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교 신자들 사이에서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봉안 공간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 단순히 유골을 모시는 시설이 아니라, 기도가 이어지고 수행의 향기가 머무는 자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충북 청주에 자리한 천년향화지지千年香火之地, 벽사초불정사 ‘천년의 뜰’ 봉안당이 불자 전용 프리미엄 봉안당으로 주목받고 있다. “절 안에 있는 봉안당, 그래서 다릅니다” ‘천년의 뜰’은 이름 그대로 천 년 동안 향과 기도가 이어지는 도량을 지향한다. 일반 납골시설과 달리, 사찰 경내 정심원正心院 안에 조성된 봉안당으로, 스님들의 기도와 법회, 불공이 일상처럼 이어진다. 관계자는 “불자분들께서 가장 안심하는 부분은 ‘사람이 오지 않아도 기도가 끊기지 않는 곳’이라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불자 전용 봉안당, 수행과 추모가 함께하는 공간 ‘천년의 뜰’은 불자 전용 봉안당으로 운영된다. 봉안과 동시에 영구 위패 봉안이 가능하며, 법회·천도재·추모 기도가 체계적으로 이어진다. 특히 뒷산에는 걷기 명상 산책로와 좌선대가 마련돼 있어, 유가족과 후손들이 찾아와 자연스럽게 수행과 추모를 함께할 수 있다. “나무 아래 앉으면 그 자리가 곧 금강좌요, 걸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지족안분知足安分, 지족知足은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안분安分은 꿈을 접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지족안분이란, 지금의 나를 인정하면서, 욕심에 끌려가지 않는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만족하겠다.” 그러나 그 ‘조금’은 늘 다음으로 미뤄집니다. 욕심은 채워질수록 기준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족함을 아는 자는 비록 누추한 곳에 있어도 편안하고, 족함을 모르는 자는 천상에 있어도 괴롭다.” 지족은 멈춤이 아니라 깨달음입니다. 이미 가진 것을 세어보는 지혜입니다. 유튜브 불교연합방송 바로가기 안분은 체념이 아니라 균형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을 알고, 그 몫 안에서 책임을 다하는 자세입니다. 생활 속 지족안분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 비교가 시작되는 순간, 만족은 사라집니다. 지금의 형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형편은 인연일 뿐, 나의 값어치가 아닙니다.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쥐려 하지 않는 것. 그 손을 비워야,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집니다. 지족안분의 삶은 적게 가지는 삶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는 삶입니다. 그래
법왕청신문 이준석 기자 |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자주 한쪽으로 치우친 선택을 합니다. 서두르다 놓치고, 옳다고 믿으며 상처를 남기고, 맞서다 보니 서로 멀어집니다. 이럴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삶의 속도를 늦추기보다 방향을 바로 잡으라고 일러줍니다. 오늘의 법문은극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치우침 없는 지혜와 조화로운 마음의 길을 전하는 중도원융中道圓融의 이야기입니다. 중도원융은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이 모든 것을 원만하게 어우른다는 뜻이다. 이 말은 타협하라는 말도, 중간만 취하라는 말도 아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도는 양극을 초월한 깨어 있는 선택의 길이다. 유튜브, 불교연합방송 바로가기 현대사회는 늘 극단으로 흐르기 쉽다. 빨라야 옳고, 강해야 살아남으며, 이기지 못하면 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의견은 둘로 갈리고, 사람은 편을 나누며, 조금만 다르면 적이 된다. 이럴수록 중도원융은 낡은 말이 아니라 지금 가장 필요한 지혜가 된다. 중도는 우유부단함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흐리는 회색지대도 아니다. 중도란 상황을 끝까지 바라보고, 집착을 내려놓은 뒤 선택하는 길이다. 그래서 중도는 느려 보이지만, 가장 정확하다. 강함과 부드러움, 전통과 변화,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신해행증의 수행 체계, 만공 스님의 “믿고, 알며 철저히 수행하며 스스로 도달하라”는 법어는 불교 수행의 완전한 체계를 간결하게 제시한다. 이는 신해행증(信解行證), 즉 믿음(信), 이해(解), 실천(行), 증득(證)의 네 단계를 말한다. 불교 수행은 맹목적 신앙도 아니고 단순한 지적 이해도 아니며, 이 네 가지가 균형있게 발전할 때 완성된다. 현대사회는 지식과 정보의 시대이지만, 진정한 지혜와 깨달음은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알지만, 실제로 수행하고 체험하는 사람은 적다. 또한 맹목적 신앙이나 형식적 의례에 머물러 본질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만공 스님의 가르침은 이러한 편향을 경계하고, 완전하고 균형잡힌 수행의 길을 제시한다. 신해행증의 단계와 실천 신(信), 즉 믿음은 불교 수행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맹목적 믿음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신뢰하는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라고하여, 신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엇을 믿는가? 첫째, 삼보(三寶), 즉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를 믿는다. 둘째, 인과(因果)의 법칙을 믿는다. 선한 행위는 선한 결과를, 악한 행위는
