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각종 기록과 연보 은하수 동쪽에서 빛나는 일붕 별 “우리「국제 항성 등록청」은 다음에 명한 별을 일붕 서경보에게 불하하여 별의 새로운 이름으로 지정하였음을 증명하는 바이다. 별의 이름 : 어퀼라 따라서 이 별은 이 순간부터 영원토록 스위스 천체관측소에 등록되며 미국 의회도서관에 위의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등록사무총장 : 셀라스터스 도웨이쓰 이는 서경보 법왕이 하늘의 별자리 하나를 사들여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권 등록을 마쳤음을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별 주인星主이 된 것이다. 별 이상한 얘기라고 생각하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면 어느 단체에서 주고 어떤 별을 '서경보 별’로 등록했는가? 마치 땅의 주인을 정하여 등기소에 등록하는 것처럼 하늘에 떠 있는 별자리에 주인을 정하여 불하 하고 등록까지 시키는 「국제항공등록청」은 어떤 단체인가. 미국과 캐나다 양국에 본부를 둔 이 단체는 세계적인 저명인사들을 회원으로 가입시켜 별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흥미로운 단체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순수민간단체의 성격으로 25년 전에 만든 이 단체에는 존경받을 만한 업적을 남긴 역사적인 인물들이 가입돼 있다. 별이 등록된다고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반인은 승려들의 法力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신통력神通力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일붕은 신통력이란 용어 자체가 불교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난 도교道敎적인 것이라는 전제하에, 신통력을 ①신족통(축지술), ②숙명통(과거를 맞춤), ③천안통·천이통(멀리 보고 잘 들음), ④타심통(독심술), ⑤불안통(부처의 경지) 등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승려는 설사 신통력이 있더라도 국사國事, 부모님, 자기 자신을 위하는 3가지의 경우 외에는 쓰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승려는 술객術客들이나 쓰는 신통력, 사주 감정, 관상 감정 등을 사용하면 본분에 어긋난다고 말합니다. 또한 술術은 신神을 불러 이용하므로 正道로써 사용하지 않고 사심邪心을 가지면 안 된다고 재강조하지요. 과거 현재 미래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며, 윤회는 이 순환의 원리로 설명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업善業과 공덕功德을 쌓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합니다. 신도들이 ‘현세에는 왜 선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잘 되느냐?'고 물으면 그는 미소를 지으며 윤회와 인과因果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일붕은 다시 태어나는 후생後生에 무엇으로 환생하고 싶으냐는 곤란한 질문에 ‘大道人이 되어 세계평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참선의 요지는 무엇입니까?”“대답이 너무 길어지므로 참선 요결, 參禪 要訣로 대신합니다. 이 참선요결은 수행과 그로 인한 증상, 결과, 상태를 여러모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학인學人은 수행 중에 큰 의심이 나타날 때는 앉아서는 서기를 잊어버리고 서서는 앉음을 잊어버린다.. 빵을 먹되 맛을 모르고 걸어 다녀도 걷는 그것을 모른다. 바보같이 오뚝하게 앉아서 일체를 잊어버려서 가슴 가운데 도무지 한 생각도 없게 되면 사면四面이 텅 비어서 탕탕하여 걸림이 없다. 이때 종래從來로 의심하던 공안公案만 들고 앉았으면 마치 만리萬里나 높은 히말라야의 산정의 얼음 속에 있는 것 같고 또는 허공 위에 서거나 높은 유리 다락에 앉은 그것 같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이 탈락脫落하여 편안함을 얻으면 가슴 속이 청량하여 비할 데가 없도다. 좌선이 만약 이런 경지에 이르면 이는 참선을 반半이나 이룬 것이니 이때에는 두려워하지도 말고, 알려고 하지도 말아라. 그런고로 기운을 번쩍 내어 퇴정하지 않으면 홀연히 맑은 얼음 산이 무너지는 것 같고 백옥으로 세운 누각이 무너짐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에 만족하여 만약에 부처와 조사祖師를 업신여기면 크게 그르쳐 마귀가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선(禪, Zen)이란 무엇입니까?”“선이란 진정한 이치를 사유思惟하고 생각을 고요히 하여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이르는 것인데, 이를 닦는 것을 흔히 참선參禪이라고 합니다. 