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오! 한국의 달마여 지난 줄거리 3~4(마지막회)
일붕이 이 논문에서 일관되게 내세웠던 것은 세계불교사상 경전연구를 주로 하는 교종과 수행을 통한 득도를 주로 내세우는 선종이 동시에 추구되온 상자가 전부 하다는 사실이다.
또 설령 선교의 통합에서 나오는 취지를 주장했던 종지가 있었다 하더라도 명실상부한 실제적인 수련으로 연결한 역사는 오직 한국의 불교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란 논지를 일관되게 전개하였다.
1단일 학위논문으로서는 드물게 43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으로 엮어진 이 논문은 140여 권의 참고문헌을 제시하고 있는데, 학위 심사가 끝난 후 캘리포니아주 월낫트크리크市 조계종선원판(板)으로 발간되자 전 세계의 불교학계에 충격을 던졌다.
중국과 일본 양국이 학문적인 주도권을 잡고 있던 탓에 그 두 나라의 불교가 정통임을 당연하게 여기던 서양인들이 의외의 연구논문이 등장하자 관심을 집중한 결과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주장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서 발간되는 세계적인 불교 잡지 미들 웨이, The Middle Way誌는 “한국불교의 참모습이 실린 논문이며, 이 논문으로 인해 서구인은 한국불교를 새롭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극찬을 실었으며, 이 잡지의 편집장 알리비트는 ‘유럽 불교계의 한국불교에 대한 시각을 일거에 바꾼 대변혁’을 몰고 온 논문이라고 평했다.
2월 27일에는 미국 대통령 리차드 닉슨씨가 취임선물로 불교지를 보낸 데 대한 답례형식으로 일붕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일붕이 흰 고무신을 신고 가사 장삼을 입은 빡빡머리 스타일로 넓고 넓은 미국 땅이 좁다는 듯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그를 불러들여 2세 교육과 불교의 현대화를 꾀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소식을 접한 일붕은 붙잡는 제자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6월 중순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는 일붕을 영접 나온 조계종의 간부진과 신도들로 대성황을 이루었고 각 언론사에서 파견된 기자들이 붐볐다. 일붕은 귀국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한국불교는 이제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국제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유럽과 아메리카는 정신적인 위대성을 가진 우리 한국불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물질문명의 폐해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심리적인 방황에 대한 치유책의 하나로 참선을 강조하는 우리 한국불교를 원하고 있습니다.
더욱 넓은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의식부터 고쳐야 합니다. 그들은 이미 고답적인 종교를 원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神이 창조한 인간이 갖는 원죄原罪의식을 말하는 기독교나 오직 견성성불見性成佛해야 한다는 불교의 목표를 다른 각도에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대에 맞는 종교를 원하는 것입니다. 막연한 사후세계나 종교적인 구원보다는 현실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종교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禪은 그들의 요구에 가장 부합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선을 유효적절한 포교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불교계의 내부적인 문제부터 점검해야만 합니다.
서양은 우리 동양의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이는 우리가 서양의 과학과 합리성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참신하고 대중적인 불교 교재와 선 사상을 재개발하여 국내에서는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해외 포교와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총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그 길만이 우리 한국불교가 전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입니다…”
불광동 천간사 조실로 서울의 거처로 삼고 금강사 주지로 부산의 근거지로 삼은 일붕은 전국을 도는 순회강연을 하다 8월 5일 동국대 불교대학장에 임명되었다. 불교는 살아 있는가라는 주제 강연으로 종단 개혁의 횃불을 든 일붕은 정신력의 개조만이 생존의 지름길이라고 외쳤다.
종립宗立 동국대 불교대학장으로서 많은 일을 하던 일붕은 70년 5월 31일 출국하여 8월 24일 귀국하는 일정으로 두 번째의 미국행을 시도한다.
세계 선 센터의 건립을 지도하고 포교를 위해 떠난 이 여행에서 일붕은 세 가지의 기적을 일으켜 신적인 존재로 부각 되는 기회를 맞이했다.
특히 캘리포니아 북부 관광지대 다사하라에 있는 일본계 사찰 선심사, 禪心寺의 초청 강연을 하다 할! 하는 소리와 함께 천지가 뒤흔들리는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미국인이 일붕의 실물을 보려고 강연 때마다 떼 몰려와 포교에 큰 도움을 받았다.
또한, 손 상좌 사뮤엘 버클로즈가 버클리市뉴니터리언교회 대강당을 빌려 개최한 강연에서 소개한 ‘털이 달린 귀신의 방귀’란 화두는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이 두 번째 방미 시 혜광慧光과 서광西光이란 훌륭한 제자를 얻었으며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설립된 불교여승원佛敎女僧院에서 각국의 비구니들에게 교리와 선 강좌를 실시했다.
귀국한 후에는 미국 포교의 성과를 불교신문에 미 대륙횡단 강연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다. 9월 10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세계불교 지도자대회의 실무 지원을 아끼지 않아 형식과 체면을 초월한 인격의 소유자란 칭송을 한 몸에 받은 일붕은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국가관을 심어주기 위해 천간사에 흥선興禪호국앙양비를 세웠다. 11월 24일에는 동국대 대학선원장을 겸직하게 된다….
