분명히 전하고 싶은 진리가 있습니다. 깨달음은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라, 단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홍로점설紅爐點雪, 즉 ‘붉게 달아오른 화로 위에 떨어진 눈’의 비유는 이 진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눈송이는 차갑고 고요하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뜨겁게 달궈진 화로 위에 떨어지는 순간, 그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본질입니다. 오래된 고민은 “시간”이 아니라 “집착”이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를 익숙하게 만들 뿐입니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집착, 놓지 못하는 감정, 끝까지 붙들고 있는 생각이 문제를 계속 살아 있게 만듭니다. 즉, 문제가 오래된 것이 아니라 놓지
법왕청신문 이준석 선임 기자 | 지난 17일부터 18일까지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개최된 제8차 세계 및 전통종교 지도자대회는 ‘아스타나 평화선언 2025’를 채택하며 막을 내렸다. 이번 선언은 평화, 지속가능발전, 문화 간 대화의 세 축을 중심으로 국제협력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한 현대 종교외교의 핵심 문서로 평가된다. 이번 대회에는 약 60개국 100여 개 대표단이 참가해 문명 간 대화를 위한 글로벌 플랫폼으로서 카자흐스탄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개회식에서 지정학적 갈등, 하이브리드 전쟁,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심화되는 시대 속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인류의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본 대회가 열린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독보적 국제 플랫폼이며, 선언문이 유엔 총회 공식 문서로 배포됨으로써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한다고 밝혔다. 특히 종교적 성지와 문화유산 보호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며, 평화를 위한 글로벌 운동 추진과 유엔 및 지역기구와의 협력 강화 등 실천적 구상도 제시되었다. 이번 선언은 종교 간 대화를 단순한 상징적 교류에서 벗어나, 갈등 예방과 신뢰 구축을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격상시켰다는 점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은 처음부터 지혜로운 존재로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무지와 미망 속에서 삶을 시작한다. 무지無知는 알지 못함이고 미망迷妄은 그릇되게 알고 헛되게 집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집착하고 그 집착 속에서 괴로움을 만들어 낸다. 욕심을 따라가고 분노에 휘둘리며 자신의 마음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탓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처음에는 어둠 속에 있었을지라도 그 어둠을 깨닫고 벗어나려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빛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다. 법구경은 말한다. “어리석던 사람이 나중에 지혜로워지면 세상을 비춘다.” 이 가르침은 깊은 희망을 담고 있다. 과거가 어떠했든 지금의 마음이 바뀌면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무지 속에 살던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리며 한 걸음씩 나아갈 때 그 변화는 그 누구보다도 크다. 왜냐하면 어둠을 깊이 경험한 사람일수록 빛의 가치를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어둠을 딛고 자신을 넘어 지혜의 길로 나아간다. 그래서 그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빛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