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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새가 날은 까닭은 “기적을 일으키는 '할'선생” 5

- 붕새가 날은 까닭은 일붕 저, 이존영 필수, 5번째 이야기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적극적인 현실 참여를 통한 포교를 주장하던 일붕은 불교대학장 취임을 계기로 두 가지의 일을 추진했다. 「포교실수(布敎實修)」과목 신설과 동국대 신입생 전체의 교양과목으로 참선을 의무화시킨 일이다.

 

 

70년 1학기부터 불교대학 출신들의 취직 알선, 포교 활동 근거 마련, 국외전도 포교사의 자질 향에 연이어 초청되었다. 상과 양성 등을 위해 신설한 '포교실수' 과목은 철학과 4학년이 수강하도록 했는데, 학장을 맡은 일붕이 직접 담당하여 이 과목을 이수한 자에게만 군승(軍僧) 및 포교사 자격증을 부여했다.

 

이 과목의 신설은 다음 해 4월과 5월에 걸쳐 실시된 '예비역 군승장교후보선발'을 미리 내다본 조치로 다수 학생이 혜택을 입었다. 국방부 군종 담당관실과 불교 문화연구소에 원서를 접수하여 소정의 시험을 거친 후 합격한 학생에게는 징병(징집) 검사에서 제외되는 한편 졸업 후에는 군종장교 중위로 임관하는 길이 트인 것이다.

 

이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 <포교 전도법 개론,布敎傳道法槪論>인데, 이 책은 최초의 근대적인 포교 방법론을 담은 역저로 평가받고 있다. 불교 잡지 <법시, 法施>에 70년 11월부터 71년 1월까지 연재되어 많은 불자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 책이다.

 

<포교전도법개론>은 포교의 정의, 포교사가 갖추어야 할 자질, 포교의 수단과 방법, 붕새가 날은 까닭은 포교의 종류, 개인 포교와 군중 포교, 심리 분야 등을 차례로 기술한 실무 지침서이다. 소개되는 여러 가지 가운데 부처님께서 제자 부루나가 교화하기 어려운 수로나국으로 떠나기 직전에 나 눈 대화는 가장 감동 깊은 이야기다.

 

 

부처님께서 성도(成道) 후 교단을 조직하고 포교에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석가세존이 신임하던 제자 부루나가 대단히 위험한 수로나국으로 포교의 길을 떠나겠다고 자청했다. “부루나야, 수로국의 사람들은 심성이 고약하여 너를 달갑게 맞이하지 않을 터인데 왜 떠나려 하느냐?"


"좋아하지도, 비방하지도 않겠지요."
"그들이 비방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비방해도 참겠습니다. 그러나 몽둥이, 칼, 돌 등의 흉기로 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다. 너를 돌로 치고,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겠느냐?"


“예. 만약 그들이 저를 죽인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다행히 생각하여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겠습니다. 저는 여러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가치 없는 소멸들이었습니다. 하오나 저는 무상 대도의 정법을 펴다가 순교하는 것이므로 영광으로 알고 죽겠나이다.” "부류 나야, 네가 진정 그런 각오로 떠난다면 수로나 국으로 가는 길을 막지 않겠다.”


신입생 전체의 참선은 다소 무리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았으나 일붕은 동국대의 건학이념을 주장하여 결국 관철했다. 수많은 신입생이 좌선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에도 흐뭇했다. 일붕은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불교 대학장으로서의 보람과 긍지를 느꼈다.

 

일봉이 70년대를 바라보면서 젊은이들에게 강조한 내용은 <東大新聞> 사설 (70.3.26일자, 신입생을 환영하면서)에 담겨있다. 우리의 장구한 역사는 불행하게도 事大主義的인 색채를 갖고 흘러 왔다. 그러나 화랑도 정신은 굳건한 의지와 정의감에 충만한 애국정신이며, 주체의 확립과 도덕적 질서 위에 창조적 정신을 빚어
낸 다이아몬드다.

 

그렇다면 그 다이아몬드를 빚어낸 원동력은 무엇인가. 佛法이란 法雨를 맞고 자란 찬란한 정신문화의 힘이다. 불교는 모든 것의 시작이며, 원동력이며, 새벽이며, 봉우리인 배달민족의 젊은 혈맥과 마주쳐 지축을 흔들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보석을 탄생시킨 것이다.

 

신입생 제군들이야말로 꺼져가는 민족혼의 점화자여야 하며 국가의 명예를 만방에 떨칠 동량이어야 한다….

 

동국의 품을 찾아 날아온 눈빛마저 빛나는 젊은 독수리들이여. 제군들의 두 어깨에는 허리 묶인 조국이 얹혀 있다. 제군들은 조국 하늘에 영원히 꺼질 줄 모르는 횃불임을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70년대 이후 20세기 후반은 제군들의 것이다. 국내 활동에 분주한 일붕에게 미국에서는 어서 빨리 도미하여 제자들을 이끌고 불사를 마무리 짓 자는 전화와 편지가 연일 쇄도했다.

