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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 전기집 오! 한국의 달마여, 11

하와이를 뒤흔든 한국의 선혼 11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붕은 문화적인 배경과 종교의 성향상 극과 극을 달리는 미국인에게 동양, 특히 한국 고유의 선을 어떻게 이해시켰는가. 이 점은 ‘일붕 붐’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미국에 불교를 소개했던 사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각국이 미국에 진출한 교포를 상대로 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학문적인 차원에서 유럽처럼 지식인 위주로 연구되는 경우이다. 그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포교는 없었다고 보인다. 

 

일본인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쯔 같은 사람은 일본 불교의 학문적인 이식에 성공한 사례고 일붕을 미국에 초청했던 중국 승려 禪師 같은 사람은 교포를 상대로 포교하기 위해 도미 渡美한 상자에 해당한다.

 

 

‘일붕 붐’은 이 두 가지의 사례를 겸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미국인 엘리트를 상대로 파고든 전략이 성공한 탓에 일어난 것이다. 포교는 원칙적으로 밑으로부터 위로 향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기독교의 세계화를 성취한 고전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일붕은 현지 상황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여 그러한 포교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예외적인 전략, 즉,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포교에 진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일붕 붐'은 개인의 특성에서 나온 것임을 주시해야 한다. 

 

그 특성이란 일붕이 승려이자 학식이 뛰어난 학자였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지식이 필요할 때는 지식으로, 선이나 시범이 필요할 때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선과 독경을 보여줄 수 있었던 장점이 있었기에 ‘일붕 붐’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자유자재로 대응 능력을 갖춘 포교사가 미국 내에 거의 없었다.

 

 

그중 직접 선을 지도하는 내용은 장을 달리하여 살피기로 하고 각 대학에서 선을 강연한 초고를 살펴보기로 한다. 靈魂과 마음 이란 주제로 禪을 미국인들에게 이해시킨 일붕의 이글은 영어로 강의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재편성한 관계로 禪問答 특유의 멋과 박력이 많이 사라진 점이 아쉽다. 

 

그렇지만 동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백지상태의 미국인을 상대로 하여 어떻게 선이란 밑그림을 그려나갔는가 하는 이해의 포인트를 발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앞에 소개한 佛敎哲學의 四重 世界觀을 쉽게 재구성한 것이다. 이 글은 2백 자 원고지 약 3백 매 분량을 최소화한 것이다.

 

 

플로티노스에 의하면 영혼은 만물의 중심이며' 그것은 전체 속의 전체이자 모든 부분에서의 전체'라고 했다. 대승불교사상(화엄경)에서는 마음이 전우 주의 중심이며 '빗속의 一切, 一卽多’라고 하였다. 

 

有情, 無情의 일체는 서로 관련되며, 서로 침투되고, 서로 同一化 된다. 그러므로 네로 플로니 좀의 영혼과 대중불교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소승불교는 일반적으로 분석하는데 만족하여 종합하는 경향이 드문 반면 대승불교에서는 두 개의 상반된 개념을 동일화하는 경향으로 기울었다.

 

 

부처님은 법화경에서 一心法界를 자세히 설명한다. 법계는 원래 원소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일체 원소의 세계나 우주 보편의 원리와 동의어이다.

 

따라서 일심 법계의 全法界는 마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의 수백만 파도가 물거품이란 단지 하나의 물방울인 것과 같다. 우주 삼라만상은 하나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一心法界는 최고의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실재의 세계(소승적 불교관), 원리의 세계(대승적 불교관), 원리와 실재의 세계, 모든 실재가 완전한 조화 속에서 동일화되는 세계로 분류된다.…일체는 공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시간에 대해서도 공존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구별이 없이 통합되어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한다는 <화엄경>의 이론은 여섯 가지의 성격으로 나누어진다. 즉·보편성, 성격 그 자체로서의 특수성, 유사성, 만물의 관계로서의 다양성, 통합, 형성상태에 대한 분화이다.… 인지 씨는 이를 플로티노스 철학에서 이렇게 규정한다. “영혼 속에 모든 형이상학적 원리가 표현되어 있다. 

 

 

 

그것은 최상의 본질적 절대와 최하의 본질적 개체에 이르기까지 가치와 존재의 모든 단계에서 어느 정도로든지 관여하고 있다. 그것은 그 자체의 中心, 그 자체에 고유한 하나의 생명을 갖고 있으나 그것은 그 자체임을 중단 함이 없이 모든 방향으로 무한히 팽창할 수 있다.”….

 

불교 이론의 핵심은 상호 침투한 不似包括의 이론, 넓고 좁은 모든 것이 서로 아무런 장애 없이 親交 하는 完全型의 이론, 모든 요소가 상호 同一化되어 궁극적으로는 서로 구별될 수 없다는 이론, 하나의 실체를 창조하는데

期를 완성한다는 이론, 相互反射의 이론 등을 먼저 알아야만 그 골격을 짤 수 있다.

