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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 전기집 오! 한국의 달마여 16

한국화가 국제화의 지름길 16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붕의 박사학위 취득은 국내외의 매스컴에 뉴스 아닌 뉴스를 제공했다. 

 

구미에서는 논문의 특색에 초점을 맞추었고 국내에서는 박사학위 취득에 비중을 실은 차이점만 있었다.

 

템플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전 일붕에게는 그해 1월 20일 제3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1월부터 조계종 선원에서 정기간행물로 발간한 '불교지’를 닉슨 대통령의 취임 축하 선물로 보낸 데 대한 답례 형식으로 보낸 것이다.

 

“본인은 올해 벽두에 들어서서 미국의 새로운 지도를 마련하는 책임을 지면서 귀하께서 보내주신 정성 어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귀하께서 주장하고 계신 사상과 베풀어주신 법시 法施는 본인에게 힘과 감명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1969년 2월 27일 리차드 닉슨"

 

 

다른 생각과 평가가 남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백악관이 인정하는 신분이 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붕의 대외적인 활동이 그만큼 힘을 얻은 것이다.

 

이 해에 일붕은 聖龍(요크 헌)과 聖山(로버트 킹)에게 계를 내려 법제자로 삼았다. 이들은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불교 포교단을 결성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일붕이 철학박사를 얻고 필립씨의 보증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후 제자들과 협력하여 포교에 나서자 미국의 매스컴은 그를 ‘한국의 스즈키'라는 별칭을 붙여 보도했다. Oakdale, Daily News, Temple News, The Sunday Times, Hinted Chinese Press. The Rambler, Fournier. News, The Hawaii Times, North Penn Chat 紙 등이 일붕의 사상과 포교실적을 연일 기사화한 것이다. 

 

 

 

그 신문들은 한결같이 일붕의 해외 활동과 뛰어난 수행을 찬탄하고 있다. 아울러 엔브로이드街 2016번지에서 열리는 명상(선)강좌를 다루었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연일 늘어났다.

 

B 특히 2월 24일 필라델피아 T.V에서 일붕의 민족정신과 선을 방영했을 때 일붕이 입고 나간 한국의 승복을 본 미국인들은 설명할 수 없는 경건함을 느꼈다고 했다.

 

일붕은 미국에 64년 건너가서 그날까지 머리를 빡빡 깎고 회색 장삼과 누런 가사를 입고 고무신을 신은 복장을 고집했다. 만약 한복을 입을 경우에는 회색 두루마기를 입고 고무신에 육환장六環杖을 짚고 다녔다.

 

 

유럽에서 생활하는 동안 몸에 잘 어울리지 않는 양복보다 한복이나 승복이 편할 뿐만 아니라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므로 포교에 유리하다는 그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윗부분은 둥글고 아랫부분은 네모꼴을 한 전통적인 방포원정 方袍圓頂을 고집했다.

 

이렇게 순 한국식으로 차리고 다니다 보니 이런 모습을 처음 접하게 된 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접근을 했고, 일반인의 관심이 쏠리자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했다. 

 

신문과 방송이 일붕을 앞다투어 소개하자 한국의 불교는 당연히 그 위상을 높였다.

 

 

기자들 만나는 것을 포교라고 생각하여 다소 귀찮음에도 인터뷰 요청을 일일이 들어주었더니 조금이라도 근성이 있는 기자들은 다른 방송이나 신문과는 다른 내용을 캐내려고 애를 썼다.

 

일붕은 이런 언론의 심리를 역이용하여 원론적인 교리와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를 적절히 배합했다.

 

어느 날 한 방송국의 기자가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졌다. 예의와 격식을 차리다가는 일붕의 화술에 말려 정작 묻고자 했던 핵심을 놓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스님, 왜 머리를 빡빡 깎고 흰 고무신을 신고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승복을 입고 다니십니까?”

 

“허허, 미국의 법은 머리 모양과 복식 服式까지도 제한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기자 양반, 그렇다면 왜 만나자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그까짓 외적인 문제를 들고나오는 것입니까?"

