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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새가 날은 까닭은 "윤회의 사슬을 끊어야" 1

- 세계불교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 전서
- 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란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선을 참고하는데 있어 문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하면서 왜 선종에는 교종 못지않게 서적이 많습니까?”

 

“흔히 선은 교외별전 불입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敎外別傳 不立文字直指人心 見性成佛)이란 특색을 갖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선의 본래 입장으로 보면 문자를 세우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말이 필요 없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경우를 많이 겪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동양의 성현 공자는 온 백설이란 현인을 만나기를 원했으나 막상 마주치자 그냥 지나갔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묻자 '군자목격이도존(君子目擊而道存, 군자는 눈만 마주쳐도 도가 그 속에 있느니라)'이란 한마디만 했습니다.

 

부처님도<능가경楞迦經>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깨달음으로부터 오늘 열반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실로 한 마디도 설(說)한 그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여 자신이 평생 설교한 내용을 부정했습니다. 다만 길잡이를 위한 책들이 있었습니다. 또 선을 중요시한다고 해서 여러 경전이 없어야 한다는 논리는 적절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형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종에서는 깨달음을 인도하는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전을 집어던지고 불태우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도 어리석음입니다. 책을 불태운다고 깨달음이 얻어지고 경전이 사라진다고 깨달음이 빨리 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때문에 경전의 유무만을 갖고, 교종이니 선종이니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삼보란 어떤 것입니까?”

 

“불교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세 가지 보물이란 뜻을 가진 삼보(三寶)는 불법승(佛法僧)을 말합니다.

 

佛은 석가세존을 가리키는 것인바, 그분은 깨달은 각자로서 복(福)과 혜(慧)가 충족되어 성인 가운데 가장 보배롭다는 의미로 복혜양족존(福慧兩足尊)으로 표현합니다.

 

法은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인바,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애욕과 물욕을 뛰어넘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僧은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법제자이니 불교를 신봉하는 단체와 신자들이 받들어야 할 보배로운 존재란 뜻입니다.”

“선가? 18문이란 어떤 내용입니까?”

 

“중국의 분양 선소선사가 만든 것으로 참선 수행 시 제자와 스승 사이에 듣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를 잘 정리하여 열여덟 가지의 물음으로 간추렸다 해서 18문(問)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차례로 알아보겠습니다.

 

1. 청익문(請問): 선사에게 제자가 진심으로 법문에 대해 가르쳐 주기를 청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제자가 조주 스님과 선문답을 나눈 경우입니다.

 

“어떤 것이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2. 정해문(呈解問):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된 것이 어느 정도인가를 스승이 판단하여 인정하여 달라고 묻는 것으로 엄양선사(嚴陽禪師)와 조주선사의 문답이 좋은 예입니다.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은 때가 어떠합니까?"“놓아 버려라.”

 

“한 물건도 이미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놓아 버리라 하십니까?”

 

“놓기 싫거든 짊어지고 가거라.

 

3. 찰변문(察辨問): 묻는 자가 도리어 선사의 깨달은 경지를 알고 싶어 하는 질문으로 동봉암주(桐峰庵主)를 찾아온 객승이 물었던 경우입니다.

 

“스님, 이 산중에서 갑자기 호랑이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흥(호랑이 울음소리), 어흥”

 

 

4. 투기문(投機問): 묻는 자가 스스로 얻음에 대하여 의심을 보이고 확증을 얻으려는 희망을 품은 질문으로 도오(道悟)선사와의 문답이 좋은 예입니다.

 

“의정(疑情)을 쉬지 아니한 때가 어떠합니까?"“하나를 지키면 참된 것이 아니니라.”

 

5. 편벽문(偏僻問): 묻는 자가 스승의 태도를 발견하려는 물음입니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나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내가 청주에 있을 때 적삼 하나 만들었더니 그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

 

6. 심행문(心行問): 선지 참구를 전진할 길을 묻는 것입니다. 홍화(興化)선사의 예가 있습니다.

 

“학인이 흑백을 가리지 못하고 있사오니 스님께서 갈 길을 제시해 주십시오.”

 

아무 말이 없던 흥화선사는 몽둥이로 그 학인을 때려 쫓았습니다.

 

7. 탐발문(探拔門): 질문자가 선사의 깨달은 경계를 점검한 것으로 풍혈(風穴)선사의 경우가 있습니다.

 

“알지 못한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의심하지 않습니까?”

 

“신령스러운 거북이 육지를 행하니 어찌 진흙 발자취를 끌어감을 면하겠느냐?”

 

8. 불회문(不會問): 무식한 자가 참선을 오래 하여도 알 수 없자 현사(玄沙)선사께 묻는 경우입니다. “학인이 잠깐 총림(叢林)에 들어왔사오니 스님의 지시를 비나이다."

