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붕의 도미로 활기를 띤 세계선 센터 건축은 미국불교단(ABO)과 재미 한국불교회가 샌프란시스코 미국불교단 본부에서 설립위원회를 조직함으로써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설립된 일본 조동종 선 센터를 능가하는 건물을 짓기로 합의했다. 당시 미국 포교 80년이 된 일본 불교도 시즌에 의한 22만 평의 대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일붕을 따르던 제자들은 한국 불교의 전진 기지가 될 세계선 센터가 세계불교도대회를 치를 만한 수준이 되어야 일본 불교를 능가할 수 있다고 믿었다. 후원자들은 심사숙고한 결과 한국의 전통적인 사찰인 <불국사>를 모델로 하여 전문적인 선 센터는 석조 돔형으로 짓고, 일반 신도가 사용할 도량은 양옥으로 지어 동서양의 건축을 조화시키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이 알려지자 인근의 목재업자는 한국 고대 건축씩 사원을 짓는데 소요되는 목재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필라델피아 불교신도회 회원인 러셀 씨는 일붕의 저서 <오색주>와 <한국 불교사화>를 극으로 각색하여 뉴욕의 시내 극장에서 공연하고, 그 수입금을 후원 회비로 내놓겠다고 했다. 또 어떤 신도는 일붕의 포교 활동을 담은 영화를 제작하여 건축비로 내놓겠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광범위한 보급망을 가진 '삼발라' 서적에서는 일붕의 논문집 <조당집을 통한 한국 선불교 연구>를 책으로 펴내 간접적인 지원을 했다.
일붕을 더욱 감격하게 한 것은 이미 세워진 건물에서 불교 강좌를 듣고 참선을 하던 젊은이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미국 전역에서 일붕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대학생과 청년들인데, 아침저녁으로는 참선과 강좌에 참여하면서 낮에는 정원 미화 작업, 채소밭 가꾸기, 과수원 가지치기, 건축자재 운반 등을 자발적으로 했다.
일붕은 이들의 정성에 보답하는 길은 철저한 참선 지도라고 여겨 온 힘을 다해 가르쳤다. 그래서 여러 강연에 쫓기느라 피곤한 몸이었지만 장기간 자리를 비울 때 외에는 매일 밤 좌선을 직접 지도했다. 좌선을 지도할 때면 어김없이 선장(禪杖)을 들고 자세가 바르지 못하거나 조는 사람의 어깨를 내리쳤다. 이렇게 명상 좌선을 하는 사람을 뜻밖에 갈겨주는 것은 소위 방(棒)이란 선가의 특수훈련법이다. 일붕이 이 법을 사용한 것은 한국의 선법이 준엄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다.
좌선을 마친 뒤에는 '南無大阿羅漢聖衆이란 성호를 열 번씩 제창한다. 이 구 동성으로 흘러나오는 힘찬 목소리가 산골짜기를 울릴 때면 한국의 산사에 온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성호를 외친 다음에는 일붕이 영어로 번역한 <보조법어> 몇 페이지를 일제히 읽는다. 이렇게 독경을 마치면 선에 대한 설교를 20분간 한다. 이 설교는 한국 선의 사상과 한국 선사들이 남긴 선화(禪)가 주된 내용이 된다. 설교를 마친 뒤에는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진다.
차는 미리 다도(茶道)를 교육받은 미국인 여성 신자가 다반에 차를 가지고 들어와서 정좌하고 앉은 사람에게 차례로 한 잔씩 돌린다. 차를 대접하는 여성은 공손한 태도로 차를 드리고 그 차를 받는 사람에게 배례한다. 이 시간에는 정숙하고 우아한 선풍이 제대로 시범(示範)된다. 이 자리에 한 번이라도 참석했던 사람은 누구나 한국 선풍의 지고한 경지를 찬탄했다.
일붕은 다사하란 <선심사>의 기적에서 소개한 '할'을 선문답 시간에 가끔 사용한다. 그 할은 깊숙한 심호흡을 배꼽 밑 3촌 하단전에 멈추어 폐기(閉氣)하고 순간적으로 고함을 지르면 놀랄만한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일붕의 제자 聖山(왕) 대사는 할 하는 법을 배워 그가 가르치는 고등학교 수업에 자주 활용한다. 그는 열성적으로 선을 배웠기 때문에 조계종 선포교사로 활동한 경력의 소유자다.