 

원래 여름방학 때까지 국내에 머물다 도미할 계획이었으나 세계선센타의 건립관계로 5월 31일 출국하여 8월 24일 귀국하는 일정을 세웠다. 일붕의 제자로서 불심이 돈독한 해군 대령 휘셔 씨와 그의 친구 헨리 씨가 각각 11만 평씩 기증한 버지니아주 제퍼슨 국립공원과 볼루릿지 국립공원 부근인 카운티 오브 길스의 수프 더스틴 山에 세계 선 센터를 건립하는 문제를 지도하는 일차적인 목적으로 도미하려는 일붕은 믿을 만한 고성 신정 덕 스님을 동반했다. (그때 상좌로 데려간 고성 스님은 공부를 계속하여 메릴랜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사, 韓國寺> 주지로 미국 불교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5월 1일 착공에 들어간 세계선 센터는 대지를 보시한 휘셔 씨 일가에서 착수금을 보조하고 제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 미국 포교의 상징적인 건축물을 조성한 것이다.

 

제자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은 일붕은 세계선 센터의 건축과 운영에 관한 협의를 마치고 곧 포교 활동에 들어갔다. 두 번째 방미는 처음과 달리 만사가 순조로웠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고 “당신이 한국 스님 박사 서가 아니냐?"고 물어올 만큼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일붕은 제한된 시간임을 염두에 두어 동부의 워싱턴과 펜실베이니아주를 비롯하여 서부의 캘리포니아에서 멀리 하와이까지 56회의 순회강연을 강행했다. 그런데 일붕은 70년의 방미 시 세 차례의 신기한 기적을 일으켰다 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그 기적은 스스로의 병이 나은 것, 각기병 환자를 치유한 것, 다사하라 지역에서 지진을 일으킨 것이다.

 

도미하기 얼마 전 일붕은 서울 시내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가슴 부위에 응혈이 지고 통증이 오는 증상이 나타났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일붕은 주사를 맞고 고약을 바르는 정도의 치료를 하고 방치했더니 점점 상태가 악화하였다. 그러는 중 방미할 날이 가까워져 그 상태로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에 도착하니 별 이상이 나타나지 않자 계획대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랬더니 극심한 통증이 재발하여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신도들이 주선한 펜실베이니아대학 부속병원의 저명한 외과 의사에게 검진을 받았다. 검진을 마친 의사는“이 병은 급성 육종으로 난치병이니 수술을 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두 번 죽지 말고
차라리 먹고 싶은 것이나 먹고 하고 싶은 것이나 하라.”는 사형선고를 내렸다.

 

의사의 말을 그대로 듣지는 않았으나 제자들의 표정으로 보아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눈치챈 일붕은 입원하여 수술을 받으려면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하고 버지니아주 세계중앙선원의 법회 지도자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고 여겨 선원으로 돌아
갔다. 선원에 돌아온 일붕은 입원수속을 밟는 한편 나한 기도를 3일간 정성껏 드렸다. 또 심란한 마음을 인정시키느라 참선을 계속했다. 참선이 끝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 일붕은 문득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 도움을 주던 생각이 떠올라 “문수 동자야, 어디를 가서 지금처럼 어려울 때 모른 척 하느냐?'고 중얼거렸다. 그날 밤 다시 기도를 드리다 깜박 졸았는데, 빨간 옷을 입은 동자가 출현했다.

 

"스님, 제가 오지 않아 초조하셨지요? 제가 언제든지 스님의 뒤를 따르는데 무슨 걱정을 하십니까? 저는 스님의 사업이 완결되어 결실을 보기 전에는 언제까지나 스님을 보호할 것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동자야,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 육종이 생기지 않게 하지, 왜 이렇게 통증이 심하고 괴롭게 만들어 놓고 나타나는 것이냐?"

 

