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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 전기집 오! 한국의 달마여 9

9 박사 신부 머리를 깎다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1964년 10월 4일. 미국 뉴욕의 불교회관. 이날은 한국 불교의 미국 포교에 일대 전환점이 된 획기적인 날이다.

 

연일 지식인을 상대로 선을 강의하던 일붕의 진지한 태도와 求道者다운 엄숙함, 그리고 엄한 계율에 반한 미국인 네빌 워위크(Dr. Neville Warwich) 박사가 자청하여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날이기 때문이다.

 

네빌 워위크 박사는 20년간 가톨릭 신부로서 가톨릭의 성의聖衣인 로만 칼라를 입고 활동하다가 몇 년 전 神父職을 포기하고 티베트불교 淨土宗에 귀의했다가 일붕을 만나 한국 불교의 승려가 된 것이다.


그는 일붕의 상좌(上佐: 제자)가 되었는데, 일붕이 상좌에게 주로 내리던 돌림자인 道字를 따 도명道明이란 법명을 얻었다. 일붕은 참으로 흐뭇한 마음으로 도명의 건당식建幢式을 치렀다. 건당식이란 눈 밝은 큰스님과 눈 밝은 제자 사이에 법法을 고스란히 이어주고 이어받는 불교의 엄숙한 의식 중 하나이다.

 

건당식을 마침으로써 네빌 워위크씨는 도명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일붕은 벽 안의 지식인 상좌를 얻었으며, 한국 불교는 최초의 미국인 승려가 생겨난 것이다. 도명으로서는 가톨릭의 신부복인 로만 칼라 대신 승복을, 성서 대신 경전을, 가톨릭의 의식 대신 불교 의식을 택한 것이다.

 

도명은 일생일대의 중차대한 결단을 내린 동기에 대해 건당식을 마친 후 이렇게 말했다.

 


“... 종교는 국경이 없습니다. 저는 일붕스님 (일붕을 IL Pung으로 발음)의 철학 강의와 선을 몇 주간 관심 있게 지켜보고 한국 불교의 종지가 제일 우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붕스님의 깨끗한 생활, 넓고 깊은 지식, 구도자적인 인격 등을 흠모한 것도 결심을 앞당긴 이유가 되었습니다.

 

문제를 그래서 神이 있다고 가정, 현실의 모든 신의 섭리로 알고 또 신에 의존하려 했던 지의 신앙보다 육식을 금하고, 독신으로 세속에 대한 애착심과 집념을 잊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선을 깨달아 현실을 인과론에 대비시켜 복과 화禍등 만사가 자신의 마음가짐으로 이루어진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한국 불교의 핵심임을 알고 개종改宗을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많은 불자가 나오도록 포교에 열중하겠습니다…”


일붕의 첫 미국인 법제자인 道明은 곧 대한불교조계종 미국포교책임자로 임명되어 샌프란시스코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대중불교 강연에 앞장섰다. 

 

1932년 미국 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의학박사를 따고 가톨릭 神父가 되었다가 다시 승려로 개종한 특이한 경력의 인물답게 매사에 적극적이고 사리판단이 분명했다. 

 

 

미국인 승려 도명의 탄생은 현지는 물론 한국에서도 큰 뉴스거리가 되었다.

 

대표적인 불교지 대한불교는 도명의 건당식을 1면 머리기사로 장식하면서 일붕을 신라의 혜초 선사에 비유했다. 또 도명이 총무원장에게 보낸 편지와 그 편지에 대한 답장을 나란히 싣기도 했다.

 

金法龍 총무원장은 담화 형식을 가진 답장에서 이렇게 썼다.

 

“한국 불교를 해외에 선양해야 할 필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 같은 시기에 미국인 승려가 조계종의 계를 받고 귀의한 것은 영광이다. 가능한 범위에서 미주에 포교소를 설치하고 워위크씨의 포교사업에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

 

국내의 〈동아일보〉와 〈국제신보〉는 일붕과 도명의 사진을 크게 게재하고 미국의 불교 현황을 소개하였다.

 

일붕은 당대의 석학답게 미국에서 시야를 넓혀 캐나다와 남미의 불교까지 미리 파악하는 치밀성을 보였다. 그중 <동아일보> 1964년 11월 20일 자에 기고한 글에는 미국의 불교기관과 관련 언론사까지 조사한 노력이 생생히 담겨 있다. 

