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괄목상대刮目相對이란, 눈을 씻고 다시 본다는 뜻이다. 어제의 사람이 오늘의 사람과 다르고, 과거의 판단이 오늘의 진실을 가릴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늘 “상相에 머물지 말라”고 하셨다. 사람을 한 번의 모습으로 규정하고, 과거의 말 한마디로 그 존재 전체를 재단하는 것이 바로 무명無明에서 비롯된 집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어떤가.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람을 낙인찍는다. 한 번의 실수는 평생의 꼬리표가 되고, 과거의 기록은 현재의 노력을 가려버린다. 성장은 있는데, 인정은 없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큰 어리석음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제행무상諸行無常), 사람 또한 끊임없이 새로워진다. 오늘의 정진을 보지 않고 어제의 그림자만 붙드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의 가능성도 함께 막아버린다. 괄목상대는 단지 칭찬의 말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보라는 수행의 태도다. 상대가 얼마나 변했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아픔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는지를 다시 보라는 요청이다. 지도자에게는 특히 더 절실한 가르침이다. 사람을 쓰되 과거만 보지 말고, 백성을 대하되 선입견부터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조직도, 국가
법왕청신문 이준석 대기자 | ESG 경영이 기업의 필수 과제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많은 사회공헌 활동은 현금 기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충청북도에서 논의 중인 ‘민관 ESG 장묘 혁신 모델’은 ESG를 실물 자산과 사회 시스템으로 전환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 모델의 핵심 구조는 명확하다. 기업이 봉안당 분양가의 약 20%만 부담해 봉안권을 매입하고, 공익법인이 나머지 80%를 매칭해 사회에 환원한다. 지자체는 대상자 추천과 행정 연계만 담당하며, 직접적인 예산 투입은 없다. 장묘·복지·환경이라는 고비용 사회 문제를 민관 협력 구조로 해결하겠다는 접근이다. 이 사업을 주관하는 담화문화재단은 이를 ‘기업 사회환원 봉안증서’ 제도로 구체화했다. 기업은 봉안권을 직접 사용하지 않고 전량 사회 환원용으로 기부하며, 해당 봉안은 무연고자·저소득층·사회공헌자 등 장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활용된다. 현금 기부와 달리, 봉안 인프라라는 실물 자산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ESG의 실효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재무적 관점에서도 타당성은 분명하다. (예), 봉안 1기당 정상 비용을 400만 원으로 환산할 경우, 기업은 약 80만 원의 비용으
법왕청신문 이준석 선임기자 | "벽사초불정사에 들어서거든 벽사라 말하고 초불이라 부를지어다. 벽사, 사됨은 물러가고 초불, 부처님의 기도가 머무는 곳.“ 사찰의 이름에 담긴 이 깊은 뜻은 벽사초불정사가 단순한 예배 공간이 아닌, 모든 사악함을 물리치고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머무는 성스러운 도량임을 말해준다. 벽사辟邪, 즉 삿된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와 초불初佛, 처음 부처님을 모신다는 뜻이 어우러진 이 이름 속에는 선조들의 간절한 염원이 새겨져 있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이 사찰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신도들에게 위안과 깨달음의 길을 제시해왔다. 깊은 산중에 자리한 이곳은 속세의 번뇌를 내려놓고 맑은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는 영험한 공간이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벽사초불정사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며, 그 속에 담긴 불교 문화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탐구한다. 고색창연한 전각의 처마 끝에서, 스님들의 일상적인 수행 속에서, 그리고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간절한 기도 속에서 우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악함이 물러가고 부처님의 빛이 머무는 이 신성한 공간의 이야기 속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명절 전날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벽사초불정사에 들어서거든 벽사라 말하고 초불이라 부를지어다. 벽사 사됨은 물러가고 초불 부처님의 기도가 머무는 곳.“ = 동영상 = 사찰의 이름에 담긴 이 깊은 뜻은 벽사초불정사가 단순한 예배 공간이 아닌, 모든 사악함을 물리치고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머무는 성스러운 도량임을 말해준다. 벽사辟邪, 즉 삿된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와 초불初佛, 처음 부처님을 모신다는 뜻이 어우러진 이 이름 속에는 선조들의 간절한 염원이 새겨져 있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이 사찰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신도들에게 위안과 깨달음의 길을 제시해왔다. 