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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세계일화(5)

초대법왕 일붕존자님의 일대기 태몽에서 열반까지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5. 훈장이 된 경보의 가르침

 경보는 훈장이 되고 나서 재미있고 쉽게 가르친다는 원을 세웠다. 공부가 너무 딱딱하고 어려우면 학동들이 서당을 '지긋지긋한 곳'으로 여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외우고 쓰라고 하던 옛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예를 들면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가르치면서, 무조건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고 했고 순자는 사람은 원래부터 악하다’고 하지 않았다. 즉 성선설을 설명하면서 ‘어린이가 우물가에서 우물 안으로 떨어지려고 할 때 사람이면 누구나 뛰어가서 그 어린 아이를 구할 것이다.’고 풀어서 가르치는 방법을 썼던 것이다.
 부모님의 은혜를 가르칠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해 저절로 깨닫게 했다. 옛날 가뭄이 심하여 나라 안이 온통 가난과 질병이 들끓게 되자, 임금이 '나이가 많은 노인들을 산에 대려가 구덩이를 파고 묻어라' 하는 명령을 내렸다. 
 어느 아들이 국법을 어길 수 없어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산으로 묻으러 갔다. 아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참고 그저 묵묵히 걸었다. 어머니는 자기를 땅에 파묻으러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이 무거워 하자 내려서 걸어가겠다고 했다. 아들은 마지막 가는 길인데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여겨 계속하여 업고 갔다. 갈수록 숲이 깊어지자 어머니는 무슨 생각이 들어선지 나무 잎사귀를 따서 걸어가는 길가에 뿌리기도 하고 나무를 꺾기도 했다.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물었다.
 "어머니, 왜 나뭇잎을 따서 뿌리고 나무를 계속하여 꺾으세요?"
 "네가 나중에 돌아갈 때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할까봐 그런다." 
 아무리 글공부가 싫은 학동들도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경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부모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자신을 땅에 묻으러 가는 순간까지 자식이 돌아갈 것을 걱정하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나서 옛 성현들이 말했던 부모님 은혜를 가르쳤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너무 재물에만 눈이 어두워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로 가르쳤다.
옛날 어느 마을에 장자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의 집안은 아버지 대까지 부자였으나 차츰 가세가 기울어 끝내 가난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친척들이나 친구들은 누구 하나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먼 나라로 떠나 부지런히 돈을 벌어 몇 해 뒤에는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친척들과 친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를 싹 바꾸어 멀리까지 그를 마중 나왔다. 이 말을 들은 그는 일부러 남루한 옷을 걸치고 맨 앞의 하인들 사이에 끼어 걸어갔다. 친척들은 가난했던 소년이 이제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으므로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친척들은 하임차림을 한 장자에게 물었다. 
 "이봐야, 오늘 크게 성공하여 돌아오는 장자는 어디 계십니까." 
 장자는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다. 
 "저 뒤쪽에 오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그럴듯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친척들은 다시 뒤쪽의 하인들에게 물었다.
 "장자는 어느 분인가요?"
 "그 분은 맨 앞에 계시는데요." 
 이렇게 하여 겨우 장자를 찾아낸 친척들은 마중까지 나온 자신들을 피하는 장자가 야속하게만 생각되었다. 장자는 친척들과 마중 나온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당신네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장자는 저 낙타 등에 있습니다. 제가 지난 날 가난했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당신들이 갑자기 마중을 나와 장자를 찾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벌어오는 재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재산은 저 뒤에 오는 낙타 등에 실려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학동들은 저절로 고개를 끄덕 거리며 신나했다. 공부를 제 때에 해야 하고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로 가르쳤다. 
 중국의 주나라에 한 도인이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갖가지 재주를 익혀 마침내는 도인으로 불리 엇다. 그 도인은 둔갑술과 신출귀몰하는 재주를 부렸다. 심지어는 새와 물고기들이 말하는 것도 알아들었다.
하루는 그 도인이 여행을 하는 중 길 옆에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여보세요. 도인님!"
