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리는 흔히 많이 배우고 많이 알아야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많은 정보를 알고, 많은 경험을 쌓아야 비로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참된 지혜는 그와 다르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깊이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문일지십聞一知十,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이다. 이 말은 단순한 총명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하나의 현상 속에서 그 이면의 원리와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말한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많이 들으려 하지 말고, 깊이 들으라.” 제자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하나의 가르침을 듣고도 그 속에서 열 가지를 깨닫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의미를 던진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 속에 살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이야기를 듣고, 수많은 지식을 접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삶은 그만큼 깊어지고 있는가. 많이 듣고 많이 아는 것과 지혜롭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문일지십의 지혜는 ‘양’이 아니라 ‘깊이’에 있다. 하나의 말을 듣더라도 그 의미를 곱씹고, 자신의 삶에 비추어 보고, 그 안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욕심을 내려놓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저 좋은 말로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말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며 욕심이 어떻게 괴로움을 만드는지 깨닫는 사람이 있다.
이 두 사람의 차이가 바로 문일지십의 차이이다.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경전을 많이 읽는 것보다 한 구절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도를 오래 하는 것보다 한 번의 기도를 진심으로 하는 것이 더 깊다.
지혜로운 사람은 많이 배우려 하지 않는다.

대신 배운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작은 가르침 하나로도 삶 전체를 바꿀 수 있다. 이것이 문일지십의 힘이다.
오늘날 우리는 빠르게 배우고, 많이 알고, 쉽게 잊어버리는 삶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많이 아는 데서 오지 않는다. 깊이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가르침,
하나의 깨달음이
삶 전체를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
담화총사의 불교설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의미를 깊이 새긴다면 그 안에서 열 가지, 백 가지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듣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받아들이느냐이다.

담화총사의 한마디
지혜로운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를 듣고 열을 깨닫는 사람이다.
오늘 하루 한 가지 가르침을 깊이 새겨보자.
그 하나가 당신의 삶을 바꾸는 시작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