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자주 지친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말했다. “음풍농월 吟風弄月”, 바람을 읊고 달빛을 희롱하며 자연 속에서 마음을 덜어내는 법이 있다고.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스쳐 지나가며 번뇌를 털어낸다. 달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어둠을 은은하게 밝히며 길을 비춰준다. 그 앞에 서면 사람의 마음은 어느새 고요해지고, 크고 작은 고민들은 밤하늘에 흩어져 초연한 빛으로 가라앉는다.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소음을 안고 살아간다. 계획, 속도, 경쟁, 불안… 그러나 자연은 언제나 한결같이 말한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어보라.” 이 한마디가 마음의 복이 되고, 삶의 지혜가 된다. 음풍농월은 단순한 풍류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자기 마음을 지키는 방법이다. 바람을 읊는다는 것은, 순간의 감정을 흘려보내는 연습이요, 달을 희롱한다는 것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지혜를 뜻한다. 달빛을 바라보면 깨닫게 된다. 빛은 소리 없이도 모든 것을 밝힌다는 사실을. 사람도 마찬가지다. 큰 말 없이, 과시하지 않고,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世上세상에 사람은 많으나, 참으로 자신보다 연장자를 벗으로 삼을 줄 아는 이는 드물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지혜를 얻고, 세월 속에서 마음의 무게를 배우며, 경험을 통해 삶의 깊이를 더한다. 그래서 나보다 먼저 세상을 걸어간 이의 걸음에는 늘 배울 것이 있다. 佛陀불타께서는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이는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진 이는 가르침을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 스승에게서 배우고, 때로는 벗에게서 깨닫는다. 그리고 진정한 도인은 나이와 지위가 아니라, 배움의 자세로 성장한다. “自己보다 年長者를 벗으로 삼으면 얻는 바가 많을 것이다.” 이 말씀은 곧, 겸손과 존중의 가르침이다. 겸손한 마음은 모든 덕의 근본이며, 존중의 마음은 모든 관계의 뿌리이다. 경험이란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성공의 최고 지도자요, 인생의 나침반이다. 한 번의 실패도, 한 번의 인연도, 한 번의 눈물도 모두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법문法文이 된다. 曇華風月은 흩날리는 꽃잎과 고요한 달빛처럼, 배움은 조용히 마음속에 스며든다. 오늘 나보다 먼저 피어난 꽃을 바라보며, 내일의 내가 배워야 할 길을 찾을 때, 그곳에 참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法句經(법구경) 223게송』에 대한 법문 부드러움으로 화냄을 이겨라. 좋음으로 나쁨을 이겨라. 베품으로 인색한 자를 이겨라. 참말로 거짓말을 이겨라. = 동영상= 세상은 언제나 대립과 갈등 속에 흔들린다. 분노는 분노를 낳고, 탐욕은 탐욕을 키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부드러움으로 화를 이기라.” 이 말은 약함을 뜻하지 않는다. 진정한 부드러움이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강자의 자비심이다. 칼로 칼을 맞서면 상처만 남지만, 물은 바위를 만나도 부서지지 않는다. 그것이 柔유 의 힘이다. 좋음으로 나쁨을 이겨라. 악을 악으로 갚으면 끝없는 원이 생긴다. 그러나 선으로 악을 감싸면, 그 불길은 더 이상 번지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불佛의 길, 자비慈悲의 길이다. 베품으로 인색한 자를 이겨라. 주는 자는 잃지 않고, 쥐는 자는 얻지 못한다. 나누는 마음은 복이 되어 돌아오고, 탐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가둔다. 베품은 물과 같아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모든 생명을 살린다. 참말로 거짓말을 이겨라. 거짓은 순간의 이익을 주지만, 진실은 세월을 이긴다. 한마디 참된 말은 천마디의 허언보다 무겁고 빛난다. 진실한 마음은 사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후생가외”란 말은 단지 젊은이를 두려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존중尊重과 희망希望, 그리고 깨달음의 연속성이 담겨 있습니다. 공자는 말했다. “後生可畏焉, 焉知來者之不如今也.후생가외언, 언지래자지불여금야 ” “뒷세대는 두려워할 만하다. 어찌 그들이 오늘의 우리보다 못하다고 장담하겠는가.” 불교의 가르침도 이와 같습니다. 모든 존재는 불성佛性을 지닌다. 따라서 젊은이들 또한 그 마음 안에 미래의 부처, 즉 내세의 깨달은 자가 숨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경외하는 마음이 바로 “후생가외”의 참된 뜻입니다. 오늘의 어른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을 하느냐에 따라 내일의 젊은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지가 정해집니다. 우리가 지혜로움을 보여주면, 젊은 세대는 법法을 배우고, 우리가 탐욕과 분노에 물들면, 젊은 세대는 그 그림자를 닮습니다. 그러므로 후생가외란 단지 젊은이를 두려워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라는 경책警策의 말씀입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혼란 속에서도 답을 찾고 있습니다.