“예? 그것은 스님이 지으신 업보입니다. 그 때문에 제가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대성(大聖) 석가모니께서도 정업은 막을 길이 없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전생에 구도승으로 계실 때 바늘로 누더기를 깁다가 이를 한 마리 찔려 죽게 한 인과응보가 있어서 석가모니는 성불하신 뒤에도 금창이 엉덩이를 찌르려 하자 그를 피하려고 색 구경 천까지 갔으나 결국 찔렸지 않습니까? 또 전생에 늙은 수행 남자를 보고서 노장에게 보리나 먹이지 밥은 무슨 밥이냐고 천대한 벌로 석 달간 겉보리만 드시지 않았습니까? 그런가 하면 전생에 없이 있던 순타에게 공양을 받았다가 중독되어 열반을 재촉당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제가 업보로 인한 일을 어찌 막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스님은 업보가 약해 조금 앓게 되었습니다. 일단 사고가 나서 업 땜을 했으니 제가 이 고약으로 낫게 하겠습니다. 곧 쾌차하실 것이니 하시던 일이나 계속하십시오." 문수동자는 오른쪽 가슴 육종이 생긴 자리에 고약을 바르더니 곧 사라졌다. 그러고 나서 일붕의 경화증은 차츰 풀려 곧 완전히 나아 입원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미심쩍은 일붕이 다시 펜실베이니아대학 부속병원에서 재진했더니 그렇게 단단하던 육종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검진한 그 외과 의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기적이 일어났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현대 의학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기적이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마침내는 일붕이 도술을 부리는 신승(神僧)이라고 소문이 퍼졌다. 걱정이 태산 같던 제자들과 신자들은 일붕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가볍게 털고 일어나자 좋아서 펄쩍펄쩍 뛰면서 그 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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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기적을 믿던 미국인들은 한국의 선불교도 정신통일은 물론 육체적인 질병까지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킨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래서 한때는 일붕이 보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껴안고 키스 세례를 퍼부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일붕이 한국의 선불교에서는 그런 일을 하면 혼난다고 꾸짖자 머쓱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필라델피아와 버지니아주 일대에 퍼진 소문은 전국적으로 퍼지어 한국 불교가 영험하다고 믿는 사람이 늘어나 포교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 다른 종단에서도 일붕을 초청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각기병을 낫게 한 일은 캘리포니아주 월낫트 크리크市에서 일어났다. 고교 스페인어 교사인 불제자인 한 사람이 심한 각기병에 걸려 한쪽 다리를 못 썼는데, 일붕에게 좌선을 배워 놨게 된 것이다.

 

사실이 원리는 알고 나면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단전호흡을 통해 발바닥 가운데의 용천혈로 연결되는 경락 상의 맥점을 살펴 지속적인 참선을 하도록 지도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가 매우 양호하게 나타나 또 한 번 유명해지게 되었다. 지진 사건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약 7백 마일 떨어진 캘리포니아주 북부 관광지대 다 사하라(카멜 버리라고 고도하며 성지란 의미)에 있는 일본계 사찰 <선심사, 禪寺>의 초청 강연으로 '한국 선불교의 수행방법'을 설교할 때 일어났다.

 

이 절의 스즈끼씨(불교학자 스즈끼 다이세쯔와는 다른 조동종 승려로 전부터 일붕과 교유했음)가 일본 승려와 절의 신도들에게 일붕의 강연을 들려주고 싶어 초청한 것이다. 때는 마침 산천이 고요하고 월색(月色)이 밝은 밤이었다. 일붕은 강연을 하는 중간마다 사자 후의 고함소리, 즉 선가의 할(喝)을 소리쳐 분위기를 잡곤 했다. 일붕은 한시를 아는 일본인들임을 고려하여 시 한 수(首)를 읊었다.

 

산공수공천지공(山空水空天地空)이요,
월백운백건곤백(月白雲白乾坤白)이로다.
달도 공하고 물도 공하니 천지가 공했고
달도 희고 구름도 희니 천지가 희구나!

 

힘차게 읊던 일붕이 시가 끝나자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정말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조화되는 긴 침묵이 이어졌다. 수많은 시선이 일붕의 일거 수 일투족을 주시했다.
조용히 눈을 뜬 일붕이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큰 소리로 '할!' 하고 외치면서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 순간 땅이 흔들리고 마룻바닥이 들썩거리고 강당 문짝이 열렸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람들이 저절로 움직였다.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유난히 지진에 민감한 일본인들이 선이고 강연이고 다 집어치우고 살아야 한다는 듯이 우왕좌왕하였다. 일붕은 미소를 지으며 놀라지 말라고 안심시키면서 다시 제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당황한 청중들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일붕이 다시 '할!'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진동이 멈추고 평온을 되찾았다.

 

청중들은 귀신에 홀린 듯 얼떨떨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저마다 일붕이 도술을 부려 땅을 뒤흔들었다고 여겼다.

 

일붕은 설법을 다 마친 후 부처님이 생전에 설법하실 때도 등기용진 후각(起湧震吼擊), 즉 땅이 움직여 일어나고 솟아오르고 우뢰가 떨치고 대지가 부르짖고 땅이 탁탁 치는 6종이란 것이 있었음을 설명했다. (예로부터 고승이 설법할 때는 6종이 일어나는 상서로움이 있다는 경전도 있으므로 청중들은 그 설명을 듣고 공포심이 없어졌다.)

 

그 후 이 소문이 일본인을 중심으로 퍼져나가 일붕이 과연 세계적인 고승이라는 찬탄을 했다. 원래 소문이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특성이 있어 상당히 과장된 설명이 붙었을 것은 뻔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말에 신빙성을 실으려고 다사하란 지역에서는 지진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곳이란 말까지 하고 다녔다. 이로 인해 일붕은 '할! 선생'이란 별명을 하나 더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