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 전기집 오! 한국의 달마여, 12

밝은 달을 손안에 12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붕이 하와이에서 일본 불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던 그해에는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고 한미행정협정의 조인 등 한미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험프리 부통령, 버거 국무성 차관보, 러스크 국무장관 등이 잇달아 방한했고 한미평화봉사단협정에 서명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전 내각 수반을 지낸 장면 씨의 사망(6월 4일), 김기수 선수 세계 주니어미들급 챔피언 획득(6월 25일),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7월 29일) 등의 기억할만한 일들이 있었다.

 

 

한국과 미국 간에 정부와 정부 또는 각료와 각료 사이에 맹방으로서의 유대를 다지고 있을 때 일붕은 학문과 인격, 그리고 수행에서 우러나온 참선을 갖고 조용히 미국 곳곳을 뒤흔들며 한국의 이미지 제고에 이바지하고 있었다.

 

다음 글은 일붕이 하와이대학에서 공개강연을 통해 발표한 <왜 불교를 배우는가>란 주제를 간추린 것이다.

 

불교는 많은 분야가 모여 성립되었으며 깊고 오묘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종교이기도 하지만 철학과 과학이기도 하다. 선을 포함한 불교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먼저 종교로서의 불교는 자비의 종교다. 자비의 목적은 현세에서 고뇌하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을 위해 살생, 절도, 음주, 흡연, 금욕 등 약 1백50가지의 계율을 지키도록 한다.

 

각 종파에 따라서 의식과 기도의 방법이 차이를 보이나 추구하는 점은 같다.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갖는 주요한 개념적인 특징은 이런 것이다.

 

예를 든다면 예수는 신이 이 세상에 보냈다고 하지만 불타는 스스로가 이루었다고 하는 점 예수가 “나를 믿어라. 너 자신을 믿지 말라”고 한 반면 불타는 제자들에게 “너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라고 했던 점, 예수는 인간이 原罪에 얽매였다고 주장한 반면 불타는 이를 부인한 점 등이다.

 

이런 상반된 개념적인 특징이 있음에도 불교는 2천5백10여 연간(당시 기준) 동양과 서양에 걸쳐 존재해 왔다. 

 

 

과학으로서의 불교는 불타가 지구와 우주와의 관계에 관한 해명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할수록 불교가 지적한 우주적인 관찰은 놀랍게 적중하고 있다. 

 

철학적인 면은 여러 경전에 散在하고 있으며, 그 경전들은 각각 다른 철학을 내포하고 있으나 결국은 하나의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연계와 우주의 모든 것, 즉 力知意體…. 등이 하나…. 의 根本的으로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이 근본 인은 우주 자연의 佛性이다. 

 

불교 철학에 의하면 현세와 자기의 존재 밖에서 삼라만상을 낳는 그 무엇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이 세상은 個는 多 가운데 있고, 多는 個 가운데에 있다. 

 

 

전체 속의 個이고 個 가운데의 전체인 것이다. 우주를 더러운 그물에 비유한다면 그물의 코마다 몇천의 보석이 달려 서로 반사해서 빛남을 가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전체의 보석들은 하나의 보석들 때문에 반사되고 있으며 하나의 보석은 전체의 보석을 비추고 있다.

 

禪은 묵상默想과 명상冥想을 뜻한다. 만약 우리가 조용히 묵상하면 마음은 가라앉고 정신이 통일됨을 느낄 것이다. 이 방법을 계속하면 끝내는 대오 大悟의 경지에 이르나 대오는 말과 글로나 타낼 수 없다.

 

불타는 보리수 아래서 6년간 선을 실행하고 각자覺者가 되었다. 

 

이 대오의 마음이 곧 불타의 마음이며 불타의 마음은 보통 사람의 마음과 근본적으로 같다. 단지 눈을 뜨고 있는가, 감고 있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는 나 자신 속에 內在된 불성을 찾아내기 위해 불교를 배우는 것이다. 이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이 강연이 끝나자 청중들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리 불교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었던 사람은 그 명쾌한 논리에 반했고, 불교를 처음 알게 된 대다수 청중은 서양의 정신을 지배해온 기독교 사상과 개념에 경악한 것이다. 

 

청중들은 정신을 차리자 갖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때마다 일붕은 재미있고 적절한 예를 들어 설득하고 설명했다. 

그러나 절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쉽지 않았다. 워낙 뿌리 깊게 박힌 고정관념의 벽을 짧은 시간에 허물기가 어려웠다.

 

일붕은 시간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무리한 반박을 삼가는 대신 넉넉한 미소와 여유 있는 자세로 그들의 질문에 우회적으로 답변했다. 처음 대하는 선불교를 자꾸 캐묻는 집요한 청중에게는 이런 말로 결론을 대신에 했다.