법왕청신문 이준석 대기자 | 서로 나누고 베푸는 오늘입니다. 이 말 한마디에 이미 수행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주 분명하고도 자비롭게 일러주셨습니다. 명예를 얻고자 한다면 계율을 지키고, 재물을 얻고자 한다면 보시를 행하고, 덕망이 높아지고자 한다면 진실한 삶을 살고, 좋은 벗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은혜를 베풀어라. 유튜브 불교연합방송 바로가기 이 말씀은 세상의 계산법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닙니다. 삶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법을 알려주는 가르침입니다. 먼저, 명예와 계율입니다. 명예는 스스로 포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유혹 앞에서도 선을 지키는 사람에게 자연스레 따르는 것이 명예입니다. 계율은 억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입니다. 욕망이 흔들 때마다 기준을 세워주는 힘이 계율이며, 그 힘이 쌓여 사람의 신뢰가 됩니다. 재물과 보시는 더욱 역설적입니다. 사람들은 재물을 얻기 위해 움켜쥐지만, 부처님은 내어놓을수록 흐른다고 하셨습니다. 보시는 단지 돈을 나누는 일이 아닙니다. 시간과 마음, 말 한마디의 친절까지도 보시입니다. 보시는 재물을 늘리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결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울산 남구는 9일 남구청 6층 대강당에서 ‘행복 남구! 희망나눔!’ 주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기부와 봉사를 통해 지역 곳곳에서 희망을 전해온 우수기부자와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사회복지시설 관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눔의 가치를 나누고 남구가 지향하는 복지정책의 비전을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기념식에서는 우수기부자로 선정된 개인, 단체, 기업 총 23명에게 감사패와 착한기업 현판이 전달됐다. 개인 기부자는 △백상산업개발㈜ 대표 박해양 씨 △울산공원묘원 이사장 최성훈 씨가 선정됐고 단체부문은 △국제로터리 3721지구 울산무룡로터리클럽 △국제라이온스협회 355-D지구 울산홍익라이온스클럽 △울산남구 새마을회 △하이본병원 △울산발전소 △(사)울산보금자리NGO △국제로타리 3721지구 울산 로타리클럽 △행복을소망하는사람 장학봉사회 △대한불교조계종 울산광역시 사암연합회 △대한불교조계종 지장정사 △현대자동차㈜ 공조회 △울산항운노동조합이 포함됐다. 기업부문은 △(주)유니드 △NH농협은행 울산중앙금융센터 △㈜코엔텍 △SK에너지㈜ 울산CLX △유벡㈜ △부명엔프로엔지니어링㈜ △㈜청우건설 △에이치설퍼㈜ △㈜이지엠앤씨가 선정됐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의왕시는 지난 9일 사단법인 한국불교석예문화원(오봉정사)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사용해 달라며 김치(12kg) 108상자와 쌀(10kg) 108포를 기탁 했다고 밝혔다. 시청 본관 앞 광장에서 진행된 이날 전달식에는 부주지 지산스님, 차정우 본부장 등 5명이 참석해 따뜻한 나눔의 의미를 더했다. 기부를 주도한 지산 스님은“작은 정성이지만 이번 기부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나눔 실천에 꾸준히 참여하겠다”고 전했다. 김성제 의왕시장은“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따뜻한 나눔을 실천해주신 한국불교석예문화원과 지산스님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기탁해 주신 귀한 마음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소중히 전하겠다”고 말했다. 의왕시는 앞으로도 민관의 협력을 통한 취약계층 지원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상누沙上樓閣이란 모래 위에 세운 누각, 즉 기초가 없는 허망한 것, 순식간에 무너질 것을 붙잡는 인생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도 이와 같은 경책이 있습니다. “모래 위에 짓지 말고, 반야의 반석 위에 지어라.” 지혜 없는 공덕은 쌓아도 흩어지고, 마음의 기초 없이 행하는 수행은 빛이 나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기초 없는 욕망은 사상누각이다. 사람은 모두 행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욕망을 기초로 세운 행복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무너집니다. 