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주한미국대사관이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한미 동맹의 역사와 가치를 되새기는 기념 행사를 열고, 문화 교류를 매개로 한미 관계의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이번 행사는 예술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경제·통상 협력과 동맹의 전략적 의미를 재확인하려는 외교적 메시지가 함께 담겼다는 평가다. 주한미국대사관은 28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주한미국대사대리 관저에서 ‘표현의 자유: Freedom250 한미 창의 대화’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연중 캠페인의 첫 행사로, 한미 양국의 공통 가치인 자유와 창의성, 표현의 자유를 문화적 언어로 조명하는 자리였다. 행사장에는 미국에서 활동한 1세대 한국 여성 작가 제정자 화백의 대표작인 ‘버선’ 연작 가운데 10점이 전시됐다. 제 화백은 잭슨 폴락, 앤디 워홀 등 미국 현대미술 거장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한국 전통의 미감과 정서를 결합해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대사관 측은 제 화백의 작품을 한미 문화 교류의 상징적 사례로 소개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이번 전시는 양국을 하나로 잇는 공동의 예술적 정신을 기념하는 동시에, 상호
법왕청신문 이준석 기자 | 정치는 본래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방편方便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는 편안함보다 갈등을 키우고, 지혜보다 소리를 앞세우며, 공익보다 진영을 먼저 부른다. 부처님께서는 권력의 허망함을 늘 경계하셨다. 권력은 칼과 같아 지혜가 없으면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를 베는 흉기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정치판은 양웅상쟁兩雄相爭의 형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가 옳은가보다 누가 이길 것인가가 중요해졌고, 국민은 주체가 아니라 승패를 가르는 숫자로 취급된다. 정책은 사라지고 구호만 남았다. 책임은 뒤로 밀리고 비난은 앞에 섰다. 불교에서는 이를 탐·진·치貪瞋癡라 부른다. 탐욕은 권력을 놓지 못하게 하고, 분노는 상대를 적으로 만들며, 어리석음은 국민보다 진영을 먼저 보게 한다. 이 세 가지가 정치에 스며들면 정치는 수행이 아니라 전쟁이 된다. 정치는 수행과 같아야 한다. 먼저 걱정하고 나중에 즐거워하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는 먼저 즐기고 나중에 책임을 피하는 선락후우先樂後憂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은가. 정치는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을 찾는 공부다. 정치가 전쟁이 되는 순간 국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말이 많아질수록 핵심은 흐려진다. 정보가 넘칠수록 깨달음은 멀어진다. 이 시대가 진짜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설명이 아니라 한 번의 정확한 찌름이다. 정문일침頂門一鍼, 정수리에 침 하나를 놓는다는 말이다. 돌려 말하지도, 꾸미지도 않는다. 바로 그 자리, 바로 그 마음을 찌르는 단 한 번의 가르침이다. 선방에서 스승은 길게 말하지 않는다. 제자의 말이 길어질수록 스승의 말은 짧아진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설명으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회는 말로 가득 차 있다. 회의는 길고, 토론은 많고, 의견은 넘치지만 정작 문제의 핵심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침은 상처를 내기 위한 말이 아니다. 잠든 마음을 깨우기 위한 자비다. 아프지만, 그 아픔이 지나가면 길이 보인다. 정문일침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함께 깨어나기 위한 말이다. 그래서 그 말은 날카롭지만 맑고, 짧지만 오래 남는다. 수행자의 한마디, 참된 어른의 한마디는 문제를 둘러싸지 않는다. 문제의 정수리에 조용히 침을 놓을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핵심을 꿰뚫는 한 사람이다. 그 한마디가 수많은 말보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빠른 시대일수록 사람은 스스로의 값을 증명하려 애쓴다. 더 많이 드러내고, 더 크게 외쳐야 존재가 인정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요한 법문은 말한다. 가치란 떠드는 데 있지 않고, 쓰임을 기다리는 데 있다고. 차재두량車載斗量이란, 수레에 싣고 말로 잰다는 뜻이다. 너무 흔하여 귀하지 않다는 말이지만, 이 고사에는 오늘을 향한 깊은 경계가 담겨 있다. 지금의 세상은 기술도 넘치고, 말도 넘치고, 능력마저 흔해졌다. 자격증은 쌓이고, 이력은 길어졌지만 정작 “어디에 쓰일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잠시 침묵하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은 없음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음이다. 차재두량의 진짜 가르침은 “나는 별것 아니다”라는 자기비하가 아니라 “나는 아직 쓰일 자리를 기다린다”는 겸허한 자각이다. 쓸모는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 속에서 드러난다. 