 

즉 불교기관으로서는 뉴욕 교육아카데미, 뉴욕 제일불교선원, 시카고 미국불교협회, 로스앤젤레스 동점선원, 미국불교사원, 샌프란시스코가, 샌프란시스코 미주불교회, 정선불도회, 불법정사, 미국동서불교학원, 진언종, 정토종, 연화종, 동본원사, 태국, 버마, 리랑카, 네팔, 중국계통의 사원 등이 있다는 것이다. 주요 불교 관계 언론으로는 미국불교, HORIN, ZEN NOTES, 金蓮, THEGOJI하와이불교, 風鐘등이 있다고 소개했다.

 

일붕이 각 대학의 자료를 파악해보고 놀란 그것은 자신이 도미하기 한 해 전 봄에 쓴 東洋佛敎文化史가 이미 캘리포니아대학 등에 비치되었을 정도로 광범위한 자료수집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저서가 미국의 대학도서관 발견된 기쁨보다 ‘이렇게 빨리 해외의 신간까지 입수하는구나’하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일붕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자 국내의 불교계가 하루빨리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하여 국내의 각 신문사에 미국의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원고지가 아닌 모조 백지에 빽빽하겠었어 신문사에 보낸 그 유명한 ‘미주통신’은 이런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히트하고 ‘사꾸라’와 ‘이거 되겠습니까’란 유행어가 나돌던 1964년 겨울 미국인 승려 도명이 쓴 (삼보 욕되게 하는 대처육식)이란 글은 그때까지 정면으로 다루기를 꺼리고 공개석상에서 토론하지 않았던 승려의 독신 즉 성性의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으로 유명하다. ‘승려의 독신에 대한 조계종 미국 포교소의 견해’란 부제가 붙은 이 글은 성행위와 수행의 관계를 매우 과학적인 설명으로 풀이하고 있다.

 

도명은 자신의 아버지가 프로이트란 심리학자에게 직접 들었다는 사례까지 들고 있다. 주요 부분을 발췌하여 살펴보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육욕이 고뇌의 근원이라고 하셨습니다. 보살지계는 이 육욕을 정복함에 있습니다.


미국은 불타께서 말씀하신 '고뇌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저는 사미계를 받은 신도들에게 여성 관계를 끊으라고 권합니다만 가장 큰 교세를 가진 일본 승려들이 결혼을 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행위가 고뇌의 근원이라고 확신할만한 과학과 의학의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배꼽 아래의 부분이 성행위 때문에 침해된다는 Gray의 <해부학>은 좋은 예입니다. 

 

운동선수가 경기가 진행되는 기간에 금욕을 실천하는 것도 유사한 예입니다. 프로이드 박사는 불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성행위가 고뇌의 근원이라는 불타와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성행위가 참선이나 염불 수행을 가로막는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고 믿습니다. 티베트불교나 일본 불교보다 한국의 불교가 우위를 점하는 것은 철저한 금욕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하여 수행 정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명한 지식인 道明의 귀의는 일붕의 예상대로 상당한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그가 샌프란시스코에 대한불교조계종 분원(포교당)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포교에 나서자 그곳의 英字紙와 中字紙는 활동 사항을 연일 보도하였으며 일반인의 관심이 나날이 높아졌다. 

 

미국인들은 박사학위까지 갖고 온갖 존경을 받던 신부가 무엇 때문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한국의 불교에 심취하고 머리까지 깎아 승려가 되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가졌다.

 

같은 해 12월 6일 오전 10시 샌프란시스코의 미국불교회에서 미국인 뭇셀(Mussel)씨가 道明의 상좌가 되어 한국의 승복을 입었다 일붕은 이날 그에게 십계를 설하고 사미계를 내렸다. 두 번째의 미국인 제자가 나온 것이다. 

 

뭇셀씨는 도명과 같은 독신자로 오래전부터 불교를 연구해 오다가 도명의 귀의에 감격하여 자신도 한국 승려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일붕은 인도 살르나드에서 1964년 11월29일부터 12월 4일 사이에 개최된 제7차 세계불교도대회에 컬럼비아대학 연구교수 자격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 무렵 일붕은 매일 밤 미국인을 대상으로 참선 지도와 경전연구를 병행하는 강행군을 했으며 일요일에는 정기적인 설교를 계속했다.

 

뉴욕 불교아카데미와 뉴욕 제1 선원의 좌선 지도와 설교도 동시에 수행했다.

 

 

이듬해 3월 5일에는 미국불교회관 관장인 LokTau선사가 1962년 홍콩을 방문했을 때 받아온 담허활불 사리 20여 과 중 5과를 일붕에게 증정했다.

 

이 사리는 후에 제주도 관음사 신도들의 요청으로 그곳에 봉안되었다.

 

이 사리는 소형 상아탑에 담겨 있으며 담허 활불에 관한 사적이 담긴 책자도 전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