71년 1월 1일에는 말레이시아 불교연합회로부터명예 대승정大僧正에 추대되었다. 세계불교지도자대회에 참가했던 스리 담마난다 대승정이 귀국하여 일붕의 탁월한 업적을 널리 알려 받게 된 이 추대장은 전 세계 승려 중 그 수여자가 10명도 못 될 정도로 대단한 권위를 자랑하는 것인데, 2월 2일 방한한 마하웨라 싱가포르 대승정 편에 보내왔다.
동양통신은 이를 불교계만 아니라 국가의 명예라고 여겨 전국으로 급히 전송했다. 일붕은 추대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아마 해외에서 활동한 경력을 높이 평가한 그것 같습니다. 내가 다른 분에 비해 뛰어나다는 의미
붕새가 날은 까닭은 다 아니라 앞으로 불교 발전에 더욱 헌신하여 몸 바치라는 격려겠지요.
실제 내가 받기에는 너무 큰 칭호가 아닙니까? 우리나라 종단의 최고 어른이 종정(宗正)인데 그 앞에다 큰 대(大)자를 붙였으니 어찌 송구스럽지 않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영광입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많은 고승 대덕께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외국인이 자기를 잣대로 재서 준 것이니 뭐라고 말할 사안은 못되지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나보다 훌륭하신 종단의 어른께 수여되었으면 합니다만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할 일도 못 되지 않습니까? 또 그런다고 들을 외국인들도 아니고요.
아무튼, 분발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새기고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겸손하기 그지없는 소감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자기 낮춤’이 더 돋보이는 미덕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대승정 추대의 관심이 사라지기도 전에 일붕은 불교대학에 불교미술학과를 신설한다는 계획을 밝혀 뜻있는 이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편 유명무실했던 대학선원을 활성화하려는 온갖 노력을 쏟은 일붕은 신입생 전체가 참선을 교양필수로 이수하게 만들기도 했고 당대의 선지식善知識 전강 선사를 초빙해 특별강연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이 해에는 불교의 내부개혁에 대해 더욱 높은 강도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산중불교에서는 생활불교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불교 활성화의 대안으로 일붕이 내놓은 것 중의 하나는 불교진흥을 통한 민족정기의 회복이었다. 일붕은 이를 실천하려는 목적으로 전국을 돌면서 청년과 대학생들에게 흥선 사상을 고취시키는 한편 군軍에 선검일치禪劍一致에 의한 정신력 증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다녔다.
개인적으로는 금강사 봉불식과 한미 국제수련원 개원식을 범 종단적 차원에서 2월 14일 치렀다. 일붕은 이 해에 훌륭한 동반자 두 분을 저세상으로 보냈다. 2월 8일 떠난 양주동 박사와 11월 15일 입적한 이청담 스님이 그들이다.
구구절절 이 슬픔을 담은 조사를 <한국일보>에 발표한 일붕은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12월 6일 세 번째의 미국 포교길에 올랐다. 미국에 도착 한지 닷새째 되는 12월 12일 일붕은 또 다른 당대의 석학 스즈끼 다이세쯔가 이승을 떠난 슬픔을 맞았다.
일찍이 불교를 서양에 소개한 그의 노고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인정한 일붕은 간절한 기도로 그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비록 국적과 종파가 다르지만, 고인의 찬란한 업적에 대해서는 평소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세 번째 포교 여행에서 일붕은 컴퓨터 기술자 스테팬 캘로그씨와 보마씨를 제자로 받아 삭발 수계를 했으며, 캘리포니아대학 동양 언어학과장 로저스 박사와 불교학 교수인 랭카스터 박사의 초청을 받아 해인사 팔만대장경 목판본 韓英漢판 목록작성을 협의했다.
이들은 한국의 불교과 출신 유학생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일붕의 저서 한국고승일화집과 동양불교 문화사를 각각 영역 출판하기로 약속했다. 또 드렉셀대학 그린올드 교수는 동국대와 드렉셀대의 국제녹음교환강의를 추진하자고 제의했다.
일붕은 최초의 녹음교환 강의를 흔쾌히 수락하고 상호 실무적인 준비를 논의했다. 12월 29일에는 세계중앙선원 부지를 기증한 휘셔씨가 일붕을 위한 환영회를 열었고, 샌프란시스코 라디오방송이 일붕의 육성을 내보냈다. 이 방송을 끝으로 일붕은 71년의 공식적인 활동에 종지부를 찍고 시간의 흐름을 관조하는 사색에 몰입했다.
‘시작도 끝도 없고 머리도 꼬리도 없는 시간은 대하의 물처럼 꾸러미에서 풀리는 실처럼 낮이나 밤이나 흘러만 간다. 일순간의 지체도 머뭇거림도 없이 한결같이 전진만 있고 후퇴가 없다.
새롭다는 것은 변한다는 것이요, 변한다는 것은 묵은 것보다 색다른 것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나는 올해 무엇을 변화시켰는가?
나는 왜 멀고 먼 이국땅에서 새해를 맞이하는가? 새해는 시작이 아니다. 다만 인위적으로 시간이라 믿는 것뿐이다. 우리들의 약속일 뿐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 불법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불법을 전하는가? 동서양을 넘나드는 한 마리 붕새, 일붕 너는 왜 여기 있느냐?'
일붕의 사색 속에서 신해년이 사라지고, 임자壬子년이 나타났다. 새해라 이름한 그 시각에 태양은 다름없이 떠올라 천지를 비추고 있었다. 일붕도 신해년이라 이름한 어제와 다름없이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흐르지 않는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형상도 존재도 없는 신해년이 사라지고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임자년이 일붕 곁에 서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