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모의 가장 큰 기도는 합격을 넘어 자녀가 자신을 믿고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이름이 합격자 명단에 오르는 것을 금방제명金榜題名이라 했습니다. 金금은 귀하고 빛남을, 榜방은 이름을 게시하는 방을, 題제는 이름을 적는 것을, 名명은 그 사람의 이름을 뜻합니다. = 동영상= 피어라 너의 꽃이 부모님이 수험생에게 보내는 합격 축원 오늘날에는 입시와 수능, 공무원시험, 자격시험, 승진시험 등 오랫동안 준비해온 사람이 마침내 바라던 결과를 얻는다는 의미의 축원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방제명의 네 글자 뒤에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시간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합격이라는 결과를 먼저 보지만, 부모는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자녀가 걸어온 시간을 기억합니다. 늦은 밤까지 꺼지지 않던 방문 아래의 불빛, 틀린 문제를 다시 풀던 손, 시험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커지던 불안,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책상 앞을 지켰던 수많은 날... 합격증 한 장에는 보이지 않는 수천 시간의 인내가 들어 있습니다. 씨앗을 심었다고 다음 날 꽃이 피지는 않습니다. 비를 맞고 바람을 견디며, 뜨거운 햇볕과 추운 계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수주대토守株待兎는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옛날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달려오던 토끼 한 마리가 우연히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었습니다. 농부는 힘들이지 않고 토끼를 얻게 되자 생각했습니다. ‘내일도 토끼가 이 나무에 부딪히겠지.’ 그날부터 농부는 밭을 갈지 않고 그루터기 옆에 앉아 토끼가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다시 오지 않았고, 돌보지 않은 밭은 황폐해졌습니다. 이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우연히 찾아온 한 번의 행운을 인생의 법칙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제 성공한 방법이 오늘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과거에 통했던 경험이 미래에도 그대로 통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기술이 변하고, 시장이 변하며,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방식도 달라집니다. 그런데도 “예전에는 이렇게 해서 잘됐다”며 과거의 방식만 붙잡고 있다면 우리는 어느새 수주대토의 농부가 될 수 있습니다. 경험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경험이 지혜가 되려면 변화하는 현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자리와 명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1966년 10월 31일, 대한민국을 국빈 방문한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 미국 대통령 부부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마련한 공식 만찬의 실물 메뉴판이 60년의 세월을 넘어 당시 한미 정상외교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기록에 따르면 존슨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1966년 10월 31일 서울에 도착해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했으며, 이듬날인 11월 1일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회담했다. 방한 일정은 11월 2일까지 이어졌다. 이번에 공개된 메뉴판에는 당시 국빈을 맞이했던 대한민국의 외교 의전뿐 아니라 전통음식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정체성을 알리려 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합중국 대통령 린든 B. 존슨 각하 동 영부인을 위한 만찬” 메뉴판에는 한글로 “미합중국 대통령 린든 B. 존슨 각하 동 영부인을 위한 대한민국 대통령 동 영부인 주최 만찬”이라는 문구와 함께 “1966년 10월 31일 서울”이라고 기록돼 있다. 오른쪽 영문 면에도 존슨 대통령과 부인을 위한 대한민국 대통령 부부 주최 만찬임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메뉴판 상단에는 전통적인 장식 문양과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1967년 대한민국을 방문한 하인리히 뤼브케(Heinrich Lübke) 당시 독일연방공화국(서독) 대통령 부부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마련한 공식 만찬의 실물 메뉴판이 공개돼 당시 한독 정상외교의 모습을 다시 조명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외교문서에는 뤼브케 대통령의 대한민국 방문 기간이 1967년 3월 2일부터 6일까지였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관련 문서는 외무부가 생산한 영구보존 기록물로 남아 있다. 이번에 공개된 메뉴판에는 1967년 3월 3일 서울이라는 날짜와 장소가 명시돼 있어 59년 전 대한민국 국빈 만찬의 현장을 직접 보여준다.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 하인리히 뤼브케 각하를 위한 만찬” 메뉴판 한글 면에는 “독일 연방 공화국 대통령 하인리히 뤼브케 각하 동 영부인을 위한 대한민국 대통령 동 영부인 주최 만찬”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영문 면에도 뤼브케 대통령과 부인을 기리는 대한민국 대통령 부부 주최 만찬이라는 내용과 함께 ‘March 3, 1967 / Seoul’이 기록돼 있다. 당시 방한은 한독 정상외교사에서도 의미 있는 일정이었다. 대한민국 외교연표에는 뤼브케 대통령의 국빈 방문과 함께 방문을 마무리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한 배를 타고 있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권력을 쥐었든 평범한 국민이든 이 배가 흔들리면 누구도 온전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치는 민생보다 정쟁에 몰두하고, 지도자들은 책임보다 남의 탓을 앞세운다. 진영은 국민을 편으로 가르고, 거친 말과 거짓 정보는 불신과 증오를 키우고 있다. 서로가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한쪽에서 구멍을 뚫고 다른 쪽에서 물을 퍼낸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상대를 무너뜨리면 자신만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배가 침몰하면 모두가 함께 가라앉는다. 동주공제同舟共濟는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는 뜻이다. 평온한 물길에서는 누구나 노를 저을 수 있지만, 거센 풍랑 속에서는 서로 믿고 힘을 합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정치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지키는 책임이다. 여야가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고 국정을 싸움판으로 만든다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는 줄어드는데도 정쟁만 계속된다면 국민은 누구를 믿고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가. 기업은 이익만 좇기보다 사회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고식지계姑息之計란 눈앞의 어려움만을 모면하기 위해 세우는 임시방편의 계책을 말합니다. 