명예도, 재물도, 관계도 지혜와 자비가 받쳐주지 않으면 누각처럼 높아 보이지만 모래처럼 허망한 것입니다. 칭찬에 흔들리고, 비난에 무너지고, 작은 이익 앞에서 마음을 잃는 삶. 이 모두가 사상누각의 삶입니다. 부처님은 “올바른 보는 눈, 정견正見이 모든 수행의 기초”라 하셨습니다. 마음의 기초가 바로 서면 그 위의 삶도 견고하게 세워집니다. 정견이란 곧, 업의 이치를 아는 눈 인과의 흐름을 보는 눈 무상한 세상을 꿰뚫는 지혜 이 세 가지입니다. 정견의 반석 위에 쌓은 삶은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부처님께 잘 보이고자 하는 마음,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천년향화지지千年香花之地에 자리한 벽사초불정사僻邪招佛精舍는 불교적 상징성과 현대적 공간 해석이 결합된 독특한 도량이다. 노란색에서 황금색에 이르는 계열의 외관은 단순한 색채 선택이 아니라, 부처님의 세계를 드러내는 미학적 장치이자 도량 전체의 신성성을 강화하는 상징성의 코드이다. 불교에서 황금빛은 깨달음, 지혜, 영광, 부처님의 광명을 상징한다. 사찰의 금빛 외관은 단순 화려함을 넘어, 중생의 무명을 밝히는 부처님의 광명光明 그 자체를 형상화한다. 특히 벽사초불정사에서 사용된 색은 ‘노란색黃’을 바탕으로 한 자연 계열이어서, 인위적 금칠의 과시성과는 다른 온화한 신성·전통적 불교미감을 내포한다. 이는 “화려하되 탐욕적이지 않고, 장엄하되 부담스럽지 않은” 균형을 만들어낸다. 건물의 외형은 층단형 구조로 위로 올라갈수록 가벼워지는 형태를 취한다. 이는 지혜로 올라가는 수행의 계단, 또는 삼계三界의 상승 구조를 연상케 한다. 바닥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선들은 수평과 수직이 교차하며, 정교한 규칙성을 유지한다. 그 규칙성은 불교의 법칙성法性, 우주의 질서, 연기법의 구조적 조화를 상징한다. 또한 이러한 입체 구조는 사찰의 장엄함을 강조하면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천년 향기가 머무는 자리에 조용히 빛을 밝히는 도량이 있습니다. 그 이름 벽사초불정사僻邪招佛精舍. 이 도량의 이름은 네 글자씩 나뉘어 네 가지 가르침을 전합니다. 僻邪벽사 삿됨을 멀리하라 ‘벽사’란 세상의 삿된 기운, 헛된 욕망, 마음을 흐리게 만드는 모든 어둠을 멀리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삿됨’은 바깥 어둠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잠든 욕심, 분노, 어리석음입니다. 벽사초불정사는 귀신을 쫓는 도량이 아니라 마음의 그림자를 거두는 도량입니다. 어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틈에서 피어오르니 먼저 나를 바르게 세우는 그 순간, 삿됨은 스스로 물러납니다. 招佛초불 부처님을 모셔라 ‘초불’이란 부처님을 초청하고, 부처님의 자비를 내 삶에 모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밝아지는 순간 그 자리에서 스스로 드러나시는 존재입니다. 초불의 시작은 큰 의식이 아니라 온화한 마음, 남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한 번입니다. 부처님은 눈을 감고 마음을 맑히는 순간 이미 내 마음의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精舍정사마음이 머무는 집 정사精舍는 몸과 마음이 고요히 쉬는 집입니다. 지친 마음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세상은 늘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들려주고,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오래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상유심생相由心生, 모든 모습은 마음에서 태어난다.” 아침 햇살이 따뜻해도 마음이 흐리면 그 빛은 눈부심일 뿐이고, 바람이 부드러워도 마음이 지쳐 있다면 그 바람도 차갑게 느껴집니다. 세상은 변함이 없는데 느껴지는 풍경만 달라지는 이유는 그 중심에 바로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이 잔잔한 날엔 길가의 작은 들꽃도 눈에 들어오고, 평소 지나치던 사람의 얼굴에서도 따뜻한 온기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어지러우면 꽃은 꽃으로 보이지 않고,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유독 날카롭게 꽂히는 것도, 사소한 일이 크게 느껴지는 것도 모두 마음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잠시 구름을 낀 것이다. 비 오는 날이라고 해서 하늘이 슬픈 것은 아닙니다. 그저 구름이 지나가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같습니다. 때로는 분노가, 때로는 두려움이, 때로는 서러움이 구름처럼 찾아와 세상을 어둡게 보이게 할 뿐입니다. 하지만 구름이 걷히면 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듯, 마음의 구름이 걷히