 도인은 그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소리가 나는 곳에는 아무도 없고 다만 메마른 웅덩이 속에 붕어 몇 마리가 비늘이 바싹 말라 거의 죽어갈 지경이 되어 있었다. 도인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발길을 돌려가던 길을 계속 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웅덩이 속의 붕어들이 도인에게 애걸하였다.
 "우리들은 지금 웅덩이에 물이 없어 비늘이 말라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도인께서는 물 한 말만 길어다가 이 웅덩이에 부어 주시면 저희들이 곧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은혜를 꼭 잊지 않고 갚을 것입니다."
 "오, 그러냐? 한 말 정도의 물이 아니라 내가 아예 강의 물줄기를 이곳으로 대어 주마." 
 도인의 말을 들은 붕어들은 탄식을 했다.
 "우리들은 지금 한 시가 급해서 그러는데 만일 도인께서 강물을 이곳에 댈 때까지 기다리면 우리는 결국 어물전으로 가거나 말라죽게 될 것입니다." 
고집과 체면을 너무 따지다가는 손해만 보게 된다는 가르침은 이런 이야기로 대신했다.
 돼지의 왕이 부하들을 데리고 험한 산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저쪽에서 한 마리의 호랑이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었다. 돼지의 왕은 호랑이를 보자 겁이 났다. 그렇다고 해서 '겁을 먹고 달아났다가는 부하들이 나를 비웃을 것이다. 이 위험하고 어려운 고비를 면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는 궁리를 하고 있었다. 잠시 길을 비켜주며 아무 말썽이 안 생길 것인데도 돼지의 왕은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렸다. 
 "이 봐, 호랑이. 내가 지나가게 길을 비켜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나에게 혼이 나고 말 것이다."
 호랑이는 가소롭기도 하고 불쾌했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바다. 어디 한번 싸워보자. 이렇게 된 이상 이 길은 절대로 못 비켜 주겠다." 
 돼지의 왕은 괜한 고집을 부렸다가 큰 일 났다고 생각했다. 그때 번개 같은 묘책이 돼지의 왕에게 떠올랐다.
 "그럼 잠시 기다려라. 우리 조상 적부터 내려오는 갑옷을 입고 와서 싸우겠다."
 "네 좋을 대로 해라."
 호랑이는 여유만만하게 돼지의 부탁을 허락했다. 
 돼지의 왕은 급히 자기들의 변소로 갔다. 그리고는 떼굴떼굴 뒹굴어 온몸에 똥을 발랐다. 돼지의 왕은 호랑이에게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준비를 마쳤다. 싸우려면 덤벼라. 내가 무섭거나 싸우기가 싫으면 어서 길을 비켜라." 
 호랑이가 돼지의 왕을 보니 온 몸에 똥을 발라 냄새가 진동했다. 호랑이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너는 명색이 왕이란 놈이 참 더럽구나. 지금껏 내가 약한 짐승들을 잡아먹지 않은 것은 소중한 이빨을 아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처럼 온 몸에 똥을 발라 냄새가 코를 찌르는 돼지와 어떻게 싸우겠느냐. 내가 길을 비켜주겠다. 더러운 돼지 놈아."
 돼지의 왕은 호랑이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생각이 들어 부하들에게 이렇게 뽐냈다.
 "너희들도 잘 보았지. 나는 호랑이도 무서워 길을 비켜주는 돼지의 왕이란 말이야. 어험, 어험…" 
 그러나 돼지 나라에 돌아온 돼지의 왕은 온몸에 똥을 발라 호랑이를 물리쳤다는 소문이 돌아 "돼지 나라의 품위를 떨어뜨린 돼지를 왕으로 모실 수 없다"하여 아무도 그 돼지를 따르지 않게 되었다. 
 경보는 어떤 것을 가르칠 때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고 나서 한문의 문장을 풀어 나갔다. 이 같은 학습법이 널리 알려지자 너도 나도 경보에게 학동을 맡기려 했다. 공부에 특별히 취미가 없는 아이들이 서당에 가는 것을 꺼려했고, 어떤 아이들은 집에서는 서당에를 간다고 해놓고는 딴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서당공부를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과 섞여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가며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치는 경보가 있는 서당에 학생들이 몰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