 


'전체 속의 전체이자 모든 부분에서의 전체'라는 플로티노스의 사상과 ‘多속의 이자 多속의 多’라는 화엄 사상은 비슷한 점이 많다. 대립하는 견해의 同一化에 쓰이는 예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물 전체가 파도로서 나타나는 것처럼 모든 실체는 전혀 하나이기 때문에 同一性이 가정된다....

 

둘째, 구리와 아연이 합하여 靑銅이라는 하나의 합금을 이루는 것처럼 두 개의 서로 다른 요인의 동일성이 가정된다. 이 형태의 동일성은 모든 불교 학파에서 많이 사용된다....

 

셋째, 한 대상의 앞과 뒤는 다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실재이기 때문에 동일성이 가정된다. 한집을 보는 각도에 따라 前後左右가 대립 되듯이 생명의 소멸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열반이다.…

 

現象(Pheonomenon) 속에서 本体(Noumenon)를 본다는 관념, 動 靜이라 하고 또는 정을 동이라고 보는 관념, 活動과 무활동, 一과 多, 전체와 하나, 특수와 일반, 常과 無常 등의 동일화는 플로티노스 사상과 화엄 사상에서 다 같이 다루는 문제이자 목표 지점인 것이다.

 

 

일붕이 화엄 사상을 대승 불교적인 측면에서 플로티노스의 사상과 비교하여 설명해 나가는 한편 禪의 골격을 이루는 이론적인 바탕을 논리정연하게 전개하자 각 대학에서는 대단한 호응이 일었다.

 

특히 펜실베이니아대학 심리학과장 마스탕카씨는 일붕과 대담하는 자리에서 ‘東洋에서 온 碩學’이란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워싱턴대학에서의 일정이 끝나갈 무렵 하와이대학 철학과 교수로 초빙된 일붕은 병(丙午)년 1월 말, 간단한 여장을 꾸려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섬 하와이로 건너갔다.

 

하와이는 우리 민족들이 사탕수수 노동자로 이민을 떠난 슬픈 사연이 있는 섬으로 이민 온 1세와 2세들이 상당수 있었다.

 

교포들은 순 한국식의 긴 장삼과 먹물 빛 승복을 입고 머리를 깎은 일붕이 고무신을 신고 나타나자 열광적인 환영을 했다. 중국과 일본에서 건너온 불교가 주도권을 잡고 하와이 사회에서 세력을 형성한 탓에 억눌려 살아온 교포들이 주립대학의 교수 신분으로 일붕이 방문하자 ‘우리도 이런 분이 있다’라는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일반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하와이는 불교가 매우 번성한 곳이다.

 

일붕이 방문한 66년 초 '비트 젠'(때리는 선)‘그퀘어 젠’(曲尺形의 禪杖)‘칵테일젠’(혼합하여 가르치는 선)과 같은 민간의 유행어가 나돌 정도였으니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붕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하와이에는 1887년蒼龍法師가 불교를 처음 퍼뜨렸는데, 1896년 하와이의 최대 재벌 포스터 女史가 스리랑카의 승려담라파라에 의해 불교에 귀의한 이래 급격한 신장세를 보였다고 한다.

 

포스터 여사는 후에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 ‘포스터병원'을 지어 빈민을 무료로 치료했으며 인도의 녹야원(석가의 최초 설법지)에 불교 대강당과 불교 농림학교를 지었다. 

 

또 인도의 마하보디 불교회관 건립에 이바지했고 자신의 별장을 하와이 호놀룰루의 식물원으로 기증했다.

 

그때 지은 스리랑카의 병원은 지금까지 무료 치료가 계속되고 있으며, 현재의 하와이 식물원이 그 당시에 기증한 포스터 女史의 별장이다. 불교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나타내는 좋은 예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1907년에는 하와이 불교청년회가 조직되었으며, 1930년에는 汎 太平洋佛敎大會가 캐나다, 美中 등이 참가한 가운데 열리기도 했다. 

 

이 대회에 한국은 都鎭鎬씨를 대표로 파견했는데 당대의 유명한 학자는 거의 다 참석하여 불교 대강연회를 치렀다고 한다. 일본의 숲속 木과 高楠이 참석했음은 물론이다. 

 

木은 컬럼비아대학에서 연구를 진행했으며 은 하와이대학을 중심으로 불교의 學理分析에 치중했다. 

 

그 때문에 하와이에는 불교가 낯설지 않은 종교가 되었으며 당시에 벌써 96개의 사원(법화종1, 眞宗49, 정토종17, 眞20, 화엄종1, 선종 1, 일련종3, 관음종1, 단화사1)이 있었다. 불교단체로는 청년회 부인회, 佛心會, 禪會 등이 조직되었는데 불교 야구대회와 불교 문화예술제를 매년 정기적으로 열고 있었다.