깊은 산중에 자리한 이곳은 속세의 번뇌를 내려놓고 맑은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는 영험한 공간이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벽사초불정사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며, 그 속에 담긴 불교 문화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탐구한다. 고색창연한 전각의 처마 끝에서, 스님들의 일상적인 수행 속에서, 그리고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간절한 기도 속에서 우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 불교연합방송 바로가기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양웅상쟁兩雄相爭”,이란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맞붙는다는 뜻이다. 실력이 비슷한 강자들끼리의 치열한 대결을 이르는 말이다. 오늘의 정치판을 바라보면 이 말보다 정확한 표현이 없다. 서로를 향해 “내가 옳다”, “네가 틀렸다”고 외친다. 정책보다 말이 앞서고, 비전보다 공격이 먼저 나온다. 양쪽 모두 스스로를 정의라 부르지만 정작 국민의 삶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아我를 중심에 둔 싸움, 즉 아집의 충돌이다. 부처님께서는 “아집이 깊어질수록 고통은 커진다”고 하셨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승리만을 향한 정치는 결국 모두를 괴롭히는 업을 낳는다. 양웅상쟁의 특징은 분명하다. 싸움은 화려하지만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정치판에서 두 용이 싸우는 동안 시장은 흔들리고, 서민의 삶은 불안해지며, 청년은 미래를 잃고, 어르신은 노후를 걱정한다. 그러나 싸움의 중심에 선 이들은 그 고통을 직접 겪지 않는다. 말과 권력의 세계에서 승패만 계산할 뿐이다. 불교는 묻는다. “이 싸움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싸움은 이미 수행의 길에서 벗어난 것이다. 유튜브 불교연합방송 바로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만학천봉萬壑千峰이란, 수없이 많은 골짜기와 천 개의 봉우리가 겹겹이 이어진 장관을 뜻하는 말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가리키는 동시에, 한눈에 가늠하기 어려운 복잡한 세계의 모습을 비유한다. 오늘의 사회는 이 말과 너무도 닮아 있다. 우리는 지금 정보의 골짜기와 선택의 봉우리를 넘나들며 산다. 뉴스는 쏟아지고, 의견은 갈라지며, 옳고 그름조차 단순하지 않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기도 전에 이미 수많은 길 앞에 서 있다. 현대인은 흔히 말한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이 복잡해진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잃은 채 그 안을 걷고 있다는 데 있다. 불교의 시선에서 보면 만학천봉은 피해야 할 풍경이 아니다. 수행자는 골짜기가 많다고 길을 포기하지 않고, 봉우리가 높다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풍경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아는 마음이다. 오늘의 사회는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든다. 저 봉우리는 왜 저리 높아 보이는지, 나는 왜 저 골짜기에 머무는지. 그러나 산은 경쟁하지 않는다. 각 봉우리는 제 높이로 존재하고, 각 골짜기는 제 깊이로 자리를 지킨다. 문제는 우리가 남의 봉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중도中道는 가운데를 택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원융圓融은 섞여 흐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중도원융이란 어느 한쪽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어느 한쪽에 매이지 않는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섭니다. 옳고 그름, 옳음과 편안함,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하나를 잡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늘 흔들립니다. 유튜브 불교연합방송 바로가기 그러나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버리거나 붙들지 말고, 꿰뚫어 보라.” 중도는 타협이 아닙니다. 원융은 흐릿함이 아닙니다. 분별을 넘어서는 지혜입니다. 생활 속에서 중도원융은 이렇게 드러납니다. 화를 낼 이유가 있어도, 화에 끌려가지 않는 것. 참아야 할 순간에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왜 화가 일어났는지를 바라보는 것. 옳은 말을 해야 할 때에도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을 함께 찾는 것. 내가 맞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도 하나의 관점일 뿐임을 아는 것. 중도원융의 삶은 늘 조용합니다. 극단으로 치닫지 않기에 소란이 없고, 집착하지 않기에 상처가 깊지 않습니다. 물은 한쪽으로만 흐르면 범람하고, 불은 한쪽으로만 타오르면 모든 것을 태웁니다. 그러나 물과 불이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선우후락先憂後樂”이란, 먼저 근심하고, 뒤에 즐거워한다는 이 말은 고단한 도덕 교훈이 아니라 지도자의 자세이자 공동체의 양심을 가리킨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는 어떤가, 근심은 남에게 맡기고, 즐거움은 먼저 차지하려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아래로 흐르고, 성과가 나면 공은 위로 올라간다. 