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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1200년 만에 드러난 무상선사 사리탑에

- 최초로 올려진 헌다의식

법왕청신문 본지 논설위원 최석환 | 신라의 입당(入堂) 구법승(求法僧) 중 중국 오백나한 중 455번째 조사의 반열에 오른 신라의 정중 무상선사(淨衆無相禪師. 685-762)의 사리탑을 2019년 3월 중국 쓰촨성(四川省) 펑저우(彭州)의 단징산(丹景山) 김두타원(金頭陀院)에서 10여 년 전 훼손된 채 방치된 20여 기 사리탑 중 김두타가 신라의 무상선사라는 사실을 한국인이 최초로 확인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 사진제공 = 차의세계
 

무상선사의 사리탑의 중요성을 인식한 펑저우시 민종국(民宗國)이 2019년 가을 원형대로 복원했다. 무상선사가 한국에서보다 중국에서 추앙받으면서 뒤늦게 무상선사 신드롬이 바다를 건너 한국에서 일으키고 있다. 당시 무상선사 사리탑이 1,200년 만에 새롭게 발견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앞을 다투어 한국불교계가 펑저우 금화사로 무상선사의 자취를 찾아가는 물결이 일어났다. 


무상선사 사리탑이 복원된 다음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게 되면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단절된 이후 3년이 지난뒤 지난해 8월 코로나가 해제된 이후 3년만인 2023년 12월 16일 한국국제선차문화연구회(회장 최석환)와 중국 쓰촨성차문화연구회(회장 짱징)가 공동으로 무상선사 사리탑 앞에서 무상선사가 선차의법(禪茶之法)을 전승한 의미를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세계평화의 다례 의식을 거행하여 무상선사가 1200년 만에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신라왕자인 무상선사는 누구인가? 
    
중국의 구법승 중 오백나한에 오른 무상선사를 2001년 처음 발견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무상선사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달마로 내려온 목면가사(木棉袈裟)가 무상선사에게 전승 되었다. 또한 무상선사는 중국 선종을 중흥시킨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2001년 백림선사에 세워진 <조주고불선차기념비>에 “정중무상선사가 일찍이 촉나라(사천성 지칭)의 주인이 되어 문하에 마조도일을 두었다〔淨衆無相曾主蜀度門下高徒馬祖道一〕.”라는 기록을 남기면서 마조가 무상의 제자로 공식화 되었다. 또한 무상선사는  선차지법의 비조로 드러나면서 선차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만당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찬한 <唐 梓州 慧義精舍 南禪院 四證堂碑>에 “나는 아노라. 대대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무상대사는 머언 해외의 나라 진한(辰韓)의 귀족이시다. 처음 그는 어려서부터 진기(真機)가 빼어났다. 황금 부처를 현몽하여 잉태하였고 보배 칼로 얼굴을 다치셨다. 대사께서는 상행(上行)을 얻으심으로 인하여, 크게 혼미한 도를 깨치셨다.” 라고 무상선사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런데 돈황출토(燉煌出土) 문서가 발견되기 전에는 무상선사의 존재는 작은 점(點)에 불과 했다. 그러다가 필자에 의해 2001년  중국 오백나한중 455번째 조사에 오른 무상공존자(無相空尊者, 무상선사를 말함)가 발견된 이후 재평가가 시작 되었다.


1200년 간 중국선종사에 영향을 끼친 무상의 존재는 쓰촨을 중심으로 다시 부흥되면서 무상은 동아시아 선종사에 중심 인물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제야 햇빛을 본 무상선사 사리탑

 

2019년 새해 첫날 무상선사 사리탑을 확인하게 된 것은 우연하게 이루어졌다. 펑저우의 보산차박물관(寶山茶博物館)에서 쉬스홍(徐世洪) 관장과 차를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펑저우에는 세명의 다신이 있어요. 팽조와 원오극근, 한 사람은 신라에서 건너온 스님입니다”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무상선사가 스쳐갔다. 3개월이 지난뒤 다시 펑저우를 찾아가 김두타가 신라의  무상선사임을 밝혀내면서 무상선사의 열반 이후 사리탑의 실체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그해 펑저우시 민종국은 무상선사사리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9년 가을 무상선사사리탑을 복원하고 국가사적으로 지정했다.