아무리 많은 것이 있어도 때와 자리가 맞지 않으면 수레 위의 짐에 불과하다. 오늘의 사회는 자기를 포장하는 데 능숙하지만 자기를 비우는 데 서툴다. 그러나 수행자의 길은 다르다. 비워야 담기고, 낮추어야 쓰임을 얻는다. 차재두량이라 스스로를 말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빠른 세상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숨을 고르기 위한 작은 법문이다. 고사가 전하는 말들을 빌려 오늘의 삶을 비추고, 각자의 걸음이 헛되지 않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에게 이 글이 잠시 머무는 그늘이 되기를 바란다. 요즘 세상에서 각고면려란 이를 악물고 버티는 고행만을 말하지 않는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하루를 포기하지 않으며, 자기 삶의 방향을 잃지 않는 꾸준함이다. 뼈를 깎는 고통이 아니라 마음을 다잡는 인내, 속도를 늦추더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성실함이 오늘의 각고면려다. 부처의 길은 고생을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고통 속에서도 지혜를 잃지 말라 가르친다. 힘들어도 원망으로 가지 않고, 느려도 정직하게 가는 것, 그것이 이 시대 수행자의 가장 현실적인 정진이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지난 15일, 청와대 영빈관에 걸린 황금빛 전통 문양 앞에서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눴다. 이재명 대통령과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 이 만남은 단순한 외교 의례가 아니었다. 2009년 바라카 원전 수주로 시작된 16년간의 여정,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백년 동행'의 중간 지점에서 이루어진 재확인의 순간이었다. 사진 속 칼둔 청장의 미소는 특별했다. 그는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 부르는 UAE의 한국 전담 특사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17년간 한-UAE 관계의 산증인이자 설계자로서, 그가 걸어온 길은 곧 두 나라 협력의 역사 그 자체였다. 사막의 기적, 바라카에서 시작된 신뢰 2009년 12월, 한국전력이 UAE 바라카 원전 사업을 수주했을 때, 세계는 놀랐다. 프랑스 같은 원전 강국들을 제치고 한국이 186억 달러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따낸 것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280km 떨어진 사막.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한국형 원전 APR1400 4기를 건설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팀코리아'는 약속을 지켰다. 'On tim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벽사초불정사 뒷산, 그 길 위에는 걷기명상 산책로가 있고 그 숲 사이사이에는 좌선대가 놓여 있다. 보리수 아래만이 깨달음의 자리가 아니듯 이름 없는 나무 아래 또한 마음이 머무는 순간 그곳은 곧 금강좌가 된다. 현대인은 멀리 가야 쉼이 있다고 믿고, 특별해야 수행이라 여긴다. 그러나 부처님은 발 아래에서 길을 열고 숨 하나에 법을 두셨다. 앉으면 몸이 먼저 고요해지고 마음이 따라 내려앉는다. 그 자리는 이미 흔들리지 않는 금강좌다. 걸으면 생각이 흩어지고 욕심이 내려놓아진다. 한 걸음, 또 한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니 그 길은 보보연화다. 이 산책로는 자연을 보여주기 위한 길이 아니다. 자기를 마주하게 하는 길이며 도망치지 않고 머무는 법을 배우는 길이다. 빠른 시대일수록 천천히 걷는 자가 앞서가고 소란한 세상일수록 가만히 앉은 이가 깊다. 따라서 앉으면 수행이고 걸으면 기도다. 여기서는 특별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몸, 이 숨, 이 자리. 그대로가 부처님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담화풍월이 오늘의 시대에 건네는 말이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삼고초려三顧草廬이란, 초라한 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무게는 ‘횟수’에 있지 않고 ‘마음의 자세’에 있다. 오늘의 시대는 빠르다. 연락 한 번으로 사람을 부르고, 결과가 없으면 곧바로 등을 돌린다. 기다림은 비효율이라 여겨지고, 정성은 번거로움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삼고초려는 말한다. 사람은 한 번의 요청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인연은 조건으로 얻어지지 않는다고... 유비는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 번 길을 나섰지만, 실은 제갈량을 설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릇을 증명한 것이다. ‘당신을 모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침묵의 고백이었다. 오늘 우리의 삼고초려는 무엇인가. 사람에게서 답을 재촉하며 마음은 준비되지 않은 채 결과만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불교에서는 이것을 정성精誠이라 한다. 정성은 상대를 움직이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먼저 나를 낮추는 수행이다. 세 번 찾는다는 것은 세 번 참아내고, 세 번 자신을 돌아본다는 뜻이다. 진정한 인재는 값으로 오지 않고, 진정한 인연은 속도로 맺어지지 않는다. 삼고초려는 옛말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가 가장 잃어버린 태도에 대한 조용한 경책이다. 풀집은 허름했으나 그