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고, 정보가 지혜를 가리는 세상 속에서 그들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담화총사의 오늘의 시는 매일 정해진 주제나 테마를 바탕으로 창작되는 시입니다. 하루의 감정, 상황, 또는 전 세계적인 사건들에 대한 시적 반응을 담아내며,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시 창작 활동을 통해 자아의 성장과 사회적 메시지 전달을 목표로 합니다. ‘오늘의 시’를 시작하는 마음 “하루의 끝에서 시 한 편, 그 날의 끝을 시로 마무리하는 것은 내면의 고요함을 발견하고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순간입니다. 勿爲受惠者물위수혜자, 恒爲施與者항위시여자, 받는 자가 되지 말고, 늘 주는 자가 되라. 세상은 주고받음으로 이어지지만, 선인은 ‘받음’보다 ‘줌’에서 참된 자유를 찾습니다. 주는 마음은 집착을 비워내고, 그 빈자리엔 자비가 꽃처럼 피어납니다. 묻노라, 주인공아 그대는 누구인가? ‘나’라는 존재는 이름도, 형체도, 생각도 아닌 깨달음의 길 위에서 스스로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일 뿐이다. ‘나’를 알되, ‘나’에 집착하지 말라. 집착하면 아상我相이 생기고, 상이 생기면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나 마음을 비워 선善을 쌓고, 무루복無漏福을 닦는다면, 그대의 내면엔 맑은 바람이 불고, 행복은 자연스레 찾아올 것이다. 베풀고 또 베풀라. 그것이 곧 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흙은 품고, 불은 밝히니, 삶은 다시 피어나고, 세상은 다시 순환한다. 마음을 흙처럼 온유하게, 불처럼 따뜻하게 하라. 그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요, 그 가정이 곧 극락의 들녘이리라. 산은 마음이고, 바람은 법이며, 물은 자비요, 달은 지혜이다. 모든 자연이 부처의 말씀이고, 모든 침묵이 깨달음의 소리이다. 서문序文 禪是佛心 敎是佛語,선시불심 교시불어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이 말은 당나라의 대덕 규봉 종밀(圭峯宗密, 780~841) 대사가 선禪과 교敎의 대립을 넘어 ‘선교일치禪敎一致’의 길을 열며 남긴 말이다. 『선가귀감』에 이르기를 “세존이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禪의 뜻이 되고, 한 평생 설하신 말씀은 교敎의 문이 되었다.” 하였으니, 이 말이 곧 선시불심禪是佛心, 교시불어敎是佛語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수행자의 삶이란 곧 시詩이며, 그 시의 언어가 바로 선禪의 향기이다. 법당에서의 설법만이 불교가 아니라, 산사山寺의 바람결과, 수행자의 걸음 속에도 부처의 말씀이 깃든다. 목차Contents 禪是佛心 敎是佛語 (서문) 규봉 종밀圭峯 宗密 대사의 선교일치禪敎一致 사상을 바탕으로, 수행자의 삶과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曇華의 山房閑談은 수행자이자 예술가 曇華總師담화총사의 심원한 사유와 수행의 궤적을 담은 불교 예술 산문집이다. 산은 마음이고, 바람은 법이며, 물은 자비요, 달은 지혜이다. 모든 자연은 부처님의 말씀이고, 모든 침묵은 깨달음의 소리이다. 曇華의 山房閑談은 수행자이자 예술가인 曇華總師담화총사가 산중의 고요 속에서 써 내려간 선禪과 시詩의 기록이다. 바람이 법문이 되고, 달빛이 설법이 되며, 자연의 모든 숨결이 부처님의 음성으로 들려온다. 이 책은 선과 교의 조화, 禪敎一致선교일치의 사상을 바탕으로, 삶 속에서 깨달음을 실천하는 길을 제시한다. 산방의 침묵, 소나무의 바람, 들판의 달빛, 그리고 사계절의 순환 속에 담긴 불심의 언어는 읽는 이의 마음을 고요히 비추며, 일상의 모든 순간이 수행임을 일깨워준다. “나는 나에게 길을 묻는다. 마음은 고요로 대답한다.” 예술로 불법을 전하고, 사랑으로 세상을 구하는 曇華總師의 서원이 담긴 불교 예술 산문집이다. 목차 요약 서문序文 禪是佛心 敎是佛語선시불심 교시불어, 선은 부처님의 마음, 교는 부처님의 말씀 규봉 종밀圭峯宗密 대사의 선교일치 사상을 바탕으로, 수행자의 삶과 시의 길을 하나로 엮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약속과 은혜를 기억한 두 마리 소의 이야기는, 하찮게 여겨질 수 있는 짐승조차도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사람의 진심을 위해 목숨을 걸었음을 보여줍니다. 약속을 저버린 사람, 진심을 증명한 소의 이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잊고 지낸 ‘신뢰’와 ‘보답’의 도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참된 보시와 진심은 말없이도 전해집니다. 이제, 이 따뜻한 고전 설화를 통해 약속의 가치를 다시 새겨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척 하나 없이 홀로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산에서 나무를 한 짐 해 내려오던 중,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밭에서 나이 든 노인이 홀로 밭을 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사이였지만 청년은 다가가 정중히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연세가 많으신데 어찌 혼자 밭을 갈고 계십니까? 자제분도 없으신가요?”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습니다. “형제도, 자식도 없어 내가 몸소 밭을 일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지.” 