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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 전기집 오! 한국의 달마여 13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13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1967년 일붕이 미국에 뿌린 불교의 씨앗이 나날이 자라는 것이 보인 한 해였다. 박정희 씨의 6대 대통령 당선, 동백림사건, 문무대왕릉 발견, 중동전발발, 정일권 총리 방미 등이 있던 정미(丁未)년이었다.

 

일붕은 소속된 학교를 벗어나 보다 넓은 범위의 대외활동을 전개했다.

 

 

 2월 23일 로스만 대학에서 종교지도자(가톨릭, 불교, 이슬람교) 대상의<禪佛敎의 救世主義> 강연, 2월 6일과 16일의 필라델피아 라디오방송(禪을 소개), 2월 24일 국제회관의<선의 근본정신> 공개강연, 3월 14일과 16일 췌스트낫 여자대학의<불교의 역사적 발전>, 4월 4일과 6일의<불교의 인생관과 한국의 선> 강의, 드렛셀공대의 초청강연<한국고승의 열반과 사리><소승불교와 대승불교> 강좌, 법률가 및 종교심리학회 강연, 3월 12일의 필라델피아, 뉴욕, 뉴저지 선원 합동 좌 선회, 7월 뉴저지주 리에 촌의 3일간 특별하기 선회, 8월 뉴욕주 택시도 공원 지대와 펌프킨 지대의 특별 좌 선회, 5월 10일 뉴저지주 아틀랜틱 캄유니대학 초청 <한국불교는 어떤 불교인가> 강연, 4월 20일 펜실베이니아대학 종교학과 초청 韓中日 선불교의 同異點> 주제 발표, 4월 27일 필라델피아 앨범 저 대학 초청 <당신의 마음 안에 부처님이 계신다> 강연….… 등이 연이었다. 

 

 

 

일붕의 활동이 왕성하게 펼쳐지자 5월 5일 자<선데이 타임스>지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배려를 했다. 자존심이 강한<선데이 타임스>가? 이처럼 호의를 보인 일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 속했다.

 

제자들은 일붕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방안으로 출판물을 통한 홍보에 나서기로 뜻을 모으고 실무적인 작업을 진행했다. 필라델피아에 있던 조계종 계통의 화랑선도회 惠光禪師, 미국 승가던 西光法師, 禪友硏究會法仁 등이 주축이 되었다. 

 

이 힘쓴<韓國古代 史話>와 <오색주, Five Colour Jewel> R.K.파 거사(聖仁)가 협력한<선과 요가의 지침> 등은 이런 배경을 갖고 발간되었다. 이 책들은 미국 전역에 배포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주미 조계종 선원의 해리슨 여사는 일붕의<선과인과경>이란 팸플릿을 대량으로 제작하여 일반인에게 나누어 주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불교 지인<金蓮>은 6월부터 11월까지 일붕의<한국불교>를 연재하고 있었는데, 그 글이 끝나는 대로<한국불교와 석굴암>를 계속하여 싣기로 했다는 통보를 보냈다.

 

동분서주한 일붕의 맹활약 때문에 한국불교는 차츰 자리를 잡아가면서 필라델피아 선원은 신도들의 요청으로 分院으로 6월 1일 禪 연구연합회와 조계종 선원을 개설하고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들에게 선을 배울 기회를 부여했다. 이 무렵 캘리포니아의 ‘신학과 철학연합회'란 단체에서 한국불교의 특징에 관한 강연을 요청해 왔다. 

 

 

일붕은 자신이 쓴 <한국불교사>와 불교 소설 <오색주>를 교재로 하여 강의를 하라고 일러주죠 밀로스(悟光)를 파견했다. 여러 제자가 앞다투어 포교에 나서는 것을 본루의 승려(惠光)는 일붕에게 수계를 받은 후 화엄 철학에 매료되어 깊은 연구를 한 경험을 살려 일붕의 <화엄 학성교>와 <禪敎集>의 출간을 서둘렀다. 

 

이 해에 일붕이 얻은 큰 기쁨 가운데 하나는 가톨릭 신부인 네 팩 박사가 천주교와 불교의 친선을 상의하고자 일붕을 찾아온 것이다. 두 종교지도자는 실로 허심탄회하게 양 종교가 갖는 특성과 장점을 서로 인정하고 앞으로 가까워지도록 노력하자는 약속을 했다. 

 

 

시기하고 배척하기가 쉬운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이 벽을 허물고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일붕과 네 팩 박사는 서로 선원과 성당을 방문하여 기념사진을 찍고 어려움을 공동으로 극복하자는 사이로 발전했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필라델피아 드렛셀공대에서 일붕의 강의를 들었던 종교심리학회의 프레더릭 박사가 일붕의 학문적인 성과를 치하하면서 자신이 이끌고 있던 가정 설교회에 초청한 일이다. 