법왕청신문 강경희 기자 | 불교에서 말하는 無怨無悔무원무회는 체념의 문장이 아니다. ‘원망도 없고, 후회도 없다’는 말은 과거를 지워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는 자유의 상태를 가리킨다. 부처님은 고통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말고, 마음의 매듭에서 보라고 하셨다. 원망과 후회는 그 매듭의 가장 단단한 두 가닥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묻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그때 그렇게만 하지 않았더라면.” 이 질문들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질문이 오래 머물면 삶은 뒤로 흐르기 시작한다. 원망은 타인에게, 후회는 과거의 나에게 마음을 묶는다. 그 사이 현재는 비어버린다. 무원무회는 이 결박을 풀어 지금으로 돌아오는 수행이다. 원망은 나를 보호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나를 가장 오래 가두는 감정이다. 누군가를 탓하는 동안 마음은 상대에게 종속된다. 상대가 사과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고,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가라앉지 않는다. 부처님은 이렇게 물으셨다. “상대가 변해야 네 마음이 편안해지는가?” 무원은 상대를 용서하라는 도덕 명령이 아니다. 내 마음의 주권을 되찾는 선택이다. 후회 역시 마찬가지다. 후회는 반성의 가면을 쓰고 다가온다. 그러나 반성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暗中摸索암중모색이란,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길을 찾는다는 이 말은 세속에서는 미숙함이나 시행착오를 뜻하는 말로 쓰이곤 한다. 그러나 불법의 눈으로 보면, 암중모색은 중생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가장 정직한 수행의 모습이다. 우리는 종종 삶이 분명해야 한다고 믿는다. 길이 보이고, 답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확실하면 두려워하고, 확신이 없으면 멈춰 선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삶 자체가 본래 어둠 속을 걷는 여정임을 이미 알고 계셨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인생의 해답을 들고 오지 않는다. 누구도 완성된 지도를 받은 적이 없다. 수행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마음이 밝아지는 이는 없다. 처음부터 번뇌가 사라지는 수행도 없다. 수행의 시작은 언제나 어둠이다. 화가 왜 나는지 모르고, 집착이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한 채 괴로워한다. 이때 많은 이들이 말한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더 확실해지면 하겠다.” 그러나 불법은 말한다. 확실해진 뒤에 걷는 것이 아니라, 걷는 가운데 밝아진다고 말이다. 암중모색이란 무작정 헤매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 태도다. 손을 뻗어 벽을 느끼고, 바닥
법왕청신문 강경희 대기자 | 어머니의 숨결이 멎던 날, 나는 알았다. 사람은 떠나도, 이름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불교에서는 기제사든, 천도재든, 반혼재든 반드시 위패를 모신다. 위패 없이 올리는 제사는 마음 없는 인사와 같기 때문이다. 위패는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다. 그것은 혼이 머무는 자리이자, 산 자의 마음이 돌아오는 좌표다. 그래서 위패는 납골봉안당이나 법당에 반드시 안치되어야 한다. 기제사를 지낼 때도 마찬가지다. 위패를 모셔 예를 올린 뒤, 다시 본래의 자리로 정중히 모신다. 이를 불교에서는 반혼재返魂齋라 한다. 혼을 불러 예를 다하고, 다시 평안히 돌아가시도록 보내는 의식이다. 천도재 역시 위패가 없다면 그저 허공을 향한 독경에 그칠 뿐이다. 천도란, 혼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는다. 왜 위패는 중요한가. 그리고 왜 벽사초불정사에서는 밤나무 위패를 사용하는가. 그 답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윤회와 조율이씨調律理種에 있다. 밤나무를 보라. 밤은 태어날 때 가시로 단단히 둘러싸여 있다. 마치 부모의 뱃속에서 아이를 보호하듯, 밤톨은 가시 속에서 자란다. 성장이 끝나면 가시는 스스로 벌어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가을이 깊어가면, 사람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한곳으로 모인다. 바로 등불이 켜진 자리이다. 여름의 뜨거움이 물러나고, 바람에 서늘함이 스미면 등불의 온도는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고, 작은 불빛 하나에도 마음은 편안해진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이 계절을 두고 “燈火可親등화가친”, “등불을 가까이하기 좋은 때”라 불렀다. 그러나 등화가친은 단순히 책 읽기 좋은 계절을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말 속에는 자기를 다스리고 마음을 밝혀내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 담겨 있다. 계절의 기운은 사람의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을은 자연이 익어가는 때이자, 인간의 내면 또한 숙성되는 시간이다. 