청년은 안타까운 마음에 바로 삽을 들고 밭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 쉬십시오. 저는 해가 질 때까지 밭을 다 갈아놓겠습니다. 해질 무렵 마을 어귀로 오셔서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지옥 같다", "배가 고파 죽겠다", "짐승 같은 세상", "질투와 분노가 가득하다" 이런 표현들은 결코 문학적인 수사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 불교에서 말하는 육도중생六道衆生의 삶의 실상입니다. 불교는 세상을 여섯 갈래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이 육도는 단순한 내세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심리적 상태와 삶의 국면을 상징합니다. 고통이 극심한 지옥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의 아귀도, 무지와 본능에 휘둘리는 축생도, 분노의 아수라도, 기쁨과 괴로움이 교차하는 인간도, 쾌락에 도취되어 방심하는 천상도, 모두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이 계십니다. 불교 신앙 가운데 가장 자비로운 존재로 불리는 지장보살은,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는 대원大願을 세우셨습니다. 그는 언제나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외면당한 존재 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살아가는 중생 옆에 계십니다. 그것은 영웅적인 신화가 아니라, 자비가 가장 절실한 곳에 머무는 삶의 태도입니다. 현대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화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옛날 어떤 부자가 먼 길을 떠나며 하인에게 당부하였습니다. "문단속을 잘 하고, 나귀와 밧줄을 잘 살피라." 하인은 말대로 문을 지키고, 나귀를 밧줄에 묶어두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집을 비운 사이, 도둑이 들어와 집 안의 값진 보물들을 모두 훔쳐가고 말았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그 연유를 묻자, 하인은 담담히 대답합니다. “저는 분명히 주인의 말씀대로 문과 나귀와 밧줄만을 지켰습니다.” 이 어리석은 하인은 무엇이 진정 지켜야 할 것인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가 지킨 것은 형식이었고, 놓친 것은 본질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쫓겨나고, 그 집은 텅 빈 껍데기만 남았으니,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이겠습니까. 이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행자 또한 이와 같은 어리석음에 빠지기 쉽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불문에 귀의하고, 계율을 지키며, 고요한 처소에 앉아 명상을 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오욕五欲의 바람이 불고, 무명無明의 도둑이 지혜와 선정의 보배를 슬그머니 훔쳐 가고 있는 것을 스스로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은 지켰으나, 마음의 보물은 잃은 상태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감관의 문을 잘 단속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처님께서 많은 비구들과 함께 어느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날은 달빛이 환한 보름밤이었다. 부처님께서는 맨땅에 앉아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신 후, 사리풋타에게 말씀하셨다. “사방에서 많은 비구들이 함께 모여 밤새도록 정진하고 있다. 나는 등이 아파 잠시 쉬고자 하니, 네가 대신 비구들을 위해 법을 설해주도록 하라.” 부처님은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 자리에 깔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다. 이에 사리풋타가 비구들에게 말했다. “이 파바성은 본래 이교도 니칸타가 머물던 곳이다. 그러나 그는 얼마 전에 죽었고, 그의 제자들은 두 파로 나뉘어 서로의 잘못을 캐며 다투고 있다.” “그들은 ‘나는 이 법을 잘 알고, 너는 알지 못한다’, ‘나는 바른 법을 가졌고, 너는 사견에 빠져 있다’며 서로 시비를 일삼고 있다. 그 말들이 얽히고설켜 도리에 맞지 않고, 각자 자신의 말만이 참되고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결과, 니칸타를 따르던 이 지역 사람들마저 그 다툼을 혐오하게 되었다. 이는 그들이 말하는 ‘옳음’이 참된 바른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이 바르지 못하면 해탈로 나아갈 수 없다. 마치 허물어진 탑에 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인도의 카이라는 나라에 한 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귀족은 시각장애인이었고, 그의 아내 또한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자식도 없어 삶은 더욱 쓸쓸했습니다. 