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은 하루에도 수천 마디의 말을 한다. 그러나 그 많은 말 가운데 누군가의 마음을 살리는 말은 과연 얼마나 될까. 부처님께서는 "좋은 말은 향기보다 오래 남는다."고 가르치셨다. 꽃은 며칠 피었다 지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는 평생 한 사람의 가슴에 남는다. 반대로 날카로운 말 한마디는 칼보다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빠르게 소통하지만, 정작 따뜻한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휴대전화 속 문자와 댓글은 넘쳐나지만, 서로를 위로하는 말은 부족하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피어나는 꽃이어야 한다. 한마디가 인생을 바꾼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짧은 말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진다. 그 한마디가 지친 사람에게는 희망이 되고, 슬픈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며, 절망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된다. 수행은 먼 산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하루 단 한 사람에게라도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그것이 자비의 시작이며 수행의 실천이다. 좋은 말은 복을 부르고, 고운 말은 인연을 이어 주며, 진실한 말은 신뢰를 만든다. 오늘 당신의 말 한마디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緣起法연기법, 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고, 모든 인연에는 배움이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가족을 만나고, 직장 동료를 만나며, 길에서 스쳐 가는 사람과도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연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고, 멀어진 뒤에야 그 빈자리를 깨닫는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기고, 인연 따라 사라진다고 말씀하셨다. 좋은 인연은 우연히 찾아오는 선물이 아니라, 좋은 마음이 불러오는 결과이다. 웃는 사람에게 웃음이 돌아오고, 배려하는 사람에게 따뜻함이 돌아온다. 반대로 미움은 또 다른 미움을 낳고, 원망은 마음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한 사람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지친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용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연은 숫자가 아니라 마음이다. 많은 사람을 아는 것보다 한 사람을 오래 품는 것이 더 귀하다. 오늘 하루, 먼저 인사를 건네 보자, 먼저 웃어 보자, 먼저 이해해 보자, 그 작은 시작이 평생 이어질 귀한 인연을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연은 서로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당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知足常樂지족상락,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즐겁다. 우리는 감사할 일이 생기면 감사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삶은 감사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이지, 행복한 사람만 감사하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는 것, 따뜻한 밥 한 끼를 먹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안부를 들을 수 있는 것, 이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가장 큰 축복이다. 그러나 사람은 가진 것보다 없는 것을 먼저 바라본다. 그래서 기쁨은 작아지고, 불평은 커진다. 부처님께서는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감사는 부족함을 잊게 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미 내 곁에 있는 소중함을 발견하는 마음이다. 감사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머물고, 감사하는 가정에는 웃음이 피어나며, 감사하는 사회에는 따뜻한 배려가 살아난다.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먼저 건네 보자,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그리고 자신의 삶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 보자, 감사는 작은 말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살리고 세상을 밝히는 가장 큰 힘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감사하는 마음속에서 오늘도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 담화 한마디 "감사는 가진 것을 크게 만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라, 사람들은 수행이라 하면 깊은 산사를 떠올린다. 새벽 예불과 참선, 긴 기도와 독경을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훌륭한 수행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일깨워 주신 수행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을 바르게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수행이다.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길에서 먼저 웃어 주는 것, 화를 참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이 작은 실천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품을 만들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꾼다. 현대인은 너무 바쁘다. 내일을 준비하느라 오늘을 잃고, 성공을 좇느라 행복을 놓친다. 하지만 인생은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 위에서 이루어진다. 오늘을 소홀히 하면서 좋은 내일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오늘 심은 씨앗이 내일의 숲이 되고, 오늘 베푼 친절이 내일의 인연이 되며, 오늘의 정성이 평생의 행복을 만든다. 수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화를 낼 수 있는 순간에 한 번 더 미소 짓는 것, 욕심을 내려놓고 만족을 배우는 것, 남의 허물을 말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 바로 그것이 수행이다. 오늘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들은 늘 빨리 성공하고 싶어 한다. 빨리 돈을 벌고, 빨리 인정받고, 빨리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연은 단 한 번도 서두른 적이 없다. 벚꽃은 겨울을 원망하지 않는다. 매화는 봄을 재촉하지 않는다. 대나무는 하루아침에 하늘 높이 자라지 않는다.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때를 기다린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지금 노력한 일이 당장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씨앗은 흙속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은 멈춘 시간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다. 현대인은 결과만 바라보다 과정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경쟁은 치열하고 비교는 끝이 없다. 남보다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에는 각자의 계절이 있다. 어떤 사람은 스무 살에 꽃을 피우고, 어떤 사람은 예순이 되어 비로소 자신의 향기를 세상에 전한다. 