미국 불교계에서 한국 조계종의 선법이 가장 특수한 선종이라고 극찬하는 이유는 일붕이 할(喝)과 방(棒)으로 준엄한 선풍을 진작시키는 한편 禪과 敎가 통합된 종단이므로 한국 불교를 배우면 불타의 가르침인 말씀(敎)과 마음(禪)을 전체적으로 익힐 수 있다고 홍보한 까닭이다. 조계종 종지인禪敎一致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이해시키면서 좌선, 간경(看經), 염불(念佛)을 병수한 것이다.
신도와 제자가 늘어나자 독특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도 늘어났다. 펜실베이니아와 필라델피아 일대에는 일붕을 생불(生佛)처럼 따르는 신도들이 유난히 많았다. 메이 스왓스 여사도 그러한 사람의 하나다. 일붕에게 선을 배우고 5계를 받기 전 메이 모녀는 열렬한 힌두 이즘의 신봉자였으나 개종한 후에는 자택에다 불상을 모시고 수도 생활을 했다.
이름난 조각가인 메이 여사는 일붕이 제자들과 2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것을 유리창을 통해 스케치한 다음 그 스케치를 나무에 판각했다. 그녀는 이 판각인영화(板刻人影畵)를 여러 전시회에 출품하여 장삼을 입고 머리를 빡빡 깎은 한국승려의 이미지를 강하게 인식시켰다. 한국 승복의 인기는 자크 헌씨의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일붕은 도미시에 가져간 모시 장삼, 고무신, 백팔염주를 그에게 주었다. 그는 감동한 나머지 일붕을 시봉하는 의미에서 미국 전역을 따라 다니며 온갖 편의를 제공했다. 그의 형은 캐나다 주유엔대사였는데, 일붕과 자크 헌이 그의 집을 방문하자 머리를 삭발한 두 명을 번갈아 보며 당혹스러워했다.
인사를 나눈 다음 자크 헌이 머리를 깎게 된 경위와 선에 관해 설명하자 그때야 비로소 이해하겠다는 말을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형은 일붕에게 불교의 교리를 물었다. 일부는 쉬운 이야기로 그를 설복해 나가자 흥미를 느낀 그는 이튿날 새벽 3시까지 붙들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이후 그의 가족은 모두 불교 신자가 되었다.
탁월한 비유로 미국인들을 즐겁게 만드는 것도 일붕의 특기였다. 어느 날 손상 좌인 사무엘 버클로즈가 버클리市 뉴리터리언교회 대강당을 빌려 일붕을 초청했다. 이때 일붕은 <한국 선의 특색>이란 연제(演題)로 강연을 했는데, 미국인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선문답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여러분! 마음은 곧 佛이고 佛은 곧 마음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과 그 佛을 직접 보신 분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 이유를 아는 분이 계십니까?" (청중은 묵묵부답이었다) “그것은 다른 것을 아느라 귀신이 방귀를 뀌었는데, 그 방귀에 털이 달린 것과 같습니다. 이제 알이겠습니까?”
수많은 청중은 영문도 모르고 폭소를 터뜨렸다. 웃음은 쉽게 그치질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던 일붕은 주장자로 꽝 하고 내리쳐 분위기를 바로 잡았다. 일붕은 웃음이 그치자 '털이 달린 귀신의 방귀'라는 공안(화두)이 왜 고차원적이고 깊은 철학이 담겨 있는가를 설명했다.
이 일로 인해 버클리市에서는 '털이 달린 귀신의 방귀'라는 공안이 유행어가 되었다.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털이 달린 귀신의 방귀'라는 말을 하면서 킥킥거렸다. 이런 이유로 하여 다른 종교를 믿다가 일붕의 강연을 계기로 한국 불교로 개종한 사람이 많았다.
혜광(光)과 서광(西)이 그 무렵 개종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70세가 다 된 혜광은 종교학자로서 마호메트 교파 가운데 수피파의 신도였다. 마호메트교(이슬람교)는 중동지방에서의 관습을 미국에 그대로 옮겨 성직자까지도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를 적용하고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코란을' 이란 호전적인 포교로 유명했다. 혜광은 수피파 중에서 매우 존경을 받아 그를 따르던 제자들로부터 교부(敎父)로 일컬어지던 지도자였다.
그러한 그가 일붕을 스승으로 섬기고 나서는 한국 조계종의 장삼을 입고 철저한 독신 비구가 어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지방에서 가장 활발한 포교사가 되었다. 그는 수백 명의 제자와 숙식을 같이하는 특이한 방법으로 수행을 하면서 정신적인 수양과 치료를 했다. 西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나 티베트와 몽골계통의 밀교(密敎)를 전공한 후 불교와 가까워졌다.
