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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 전기집 오! 한국의 달마여 14

마음은 선법, 말은 교법 14.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1968년, 일붕이 미국에 온 지 햇수로는 5년째, 법랍으로는 37세이고 세속의 나이로는 55세가 되던 해 무신戊申년. 국내에서는 김신조 일당 무장공비 31명 청와대 습격,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피납, 향토예비군 창설, 국민교육헌장 선포, 김종필 정계 은퇴 선언, 조지훈 사망, 제주도 비행장 국제공항 승격 등이 있었으며 국제적으로는 미 흑인 지도자 킹 목사 암살, 로버트 케네디상원인 대통령 후보 경쟁 중 피살, 재클린 오나시스와 결혼, 닉슨 미 37대 대통령 당선 등이 있던 해이다. 

 

 

한미관계에서는 박정희와 존슨의 한미정상회담, 한미농산물협정 체결, 박정희 대통령 방미 등이 있었다.

 

장래가 촉망되던 케네디가 42세의 나이로 괴한의 저격으로 숨지기 한 달 전인 8월 초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市의 한 공증인의 서명이 첨부된 한 통의 기증서가 일붕 앞으로 배달되었다.

 

 

“관계자에게.
우리 델 H. 휘셔, 로이스 휘셔, 그리고 스탠리 휘셔서는 존 왈 코트로부터 델 H. 휘셔라 사들인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 버그 근처 질레스에 위치한 수프 더스틴 장사에 있는 90에이커의 토지를 한국 불교 조계종의 서경 보스님께 기증한다.

 

이 토지는 서경 보스님이나 한국에서 오는 그의 제자의 지도로 조계종 선원을 설립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상술한 90에이커의 토지는 스탠리 휘셔라 서경보스님께 비구승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 그가 상속받게 될 것이다.”

 

이 기증서를 눈앞에 둔 일붕은 정말 ‘마음이 통하니 하늘이 열리는’ 환희를 느꼈다. 법열(法悅)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포교 또한 큰 기쁨이 아니겠는가.? 의외의 큰 시주를 받은 일붕은 이곳을 어떻게 가꾸고 어떤 용도로 쓸 것인가를 궁리하느라고 신나는 계획을 세웠다.

 

 

스탠리 휘셔씨가 일붕을 흠모하여 약 11만 평을 기꺼이 내놓자 그의 친구 헨리 씨도 자기 소유의 땅 11만 평을 또다시 기증하면서 “좋은 목적으로 쓰이길 기대한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기증자의 마음을 담아야 했다. 

 

원래 스탠리 휘셔씨와 헨리 씨는 일붕이 세워 운영하던 선원에서 참선을 배우던 제자였는데, 신도가 자꾸 늘어나는데도 선원이 비좁아 수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보다가 땅을 기증했다고 한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일붕은 이곳에 世界中央禪院(World Zen Center)를 세워 불교선원, 불교대학, 팔만대장경 역경원 등의 부속기관을 운영하기로 했다. 또 건축양식은 한국의 전통적인 사찰인 불국사를 본떠 짓기로 했다.

세계중앙선원이 위치한 곳은 버지니아주 서부로서 블랙 버그 市의 서쪽 15마일, 로안로크市의 50마일 지점인데 워싱턴과 뉴욕의 중간에 있다. 

 

 

동쪽 3마일 떨어진 지점에는 뉴 리버란 맑은 강이 있어 소풍객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수프 더스틴 山 남쪽 기슭에는 천연석굴이 있다. 이 천연석굴 앞에서는 큰 샘물이 솟아 강을 향해 급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산에는 호두나무, 전나무, 단풍나무, 사과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공기가 매우 맑다. 15년 전에는 과수원과 농장이 있던 터라 개발에도 도움이 되었다. 

 

버지니아주 산림법은 사유림 私有林에 한해서는 산림소유자가 관청의 허가 없이 무제한 벌채할 수 있으므로 한국식 목조사원을 건축하는데 드는 목재 걱정이 해결된다. 이 산에는 꾀꼬리, 딱따구리, 노루, 사슴, 토끼와 같은 새와 짐승이 아주 많아 그야말로 자연과 인간과 종교가 한데 어울릴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다.

 

후에 일붕은 세계중앙선원이 건립되자 이 산에서는 일체의 사냥을 금지했다. 불타의 자비 사상인 불살생 不殺生의 계 戒를 모범으로 보인 것이다. 그러자 새와 짐승들이 사람을 피하지 않고 곁에 와서 놀기도 하고 먹이를 달라는 몸짓을 하기도 했다.

 

 

수프 더스틘 스탠리 휘셔 씨와 헨리 씨에게 희사받기 전 일붕은 좌선을 하다가 문수보살의 현몽을 받았다. 붉은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난 것이다.


