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소중한 덕목, 안분지족安分知足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안분지족의 의미 안분지족安分知足은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고 현재에 감사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안분安分 :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고,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의 나의 상황, 환경,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평안을 찾는 것입니다. 2. 지족知足 :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더 많은 것을 원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말합니다. 안분지족의 중요성 우리의 삶에서 끊임없는 욕망과 불만은 많은 고통을 초래합니다.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하고,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면 마음은 평안을 잃고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안분지족을 실천하면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습니다. 1. 평온함과 행복 : 자신의 현재 상황에 만족하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작은 일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2. 사함과 긍정적인 에너지 : 매 순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게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마음愛 자비를! 세상愛 평화를!' 이란 단어는 불기2563년 2019년 부처님 오신날의 봉축기념 주제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갈등과 불안정한 상황을 목격해왔다. 국가 간의 분쟁, 인종 간의 갈등, 정치권의 불신, 경제적 불평등 등 다양한 문제들이 우리의 일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평화와 자비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평화의 필요성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분쟁은 단지 그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현대 사회는 세계화되어 있어, 한 지역의 불안정은 곧바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 중동의 분쟁, 그리고 아프리카 여러 국가의 내전 등은 전 세계 경제와 정치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자비의 힘 자비는 평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자비로운 행동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쌓고, 이해와 화해를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최근 코로나 19 팬데믹 동안 많은 사람이 서로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사례는 자비의 힘을 잘 보여주었다. 의료진들은 자기 목숨을 걸고 환자들을 돌봤고, 이웃들은 서로의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옛날 한 마을에 두 친구가 있었다. 한 친구의 이름은 지혜였고, 다른 친구의 이름은 현명이었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의지하며 자랐지만, 그들의 성격은 매우 달랐다. 지혜는 항상 무겁고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물처럼 고요하게 흘러가며, 삶의 모든 어려움을 침착하게 대처했다. 반면 현명은 바람처럼 가볍고 활기차며, 언제나 빠르고 효율적인 길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어느 날, 두 친구는 멀리 떨어진 마을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곳에는 오랜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고, 두 사람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여정 중에 그들은 두 갈래 길에 도착했다. 한쪽 길은 울퉁불퉁하고 험난해 보였지만, 다른 쪽의 길은 넓고 평탄해 보였다. 지혜는 험난한 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길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는 이 길을 걸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명은 평탄한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길이 더 빠르고 안전해 보인다. 우리는 이 길을 통해 문제를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두 친구는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각자의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한적한 시골 마을, 눈부신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봄날이었다. 