참선은 자기 마음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깊이 탐구하여 깨닫는 노력으로 타율他律이 아닌 자율적인 수행,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올바른 진리의 세계에 참여시켜서 흔들림이 없고 티 없는 마음의 세계에서 자기의 본성을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이것을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깨달음이란 글자 그대로 자신의 본성을 파헤쳐 보았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심리학이라면, 마음을 주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선학禪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학을 심학心學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이란 불교 종지의 으뜸가는 선종(禪宗: 敎宗에 대비되는 宗)의 수행을 가르치는 것입니다.”“지금 미국에서 가르치시는 선은 부처님 시대부터 내려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직접 창안하신 것입니까?" “고다마 싯다르타가 살아 계셨을 때는 인도의 요가학파와 비슷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정定과 혜慧를 겸하게 했습니다. 이후 중국의 당唐, 송宋, 명明에서 많은 발전을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1968년, 일붕이 미국에 온 지 햇수로는 5년째, 법랍으로는 37세이고 세속의 나이로는 55세가 되던 해 무신戊申년. 국내에서는 김신조 일당 무장공비 31명 청와대 습격,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피납, 향토예비군 창설, 국민교육헌장 선포, 김종필 정계 은퇴 선언, 조지훈 사망, 제주도 비행장 국제공항 승격 등이 있었으며 국제적으로는 미 흑인 지도자 킹 목사 암살, 로버트 케네디상원인 대통령 후보 경쟁 중 피살, 재클린 오나시스와 결혼, 닉슨 미 37대 대통령 당선 등이 있던 해이다. 한미관계에서는 박정희와 존슨의 한미정상회담, 한미농산물협정 체결, 박정희 대통령 방미 등이 있었다. 장래가 촉망되던 케네디가 42세의 나이로 괴한의 저격으로 숨지기 한 달 전인 8월 초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市의 한 공증인의 서명이 첨부된 한 통의 기증서가 일붕 앞으로 배달되었다. “관계자에게. 우리 델 H. 휘셔, 로이스 휘셔, 그리고 스탠리 휘셔서는 존 왈 코트로부터 델 H. 휘셔라 사들인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 버그 근처 질레스에 위치한 수프 더스틴 장사에 있는 90에이커의 토지를 한국 불교 조계종의 서경 보스님께 기증한다. 이 토지는 서경 보스님이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붕이 하와이에서 일본 불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던 그해에는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고 한미행정협정의 조인 등 한미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험프리 부통령, 버거 국무성 차관보, 러스크 국무장관 등이 잇달아 방한했고 한미평화봉사단협정에 서명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전 내각 수반을 지낸 장면 씨의 사망(6월 4일), 김기수 선수 세계 주니어미들급 챔피언 획득(6월 25일),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7월 29일) 등의 기억할만한 일들이 있었다. 한국과 미국 간에 정부와 정부 또는 각료와 각료 사이에 맹방으로서의 유대를 다지고 있을 때 일붕은 학문과 인격, 그리고 수행에서 우러나온 참선을 갖고 조용히 미국 곳곳을 뒤흔들며 한국의 이미지 제고에 이바지하고 있었다. 다음 글은 일붕이 하와이대학에서 공개강연을 통해 발표한 <왜 불교를 배우는가>란 주제를 간추린 것이다. 불교는 많은 분야가 모여 성립되었으며 깊고 오묘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종교이기도 하지만 철학과 과학이기도 하다. 선을 포함한 불교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먼저 종교로서의 불교는 자비의 종교다. 자비의 목적은 현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붕은 문화적인 배경과 종교의 성향상 극과 극을 달리는 미국인에게 동양, 특히 한국 고유의 선을 어떻게 이해시켰는가. 이 점은 ‘일붕 붐’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미국에 불교를 소개했던 사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각국이 미국에 진출한 교포를 상대로 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학문적인 차원에서 유럽처럼 지식인 위주로 연구되는 경우이다. 그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포교는 없었다고 보인다. 