그 뒤 일붕을 만나 천주교에서 불교로 완전히 개종했다. 그는 일붕의 제자가 되어 교리적인 지도를 받고 불교의 주문(呪文)과 진언(眞言)을 전문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일붕에게 호국불교를 배우는 과정에서 신라의 화랑도 정신을 알고 난 후 완전히 거기에 심취했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수많은 남녀 제자들에게 화랑의 신조를 교육하고 실천적인 훈련까지 했다.
그가 실시한 교육은 거의 스파르타식에 가까웠지만, 누구 하나 군소리를 내지 않고 따랐다. 매주 토, 일요일 아침 8시가 되면 한국의 오조가사를 입고, 백팔염주를 목에 걸고, 선장(禪杖)을 든 수많은 제자가 그가 지정한 장소에 집결한다. 등산모에 불교를 상징하는 만(卍)자를 붙인 그들은 서광의 지도로 여러 대의 트럭에 분승한다. 그리고는 미리 지정한 명승지의 산에 도착하면 일제히 내려 도보로 등산을 시작한다. 이 모습은 한국에 있는 대사찰의 스님들이 질서 정연히 줄을 지어 길 양쪽으로 걸어가는 것과 똑같다.
등산하는 도중에 어떤 지형을 만나도 서로 협력하여 뚫거나 넘어간다. 나무가 가로막으면 나무를 쓰러뜨리고, 강을 만나면 뛰어들거나 임시 다리를 놓고, 암벽을 만나면 허리에 낸 줄을 이용하여 통과한다. 마침내 정상에 오르면 행장을 풀고 가볍게 몸을 푼다. 정상적인 호흡이 되면 <삼귀의三歸依>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고 기도를 드린다.
기도가 끝나면 등산복 뒤에 매달았던 방석을 꺼내 땅바닥에 깔고 그 위에 앉아 좌선에 몰입한다. 한국에서 가져간 전통악기가 없는 그들은 행군과 등산 시의 신호를 나팔고둥(큰 소라 껍데기로 만든 티베트불교의 악기)으로 대신한다. 이는 신라 시대 화랑도의 유풍(遺風)을 재현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야마 부시도(山武士道)라는 것이
있다.
또 서광은 계율을 생명처럼 여겨 자신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여성을 제외한 모두에게 머리를 빡빡 깎도록 요구한다.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에는 그 본부를 인도에 둔 '세계 모든 종교의 교리에 차별을 두지 않고 숭배한다.'라는 취지를 가진 신철학통일회(神哲學統一會, 씨오소피칼 쏘사이어티)란 교파가 있다. 재력이 좋은 신자가 많은 이 신철학통일회는 여러 종교의 서적을 출판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교파의 회장과 대표 포교사가 일붕에게 귀의하여 제자가 되었다.
이들은 샌프란시스코의 회관에서 매주 3회씩 설교를 하면서 일붕이 쓰거나 옮긴 <조
당집> <선가귀감> <보조법어> 등을 성전(聖典)으로 사용했다. 앞서 말한 삼바라서 적은 이 교파가 운영하는 종교 서적 출판사에 속해 있다. 이후에도 이 교파에서는 일붕의 제자가 많이 나왔다. 이런 주요 활동 외에도 일붕은 두 번째 방미 기간에 다음과 같은 강연회에 연사로 참여했다.
6월 3일에는 버지니아대학 삼포드 교수 초청으로 랙버그市에서 국제 선우(禪) 간담회와 선 철학 강연했고, 6월26일에는 필라델피아市 에디슨가 조 계 선도회에서 여신도 2명(金花心,姜心花)과 남자신도 1명(聖光거사)에게 한국식 불명 수계식을 거행했다. 7월2일에는 드렉셀대학 교수회관에서 <불교의 역사와 선>을 주제로 강연한 후 맥 가이드 부총장과 양교(동국대와 드렉셀대) 학생의 교황유학을 합의했다.
이튿날에는 그린올드 교수 초청으로 유대교 신자, 뉴니터니언교회 성직자들과 <서양 종교와 한국의 선>에 대한 간담회를 했다. 7월19일에는 조계종 정기 종교강연을 샌프란시스코 씨오소피칼 쏘사이어티 강당에서 <순수불교와 선>을 주제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