“스님, 저와 함께 소풍을 나가지 않으시렵니까?”
“소풍, 좋기는 좋다만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스님, 더없이 멋진 좋은 산천이 있으니 저를 따라만 오시면 됩니다.”

 

일붕은 동자승을 따라 걸어가면서 ‘참 멀리도 가는구나'란 생각을 했다. 무엇인가를 생각하느라고 그저 발만 옮기는데, 동자승이 문득 말을 걸어왔다.

 

“스님, 다 왔습니다. 어떻습니까?

정말 기가 막히게 멋진 산수지요? 이곳에 절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고 참선 공부를 하는 대 도량을 닦으면 어떻겠습니까?"

“터야 매우 좋다만 여기가 내 땅이 아니거늘 내가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말이냐?”

“불사하는데 내 터와 남의 터의 구별이 왜 필요합니까?

스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되는 거지요."

 


일붕이 졸다가 깨어나니 꿈이었다.

이런 꿈을 꾸고 난 다음 스탠리 휘셔 씨가 선원 부지로 땅을 기증하겠다고 하며 가보자고 해서 따라가 보았더니 꿈에 본 터와 똑같았다.

 

수프 더스틴 山을 본 순간 일붕은 문수보살의 가피력에 감탄했다. 일붕의 입에서는 저절로 “나무문수보살”이 염송 되었고 두 손은 합장 자세를 취했다.

 

미국인이 자기들이 신봉하는 기독교가 아닌 낯선 동양의 종교인 불교 사업에 쓰라고 자진하여 땅을 기증한 일은 그때까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해에 일붕은 한국의 선불교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영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전에도 일부 경전을 영문으로 간행했지만, 이 해에는 본격적인 경전 번역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것과는 차이를 보였다.

 

월낫트크리크市에 사는 聖山이 개인재산을 털어 추진한 서산대사의 저술인 <선가귀감, 禪家龜鑑>은‘Text for Zen Buddhism'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이 <선가귀감>은 선검일치(禪劒一致)의 사상을 높여 승군을 창설, 자신이 승군 대장이 되어 국난을 타개했고 선교병수주의禪敎並修主義를 창도하여 선교양종禪敎兩宗을 통합시킨 서산西山대사가 불교의 선가에서 본보기로 삼아야 하는 말씀들을 모아 간단한 주해 註解과 송訟과 평評을 첨가한 책으로 1579년 원문인 한문 판각본으로 나온 것이다. 그 뒤 여러 곳에서 한문본과 언해본 諺解 本(한글본)이 간행되었다. 

 

편저자인 서산대사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위앙종僞仰宗, 범안종法眼宗등 선가 5종의 특징을 구별하여 설명하면서 임제종지의 탁월함을 쓰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화원花園대학에서 대학 교재로 쓰고 있으며 일붕도 유학시절<선가귀감>을 한 과목으로 배운 바 있다.

 

이 책을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일붕의 제자 돈 길버트 씨가 자금을 대고 일붕이 번역하여 출간하게 된 의미는 경經의 영문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신호라는 점에 있다.

 

<선가귀감>이 출판됨으로써 비로소 한국 불교는 책다운 책을 가지게 된 것이다.

 

구미 불교계와 학자들에게 좋은 자료라는 평판이 자자했던 <선가 귀감>의 요지를 간추린다..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이 선지禪旨가 되고 부처님이 일생 통하여 설교하신 말씀이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세 곳은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자리를 나누어 앉으신 곳,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여러 청중에게 말없이 꽃가지를 들어 보이신 곳, 사라수沙羅樹나무 아래서 두 발을 밖으로 내보이신 곳이다. 

 

이른바 가섭존자(부처님의 십대 제자중의 한사람으로 음을 따서 마하가섭, 의역하여 대음 광대 구 씨라고도 한다. 

 

인도 왕사성의 장자였던 바라문니 그루다. 칼파의 아들로서 비파라 나무 아래서 출생하여 비팔라야나라고도 하는데 일찍이 비야리 성의 바라문 출신 여자와 혼인하였으나 조실부모로 세속적인 욕망의 무상함을 깨달아 부부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8일 만에 바른 지혜의 경지를 얻어 아라한과 阿羅漢果를 얻었으며 항상 엄격한 계율로 교단의 웃어른 노릇을 했다) 가 선의 등불을 받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선지의 근원이 이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인천교人天敎, 소승교小乘敎, 대승교大乘敎, 돈교頓敎, 원교圓敎의 5교로서 아난존자(10대 제자 중 다문제일多聞第一로 유명하며 아난, 무염, 환희, 경희라고도 번역한다.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며 제바달다의 친동생인데 카필라성의 석가종족이다)가 교의 바다를 널리 흐르게 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교의 근원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선과 교의 근원은 부처님이요,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이다. 말이 없는 데서 출발하여 다시 말이 없는 데로 돌아가는 것은 禪이요, 말이 있는 데서 말이 없는 데로 들어가는 것은 敎라고 한다. 마음은 禪法이요, 말은 敎法이다. 불법의 본의는 본래 선교가 한 맛이나 차별적으로 논할 때는 그 뜻이 하늘과 땅같이 떨어진다. (서산대사는 선교의 정의를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선시불심禪是佛心,(선이 곧 불심)이요, 교시별어敎是別語,(교는 곧 또 다른 말씀)이다.

