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일정불교문화재단, 가피암 회주 일정대종사의 법문 3 다섯 가지의 德目에 의해서 반야경에서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 선禪 반야의 여섯 가지를 육도六度、또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보시布施라고 하는 것은 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공無空의 지혜를 반야경般若經이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에는 크게는 육백 권에서 작게는 반야심경과 같은 작은 것까지 수많은 경전이 있다. 따라서 그 내용도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반야경이라고 하는 것은 그 가운데 일관된 사상의 근저가 있으며 그것에 바탕을 두고 여러 방면으로 사상思想이 발전하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공통점 즉 근저根底의 사상으로서 무無와空의 지혜智慧의 반야般若에 바탕을 두고 여러 가지 반야경이 전개되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에 의해서 잘 설명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무無와 공空의 지혜는 반야심경뿐만 아니라 불교 그 자체의 근본적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만약 유럽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유有」의 지혜에 바탕을 두는 그것으로 생각해 왔다고, 한다면 전혀 반대의 관점에 서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발상發想과 그것에 바탕을 두는 행동의 패턴으로서는
글 / (재)일정불교문화원 원장 일정대종사 오늘의 법문 1 / 부처는 어디에 계신가의 기본적인 할문基本的인 疑問 우리는 불교를 믿으면서도 어디에 부처가 계시는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의 신자는 산으로 사찰로 찾아 다니면서 부처가 나타나서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런데 부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데 있다. 불교佛敎의 경마다「중생과 제불이 일리제평一理齊平하다」「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부처님 몸이 법에 충만하다 하는 말씀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요 부처가 모두 중생일 터인데, 그렇다면 나도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내가 나를 살펴볼 때 절대로 부처는 아니다. 또한 일체중생을 보아도 부처가 아닐 뿐 아니라 부처를 닮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무엇이 판단되었기에 이런 엉터리 말이 나왔단 말인가? 그렇다고 부처님 말씀을 엉터리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이며 내가 나를 잘못 보았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나를 잘못 보지 않은 이상 부처님 말씀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디서 부 터 이런 차이가 생기게 된 것일까요? 이 말은 이렇다. 나는 나의 관점에서 나를 본 것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