당장은 편하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 원인을 바로잡지 않으면 결국 더 큰 문제로 되돌아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고식지계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기보다 책임을 피하려 하고, 조직의 잘못이 드러나면 구조를 고치기보다 당장의 비판을 잠재우는 데 급급하기도 합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불편한 관계를 외면하며, 작은 잘못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변명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덮어둔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붕에서 물이 새는데 바닥의 물만 닦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물이 새는 곳을 찾아 지붕을 고쳐야 합니다. 병의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통증만 잠시 줄이는 것 역시 근본적인 치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국가와 사회의 문제도 같습니다. 정책은 당장의 인기보다 미래 세대까지 바라봐야 하고, 공직자는 눈앞의 비판을 피하는 것보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는 데 힘써야 합니다. 기업 역시 단기적인 이익만을 좇다가 신뢰와 원칙을 잃는다면 더 큰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리는 늘 ‘더 많이’를 향해 달려갑니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자리, 더 큰 권력, 더 많은 명예와 관심을 원합니다. 조금만 더 가지면 행복할 것 같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만족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나무의 뿌리가 썩고, 음식을 지나치게 먹으면 건강을 해칩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집착이 되고, 자신감도 지나치면 오만이 되며, 권력도 절제를 잃으면 독선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입니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마찬가지로 바른 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사회는 부족함보다 오히려 지나침 때문에 생기는 고통도 많습니다.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 하고,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더 많은 자리를 탐하며, 충분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더 큰 권력을 원합니다. 기업은 끝없는 성장을 요구하고, 사람들은 타인의 화려한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 하나를 잊습니다. “나는 지금 충분하지 않은가?” 불교에서는 인간의 고통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탐욕(貪欲)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허장성세虛張聲勢는 실속이나 실력은 부족하면서 겉으로만 세력이 강한 것처럼 과장하여 위세를 부리는 모습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헛되이 목소리의 기세만 높이는 것’입니다. 이 네 글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자신을 드러내기 쉬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정치에서는 성과보다 구호가 앞서기도 하고, 조직에서는 능력보다 직함을 내세우기도 하며, 사회관계망에서는 실제 삶보다 화려하게 꾸민 모습이 더 크게 주목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크게 말한다고 큰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감과 허세는 다릅니다.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오지만 허세는 부족한 실력을 감추려는 데서 나오기 쉽습니다. 참된 권위는 스스로 높인 목소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행동과 책임에서 만들어집니다. 특히 권력과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허장성세를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 달라지는 삶입니다. 화려한 약속보다 지켜진 약속 하나가 소중하고, 백 마디의 구호보다 책임 있는 행동 하나가 더 큰 신뢰를 만듭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고, 부족한 성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연꽃은 맑은 물만을 골라 피지 않습니다.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도 진흙의 빛깔을 닮지 않은 채 자신의 꽃을 피웁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욕심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억울한 일을 겪으며, 때로는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세상을 탓하고 사람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연꽃은 말없이 가르쳐 줍니다. “진흙 속에 있다고 해서 너까지 진흙이 될 필요는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은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없애는 일이 아닙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욕심 앞에서 한 번 멈추고, 분노 앞에서 한 번 참으며, 미움 앞에서 자비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마음속 연꽃을 피우는 작은 수행입니다. 연꽃의 뿌리는 진흙에 있지만 꽃은 하늘을 향합니다. 사람 역시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마음만큼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반드시 향기로운 사람도 아니며, 높은 자리에 있다고 반드시 존경받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향기는 그가 가진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에서 나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흐르는 물 한가운데 작은 바위 하나가 있습니다. 흙 한 줌 넉넉하지 않은 그 바위틈에 버드나무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누가 심어준 것도 아니고, 누가 물을 주고 돌봐준 것도 아닙니다. 비가 많이 오면 거센 물살을 견뎌야 하고, 햇볕이 뜨거우면 작은 바위 위에서 온몸으로 더위를 받아내야 합니다. 그래도 버드나무는 자신의 처지를 탓하지 않습니다. “왜 나는 좋은 땅에서 태어나지 못했는가.” “왜 나에게는 넓은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는가.”묻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한 줌의 흙에 뿌리를 내리고, 흐르는 물에서 생명을 얻으며 하늘을 향해 잎을 펼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너무 쉽게 환경을 탓하고, 남과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가진 사람은 더 가지려 하고, 자리를 얻은 사람은 더 높은 자리를 탐하며, 때로는 자신의 부족함까지 남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저 작은 버드나무는 말없이 가르칩니다. 좋은 자리가 사람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를 만든다고. 큰 땅을 차지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남보다 높이 서지 않아도 좋습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작은 바위틈에서도 뿌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물 한 방울은 힘이 없습니다. 