2023년 12월 16일 무상선사 사리탑앞에서 헌다의식은 선차의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된 날 이었다. 지금까지 잊고 있던 선차의 비조인 무상선사 사리탑이 발견된 이후 처음으로 거행된 세계평화의 다례의식은 차의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된 쾌거였다. 펑저우를 출발한 제23차 세계선차아회 순례단은 개막의식에 앞서 선대조사인 무상선사 사리탑에 헌다의식을 올린뒤 선차아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코로나로 3년을 기다린 끝에 무상선사 사리탑 앞에서 헌다의식은 각별했다. 순례단은 단징산 금화사를 찾아가 새롭게 소임을 맞은 금화사 주지 이예(一葉)스님을 금화사에서 만나 무상선사 사리탑 헌다의식의 중요성을 말했다. 금화사 주지는 단박에 무상선사 헌다 의식에 참가하게 된 것을 후학으로써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금화사에서 김두타원까지는 오솔길을 따라 고행하듯 김두타원을 찾아갔다.

 

김두타원에 도착하여 단징산 자락에 있는 사리탑원을 살피니 아련히 신라의 무상선사의 사리탑이 드러났다. 2019년 봄 김두타원의 훼손된 사리탑을 찾았을 때 앞이 캄캄했는데 원형대로 보존된 모습을 보니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무상선사의 사리탑은 단징산 사리탑림(舍利塔林)의 정상에 보존되어 있었다.

 

펑저우시가 사리탑림을 국가사적으로 지정하여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무상선사 사리탑림은 펑저우시가 펑저우시불가이동문물(彭州市不可移動文物)보호구역으로 2021년 7월 16일 지정했다. 그처럼 펑저우시는 김두타의 사리탑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단징산 무상선사 사리탑 앞에서 올려진 최초의 헌다의식

 

단징산의 김두타원에서 무상선사 사리탑을 바라다볼 때 가시덤불 속에 아련히 드러난 무상선사사리탑을 찾아가는 길은 그야말로 순례의 길이였다. 순례단은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고행하듯 사리탑림에 이르렀다. 탑림에 이르니 중앙에 무상선사의 사리탑이 온전하게 복원되었다.

 

경내를 청결하게 하고 사리탑 앞을 깨끗하게 정리한 뒤 향을 먼저 피워 도량을 청정하게 한뒤 헌다의식이 거행되었다. 먼저 무상선사가 신라에서 가져간 모란을 무상선사 사리탑 앞에 올렸다.

 

무상선사가 신라에서 구법할 때 목단씨(한국에서는 목단을 모란이라고 말한다)를 갖고 펑저우로 들어가 단징산에 목단 꽃을 심은 뒤 자라나 단징산이 목단의 발원지가 된 것은 신라의 무상선사의 공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번 헌다식에 참가한 세계홍차연구소(소장 김영애)가 한국에서 가져간 목단화를 무상선사의 영혼 앞에 올렸다.

 

헌다의식은 중국·한국 대표가 무상선사 사리탑앞에 차공의식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중국측은 금화사 주지와 한국측에서는 최석환 한국국제선차문화연구회 회장이 무상선사 사리탑 앞에 고려에서 유행한 말차로 헌다의식이 거행되었다. 이어 중국측과 한국측이 차를 공양했다. 차를 공양한뒤 참가한 전 대중이 무상선사 사리탑 앞에서 두손으로 합장하고 예를 다했다.


이번 헌다식에는 쓰촨성차문화협회와 세계홍차연구소, 경주예다원이 참가하여 여법하게 거행되었다. 중국측에서는 금화사 주지 이예스님, 쓰촨 차문화협회 짱징(張景)회장, 중국다도잡지 객원 편집위원 첸용광(陳勇光) 등 30여명이 참가했다.

 

 

새롭게 드러난 단징산과 무상연구

 

필자는 2001년 가을 중국 오백나한에 오른 무상선사를 발견하면서부터 운명적으로 무상선사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후 18년이 지난뒤 2019년 무상선사 사리탑을 발견하여 무상 신드롬을 일으키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해왔다.


필자는 2019년 3월 쓰촨성불교협회부회장인 따이은스님을 대동하고 단징산으로 찾아가 김두타가 무상선사라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후 펑저우시 민종국이 작성한 문건에 의하면 무상선사 사리탑을 원형대로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전문을 살펴본다.

 

“2019년 3월 24일 쓰촨성(四川省) 인민대표대회(人民代表大会) 대표, 쓰촨성 불교협회 부회장, 청두(成都) 대자사 방장 따이은(大恩) 스님은 한국 국제선차문화연구회 회장 최석환 선생 등의 사람들을 특별히 동반하여 펑저우 단징산 금화사에서 당대(唐代) 조사, 김두타(무상 선사)의 사리석탑에 제사를 지냈다.