선우후락은 교과서 속 문장이 되었고, 현실은 ‘선락후우先樂後憂’로 뒤집힌 듯하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이 현상은 단순한 도덕의 붕괴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바뀐 결과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먼저 살피고, 타인을 나중에 헤아리라”고 하셨다. 이 말은 이기적으로 살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어떤 자리에서도 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경계다. 선우후락의 ‘우憂’는 불안이나 걱정이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 내 결정이 누군가의 삶에 미칠 파장, 그 무게를 먼저 느끼는 것이 ‘선우’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속도를 미덕으로 삼고, 성과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그 과정에서 “조금만 더 살피자”는 목소리는 느리다고 배제되고, “잠깐 멈추자”는 제안은 비효율로 취급된다. 그 결과, 즐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어부지리漁父之利” 란, 두 사람이 다투는 사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제삼자가 이익을 얻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단순한 고사성어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 구조를 정확히 꿰뚫는 거울이다.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세대와 세대, 지역과 지역, 이념과 이념, 직장 안에서는 부서와 부서, 온라인에서는 진영과 진영이 맞서 싸운다. 서로를 향한 말은 점점 거칠어지고, 상대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보다 이기고 지는 것이 먼저가 된다. 그러나 그 치열한 싸움의 끝에서 정작 웃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유튜브 불교연합방송 바로가기 다투는 당사자들이 아니다. 댓글로 싸우는 시민도 아니고, 현장에서 고생하는 노동자도 아니다. 갈등을 설계한 자, 분열을 이용한 자, 침묵 속에서 이익을 챙긴 자가 어부가 된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어부지리는 단순한 기회주의가 아니라 번뇌가 낳은 업의 결과다. 분노가 커질수록 판단은 흐려지고, 집착이 강해질수록 시야는 좁아진다. 그 틈을 타 누군가는 말없이 그물을 던진다. 부처님께서는 “분노는 분노로써 그칠 수 없고, 지혜로써만 멈출 수 있다”고 하셨다. 어부지리가 반복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말이 있다,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아선다는 이 짧은 고사 속에 오늘 사회의 그림자가 담겨 있다. 이말은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아선다는 뜻이다. 작은 사마귀가 자기 힘을 알지 못한 채 거대한 수레를 멈추려 들다, 끝내 깔려버린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늘 지혜 없는 용기를 경계하셨다. 용기는 귀한 덕목이지만, 지혜가 따르지 않는 용기는 결국 스스로를 해치는 칼이 되기 때문이다. 수행 없는 용기는 분노가 되고, 성찰 없는 정의감은 폭력이 된다. 오늘의 사회를 돌아보면 당랑거철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분노가 판단을 대신하고, 감정이 사실을 앞지르며, 자신의 위치와 역량을 헤아리지 않은 채 목소리만 높이는 장면들이 일상이 되었다. 옳고 그름을 말하기에 앞서, 얼마나 깊이 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마음 상태를 아만我慢이라 한다.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하는 마음, 세상을 자기 기준 하나로 재단하려는 집착이다. 아만이 커질수록 사람은 스스로를 강하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가장 쉽게 부서지는 상태가 된다. 낮은 곳을 보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넘어짐으로 귀결된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지족안분知足安分, 지족知足은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안분安分은 꿈을 접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지족안분이란, 지금의 나를 인정하면서, 욕심에 끌려가지 않는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만족하겠다.” 그러나 그 ‘조금’은 늘 다음으로 미뤄집니다. 욕심은 채워질수록 기준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족함을 아는 자는 비록 누추한 곳에 있어도 편안하고, 족함을 모르는 자는 천상에 있어도 괴롭다.” 지족은 멈춤이 아니라 깨달음입니다. 이미 가진 것을 세어보는 지혜입니다. 유튜브 불교연합방송 바로가기 안분은 체념이 아니라 균형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을 알고, 그 몫 안에서 책임을 다하는 자세입니다. 생활 속 지족안분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만족은 사라집니다. 지금의 형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형편은 인연일 뿐, 나의 값어치가 아닙니다.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쥐려 하지 않는 것. 그 손을 비워야,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집니다. 지족안분의 삶은 적게 가지는 삶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는 삶입니다. 그래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29년의 시간은 단순한 연륜이 아니다. 