 

“네가 드러누워 시냇물 소리를 듣느냐?”

 

“듣습니다.”

 

“이 소식으로 쫓아 들어가라.”

 

9, 경담문(擎擔問): 선사가 자기의 견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시험하려는 질문인데, 노숙(老宿) 선사에게 객승이 묻던 사례가 있습니다. “제게 화두를 하나 들려주십시요."

 

(노숙은 모두 반응이 없이 방망이로 객승을 내쫓았다.)

 

10. 고문(故問): 경전의 문구를 들어서 선사에게 질문한 것으로 수산(首山)화상의 예가 있습니다.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였거늘 저는 어찌하여 모르나이까?”

 

“식(識, 아느니라)!”

 

11. 차문(借問): 이미 아는 사정을 말하여 질문한 것입니다.

 

“큰 바다에 구슬이 있으니 어떻게 취하리까?”

 

“빛이 찬란한 곳의 물결이 하늘에 차니라.”

 

12. 실문(實問): 직접 관찰한 사물로부터 출발한 질문입니다. 

 

삼성(三聖)화상의 예가 있습니다.

 

“학인은 스님을 다만 중으로 보는데 어떤 것이

 

부처며 어떤 것 법입니까?”

 

“이 부처와 법을 네가 알겠느냐?"

 

13. 가문(假問): 가정을 합한 질문으로 경산(徑山)화상의 경우가 있습니다.

 

“이곳은 집 속인데 어느 것이 부처입니까?”“이곳이 집속이니라.”

 

이외에도 심문(審問), 징문(敎問), 명문(明問), 묵문(默問) 등이 있습니다“불교의 가장 큰 특색은 뭐니 뭐니 해도 윤회설에 있는 것 같습니다. 윤회와 인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만 시원하게 설명한 자료가 없습니다.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어떤 원인이 되는 조건을 인(因)이라 하고, 그로 말미암은 결과를 과(果)라고 합니다.

 

윤회(輪廻)는 바퀴가 돌아가는 것처럼 몇 번을 죽더라도 그치지 않고 다른 생물로 바뀌어 태어나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12 인연은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明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노사(老死) 등입니다. 이 인연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은 천도, 인도, 지옥, 아귀, 축생, 수라로 구성되는 육도를 떠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개, 돼지, 소, 말, 양, 뱀, 개미, 지렁이 같은 짐승이나 미물도 지금은 비록 그런 형상으로 태어났지만, 전생(前生)에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내생(生)에도 사람으로 환생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봅니다. 

 

물론 지금의 나도 전생에는 짐승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음 세상에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보장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현생(現生)에 복을 많이 짓고 선을 베풀었다면 안심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을 괴롭히거나 못된 일을 많이 했던 사람은 이 순간부터라도 회개하여 새롭게 태어나도록 선행에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은 세세생생(世世生生) 육도를 윤회하는 이 법칙이 단 한 치의 오차나 예외가 없이 적용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질문은 끝없이 쏟아졌다. 일붕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참석자들은 기독교 관점에서 본 불교의 세계관, 사후의 세계, 업보의 개념, 선의 방법, 불교 교리, 韓中日 불교의 차이점과 공통점, 한국 불교의 역사와 현황, 스승을 찾는 방법, 출가의 가능성, 불교 성직자의 처지에서 바라본 서구 사상의 문제점과 장단점, 미국인의 성(性)모랄, 불교와 과학, 전근대적인 계율… 등등에 대해 매우 진지한 태도로 질문했다.

 

곤란해진 사람은 일붕이 아니라 제자들이었다. 모처럼 열띤 논의가 진행 중인 분위기를 냉각시키기도 어려웠고, 그렇다고 계속하여 그대로 끌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일붕은 제자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체력과 지식에 모두 자신이 있었으므로 몇 시간을 지속했다.

만족한 성과를 거둔 일붕의 공개 강연은 그로부터 얼마간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려 한국 불교의 홍보에 나선 제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여러 제자가 각기 나누어져 포교하던 그때까지의 상황이 강력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 일붕은 세계 중앙선원을 중심으로 뭉칠 수 있도록 조직을 정비한 후 자신이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이어 제자인 잔 베케트씨를 비서 겸 사무장으로 임명했다.

 

귀국을 준비하고 있던 5월 중순 캐나다의 사스카츠완 대학으로부터 기존의 극동학과 내에 한국과를 증설할 것이니 교수로 와서 한국 문학, 종교, 한국어 등을 지도하라는 초청장이 왔다.

 

9월부터 강의가 시작되므로 가능하다고 여긴 일붕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