늦게 피는 꽃이라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인연이 성숙할 때 이루어진다고 가르치셨다. 억지로 문을 열려 하면 문이 부서질 뿐이지만, 때가 되면 닫혀 있던 문도 저절로 열린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자. 오늘 해야 할 일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밤을 만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날도 있고,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는 날도 있다. 아무리 걸어도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내 인생은 왜 이럴까" 하며 하늘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어둠을 없애려고 어둠과 싸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작은 등불 하나를 켜라고 하셨다. 등불 하나가 켜지는 순간, 수천 년의 어둠도 물러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고난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찾아온다. 폭풍을 견딘 나무가 더 깊이 뿌리내리듯, 시련을 견딘 사람의 마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힘들었던 날들을 돌아보면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눈물은 연민을 배우게 했고, 실패는 겸손을 가르쳐 주었으며, 외로움은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아픔은 상처만 남긴 것이 아니라 지혜라는 선물을 함께 남겼다. 연꽃은 가장 맑은 물에서 피지 않는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기에 더욱 아름답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난을 통과한 사람에게는 남을 품을 수 있는 따뜻함이 생기고, 역경을 견딘 사람에게는 희망을 나눌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행복은 고난이 없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누란지세累卵之勢, 알을 여러 겹으로 쌓아놓은 듯,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형세를 뜻합니다. 옛사람들은 나라의 위태로움을 이렇게 표현했지만, 오늘날 이 말은 국가만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 사회, 인간관계, 그리고 마음의 상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입니다. 회사도 돌아가고, 경제도 움직이고, 가정도 웃음이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어떻습니까. 한 사람의 무리한 욕심 위에 세워진 기업, 대화 없는 부부의 침묵 위에 놓인 가정, 신뢰 없이 숫자만 쌓아올린 조직, 분노와 비교심으로 가득 찬 개인의 마음, 그 모습이야말로 바로 누란지세입니다. 알은 겉보기엔 단단해 보여도 작은 충격 하나면 산산이 깨집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건강을 돌보지 않고 “괜찮다”고 미루는 삶, 가족에게 미안하단 말 한마디 못하는 마음, 빚 위에 또 빚을 쌓는 경제, 진실보다 체면을 먼저 세우는 관계, 이 모두가 조용히 흔들리는 누란지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따라 생겨난다.” 위기는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균열을 외면한 시간이 쌓여 결국 큰 무너짐이 되는 것입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2026년 5월 16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이 인도의 다채로운 색채와 활기찬 리듬으로 가득 찬 ‘작은 인도’로 변신했다. 주한인도대사관이 주최한 제1회 ‘인도의 날(India Day 2026)’ 행사가 한국 시민과 재한 인도인 공동체의 뜨거운 호응 속에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번 축제는 한국과 인도의 깊은 우정과 긴밀한 인적 교류를 기념하고, ‘다양성 속의 조화’를 대표하는 인도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으로 기획되었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화려한 문화 예술의 향연 행사 개막은 ICCR(인도문화교류위원회) 패널 무용가이자 트리카야 댄스 컴퍼니 창립자인 프리야 스리니바산 무용단의 남인도 전통춤 ‘바라트나트얌’ 공연이 장식했으며, 이후 오디시, 카탁, 아이기리 난디니 퓨전,요가 시연과 타고르 소사이어티 무대 등 다채로운 전통 예술들이 이어졌다. 특히 고전무용과 현대음악의 접목을 보여주는 쿠치푸디와 K-POP 퓨전 댄스, 타밀 민속춤과 서양 음악의 조화, 그리고 국악 퓨전 앙상블 ‘앙상블 수’의 한-인도 크로스오버 공연이 관객들로부터 매우 큰 찬사를 받았다. 또한 광운대 교수 로정진(리차드 로)은 인도의 애국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한 줄로 묶는다면 어디에 닿을까. 수많은 경전과 논서, 선사의 어록과 법문이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 중심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나는 그 물음의 답을 묘법연화경, 그중에서도 방편품 제2의 한 구절에서 본다. 부처는 중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지견(知見)을 열게 하고(開), 보여주며(示), 깨닫게 하여(悟), 마침내 그 길에 들게 한다(入)고 하였다. 이 네 글자는 교학의 문장인 동시에 수행의 지도이며, 존재의 구조를 해명하는 철학이자 삶의 윤리다. 나는 이 네 글자를 하나의 창(窓)으로 삼아, 담화선창이라 이름 붙인다. 창은 밖을 보게 하고, 동시에 안을 비춘다. 그 창을 통해 우리는 부처를 바라보지만, 끝내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 첫째, 열림(開)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닫아놓은 존재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익숙한 관념과 판단, 두려움과 욕망으로 촘촘히 짜인 울타리 안에 머문다. 그 울타리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진실로부터 우리를 가둔다. 부처의 가르침은 이 울타리를 부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문이 있음을 일깨운다. 문은 언제나 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한켠, 가을빛 낙엽 사이로 강렬한 붉은 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단순한 형태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이 조형물은 인도네시아 조각가 아르소노(Arsono)의 작품 「원(Circle)」이다. 철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원은 자연과 인간, 시간과 존재를 하나로 잇는 상징적 언어로 서 있다. 1940년 2월 7일,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에서 태어난 아르소노는 미술아카데미에서 조각을 전공하며 예술적 기반을 다졌다. 이후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각국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그는 공공미술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도시 공간 속에서 인간의 사유를 확장시키는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현재는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품 「원」은 높이 200cm, 폭 60cm, 길이 200cm 규모의 철 구조물이다. 붉은 색채로 강조된 이 원형 조형은 내부에 기하학적 구조를 품고 있어,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외형은 완전한 원이지만, 내부는 비어 있고 동시에 채워져 있다. 이 대비는 ‘존재와 공(空)’이라는 동양적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 작품이 놓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와 끝이 보이지 않는 고민 앞에 서게 됩니다. 