법왕청신문 이준석 기자 | 천년 향화의 땅, 벽사초불정사僻邪招佛精舍가 한국 불교건축의 새로운 장을 열 대역사를 공식화했다. 담화총사는 19일, 벽사초불정사의 4층 석탑식 건물을 황금색 외벽으로 전면 리모델링하는 공사를 12월 착공한다고 발표했다. 공사 기간은 약 4개월이며, 2026년 봄 ‘황금 석탑식 건물’의 위용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번 리모델링은 단순한 보수가 아니라, ‘벽사퇴산僻邪退散·초불안림招佛安臨’의 정신을 건축적으로 완성하는 역사적 선언으로 평가된다. 벽사초불정사가 준비하는 또 하나의 초대형 프로젝트는 바로 길이 60m, 높이 5m의 대규모 일주문 건립이다. 이는 국내 사찰 구조 중에서도 보기 드문 규모로, 도량의 상징성과 위계를 극대화하는 천년 향화의 관문關門으로 조성된다. 대규모 일주문은 ‘삿됨은 물러나고, 바른 길만 열리며, 부처님의 향화가 도량으로 들어온다’는 수행적 메시지를 상징하는 핵심 건축물이다. 담화총사는 “한국 불교건축을 대표할 랜드마크형 일주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벽사초불정사의 핵심 개발은 명상형 숲 조성이다. 1만5천여 평의 벌목 정비 후 토토(흙) 기반으로 전통·교목 수종 새 식재 총 길이 2.5km의 맨발걷기·명상센터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일정 스님은 최근 법문에서 고대의 성어 자승자박自繩自縛을 통해, 우리 사회가 겪는 혼탁함의 근원을 통찰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깊은 성찰의 메시지를 전했다. 스님은 “세상 사람들 모두는 한 올의 밧줄을 손에 쥐고 살아간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 밧줄은 집을 짓고 이웃을 돕는 선한 쓰임도 있지만, 때로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묶는 속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스님은 자승자박의 뜻을 “남이 묶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든 매듭·내 욕심이 만든 속박”이라 설명하며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원인을 개인의 탐욕·분노·무관심에서 찾았다. 가짜가 진짜처럼 행세하고, 정의가 뒤로 밀리며, 말은 넘쳐나지만 실천은 사라진 현실, 그러나 이러한 혼탁함은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쥐고 있는 작은 매듭들의 집합이라는 지적이다. 스님은 혼탁함을 만들어내는 네 가지 매듭을 다음과 같이 짚었다. 욕심의 매듭: 더 가지려는 욕망이 결국 스스로를 옥죄는 줄이 된다. 분노의 매듭: 남을 태우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태운다. 거짓의 매듭: 진실을 누르고 선 이익은 잠시 빛나지만 결국 허상으로 돌아온다. 무관심의 매듭: 조용하지만 깊은 독으로, 사회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장흥군 사암연합회(보림사 정응스님)는 지난 11월 9일, 장흥군 불자 113명이 참여한 가운데 ‘2025 사암연합회 사찰탐방 힐링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행사는 몇 년간 침체되어 있던 사암연합회가 새롭게 활력을 찾는 첫걸음으로, 불자 간 화합과 신심 고취, 그리고 마음의 힐링을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참가자들은 ▲구례 연곡사 ▲하동 쌍계사 ▲사천 다솔사 ▲남해 독일마을을 차례로 탐방했다. 늦가을 단풍이 물든 사찰 경내에서 참가자들은 참배와 기도를 드리고, 각 사찰의 역사와 불교문화를 배우며 마음을 가다듬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은 오래동안 침체됐던 사암연합회가 다시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며 “함께 웃고 기도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귀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사암연합회 관계자는 “이번 사찰 탐방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신심을 새롭게 다지고 연합회의 결속을 회복하는 상징적인 행사였다”며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연등행사에 더 많은 불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홍보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세존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세상의 더러움에 대해 이렇게 설하셨다. 옛날 어느 나라에 지주왕地主王이 있었는데, 왕에게는 자비慈悲라는 태자가 있었고, 왕의 대신 전존專尊에게는 염만焰曼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지주왕은 궁궐 안에서 향락을 즐기며 정사를 모두 전존에게 맡겼다. 전존은 모든 일을 아들 염만과 의논하여 처리했는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왕은 크게 슬퍼했다. 태자 자비가 왕에게 아뢰었다. “전존을 잃은 것은 슬프오나, 아들 염만은 더욱 지혜롭고 현명합니다. 그를 불러 나라 일을 맡기심이 옳겠습니다.” 왕은 그 말을 따랐고, 염만은 국정을 훌륭히 다스려 명성이 높아져 ‘대전존大專尊’이라 불렸다. 그러나 세상은 덧없다. 왕이 늙어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자 태자 자비가 왕위에 올랐다. 새 왕 또한 정사를 대전존에게 맡기고 스스로는 내전에서 오욕을 즐겼다. 그는 대신들과 약속한 국토 분배조차 잊었다. 대신들이 약속을 상기시키자, 왕은 나라를 일곱 등분하여 여섯 대신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대전존에게 맡겼다. 대전존은 공정하게 국토를 나누어 주었고, 그 덕에 일곱 왕과 백성 모두가 그를 신처럼 존경하였다. 일곱 거사居士와 7백의 바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