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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세계일화(6)

초대법왕 일붕존자님의 일대기 태몽에서 열반까지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6. 더 넓고 큰 세계로

 서당의 훈장으로 명성을 얻어 가족들이 기뻐하는 것과는 반대로 경보는 답답함을 느꼈다.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서 집에 돌아와 뒷밭에 귤을 심던 경보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천하를 노려도 부족하거늘 어찌 좁은 섬 구석에서 코흘리개들의 훈장 노릇이나 하고, 귤나무를 심어 그 열매가 맺길 기다려야 되겠는가? 그렇다. 뭍으로 나가자. 넓은 곳으로 나가 훌륭한 스승을 찾아 더 깊은 공부를 하고 큰 뜻을 펼치자! 세계는 나날이 발전하는 데 어찌 옛 학문인 한자만 익혀서 앞서가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이 일어나면<장자>란 책의 <남화경> 첫 편에 나오는 붕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남화경>에는 상상의 새인 붕새를 이렇게 쓰고 있다.
 "북방의 조그만 새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커져서 날개 짓을 하니 태풍이 일어나고 태양빛을 가릴 정도의 위세로 바람을 일으켰고, 몇 차례 날개 짓을 하다가 남쪽을 향해 구만리 창공을 먹지도 쉬지도 않고 6개월간을 날았다." 
 경보는<남화경>에 나오는 붕새를 떠올리며 이렇게 다짐했다. 
 '붕새는 날개를 펴면 하늘을 뒤덮고, 한번 물을 마시면 오대양의 물이 마르고, 등뼈만 2천리가 넘는다고 하는데… 세상에 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떤 사람은 <사서삼경>이나 <장자>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역사에 길이 빛나는 위대한 업적을 쌓는데… 나는 그들이 쓴 글을 읽고 가르치면서 황금보다 귀한 시간을 허비해야 되겠는가? 나도 학문과 경륜을 쌓아 온 세상에 기개를 떨치는 붕새와 같은 큰 그릇이 되자. 옛 부터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 나도 어서 빨리 넓은 세상으로 나가자.'
 이때부터 경보는 몸은 제주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육지로 떠나 있었다. 제주를 떠날 궁리를 하던 중 남제주군 위미리란 곳의 현 씨가 뭍에서 도력이 높은 분을 모셔온다는 소문을 들었다. 경보는 그날을 기다렸다가 노의송 선생을 만났다. 경보는 노선생을 따라 전남 영광군 묘량면까지 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훈장을 하면서 책을 읽고는 도중 주재소에서 출두하라는 연락이 왔다. 
 경보가 주재소에서 도착하자 일본인 순사가 대뜸 ‘왜 아이들에게 나쁜 교육을 하느냐?’고 다그쳤다.
 "아니 내 집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글을 가르치는 데 그것이 왜 일본을 해롭게 하는 것이냐?"
 경보는 굴하지 않고 따졌다.
 할 말이 없어진 순사는 책상을 탕 치며 입을 열었다.
 "아니 하지 말라면 안하면 되지, 무슨 말이 많으냐." 
 순사가 우격다짐으로 억누르려 했다.
 말이 안 통하는 무식한 순사와 말다툼을 해봐야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여긴 경보는 ‘알았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이후에도 일본인 순사는 비밀리에 경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가를 조사하곤 했다. 그렇다고 배우고 싶어 찾아오는 아이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척 하며 가르칠 것은 다 가르쳤다. 일본인 순사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경보를 괴롭히려고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쳐 숨겨주었기 때문에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필요 이상의 간섭을 한 일본인 순사의 태도가 오히려 순진한 섬사람들의 반일감정을 키웠을 뿐이었다. 
그 무렵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막내 고모로부터 일본을 구경할 마음이 있으면 건너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답답한 섬 생활과 일본인의 간섭에 싫증이 났던 경보는 곧 오사카로 건너갔다. 
 새로운 문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기회가 되면 신학문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건너간 일본이었지만, 마땅한 일자리도 얻기가 힘들었고 한국인에 대한 차별도 심했다. 거기다가 말도 통하지 않아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항상 시간을 아끼는 것을 명심하고 살았던 경보는 '내가 일본까지 와서 헛된 일로 시간을 버리느니 차라리 내 나라로 돌아가 아이들이나 가르치면서 큰 뜻을 펼칠 날을 기다리자' 하는 생각을 갖고 제주로 되돌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