일본인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쯔 같은 사람은 일본 불교의 학문적인 이식에 성공한 사례고 일붕을 미국에 초청했던 중국 승려 禪師 같은 사람은 교포를 상대로 포교하기 위해 도미 渡美한 상자에 해당한다. ‘일붕 붐’은 이 두 가지의 사례를 겸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미국인 엘리트를 상대로 파고든 전략이 성공한 탓에 일어난 것이다. 포교는 원칙적으로 밑으로부터 위로 향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기독교의 세계화를 성취한 고전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일붕은 현지 상황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여 그러한 포교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예외적인 전략, 즉,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포교에 진력했다. 하지만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1965년 3월 24일. 일붕은 컬럼비아대학을 떠나 캘리포니아대학 동양학과 교환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국내에서는 한일협정 체결과 월남 파병으로 데모가 그치질 않았고 하와이에서는 독재자 이승만이 숨진 을사(乙巳)년. 이 해에 일붕의 미국 포교는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캘리포니아대학은 그 당시 동양 언어학과장인 로저스 박사가 중심이 되어 해인사<팔만대장경>를 英韓 漢文의 3종으로 목록을 작성했고, 도서관에는 해인사 대장경 목판본 3천여 권을 소장하는 한편 대장경의 영인본과 한글본을 마련했을 정도로 불교연구에 대단한 관심을 쏟고 있었다. 일붕이 이 대학으로 옮긴 것은 연초에 道心이란 법명을 얻고 법제자가 된 완델(Wan Del)씨의 주선에 의한 것이었다. 완델씨는 캘리포니아에 사비를 들여 길을 닦아 완델路라고 붙였을 정도로 재력을 가진 미국인이었는데, 일붕의 제자가 된 이후부터는 禁酒, 禁煙, 1일 2식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참선을 하는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 그는 일붕을 흠모하여 자신의 별장에다<조계종 미국불교 선원>을 차리고, 일붕을 집에 모셔다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부인 완델 여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처는 어디에 계신가? 우리는 불교를 믿으면서도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산으로 절로 찾아다니면서 부처가 나타나서 은혜를 내려주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실상 부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불교의 경마다「衆生과 諸佛이 一理齊平하다」 「일체중생에 모두 佛性이 있다. '부처님 몸이 법계에 충만하다'하는 말씀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요 부처가 일체중생일 터인데, 나라고 부처가 못되란 법이 있는가? 물론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내가 나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절대 부처가 아니다. 또 일체 만물을 보아도 부처가 아닐 뿐 아니라 부처를 조금도 닮지 않았다. 왜 이런 엉터리 말이 나왔을까? 그렇다고 부처님 말씀을 엉터리라고 단정지을 수 는 없는 일인데, 나 또한 나를 잘못 보았다고 할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나를 잘못 보지 않은 이상 부처님 말씀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이 말은 이렇다. 나는 나의 입장에서 나를 본 것이고 부처님은 부처님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과 나 모두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또한 일붕은 세상을 경악케 했던 사이비종교의 발호에 대응하는 의미에서迷信과 正信이란 글을 일간지에 싣기도 했다. 사이비종교 단체들이 신들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害를 끼치던 때였기 때문에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글에서 일붕은 인륜과 도덕을 무시하고 해악을 끼치는 행위는 결코신, 그리고 정교와 사교의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성종교로서 세계적인 신앙으로 자리 잡은 종교라 할지라도 시대의 추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곤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점은 어느 종교도 마찬가지다. 즉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종교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열렬한 기독교 신앙을 가졌으면서도 당시의 목사나 선교사의 설교를 이렇게 비판했다. “금과옥조金科玉條같이 믿는 성경 가운데도 어느 시대이건 만인 모두가 받들어 행할 것이있고 너무도 맹랑하고 허황되어 돌아볼 가치가 없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어리석은 교인들은 시대에 맞는 심금을 울리는 교리는 찾으려 하지 않고 원시시대의 신화와 같은 예수의 기적만을 가지고 떠들고 선전하고 있으니 가증스럽고 딱 한 일이다. 