 

일붕은 7월 16일 프레더릭 박사의 자택을 방문하여 성심성의껏 참선을 지도했다. 프레더릭 박사는 일붕의 호의에 보답하는 뜻에서 그가 판사로 겸직하고 있는 법원을 비롯한 법률가 집단의 모임에 여러 차례 초빙했다. 자주 만나면서 허물없는 사이가 되자 프레더릭 박사는 왜 禪이 Zen으로 알려지게 되었느냐는 물음을 진지하게 던졌다. 

일붕은 불교 용어의 어원 語源을 들어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스즈키 다이세쓰란 일본인 학자의 영향까지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었다. 어설프게 둘러대 말했다간 신뢰 관계가 금이 갈 뿐만 아니라 지식인 사이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최대의 실례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실을 그대로 인정해야만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 것과 불교 성직자라는 신분을 망각할 수 없던 이유가 가장 컸다. 

 

 

박사님의 지적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禪이란 한역漢譯의 선나 禪那란 용어의 준말입니다. 

 

이는 산스크리트어로는 다냐, 팔리어로는 젠나, 일본말로는 젠나, 한국에서는 선(선나)으로 각각 쓰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원음에 충실한 것은 없습니다. 현재 Zen으로 쓰이는 것은 일본식 발음인 젠 나를 줄인 것입니다.

 

일본인이 불교를 미국에 먼저 전파하고 학문적인 연구를 먼저 진행한 탓에 그들의 발음을 줄인 Zen이 굳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한국식 발음을 그대로 옮겨 비교적 가까운 Sun(태양)이나 Son(아들)으로 옮기면 또다시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겠지요. 이것이 바로 저의 고민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저희가 세운 선원도 Zen Center란 간판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다른 표기를 했을 때 야기될 혼란과 일반인의 몰이해를 고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최선이 아님을 잘 알고 있지요.

 

용어상의 문제는 비단 Zen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차츰 바로 잡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고자 합니다.…”너무 솔직한 말에 오히려 프레더릭 박사가 민망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붕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정말 훌륭한 학자이자 멋진 한국인이다.”는 말을 가는 곳마다 하였다.

 

넓고 넓은 미국이 좁다 하고 뛰는 가운데 해가 저물어 갔다. 일붕은 이미 꿈꾸어 온 박사학위 취득준비를 구상하면서 지나온 미국 생활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번쯤 한국을 다녀오고도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어렵게 일으킨 한국불교의 붐이 식을 것 같고, 무엇보다 박사학위를 따는 시기가 무기한 연기될 것이 뻔했다.

 

 

조용히 앉아 눈을 감았다. 고향 제주의 정감 어린 그림이 아스라이 펼쳐졌고, 구도를 위해 스승을 찾던 시절이 떠올랐다. 온갖 상념들이 時空을 뛰어넘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미국에서의 첫 생활은 놀라움과 고됨의 연속이었다.

 

누구 하나 한국의 불교를 이해하지 못했다. 본국에서의 지원은 없었고, 부탁을 전하는 애절한 사연은 늘 허공에서 부서졌고,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변했다. 풍습이 다른 문제야 이미 유럽 생활을 통해 익히고 각오한 바가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때로는 못 견디게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것도 못 이겨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냐’는 자책으로 이겨왔다.

 

 

생각에 따라 미소가 나타나기도 하고 씁쓸한 웃음이 입가에 걸리기도 했다. 결론은 석가모니의 말씀대로 苦海였다. 영원한 기쁨도 영원한 슬픔도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도 전해 왔다.

 

시간이 흐르자 미국 땅에 내놓을만한 한국의 상표는 선이 최고라는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다른 생각은 찰나에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의미가 덜한 것들이었지만 선에 대한 마음은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흘러가는 구름인 줄 알았더니 또 다른 구름이 밀려왔다.

 

생각이 오래 머물자 미국인들에게 선을 지도하며 생긴 재미있던 일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지난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보다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지도법을 찾아야 한다는 결심으로 연결되었다.

 

묵언 수행하는 자세로 반쯤 눈을 뜬 일붕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번거롭다고 느낀 세속사가 기쁨으로 전환되는 징조였다. 

 

 

일붕의 머릿속엔 파도처럼 밀려온 잡사가 썰물처럼 빠져 가고 오직 선을 어떻게 미국 땅에 뿌리 깊게 심을 것인가 하는 궁리만이 가득 찼다. 일붕에게 있어 선은 곧 한국불교의 상징이요, 한국불교의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교를 가르치면서 배우려고 미국 땅에 왔더라도 부처님의 제자 된 도리로서 예로부터 내려오던 불제자의 3대 목표인 제자양성, 경전 번역, 포교를 게을리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언제,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나건 이 3대 목표는 불제자로서 평생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존재의 목적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