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은 평생 무엇인가를 찾아 헤맨다. 어떤 이는 돈을 찾고, 어떤 이는 명예를 찾으며, 어떤 이는 사랑을 찾는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찾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것은 바로 자기 안에 있는 부처님이다. 청주 미원면 천년향화지지千年香火之地 벽사초불정사 경내에는 독특한 조형물이 하나 서 있다.
멀리서 보면 둥근 달처럼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거대한 우주를 닮았다. 그리고 그 원의 중심을 바라보면 신기하게도 부처님이 보인다.
그래서 이름도 아름답다.
「우주를 품은 佛달」
이 조형물은 단순한 석재 예술품이 아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법문이며, 침묵 속에서 설하는 무언의 경전이다. 불교에서 원圓은 원만구족圓滿具足을 상징한다.
모든 것이 완전하게 갖추어진 상태이며, 생멸과 분별을 넘어선 진리의 모습을 의미한다.
선종에서는 이를 일원상一圓相이라 하여 깨달음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런데 벽사초불정사의 「우주를 품은 佛달」은 그 원의 중심을 비워 두었다. 가운데 뚫린 공간은 공空이다. 사람들은 공을 비어 있음이라 생각하지만, 불교에서 공은 허무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시작되는 자리다. 씨앗이 흙 속에서 싹을 틔우듯, 깨달음 또한 비움에서 시작된다.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지혜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분노로 가득 찬 마음에는 자비가 머물 공간이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비우라고 말씀하셨다.
놓으라고 하셨고,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그 비움의 끝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만나게 된다고 하셨다.
이 조형물의 가장 놀라운 점은 가운데 원을 통해 부처님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연한 배치가 아니다. 그 안에는 깊은 상징이 숨어 있다.
우주는 넓고 크다.
사람은 그 광대한 세계 속에서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불교는 말한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도 우주가 있다."
법화경에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 하였다.
모든 존재는 본래 부처가 될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즉 부처님은 먼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니다.
산 너머에 계신 것도 아니고,
하늘 끝에 계신 것도 아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계신다.
그래서 원 안을 보면 부처님이 보이는 것이다.
그 모습은 곧
우리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상징한다.
세상을 향해 달려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기 마음의 원 안을 들여다보라는 가르침이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간다.
휴대전화 속 세상에 매달리고,
끝없는 경쟁과 비교 속에서 스스로를 소모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마음이 공허한 이유는 무엇일까.
밖에서 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행복도,
평화도,
깨달음도
모두 안에서 시작된다.
벽사초불정사의 「우주를 품은 佛달」은
바로 그 사실을 일깨워 준다.
원을 통해 부처님을 바라보는 순간,
사람은 문득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가 찾던 부처님은
본래 내 안에 계셨음을.
내가 찾던 우주는
이미 내 마음속에 펼쳐져 있었음을.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태양의 빛을 받아 세상을 밝힌다.
수행자 또한 그러하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진리의 빛을 받아 세상을 밝히는 존재다.
「우주를 품은 佛달」 위에 놓인 초승달 형상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수행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부족하기에 정진하고,
비어 있기에 채워질 수 있으며,
낮아지기에 높아질 수 있다는 진리를 말없이 전하고 있다.
천년향화지지 벽사초불정사를 찾는 이들이라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 조형물 앞에 서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원 안을 바라보라.
그곳에 부처님이 계신다.
부처님을 보면 우주가 보이고,
우주를 보면 본래의 내가 보인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 찾아 헤매던 진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지금,
당신의 마음속 원 안에.
원 안을 보면 부처님이 보인다.
그래서 이름하여, 우주를 품은 佛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