세상의 무상함과 고독을 깊이 느낀 두 사람은 말년에 산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산속에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부부는 그 아들에게 '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무척 귀여워하며 소중히 키웠습니다. 아들이 생기자 세상의 즐거움이 다시 느껴졌고, 부부는 아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수도 생활을 접고 옛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샌은 효성이 지극하고 항상 밝고 명랑했으며, 수행하는 마음도 깊었습니다. 남과 다투는 일이 전혀 없었기에 부모는 그로 인해 시각장애라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행복하고 근심 없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샌이 열 살이 되던 어느 날, 그는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두 분께서 산속에 들어가 수행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태어나자 뜻을 접고 집으로 돌아오셨다니 참으로 유감입니다. 제발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옛날의 뜻을 이루십시오. 이번에는 제가 함께 모시고 가겠습니다.” 이에 가족은 집안의 모든 재물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세존께서 비사리국의 정사精舍에 머무시던 어느 날의 일이다. 당시 구시나라 성에는 무려 3만 명에 이르는 장사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자랑삼아 교만하고 난폭한 행동을 일삼았다. 이 소식을 들은 세존께서는 그들을 교화하시고자, 먼저 목련존자에게 이 임무를 맡기셨다. 목련존자는 세존의 뜻을 받들어 무려 5년 동안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들을 타일렀지만, 단 한 사람도 바른 길로 이끌지 못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이번에는 아난존자에게 명하셨다. “내가 열반에 드는 날이 이제 석 달 남았다.”는 소식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하신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장사들은 세존께서 곧 열반에 드시며, 이 구시나라 성에 직접 오신다는 말에 감동을 받아 이렇게 의논하였다. “지금껏 우리 힘만 믿고 살아왔지만, 세존께서 오신다 하니 그분의 길이라도 정성껏 닦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힘을 뽐내던 장사들이 앞장서서 길을 닦기 시작했고,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세 달이 지났다. 세존께서는 예정대로 여러 제자들을 거느리고 비사리국을 떠나 구시나라 성을 향해 마지막 전도의 길에 오르셨다. 가는 도중, 길을 고치느라 땀을 흘리고 있는 장사들을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불타가 구사라국의 설산 속에 계실 때의 일이다. 설산雪山은 히마빈드로 지금의 히말라야 산을 가르킨 말이다. 불타는 설산의 깊은 숲 속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불타가 한참 깊은 명상에 빠졌을 때, “정치政治를 죽이는 일도 죽여지는 일도 없이,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일도 없이, 슬퍼하거나 슬퍼지게도 하지 않는 진실한 도리의 길은 없을까” 그리고 곧 이어 마음속에서 또 이런 생각이 고개를 쳐들고 스쳐갔다. “불타여, 당신이 정치를 하면 죽이는 일이나 죽여지는 일이 없을 것이며,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슬퍼하거나 슬퍼지게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악마(惡魔) 즉 바른 생각을 방해하는 악마의 생각이 꼬리를 쳤다. 이 때 불타는 이렇게 말했다. “악마여, 그럼 내가 무엇으로 정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악마에게 속삭였다. 악마도 불타에게 “당신은 충분히 해 낼 수 있으며 당신이 아니면 아무도 그런 일은 해낼 수 없습니다.” 고 욕망에 부채질을 했다. 그러면서 불타에게 “당신은 마음만 먹는다면 흰 눈이 덮인 저 히말라야 산을 황금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고 불타를 유혹했다. 불타도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저 히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담화선창曇華禪窓 “어둠 속의 빛” 깊은 밤, 차가운 바람 속에 홀로 서있던 날들, 희망의 불씨는 꺼져가고 어둠은 나를 삼키려 했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내 안의 빛을 찾았네. 고난의 파도는 나를 흔들었지만 결국 내 마음을 강하게 했네. 눈물로 적신 길 위에 새싹이 돋아나듯, 절망의 끝에서 나는 새로운 희망을 피워냈네. 역경 속에서 배운 것들, 그 모든 아픔은 나를 더 빛나게 했고, 그 빛은 나를 행복으로 인도했네. 이제 나는 알았네, 고난은 끝이 아니란 것을, 행복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그 뒤엔 더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 친구여, 절망하지 말고 견뎌내라.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고난 뒤에 오는 행복을 맞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