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9 (토)

  • 맑음동두천 -4.5℃
  • 구름조금강릉 -0.3℃
  • 맑음서울 -1.8℃
  • 맑음대전 -1.5℃
  • 맑음대구 0.7℃
  • 맑음울산 0.1℃
  • 맑음광주 0.3℃
  • 맑음부산 0.6℃
  • 맑음고창 -2.3℃
  • 구름많음제주 5.5℃
  • 맑음강화 -0.8℃
  • 맑음보은 -4.4℃
  • 맑음금산 -4.0℃
  • 맑음강진군 0.6℃
  • 맑음경주시 0.7℃
  • 맑음거제 1.8℃
기상청 제공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세계일화(2)

초대법왕 일붕존자님의 일대기 태몽에서 열반까지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존자님의 세계일화 

 

 

2. 총명한 도사 아이

 할아버지는 경보를 틈나는 대로 무릎에 앉혀 놓고 귀여워하고 잠도 데리고 잤다. 그러면서 늘 '우리 도사, 우리 도사' 하며 사랑스러워 했다. 
 경보는 한번 들으면 잊지 않고, 한번 본 것은 반드시 기억하여 동네어른들로부터 '총명한 아이'라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이런 경보를 잘 가르쳐 뛰어난 인물로 키워 기울어진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고 여긴 할아버지는 일찍 글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경보는 제주도에서 가장 뛰어난 글재주를 가졌다는 외삼촌 이지화 선생께 글을 배우다 동네 서당을 다니게 되었다. 
 6세가 되자 경보는 이미 어지간한 한문을 다 읽고 쓰게 되었으며, 10세 때에는 그 어렵다는 사서삼경을 줄줄 외우고 풀었다.
 이렇게 공부는 잘했지만 경보는 도무지 아이답지 않은 행동을 자주 해 집안 어른들의 걱정거리를 만들었다. 
바다와 가까운 마을인 도순동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바닷가에 나가 고기잡이 어른들을 거들기도하고 고기 잡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또 한라산에서 시작하여 서귀포로 빠지는 도순천에 나가 은어나 피라미 같은 고기를 잡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경보는 고기 잡는 일이나 장난스럽고 개구쟁이 같은 일을 도무지 안했다. 늘 혼자 있으려 했고 책을 읽기만 했다. 처음에는 어른들도 '귀하게 될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 하는 식으로 무심히 보아 넘겼지만 갈수록 아이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개구쟁이 소년들이 서당에 오가면서 심심함을 달래려고 아무 뜻 없이 뱀을 돌로 때려 죽여 놓고 킬킬 거리며 웃고, 개구리를 밟아 죽이고, 길가의 꽃을 따고, 나무를 꺾는 일을 자주 한다.
그런 일을 볼 때마다 경보는 이렇게 친구들을 타일렀다.
"아무리 말 못하는 미물일망정 살아 있는 목숨을 함부로 죽이면 벌을 받는다. 개구리나 뱀이 너희들을 해치려 하지도 않는데 왜 때려죽이는 거야." 이런 경보를 보고 친구들은 잘난 체 한다고 비웃었다.
"치, 공부 좀 잘한다고 그러지 마. 재미있어서 그러는 것인데 뭐." 
"너네 재미있다고 괜히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면 돼?"
"경보 네가 무서워서 뱀을 못 잡으니 그러는 것이지?"
"아니야, 나는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아."
아이들이 듣건 말건 경보는 계속하여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우겼다.
아이들은 경보가 그러는 것이 미웠지만 공부를 잘하는 경보한테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서당에서 배운 글을 외우며 집에까지 와보니 낯선 사람이 집에 있는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왜 남의 집에 들어와 몰래 감을 따느냐"고 고함을 지르거나 이웃의 어른들께 알려 혼을 내도록 부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보는 달랐다.
'내가 소리를 지르면 놀란 나머지 떨어져 다칠 수도 있고 어른이 몰래 감을 따다가 아이에게 들키면 얼마나 민망해 할까? 차라리 나누어 먹는다고 생각하고 못 본 척 하자. 그러면 없던 일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경보는 오히려 자기가 그 자리를 피했다가 감을 따던 사람이 사라진 다음에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집으로 들어갔다. 물론 어른들께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엉뚱한 일도 저질렀다. 
어느 날 서당에서 돌아오니 할아버지가 바다에서 잡아오신 고기들이 바구니 안에서 팔딱팔딱 뛰고, 눈을 껌벅거리고, 아가미를 벌려 숨 쉬고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경보는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빈 바구니를 가져다가 살아있는 고기를 따로 담았다. 그러더니 무거운 바구니를 낑낑거리며 온 힘을 다해 들고 물가로 가 다 살려주었다. 
할아버지도 얼마 동안 '이상하다 요즘에는 왜 금방 잡아온 고기들이 빨리 죽지' 하면서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죽은 고기만 남아있자 '무슨 까닭이 있구나'하여 고기를 잡아온 다음에 경보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그날도 경보가 숨 쉬는 고기를 골라 살려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경보야, 너는 왜 할아버지가 위험한 바다에서 애써 잡아온 고기를 다시 살려주느냐?" 
경보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니, 그 까닭을 말하라고 하지 않느냐!" 
그래도 경보는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화가 나셨다.
"이 녀석이 귀여워하고 예뻐하니 버릇이 없구나. 왜 고기를 다시 살려주느냐고 묻지 않느냐!"
"그냥 불쌍해서 그랬습니다."
"뭐가 불쌍하다는 말이냐? 죽은 고기는 갑이 반밖에 안 되는 걸 몰라서 그러느냐?"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이후에도 경보는 할아버지 몰래 고기를 살려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다시 눈치를 채고 경보에게 물었다.
 "경보야, 다시 묻겠다. 고기를 또다시 살려줄 것이냐?" 
 "아-아니요. 하지만 물도 없는 곳에서 숨을 쉬고 팔딱팔딱 뛰는 고기를 보면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그러곤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나자 할아버지는 고기를 죽여서 가져왔다. 그 대신 다른 어부들보다 값싸게 고기를 팔아야 했다.
 이것을 알게 된 경보는 어느 날 밤 할아버지와 한 이불에 들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다시는 산고기를 놓아주지 않을 테니 죽여서 가져오지 마십시오. 모두 죽여서 가져 오시니 값도 제대로 못 받고 불쌍해서 살려 준 제 뜻도 소용이 없게 되었잖아요." 
 "그래 그렇구나. 알았다. 다음부터는 일부러 고기를 죽이지 않겠다."
 할아버지는 경보가 기특하다는 뜻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 다음부터 할아버지는 일부러 고기를 죽여서 집에 가져 오시지 않아도 되었다. 그 대신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의 마음을 알았는지 잡아온 고기 중에서 가장 싱싱한 몇 마리를 골라 경보에게 주며 말했다.
 "이 놈은 경보 네가 다시 살려 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