뒤이어 펑저우와 관련 부문과 차문화인 쉬스홍(徐世洪) 선생 등 10여 명이 함께 한·중 차문화 연원을 연구토론하였다. 서로의 교류를 통해 생각에 일치를 보았다. 올 9월에 펑저우 단징산 금화사에서 한·중 무상선차문화연토회를 열고, 한·중 양국의 선차문화 관광활동을 촉진하기로 하였다. 전통문화를 힘껏 확대발전시키고 단징산 역사문화유적지를 회복하고, 단징산 여유경구문화(旅遊景區文化)의 품위를 더욱 높인다고 기록했다.”

 

 

2019년 가을 펑저우 단징산 금화사의 김두타원에  원형대로 복원했다.

 

무상 연구가인  탕젠(唐建)의 ‘무상선사 신라왕자의 청두 고승의 신 발견’이라는 논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탕젠은 청두 대자사와 단징산 대승사는 무상선사와 아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본다. 북송 때 대자사 고승 계서(繼舒)가 세상을 떠나자 그 사리탑을 대승사에 세웠던 것도 그 하나다. 영녕원은 대승사의 부속 사원인데 이곳에서 송말에 황룡원숙(黃龍元肅)의 법제자 신전(信詮)이 임제종을 강설하였다.

 

탕젠에 의하면 단경산 위에는 고대 스님 사리탑이 23기 남아있으며 5열로 나눠 약 8백 평방미터에 걸쳐 있다고 한다. 인근에 금화사 김두타원(金頭陀園)이 있어 의미가 깊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무상연구가인 탕젠이 소상히 무상을 밝히고 있다. 한국의 학계는 아직  중국처럼 무상연구가 활발하게 연구되지 않은 실정이다.


탕젠은 한국인 최석환이 2019년 3월 무상선사의 사리탑을 발견하고 금화사 김두타원을 참방(參訪)하여 김두타가 무상선사 사리탑임을 밝혀내어 한·중 교류사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그후 펑저우시(彭州市 )민종국(民宗局)이 무상선사 사리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9년 가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중국 선종사를 새롭게 쓰게 된 쾌거를 이루었다.

 

 

무상선사 현창 운동 중국 땅에서 다시 일어난다 

 

2023년 12월16일 한·중의 차계 대표단이 펑저우를 찾아가 무상선사 사리탑 앞에서 헌다의식이 거행되면서 그날따라 하늘까지 청명하여 무상선사의 영혼까지 감동을 주었다. 1,200년 만에 처음으로 무상선사 사리탑 앞에 올려진 헌다의식은 참가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다.

 

헌다식에 참가한 금화사 주지 이예(一葉)스님은 다례의식을 지켜보고 회상하길 “중국 쓰촨 차문화협회와 한국국제선차문화연구회 최석환 회장 일행이 단징산 금화사의 무상선사사리탑 앞에서 분향하고 봉차의식을 거행하였다. 1200년 전 신라땅에서 만리장천(萬里長天)의 뱃길로 당나라로 건너와 법을 구했던 김화상(무상선사를 가르킴)의 후예들이 천여년 전 무상선사의 발자취를 따라 선차순례로 단징산의 무상선사 사리탑 앞에 다례의식은 중국인 들이 귀감이 될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무상선사와 단징산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김두타 사리탑은 펑저우 단징산(丹景山) 금화사(金華寺) 목단원(牡丹園)과 목단평(牡丹坪) 사이의 김두타원(金頭陀園)에 위치하고 있다. 김두타는 당나라 신라국 태자로 김두타(無相禪師)라 이름하였다.


안사(安史)의 난 때 당나라 현종이 촉(蜀)으로 향하여, 금화(金華) 공주가 그곳에 “금화행궁(金華行宮)”을 건설하였는데 사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대당(大唐) 김두타가 옛것을 새롭게 보수하여 행궁에서 대승(大乘)을 시작하였다.” 김두타는 후에 금화행궁을 금화사로 바꿨다. 김두타는 금화사 개산조사(開山祖師)로 금화사에 머무는 기간 단징산에 차나무와 모란을 심고, 선차일미(禪茶一味) 등 문화이념을 제창하였다. 


10여 년 전 훼손된 채 방치된 20여 기 사리탑 중 무상선사의 사리탑을 원형대로 복원한 이후 처음으로 무상선사의 사리탑 앞에서 한.중이 공동으로 헌다의식을 올리게 된 것은 무상선사가 다시 세상 밖으로 걸어나와 동아시아 선종사를 새롭게 쓰게 된 쾌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