그날의 바람은 유난히 선선하게 불어와, 나무들의 잎사귀를 살랑살랑 흔들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를 괴로움과 안타까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침부터 계속되는 봄비와 함께 선창 밖으로는 바람이 불어왔고, 그 소리는 마치 하늘의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우는 듯한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소리가 내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는 듯하여, 문득 의심스러운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날따라 세상의 소란스러움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거센 풍진과 같은 소동들,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와 웅성거림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 모든 시끄러운 소리들이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을 잠시 뒤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걱정과 근심을 봄비에 맡기고,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나만의 쉼터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화엄의 바다'였다. 화엄의 바다는 내가 찾은 내면의 평온과 명상의 공간으로, 그곳에서는 모든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고요함만이 존재했다. 나는 화엄의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편안한 자세로 앉아 깊은 호흡을 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담담한 이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옛날 옛적, 아득한 산속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대대로 평화롭게 살았지만, 삶의 고통과 시련에 시달리며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곤 했다. 어느 날,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먼 산꼭대기에 '담화풍월'이라 불리는 신비로운 인물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담화풍월은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인생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전설적인 존재라 했다. 마을의 젊은 청년인 존은 이 소문을 듣고 담화풍월을 찾아 나섰다. 여러 날 동안 산을 오르내리며 고생한 끝에, 존은 마침내 담화풍월을 만날 수 있었다. 담화풍월은 깊은 눈을 가진 노인이었고, 고요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존은 담화풍월에게 물었다. "존경하는 스승님, 어떻게 하면 인생을 더 의미있고 소중하게 살 수 있을까요?" 담화풍월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삶이란 소중한 것이란다.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라.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수행하는 길이다. 고통을 외면하면 더 큰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삶의 핵심은 자주성에 있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 아상을 버려야 한다." 존은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 "어떻게 하면 깨달음을 얻을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글 독경讀經은 시대와 종교를 초월한 천계의 소리로, 불원의 음성이자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더불어 함께하는 명서이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깊은 울림을 주는 특별한 경험이다. 독경의 역사는 매우 깊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에서 경전은 신성한 문서로 여겨지며, 이를 소리 내어 읽는 행위는 그 자체로 신성한 의식으로 간주된다. 불교에서는 불경을 읽는 것이 중생의 구제를 위한 중요한 수행 방법 중 하나이다. 이러한 불경 독송은 수행자뿐만 아니라 듣는 이들에게도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준다. 독경은 종교적인 경계를 넘어선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성경을 낭독하는 것, 이슬람에서 꾸란을 암송하는 것, 힌두교에서 베다를 읽는 것 모두 독경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 모든 독경의 행위는 각기 다른 신앙과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인간이 신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자신의 내면을 정화하며, 공동체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있다. 독경의 소리는 천계의 소리로 비유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음성의 전달을 넘어선, 신성하고도 영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다. 독경을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법왕청신문 글 / 최석환 본지 편집위원, 차의세계 발행인 | 2019년 봄 무상선사의 자취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2019년 중국 쓰촨성 펑저우 단징산 금화사에 10년 간 방치되었던 무상선사 사리탑이 발견되면서 무상선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간 무상선사를 잊고 있다가 2001년 가을 중국 오백나한의 최초의 발견자인 한국 <차의세계> 최석환 발행인에 의해 무상선사의 사리탑이 발견된 이후 펑저우 민종국이 무상선사의 사리탑의 주요성을 인식하고 원형대로 복원했다. 중국땅에서 일어나는 무상선사 신드롬 3개월 전 쓰촨(四川)의 펑저우(彭州)에서 일대사건이 벌어졌다. 까닭은 천년 전 신라의 무상(無相)선사가 촉(蜀)땅인 검남(劍南)으로 들어갈 때 신라에서 가져간 모란꽃(牡丹花)을 가지고 들어가 단징산(丹景山)에 심게 되어 단징산이 목단(중국에서는 모란을 목단으로 불린다)의 중요한 발원지가 되어 주목을 끌게 되었다. 해마다 단징산에서 목단문화절을 개최하여 목단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지난해 단징산에서 39회번째 목단문화절을 맞아 주목을 끌고 있다. 게다가 2019년 3월 10년째 훼손되었던 신라왕자 무상선사의 사리탑이 발견되어 중요성을 깨우자 펑저우시 민종국이