처서가 지나고 백로에 이르면 공기 중의 습기는 가라앉고, 밤은 길어지며, 마음은 잔잔한 물결처럼 고요해진다.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하루 동안 쌓인 번뇌와 감정을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지혜를 얻게 된다. 등불은 두 층위의 상징을 지닌다. 첫째는 외등外燈, 바깥을 비추는 실제의 등불이다. 둘째는 내등內燈, 마음을 비추는 지혜의 불빛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일러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라 하셨다. 남의 빛을 좇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등불로 삼아 삶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세상은 밝아 보이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어둠이 흐릅니다. 말로는 따르고, 겉으로는 공손하나 돌아서서 등을 돌리는 ‘면종복배’의 세상이 더욱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회는 진심보다 계산이 앞서고, 도리보다 이익이 앞서며, 사람의 마음보다 숫자가 더 힘을 갖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말은 입에서 나오나, 진실은 심장 속에서 나온다.” 겉과 속이 다른 삶은 편리해 보이지만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립니다. 속으로는 남을 헐뜯고, 등 뒤에서는 이익을 위해 배반하며, 눈앞의 작은 이득을 위해 큰 도리를 저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삶은 결국 원망을 만들고, 업을 쌓고, 스스로를 속박합니다. 진정한 수행자는 ‘겉과 속이 하나’인 사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과 마음과 몸이 하나 되는 것을 삼업청정三業淸淨이라 하셨습니다. 겉은 미소지만 속은 칼날처럼 서 있다면, 그 마음은 이미 지옥의 씨앗을 품은 것이고, 겉은 굳어 있어도 속이 따뜻하다면 그 사람은 이미 보살의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사회는 겉치레 예절, 허울 좋은 말, 가식적인 미소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행동과 진심입니다. 말보다 실천이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21세기 국제 질서의 중심축은 다시 과학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바이오 기술은 단순 산업을 넘어 안보·외교·경제 권력의 핵심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유럽·중국은 이미 바이오 패권 경쟁으로 치닫고 있으며, 아시아 국가들 역시 국가 전략의 최상위에 바이오와 헬스케어 산업을 올려놓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의 한복판에서 대한민국의 바이오 산업 전략을 이끄는 중심축이 있으니, 바로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KBIOHealth)이다. 그 중심에는 정치·행정·보건의료 정책을 모두 경험한 이명수 이사장이 서 있다. 국가의 힘, 외교의 힘, 경제의 무기다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 국가 간 백신 협상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 외교적 협상력의 시험대였다. 그 과정에서 각국은 바이오 기술이 곧 국가의 생존, 즉 보건안보(Health Security)의 핵심임을 깨달았다. 이사장은 이를 명확히 짚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이오는 미래 산업이 아닙니다. 이미 국제 정치의 중심입니다. 국가의 생명을 지키는 안보이며, 경쟁국과 협력국을 결정하는 외교의 언어입니다.” 이 시점에서 오송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니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담화문화재단은 전통문화의 지혜와 예술정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문화자산을 세계와 공유하고,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공공문화의 미래를 열어갑니다. 우리는 문화의 힘을 믿습니다. 그림 한 점, 글귀 하나가 시대를 밝히고 한 나라의 정신을 세계로 이끄는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압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전통은 어떻게 살아 숨 쉬는가? 예술은 어떻게 미래를 바꾸는가? 그리고 문화는 어떻게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가? 동영상 담화문화재단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다음의 길을 선언합니다. 1. 전통문화의 세계화, 그 이상을 향해 우리는 ‘K-민화’, ‘K-문인화’, ‘K-불교문화’를 단순한 문화 콘텐츠를 넘어 글로벌 문화 브랜드로 성장시킵니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세계인의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할 것입니다. 2. 문화외교의 핵심 파트너로 우리는 전시, 공연, 학술, 인문교류를 통해 전통문화가 국제사회의 평화와 공존의 가교가 되도록 하며, 외교사절단, 유네스코, 국제박물관 등 글로벌 네트워크와 함께 문화 외교의 미래를 디자인합니다. 3. 미래세대를 위한 문화교육 혁신 우리는 디지털 기반 교육 콘텐츠, 체험형 박물관, 융합예술 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