외교 현장의 기록과 신뢰가 축적된 자산이다. 외교저널은 그 시간 동안 외교를 ‘권력의 언어’가 아닌 사람과 문화의 언어로 기록해왔다. 협정의 문장보다 현장의 표정, 선언의 수사보다 태도의 무게를 남겨온 기록이다. 이제 그 자산을 다음 세대에게 교육·훈련·실전 경험으로 돌려주는 일, 그것이 2026 K-외교문화사절단의 의미다. 외교저널은 그 시간 동안 외교를 ‘권력의 언어’가 아닌 사람과 문화의 언어로 기록해왔다. 이제 그 축적된 자산을 다음 세대에게 교육·훈련·실전 경험으로 되돌려주는 결정적 전환이 시작된다. 2026년 3월 착공, 같은 해 9월 완공을 목표로 하는 K-문화외교센터 국제회의장 건립이다. 이번 국제회의장은 담화문화재단이 주관하여 건립을 추진하고, 센터 운영은 29년 역사를 지닌 외교저널의 모체인 담화미디어그룹이 맡는다. 기록의 전문성과 미디어 운영 역량, 그리고 문화외교의 철학이 한 공간에서 결합되는 구조다. 이는 단순한 시설 건립이 아니라, 외교 인재 양성의 책임 주체가 명확한 시스템 구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K-문화외교센터는 선언이 아니라 구조다. 약 1,500평 부지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당신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반복되는 고민이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선산까지 가야 하는 부담,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벌초, 점점 줄어드는 제사 참석 인원. 부모님 세대에게는 당연했던 일들이 이제 우리 세대에게는 버거운 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부담을 물려줘야 하나?" "내가 떠난 후, 누가 나를 기억해줄까?" 이것은 단순한 걱정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가정이 마주한 현실입니다. 봉안,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청주에 자리한 벽사초불정사 '천년의 뜰' 봉안당은 이런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답을 제시합니다. 이곳은 봉안당을 단순한 안치 시설이 아닌, 기도가 멈추지 않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왜 사찰 봉안인가? 일반 납골당과 사찰 봉안당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지속되는 기도입니다. '천년의 뜰'에서는 매일 올려지는 예불과 천도재 밤나무로 정성스럽게 제작된 위패에 담긴 윤회 사상 기제사는 물론 정기적인 합동 천도 의식 사계절 내내 관리되는 청정한 수행 공간 위패는 단순한 나무판이 아닙니다. 밤나무는 가시로 열매를 보호하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열리고, 그 씨앗이 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계포일낙季布一諾”,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뜻이다. 한나라의 장수 계포는 말 한마디에 생명을 걸었고, 사람들은 그의 약속을 천금보다 무겁게 여겼다. 약속이 곧 인격이던 시대였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는 어떠한가. 정치의 약속은 선거가 끝나면 희미해지고, 조직의 공언은 상황 논리에 밀리며, 일상의 다짐조차 “그때 가 봐서”라는 말로 가볍게 흘러간다. 약속은 남발되고, 책임은 실종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말은 마음의 그림자요, 행위는 말의 증거이다.” 말이 가벼워지면 마음이 흐려지고, 마음이 흐려지면 업業은 어그러진다. 불교에서 경계하는 망어업妄語業, 즉 거짓말의 업은 남을 속이는 죄 이전에 자기 자신을 무너뜨리는 업이다. 약속을 어긴다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그 말을 믿고 방향을 정한 사람의 인연을 끊는 일이며,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사회가 병들기 시작하는 지점은 언제나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부터였다. 물론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지키지 못할 상황도 생긴다. 그러나 계포일낙의 본뜻은 ‘절대 실수하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다. 지키려는 마음을 버리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지킬 수 없게 되었을
법왕청신문 김학영 기자 | 충청북도 청주시 미원면에 자리한 담화문화재단 벽사초불정사가 '천년의 뜰' 봉안당 및 영구위패 분양을 시작한다. 청주국제공항과 오송KTX역을 품은 교통 1번지 청주의 중심부에서 접근성이 뛰어난 입지를 자랑하며, 전국 어디서든 편리하게 참배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단순한 안치가 아닌, 기도가 이어지는 영원의 도량 벽사초불정사 봉안당은 떠난 이를 모시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복된 인연을 불러들이는 천년향화의 서원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날마다 향불이 밝혀지고 스님의 염불과 기도가 쉬지 않는 살아있는 법당이다. "사람은 떠나도 인연은 남습니다"라는 서원처럼, 이곳은 묘지가 아닌 법당의 품이며, 사당이 아닌 불전의 자리다. 남은 이들의 마음까지 함께 위로받는 공간으로, 기제사의 부담을 덜고 천도와 회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현대적 봉안 문화를 제시한다. 청주, 대한민국 교통의 심장부 벽사초불정사가 위치한 청주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교통의 중심지다. 청주국제공항은 전국 각지와 해외를 연결하며, 오송KTX역은 서울-부산을 잇는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교통 허브로서 수도권은 물론 전국 어디서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