기독교는 이런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내부적인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세계 문명의 새로운 중심지가 된 미국에 직접 뛰어들어 미국을 배우고 한국의 불교를 알리겠다는 각오로 이미 기반이 다져진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던 일붕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 보았다. 참으로 바쁘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한날한시도 헛되이 보낼 틈이 없이 늘 시간에 쫓기면서 보낸 지난 5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고,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었다. 가슴이 찢어지고 창자가 끊어진다는 애 별이고(別離苦)의 고통을 이겨내고 세속 떠나 부처님 품 안에 안긴 32년 전 일이 마치 어제처럼 선명하게 떠올랐고, 스승을 찾아 뭍으로 나와 지리산 〈화엄사>로 들어간 시절이 생생하게 재현되었다. <화엄사>에 계시던 진진응 대강백의 제자를 따라 전주<위봉사>로 가 유춘담 스님으로부터 일붕(一鵬)이란 법호(法號)를 받던 일, <위봉사>의 살림이 어렵게 되어 강원이 폐지되자 춘담스님이 마련해준 학비와 소개장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에 있던 <개운사 대원암>의 박한영 대강백의 수제자가 된 일,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선방의 강사 초청을 받고도 부족한 부분을 더 채우기 위해 김제 <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하처래 하처거(何處來 何處去). 우리 인간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 인간은 태어나기 이전의 곳도 모르고 죽음 그 이후의 곳도 알 수 없다. 부처님(佛陀)은 바로 이러한 삶의 이치를 한 조각 뜬구름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의 스러짐이라고 말했다. 나는 무엇일까. 누구나 예외 없이 겪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거치는 우리의 인생은 무엇일까. 왜 태어나고 죽을까. 삶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이고 죽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을 기쁨이라 이르고 무엇을 슬픔이라 이를까.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일까….… 그는 이러한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답을 얻으려 세정(世情)을 끊고 불제자가 되었고, 얻고자 하는 답에 가까이 가려 참선을 통한 수행에 몰두했다. 아니 지금도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한 수행을 계속하고 있다. 서기 1914년(불기2458년)음력 5월 9일 술시, 제주도 서귀포시 도순동 331번지에서 徐成賢·李卯生 부부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일붕은 어릴 때부터 총기가 넘쳐 할아버지 鳳辰 선생의 전폭적인 뒷받침을 받으며 당시 제주의 제일가는 문장이자 덕망가였던 외삼촌 선생께 한학을 배웠다. 민족정신이 투철했던 할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밤과 낮이 한국과는 정반대로 뒤바뀌는 외국에서 온갖 고생을 다 겪으시며 보조가풍(普照家風)을 선양하여 포교하시니, 동방의 제2 보조요, 서양의 제2달마올시다… 서 박사의 미국 포교로 인하여 미국인이 한국의 삼보 사찰인 <통도사, 通度寺> <해인사, 海印寺> <송광사, 松廣寺>를 친견할 풍조가 깊다는 문구를 읽고 화상의 의덕(義德)을 칭송하오며 결제 후에 만나 뵙길 원하나이다.” 이 글은 임자년(壬子年, 서기 1972년) 2월에<송광사> 구산(九山) 스님이 서경보 법왕님께 보낸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이 편지를 받았을 당시 법왕님께서는 제3차 미국 포교를 마치고 귀국하여 동국대 불교 대학장으로 계실 때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불행하게도 인물을 제대로 키우고 대접하는 역사를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릇된 사대주의에 젖어 인물마저 외국인은 높고 내국인은 낮다는 식의 평가를 했습니다. 그 때문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우리의 조상들이 빛을 보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국내에서는 홀대를 받다가 외국인이 인정하니까 뒤늦게야 연구에 착수하고 법석을 떠는 일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