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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큰스님 전기집 오! 한국의 달마여 18

오직 나의 주인을 찾아야 18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선(禪, Zen)이란 무엇입니까?”“선이란 진정한 이치를 사유思惟하고 생각을 고요히 하여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이르는 것인데, 이를 닦는 것을 흔히 참선參禪이라고 합니다.

 

참선은 자기 마음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깊이 탐구하여 깨닫는 노력으로 타율他律이 아닌 자율적인 수행,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올바른 진리의 세계에 참여시켜서 흔들림이 없고 티 없는 마음의 세계에서 자기의 본성을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이것을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깨달음이란 글자 그대로 자신의 본성을 파헤쳐 보았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심리학이라면, 마음을 주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선학禪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학을 심학心學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이란 불교 종지의 으뜸가는 선종(禪宗: 敎宗에 대비되는 宗)의 수행을 가르치는 것입니다.”“지금 미국에서 가르치시는 선은 부처님 시대부터 내려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직접 창안하신 것입니까?"

 

“고다마 싯다르타가 살아 계셨을 때는 인도의 요가학파와 비슷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정定과 혜慧를 겸하게 했습니다. 이후 중국의 당唐, 송宋, 명明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내가 하는 선은 중국에서 들어온 선을 한국 불교가 다시 실정에 맞도록 다듬은 것입니다. 그 때문에 내가 가르치는 선은 한국의 불교에서 나온 전통적인 것이지 나의 창작물이 아닙니다.”

 

“선을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배울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까?”

 

 

“한마디로 NO입니다. 그 누구도 쉽게 빠르게 정확하게 선을 익힐 수는 없습니다.

 

선을 배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서는 옛날 중국 송나라의 고봉원묘高峰原妙선사께서 남긴 말씀과 행적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내가 적당히 답하는 것보다 한 선사가 얼마나 힘든 경로를 통해 선에 접근하고자 애썼는가를 생생하게 전달될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선은 간절한 생각하고 참된 의심을 하여 아침부터 밤에 이르도록 빈틈없이 수행하면 그 생각과 스스로가 한 덩어리가 되어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고 쫓아도 달아나지 아니한 경지에 이를 것이다.

 

이때 정념正念을 확고히 하여 부디 생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 화두를 들어 의심하되 참선을 계속하면 가도 가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있는 줄 모르며 춥고 더운 것이나 배고프고 목마른 것도 모르는 경계가 나타날 것이다.

 

 

그 경계에 이르러 참선의 끈을 늦추면 다른 경계를 인정하게 되어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어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그 때문에 그 경계에 도달하면 더더욱 정진하여야 한다. 그러면 홀연히 의심 덩어리가 툭 터져 천지가 개안 됨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정자사,淨慈寺>로 가 3년을 기약하고 참선 공부에 들어갔다. 처음 단교斷橋 화상으로부터 '생존하래 사향하거生從何來 死向何去, 날 때는 어디서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란 화두를 받아 참고하였으나 생각하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설암雪岩화상을 만나자 무無자 화두를 주셨다. 

 

 

이 무자 화두는 어떤 남자가 조선사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물었다가 ‘없다’라는 대답을 듣고는 ‘부처님은 미물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왜 없다고 할까’하는 의심하게 된 유명한 화두다.)

 

설암스님은 나에게 무자 화두를 주면서 “길을 나설 때면 노정露程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나에게 와서 한 마디씩일러라.”라고 하셨다. 그 후로 스님이 계신 방으로 가 그날의 수행을 전하려 하면 “무슨 물건이 죽은 송장을 끌고 왔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쫓아냈다.

 

더 이상 진전이 없음을 자각한 내가 경산徑山으로 돌아와 지내던 중 어느 날의 꿈속에서 단교 화상이 나타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란 화두를 주셨다. 그래서 화두를 들고 참선에 정진했더니 의심이 잘 되었다.

 

 

동서남북도 가리지 못하고, 밥을 먹고 대소변 보는 것도 모르고, 앉고 눕고 걷는 것도 모른 채 오직 한 생각으로 화두를 붙잡고 정진했다.

 

6일째 되던 날 대중을 따라 법당에 올라가 송경독송誦經讀頌을 하다가 문득 머리를 들어 오조연五祖演화상의 영찬影讚을 보니 '백년삼만육천조 반복원래시저한百年三萬六千朝 返覆元來是道漢, 백년 삼만 육천일에 온갖 조화를 부린 것이 원래가 이놈이리라)’하는 소리가 들려 설암화상이 “무슨 물건이 죽은 송장을 끌고 왔느냐?”고 호통치던 말씀을 홀연히 깨달았다. 송장을 이끌고 다니는 놈이 누군가를 확연히 깨달은 것이다. 그때 내 나이 24세였다.

 

 

그러고 나서 화상과 이런 선문답을 나누었다. “일용호호시日用浩浩時,(번잡하고 바쁠 때)에도 너의 주인을 잃지 않고 붙잡고 있느냐?”

 

“예, 잃지 않고 있습니다.”

“잠이 깊이 들어 꿈도 생각도 듣는 것도 없을 때는 너의 주인이 어디에 있느냐?"

 

나는 말이 막혀 가만히 있었더니 화상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부터 부처도 법도 배울 것이 없으며 옛것이나 현재의 것도 참고할 필요가 없으니 다만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잠이 깨거든 정신을 ‘나의 주인공은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라.”

 

그때 나는 ‘차라리 평생을 참선에 쏟다가 바보가 될지언정 명백히 이 도를 알고 말리라'고 결심하여 5년간을 계속하여 참선에 전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깨어 또 참고하여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함께 구도의 길을 걷던 도반이 잠결에 목침을 밀어 땅에 떨어뜨리는 소리에 홀연히 깨쳤다.

 

 

마치 그물에 걸렸다가 풀려 나온 듯 시원했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선은 직접 자기가 실행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으며 왕도王道가 없는 길입니다.”

“조금 전에 도를 깨닫는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된 경지가 도를 통한 것입니까?"

“도를 통했다는 것은 무상도無上道를 터득하여 모든 진리를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이때 모든 진리는 우주 만유의 창조,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 인연으로 얽힌 문제 등을 통달했다는 의미지요.

쉬운 말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도가 통하면 초능력을 발휘하는 영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질문하신 초능력을 신통 변화라고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바람과 비를 마음대로 부르고, 산을 옮기고,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되겠지요.

 

 

그러나 불교는 진리를 깨우쳐 생사에 해탈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그러한 요술을 익히는 것은 사소하게 취급합니다. 또 그러한 신통력을 가졌더라도 그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신통력을 앞세우는 종교는 혹세무민하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와 그런 것을 연관 짓지 말았으면 합니다.

 

물론 불교의<대승경전>에는 신통력이 언급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중생교화를 위한 하나의 방편인 것이지 근본적인 교리와는 전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