법왕청신문 | 글 / 종단화합승가회 대표 : 진관・도관 | 세상에는 권력과 재력 등 지도자의 권위를 중심으로 하는 단체가 있고, 서로의 이익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있으며, 올바른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화합을 생명으로 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승가는 일심(一心)에서 피어난 각각의 다름이 화합으로서 하나를 완성하며, 저마다 아름다운 화엄의 세계를 이루었기에 사회의 모범집단으로서 귀의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구성원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벗이 되는 것이야 말로 청정범행의 전부라 하셨고, 승단은 쟁사(諍事)가 있을 때 마다 자자・포살・갈마로서 화합을 회복하며, 이상적공동체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교단이 쇠퇴하지 않고 영원히 유지되고 번영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열반의 부처님께서 관 밖으로 두 발을 내 보이셨고, 가섭의 예배로서 거두신 이래 밀밀상전(密密相傳)하는 법(法)은 화합의 승가만이 이어 갈 수 있습니다. 훌륭한 스승이 없는 수행은 선장을 잃어버린 풍랑의 배와 같고, 자차의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는 교단은 혼돈으로서 승가의 근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조계종단의 화합과 발전을 염원하
법왕청신문 본지 논설위원 최석환 | 신라의 입당(入堂) 구법승(求法僧) 중 중국 오백나한 중 455번째 조사의 반열에 오른 신라의 정중 무상선사(淨衆無相禪師. 685-762)의 사리탑을 2019년 3월 중국 쓰촨성(四川省) 펑저우(彭州)의 단징산(丹景山) 김두타원(金頭陀院)에서 10여 년 전 훼손된 채 방치된 20여 기 사리탑 중 김두타가 신라의 무상선사라는 사실을 한국인이 최초로 확인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 사진제공 = 차의세계 무상선사의 사리탑의 중요성을 인식한 펑저우시 민종국(民宗國)이 2019년 가을 원형대로 복원했다. 무상선사가 한국에서보다 중국에서 추앙받으면서 뒤늦게 무상선사 신드롬이 바다를 건너 한국에서 일으키고 있다. 당시 무상선사 사리탑이 1,200년 만에 새롭게 발견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앞을 다투어 한국불교계가 펑저우 금화사로 무상선사의 자취를 찾아가는 물결이 일어났다. 무상선사 사리탑이 복원된 다음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게 되면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단절된 이후 3년이 지난뒤 지난해 8월 코로나가 해제된 이후 3년만인 2023년 12월 16일 한국국제선차문화연구회(회장 최석환)와 중국 쓰촨성차문화연구회(회장 짱징)
법왕청신문 김지은 기자 | 붓다께서는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即一)로서 개인과 전체의 존재방식을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를 부정하면 전체 역시 부정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승보살은 ‘한 중생도 남김없이 제도한 연후에 비로소 성불을 이루겠다’는 자비행을 멈추지 않는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부대중은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으로 스스로를 제도하고 일체중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노력하는 보살로서 교단과 국가의 위기 때마다 참회와 화합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왔다. 승가는 이미 깨달음을 이룬 정토세계가 아니라, 사바의 미혹중생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공동체이다. 이런 연유로 승단 안에서도 사바와 같은 온갖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 같은 문제의 해결방법으로서 붓다께서는 계율을 제정하셨고 승가의 생명으로서 화합을 강조하셨다. 우리 불자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 마다 굴복하지 않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켜 왔다. 이것은 위기를 맞아 자등명으로서 참회하고 법등명으로서 화합을 실천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조선 500년의 억불(抑佛), 사찰령의 일제식민, 그리고 무차별로 쏟아지는 외세를 감당해온 대한민국의 100년, 외부
글 / 세계불교승가청년연합 총재 상산스님 | 맘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운이 통할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궁즉통이다. 무슨 일이든 속단하지 말라 한치앞을 모르는게 인생길 이다. 내 인생 미래를 아는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누구도 내 자신에 내일 일을 아는사람 없다.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래서 성인의 말씀속에 누구나 내 미래는 현재에 있다고 했다. 무엇을 누구를 믿으면 좋은곳에 간다는 허무맹랑虛無孟浪한 혹세무민惑世誣民에 속지 말라! 내일 잘 할려 말고 현재 지금 잘 하라! 시건방지면 순간 닥칠 일에도 방심하다 황천길 간다. 천치같은 동심으로 돌아가 무엇이든 덤덤해질 필요가 있다. 소금없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긍정적 허무주의야말로 고만으로 점철된 우리네 인생길에 위안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된다.