 

“맑은 물을 손안에 잡아라. 그러면 달이 손안에 잡힐 것이요, 향기로운 꽃을 잡으면 향기가 네 온몸에 스밀 것이다.”

 

 

맑은 물이 곧 마음이고, 禪을 자아가 존재하는 세계라는 고차원적인 비유로 풀이한 것이다. 

 

상·하의 나라 하와이는 어디를 가도 바나나가 주렁주렁 열려 있고 야자수가 있는 낭만적인 풍경을 가졌다.

 

일 년 내내 여름만 계속되는 하와이에서 한국 불교를 성공적으로 알린 일붕은 계약 기간인 한 학기를 채우자 필라델피아의 주립 템플대학 종교학과로 옮겼다. 

 

동시에 7월부터 워싱턴 선우회의 3일간 수도, 뉴욕시의 1, 2차(총9일) 법회, 뉴저지주의 3일간의 좌 선회 등을 묵언 정좌 형식으로 진행했다.

 

템플대학은 종교인이 설립한 대학답게 각 단과대학에 교양과목으로 세계 각국의 종교강의를 개설하여 이 학점을 이수하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성적이 우수해도 학위를 주지 않는 독특한 일면을 갖고 있었다. 

 

일붕은 이 대학의 대학원 강의를 많이 맡았다. 대학원에서는 3개의 강좌를 맡았으며 대학에서는 11개 단과대학을 순회하였다. 

 

 

단순히 수치로는 대학의 강의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이나 질에서는 대학원이 한 단계 위의 교육했다.

대학원은 일반인에게도 강의를 개방한 까닭에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일붕이 <대승불교 사상사>를 강의할 때면 동료 교수, 철학자, 신부, 목사, 수녀, 불교학자들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들은 지식수준이 상당한 경지에 오르고 사회적인 명망을 갖춘 4~50대가 대부분이라 후에 일붕이 활동하는 데 음으로 양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학교의 정규 강의가 끝나면 불교에 관심을 가진 예비신도들에게 불교와 선을 가르치고자 선원을 열었다. 

 

필라델피아 선원에서는 일요일마다 특별좌선 회를 마련했고 (12월12일부터 아침 9시-오후 5시까지) 木日요일에는 좌선과 경전을 지도했다.

 

특히 템플대학의 종교학과 주임교수인 필립 박사는 일붕의 강연과 법회 때마다 한국 장삼과 가사를 입고 나와 분위기를 조성했다. 

 

 

또 일요일의 좌선 회는 종일 묵언을 하면서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꼼짝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1967년 1월 12일 자<조선일보>는 일붕의 미국 내 활동을 높게 사 '이국에 얼 심는 한국문화의 촉수'란 기획물에서 미술의 김병기, 음악의 이방숙, 복식의 김순자 등과 함께 뽑았다.

 

한국을 떠난 지 3년 반 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해외 인물로 선정된 것이다.

 

하루는 일붕에게 선을 배우던 가톨릭의 신부가 찾아와 禪法의 이론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일붕은 흔쾌히 수락하고 대화에 들어갔다. 잔뜩 준비해 온 듯 신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禪 공부는 무엇 때문에 합니까?"

 

“무심삼매(無心三昧)에 들어가기 위해서 합니다.”“사람이 무심히 되면 흙, 나무, 돌처럼 무생물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성경을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아이는 천당 문으로 들어가기 쉽지만, 사물을 판단하고 세상을 잘 아는 어른들은 욕심을 지녔기 때문에 천당엘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선의 진리를 잘 알았습니다.” 이번엔 일붕이 되물었다." 무엇을 잘 알았단 말씀입니까?"“나는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머리가 잘 돌아가 한번 들으면 아는 재간이 있지요.”

 

그러더니 다시 일붕에게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어떻게 아는 것이 잘 아는 그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배로 알아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뭐라고요! 배로 안다고요? 배로 어떻게 압니까? 배가 무슨 감각이 있고 지적 능력이 있습니까?"

 

“감각으로 않다는 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럼 두뇌로 생각하는 감각을 떠나서 어떻게 사물을 판단하게 됩니까?”

 

“그건 말장난이나 이론을 떠나서 철저히 실행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물에 대해서도 귀로 만들어 느껴 아는 것이 있고 피부로 심각하게 느껴서 깨달아 아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배가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자세를 바로 하여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크게 숨을 쉬고 기운을 아랫배의 단전에 모아 넣고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니고 자연과 내가 결코 둘이 아닌 경지에 이르고 보면 이 세상에 유형무형 또는 천태만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모두 나의 뱃속에 들어와서 능히 소화되어야만 부처도 제대로 알고 철학의 생명인 진리란 본체를 제대로 깨쳐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깊게 듣던 신부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개종 改宗을 심각하게 고려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