 

 

일붕을 초청한 하와이대학 부설 동서문화센터는 東西의 諸思想과 각종 문화를 연구하는 기관으로 아시아 문제를 연구하면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연구기관이었다. 

 

하와이대학은 미국의 도서관 중에서 가장 많은 불교 서적을 갖추고 있었으며 인도인과 미국인 각 한 명이 불교학을 강의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들이 대한불교 요의, 금강경 강의, 팔종강요해설, 법화요의 등을 가르치고 있었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이웃 나라 일본인 학자 高楠씨의 오랜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민족 감정을 떠나 학자적인 양심을 관철한 훌륭한 교수였다.

 

 

하와이대 아시아 연구과장 앤더슨 박사와 피츠 교수는 일붕이 갔던 해 7월 15일 학생들을 인솔하고 경주 사적을 연구하려고 한국을 찾았다. <불국사> 주지를 지낸 일붕에게 자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붕이 차후의 연구와 포교를 위해 미국 내에서 佛敎 學을 가르치는 대학을 조사해보니 의외로 많았다. 즉 위스콘신대 캘리포니아대, 시카고대, 워싱턴대, 스탠퍼드대, 신시내티대, 예일대, 펜실베이니아대, 미시간대, 프린스턴대, 하버드대, 오벨린대, 하와이대 등이었다. 

 

명문대에는 거의 불교학이 개강한 것이다. 아울러 불교를 다루는 학술지로는<필로조피 어브 이스트앤드 웨스트><저널어브렐리전><저널 어브 아메리칸 오리엔탈 소사이어티> 등이 수준 높은 논문을 게재했다.


자유중국의 한 사원에 숙소를 마련한 일붕은 대학에서 佛敎의 三學思想과 한국 불교의 전통>이란 주제로 강연을 계속하는 한편 포교의 방법으로 참선 지도를 함께했다. 

 

 

각종 신문이 처음으로 한국 승려가 왔다고 연일 인터뷰 기사를 실어 강연을 할 때마다 초만원을 이루었다. 하와이에서 온 약 한 달 후인 2월4일부터 7일 사이에 미국인을 대상으로 했던 좌선 회에서는 일붕의 참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좌선을 리드하는 동안 식사와 수면을 위한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두문불출하자 이를 지켜본 미국인들이 ‘이제껏 본 승려 중 최고’라면서 ‘넘버원’을 외치고 다녔다. 

 

이로 인해 일붕은 단시일 내에 하와이의 유명인사로 부각 되었다.

 

그 때문에 여기저기의 단체와 사찰에서 일붕을 모셔다 법회를 여는 것이 유행처럼 되기도 했다. 

 

 

하와이 불교총회의 초청 강연은 그런 경위로 성사된 것이다. 그때 하와이에서는 주로 가정집에서 좌선 법회를 많이 가졌다. 하와이대학 문화센터 책임자인 에이 캔(Aitken) 씨도 자택에다 선당(禪堂)을 지어놓고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법회를 열고 있었다. 

 

이 에이 캔 씨가 “다른 곳엔 다 가셨는데 저희 선당에게만 안 오시면 저의 체면이 말이 아니니 꼭 들러주십시오"라며 간청을 하여 3월2일에는 그곳에서 법회를 열었다. 

 

이보다 앞서 2월 17일에는 일본의 진종파 포교사들을 대상으로 <한국불교와 현대>란연제로 강연을 했고 20일에는 조동종본부에서 불교청년회를 상대로 <열반과 한국의 禪宗>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이어 3월 6일 오전 9시에는 하와이 전역에 중계되는 캐즈오오(Kzoo)市立방송을 통해 한국 불교의 특성을 알렸다. 일붕의 육성이 전파를 타고 나가자 판을 치던 일본 불교와는 달리 참신한 내용이 깃든 한국 불교를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수없이 걸려왔다. 

 

 

또한, Hor Chi 방송에서도 매주 3회씩 3주간 방송했고, 워싱턴에 있는 미국의 소리에서는 녹음테이프를 가져가 4월 10일 오후 10시 한국에서 직접 청취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방송은 국내외의 신선한 반응을 일으켰다. 66년 10월 14일 경주 <불국사> 석가탑 사리함에서 목판 인쇄된 다라니 경문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고, 방송이 나가기 얼마 전에는 밀고 밀리던 대처(帶妻) 측과 비구 측의 싸움을 전개하던 중 2월 27일 마침내 대처 측이 分宗을 선언한 시점이었다.

 

 

부처님을 따르겠다는 불제자들이 결코 아름답지 못한 이전투구를 벌여 뜻있는 사람들이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리게 만들고 있던 시기에 홀로 외국에 나가 한국 불교의 위상을 높이고 현지의 방송에 출연하여 고국을 자랑하는 일붕에게 찬사가 쏟아졌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쓰하와이의 교포들이 ‘이제야 살 맛이 난다.

 

우리에게도 조국이 있음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다'라고 하면서 일붕의 존재가치를 재평가했던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