글 / 세계불교승가청년연합 총재 상산스님 | 거짓말은 눈덩이와 같다, 때문에 거짓말은 늘릴수록 점점 커져만 간다.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 하다. 겉은 멀쩡한것 처럼 화려하게 포장하고 속은 썩고 상한 통조림과 다를바 없다. 무식하고 나쁜이 들이 정치인이 되어 권력을 잡으면 선량한 백성들을 볼모로 나라는 망쪼내고 국고도 거덜내고 무법천지無法天地된다. 속빈 강정 처럼 인격도 인성도 도덕도 윤리도 인품도 성품도 갖추지 못한 가짜 사람들이 세상을 시끄럽게 난장판을 만들고 있다. 너와나 서로 도우며 행복한 세상에서 살려면 사람다운 인격을 갖추어 살아 갑시다. 노동 뒤의 휴식이야말로 가장 편안하고 순수한 기쁨이다. 가장 귀중한 사랑의 가치는 희생과 헌신이다.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
재단법인 일정불교문화재단, 가피암 회주 일정대종사의 법문 4 「일체중생이 무시겁無始劫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육도六道에 윤회하면서 생사해生死海에 떠돌아다니며 쉴 사이 없이 고뇌를 받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대자대비 일체중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호하시는 터이니 대중을 위하여 법요를 말씀하여 주시옵소서」하였다. 세존이 대답하되 「그렇다, 일체중생이 도에 윤회하며 쉴 새 없이 고뇌를 받는 것은 모두 마음에 의한 것이다. 왜냐면 마음이란 것은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모든 경계를 반영하고 세정 티끌에 물들어서 마음이 항상 어지럽고, 안정하지 못하므로, 몸도 따라서 그렇게 되느니라 너는 지금 어떤 뜻에서 이걸 물고 있느냐?」 문수보살이 대답하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알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깨닫고, 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통하고, 고하지 못한 사람은 하고, 안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안심하게 하려고 청하나이다」 다시 세존이 말씀하시되 「그러나! 네가 만일 안심하는 법을 배우려거든 먼저 지식에서부터 귀의하여라. 왜냐면 알지 못한 이가 알려 하거든 선지식에 귀의하고 깨닫지 못한 이가 깨달으려거든 선지식에 귀의하고, 통하지 못한 이가 통하려거든 선지식에 귀의하고,
글 / 세계불교승가청년연합 총재 상산스님 살기좋은 세상에 어쩌다가 인간들이 짐승만도 못한 짓 들을 할까? 문명은 대책없이 최고로 앞섰지만 되려 어렵고 힘든세상 적응들을 못한다. 문명을 쫓아 가려니 가랭이가 찢어지고 벼랑끝에 매달려 발버둥 치는 안타까운 현실들 이다. 어느 집이고 자식새끼 귀하고 귀하지 않은 집 어디 있으랴! 귀한 자식 안쓰럽다. 자식들을 화초 인생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스스로 눈보라 치고 태풍 폭우 속에서도 견딜줄 아는 자생력 강하고 자립정신 으로 슬기롭게 살아가는 자식을 만들어야 효자 효녀가 된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 손자들 에게 스스로 노애가 되어 다 퍼주고 그 공덕이 돌아오지 않으면 울고불고 대성통곡 한다. 다 빼앗기고 울고불고 후회하고 가슴치다 결국 양로원 요양원 현대판 고려장 신세 된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재단법인 일정불교문화재단, 가피암 회주 일정대종사의 법문 3 다섯 가지의 德目에 의해서 반야경에서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 선禪 반야의 여섯 가지를 육도六度、또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보시布施라고 하는 것은 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공無空의 지혜를 반야경般若經이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에는 크게는 육백 권에서 작게는 반야심경과 같은 작은 것까지 수많은 경전이 있다. 따라서 그 내용도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반야경이라고 하는 것은 그 가운데 일관된 사상의 근저가 있으며 그것에 바탕을 두고 여러 방면으로 사상思想이 발전하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공통점 즉 근저根底의 사상으로서 무無와空의 지혜智慧의 반야般若에 바탕을 두고 여러 가지 반야경이 전개되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에 의해서 잘 설명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무無와 공空의 지혜는 반야심경뿐만 아니라 불교 그 자체의 근본적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만약 유럽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유有」의 지혜에 바탕을 두는 그것으로 생각해 왔다고, 한다면 전혀 반대의 관점에 서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발상發想과 그것에 바탕을 두는 행동의 패턴으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