 

 

“저희 방송의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한 점이 바로 그 점이라는 것이 조사 결과 질문 요청 순위 첫째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묻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그럴 법도 합니다. 그러면 내가 먼저 기자 양반에게 하나 묻겠소. 기자 양반은 왜 지금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소이까?”

 

“조상들이 오랫동안 입었던 옷이고, 또 제일 활동하기에 편해서 이렇게 입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요.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일붕이 짐짓 시치미를 떼고 말한다.)

 

 

“내게 맑은 영혼의 소리를 듣자고 부른 줄 알았더니 기껏 겉모습을 설명하라고 초청했습니까?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꼭 그런 그것은 아닙니다만 미국에서 포교 활동을 하는 여러 나라의 스님들은 민족 고유의 의상보다 양복을 즐겨 입고 머리도 길렀지 않습니까? 또 구두를 신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붕스님 만은 언제나 지금과 같은 모습을 고집하시니 궁금하지 않을 까닭이 있습니까?”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일붕은 많은 대학에서 종교학, 동양학, 한국어 강좌, 불교 철학 등을 강의했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여 한국 민족이 왜 그런 복장을 하게 되었으며, 한국의 승려가 왜 독신을 고집하고 그러한 승복을 입게 되었는가를 자세하게 풀이해준다. 

 

즉 동양에서는 예부터 우주를 대우주라 하고 인간을 소우주라고 했는가에 관한 기본 개념을 잡아준 뒤, 그 원리를 적용하여 인간의 윗부분은 하늘을 닮은 둥근형이고 아랫부분은 땅을 닮은 네모꼴이기 때문에 옷을 입었을 때 목 부분을 중심으로 한 동정은 둥글고 두루마기를 입은 아랫부분은 사각형을 이룬다고 말한다. 

 

 

또 이런 원리는 중국의<서경, 西經> 이런 책에서 우주의 형상을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난다.

 

사람도 그 모양을 따위는 원이고 밑은 네모다.”고 쓰고 있으며, <선기옥형, 璇機玉衡>이란 책은 그림까지 곁들여 음양陰陽과 인간의 조화를 풀이한다고 말한다..

 

이어 한국의 풍토에 맞는 불교의 복장과 옛 조상들의 문화를 소개한다. 그러고 나서 짧게 이유를 압축한다. 

 

“남의 나라 승려는 각기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우리의 경우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부처님의 모습을 닮고자 머리를 깎았습니다. 

 

흰 고무신을 신는 것은 흰옷을 즐겨 입는 것과 같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 말고도 고무신은 매우 실용적이어서 진 땅 마른 땅을 가리지 않고 다닐 수가 있어서 좋다는 까닭도 있습니다. 우리는 흰 고무신을 신기 전에는 짚신이란 신발을 신었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서 일붕은 한국의 승려가 장삼과 가사를 벗고 신사복 차림으로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찬불가를 부르는 일이나 법사法師가 웅변투로 열변을 토하는 설교를 한다면 얼마나 어울리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붕은 평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슬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불교는 애조를 띤 염불 소리와 뼛속까지 파고드는 목탁 소리로 물질문명에 매몰당한 인간의 비애를 풀어주고 고요한 정서를 갈망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충족시키는 것이 요구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통적인 한국식을 고집하는 일붕의 제자들은 스승의 원칙주의가 어설픈 적응보다 한결 고상하다고 느껴 수계와 함께 머리를 깎고 회색 장삼에 오조가사五條架裟를 매고 백팔염주百八念珠를 목에 걸었기 때문에 어디서 누가 보아도 한국계 승려임을 알 수 있었다.

 

미국 사람 가운데는 이런 복장과 고집스러운 계율 추구를 높이 하여 출가하는 때도 있었다.

 

포교와 민족혼의 홍보라는 일거양득과 강연회의 청중 동원이란 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복장을 위해 일붕은 한국에 끊임없이 법복, 주장자, 신발, 백팔염주 등을 주문해야만 했다.

 

나날이 늘어나는 법제자에게 공급할 물량이 부족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