마음은 복잡해지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밤이 깊어도 쉬지 못합니다. “왜 나는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언제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께 한 가지 분명히 전하고 싶은 진리가 있습니다. 깨달음은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라, 단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홍로점설紅爐點雪, 즉 ‘붉게 달아오른 화로 위에 떨어진 눈’의 비유는 이 진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눈송이는 차갑고 고요하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뜨겁게 달궈진 화로 위에 떨어지는 순간, 그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본질입니다. 오래된 고민은 “시간”이 아니라 “집착”이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를 익숙하게 만들 뿐입니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집착, 놓지 못하는 감정, 끝까지 붙들고 있는 생각이 문제를 계속 살아 있게 만듭니다. 즉, 문제가 오래된 것이 아니라 놓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은 처음부터 지혜로운 존재로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무지와 미망 속에서 삶을 시작한다. 무지無知는 알지 못함이고 미망迷妄은 그릇되게 알고 헛되게 집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집착하고 그 집착 속에서 괴로움을 만들어 낸다. 욕심을 따라가고 분노에 휘둘리며 자신의 마음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탓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처음에는 어둠 속에 있었을지라도 그 어둠을 깨닫고 벗어나려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빛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다. 법구경은 말한다. “어리석던 사람이 나중에 지혜로워지면 세상을 비춘다.” 이 가르침은 깊은 희망을 담고 있다. 과거가 어떠했든 지금의 마음이 바뀌면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무지 속에 살던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스리며 한 걸음씩 나아갈 때 그 변화는 그 누구보다도 크다. 왜냐하면 어둠을 깊이 경험한 사람일수록 빛의 가치를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어둠을 딛고 자신을 넘어 지혜의 길로 나아간다. 그래서 그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빛이 된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은 살아가면서 앞날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산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 길이 맞는 걸까”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마음은 흔들리고 불안은 커져간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내 앞길은 밝은가”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 질문 자체를 다르게 본다. 앞길이 밝은가 어두운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마음이 밝은가 그것이 더 중요하다. 전도양양前途洋洋, 앞길이 넓고 밝아희망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미래가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음이 밝을 때 앞길도 밝아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종종 상황이 좋아지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다르다. 마음이 바뀌어야 상황이 달라 보인다.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사람은 희망을 보고 어떤 사람은 두려움을 본다. 길이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다른 것이다. 불교에서는 말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뜻이다.그래서 앞길 역시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마음이 어두우면 길은 막힌 것처럼 보이고 마음이 밝으면 길은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수행자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마음을 밝히는 데 집중한다. 지금 이 순간 마음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붕이 허술하면 비가 새듯이 수련되지 않은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든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우리의 삶을 꿰뚫는 깊은 가르침이다. 비는 막으려 하지 않아도 내린다. 지붕이 튼튼하면 그 비를 막아내지만 지붕이 허술하면 작은 틈으로도 물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작은 물방울이다. 그러나 그것이 쌓이면 집을 무너뜨릴 만큼 큰 피해가 된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다. 마음이 단단하게 다져져 있지 않으면 작은 욕심 하나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조금 더 가지면 어떨까” 이 작은 생각이 점점 커지고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그래서 탐욕은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결국 삶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불교에서는 탐욕을 괴로움의 근원이라 말한다. 많이 가지면 행복해질 것 같지만 실상은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은 걱정과 불안이 따라온다. 잃을까 두렵고 남과 비교하며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진다. 그래서 부처님은 마음을 먼저 닦으라고 말씀하셨다. 지붕을 고치지 않으면 비를 막을 수 없듯이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탐욕을 막을 수 없다. 수행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생각 하나를 돌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마음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물고기가 헤엄치니 흙탕물이 일고, 새가 날아가니 깃털이 떨어진다. 자연은 늘 움직이며 그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그 움직임 속에서도 본래의 이치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여전히 고해苦海 속을 헤매며 바깥을 향해 답을 찾고 있지는 않은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본질은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이다. 선가禪家에서는 “진흙소가 달을 몰고 간다(泥牛運月)”는 말을 한다. 고요한 밤, 아무도 모르게 진흙으로 된 소가 달을 끌고 간다는 이 말은 겉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안에는 깊은 깨달음이 담겨 있다. 이는 곧 보이는 세계 너머에 있는 진리를 마음으로 보라는 뜻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바로 세우는 데 힘쓴다.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결가부좌結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취하고 몸을 바르게 하며 숨을 고르게 하고 마음을 고요히 한다. 이 모든 수행은 특별한 능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본래의 마음을 바로 보기 위함이다.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명확하다. 心外無佛심외무불, 卽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