손바닥에 떨어지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떨어지면 단단한 돌에도 자국을 남깁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 했습니다.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빨리 결과를 원합니다. 몇 번 노력하고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나는 안 되는가 보다”라고 포기합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은 눈에 보이지만,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흘린 땀과 견딘 시간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삶을 바꾸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행운만이 아닙니다. 매일 조금씩 쌓아온 작은 노력입니다. 공부도 그렇고, 수행도 그렇고, 사람과의 신뢰도 그렇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오늘 한 번의 친절이 사람을 바꾸고, 오늘 한 번 참은 말이 관계를 지키며, 오늘 한 걸음의 노력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연꽃이 진 뒤 남겨진 연밥에는 수많은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꽃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이미 다음 생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 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자라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남보다 빨리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은 무엇인가를 처음 시작할 때 마음이 참 맑습니다.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는 작은 기회에도 감사하고,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찾아오는 손님 한 사람도 소중합니다. 처음 책임 있는 자리에 올랐을 때는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자리가 익숙해지면 마음도 달라지기 쉽습니다. 감사는 당연함으로 변하고, 겸손은 자만으로 바뀌며, 처음 품었던 뜻보다 자리와 이익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말이 초심불망初心不忘입니다. 처음 품었던 맑고 바른 마음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처음을 돌아보십시오 현대사회에서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권력과 성공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섬기겠다고 했지만 높은 자리에 오른 뒤에는 자신의 말만 옳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을 기억했지만 성공한 뒤에는 그들의 도움을 잊기도 합니다. 그러나 높은 자리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자리는 올라갈수록 마음은 낮아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고개를 숙인다고 내가 더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 자리에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피고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요즘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편을 가르고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정치적 생각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먼저 판단합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SNS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상대가 틀렸다고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해야 할까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되 반드시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하나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길이 다릅니다. 부모와 자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고,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합니다. “내가 살아보니 그건 틀렸어.” “요즘 사람들은 왜 저래?” 그러나 내가 경험한 세상이 세상의 전부는 아닙니다. 내 생각이 옳을 수 있지만, 상대의 생각에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름을 인정한다고 내 신념을 버리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리가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고, 오랫동안 일군 사업이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좌절을 겪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생각합니다. “이제 끝난 것 아닐까?” 하지만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끝은 아닙니다. 넘어진 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다시 일어나기를 포기하는 순간이 진짜 실패가 될 수 있습니다. 옛말에 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돌아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하거나 물러났더라도 힘을 회복해 다시 도전한다는 의미입니다 .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말입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현재 모습은 보지만 그 사람이 지나온 실패의 시간은 잘 보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여러 번 떨어진 뒤 시험에 합격했고, 누군가는 사업에 실패한 뒤 다시 시작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인생의 후반기에 새로운 길을 찾아 자신의 꽃을 피웁니다. 그러므로 실패했다고 자신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마십시오. 오늘의 실패가 내 인생 전체의 실패는 아닙니다. 실패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준비가 부족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가정에서는 가족과 함께하고, 직장에서는 동료와 일하며, 길에서는 낯선 사람과 공간을 나눕니다. 이제는 SNS와 온라인 공간에서도 얼굴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세상이 편리해질수록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공공장소에서도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옛사람들은 방약무인傍若無人이라 표현했습니다.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거리낌 없이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언제나 ‘나’와 함께 ‘남’이 있습니다. 내가 편하려고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불편이 될 수 있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오래 남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말에도 자비가 필요합니다. 사람을 가장 쉽게 상처 입히는 것은 때로 칼이 아니라 말입니다. “나는 틀린 말 안 했는데?”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상대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말한다면 좋은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