 

둘째, 실제 진리파악을 제대로 못 하는 선지禪旨는 교의 흔적일 뿐이며 실제로 마음을 얻는 자는 비록 교문만이 아니라 비록 세속의 헛된 수작까지도 가장 앞선 교외별전敎外別傳,(교 바깥의 다른 가르침)으로서 선지인 것이다. 

 

셋째, 선은 청풍명월 속에 아무 일 없이 앉아 분별이 없는 경계를 뜻대로 오가는 천지간의 한도인閑道人이며 교문의 18만 4천 법문은 一心에 귀착하나 일념회광一念廻光의 묘경은 자기의 심성을 뚫어보는 견성일의見性一義에 귀결하는 것이다.

 

넷째, 경을 설하는 교문은 여러 가지 법을 분별하여 설명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공空을 설파하여 유상의 집착을 버리게 하기 위한 것이며, 조사선祖師禪의 목적은 언어와 문자에 잡힌 분별을 끊고 자기의 영광靈光이 천지에 비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그 목적이 다르다.

 

다섯째, 조사의 격외선지格外禪旨,(형식을 초월한 선지)는 활줄과 같아서 직선으로, 모든 차별을 여의고 일체의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는 일미一味에로 직입直入하게 하는 것이다.(訟과 評에 대한 몇 귀절을 직접 살펴보자)'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맑고 신령하여 난 것도 아니고 죽음도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주해: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옛 부처 나기 전에 뚜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 손가.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묻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너희들이 알겠느냐?”고 묻자 신회神會선사가 “모든 근본이요, 신회의 부처 성품입니다”라고 대답하여 후계가 되었다. 

희양선사가 숭산에 와서 육조를 뵙자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라는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혔다가 8년 만에 깨치고 나서 “가령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라고 답하여 육조의 적자가 되었다.

 

부처님의 삼교의 성인들이 모두 이 말에서 나왔느니라.

뉘라서 말할 텐가 눈썹이 빠질라.

 

부처님은 석가여래고 조사는 가섭존자다. 세상에 나오심은 중생을 건지심을 말함이다.

 

그러나 한 물건으로써 따져본다면 사람마다 본래 면목이 저절로 뚜렷이 이루어졌거늘 어찌 남이 연지 찍고 분 발라 주기를 기다리랴. 그러므로 부처님이 중생을 건지신다는 것은 공연한 것이다.<허공장경>에서 “문자와 부처님의 말씀까지도 마의 업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이것은 본 분을 바로 들어 보일 때에는 부처님이나 조사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말함이다.

 

하늘 땅이 빛을 잃고 해와 달도 어둡구나.

법이란 한 물건이요, 사람이란 중생이다.

 

 

법에는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을 따르는 두 가지 이치가 있고 사람에게는 단번에 깨치는 이와 오래 닦아야 하는 돈오점수頓悟漸修 두 가지 기틀이 있으므로 문자나 말로써 가르치는 여러 방편이 없을 수 없다. 이것이 옛말에 이르는 “공사에는 바늘 끝만큼이라도 용서할 수 없으나 사정私情으로는 오고 가고 한다.”라는 것이다.

 

중생이 아무리 본래부터 그 생김새가 뚜렷이 형성되었지만 겉과 달리 내부에는 지혜의 눈이 없어서 윤회를 달게 받는 것이다. 만약 세상에서 뛰어난 금 칼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무명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주랴. 苦海를 건너 즐거운 저 언덕에 오르는 것은 모두 부처님의 은혜 때문이다. 

 

이것은 새로 닦는 이치를 널리 들어서 부처님과 조사들의 깊은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을 말함이다. 오랜 가뭄에 단비 내리고 천리 타향에서 친구 만났네. 마음은 선법이요, 말은 교법임을 나타낸 것이다.(이밖에도 서산대사는 선은 주主가 되고 교는 종從이 된다고 보아 선이 교보다 우위에 놓여있다는 취지의 글을 싣고 있다.)

 

 

이<선가귀감>에 이어 일붕은 보조국사의 법어인〈진심직설, 眞心直說〉〈수심결, 修心訣〉〈정혜결사문, 定慧結社文〉〈원돈성불론, 圓頓成佛論〉 등을 번역하여 영문으로 옮겼고 나옹대사, 진각대사, 태고국사 법어 등도 번역했다. 

 

이해 12월에는 50년대 말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에서 복무한 적이 있는 템플대 출신 聖禪(John Buksbazen)에게 계를 내리고 필라델피아 선원원장으로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