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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스님의 “지혜로 위기를 벗어난 아가씨”

- 불본행집경 제13에서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사람은 재산이 많은 늙은 부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한 홀아비였다. 이 홀아비에게는 총명하고 예쁜 딸이 하나 있었지만, 살림이 몹시 궁핍했다. 그래서 그는 자주 이웃의 부자 노인에게 돈을 꾸어 생활을 이어갔다. 처음엔 적은 돈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빚이 커져 갚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부자 노인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젠 이 홀아비가 내 돈을 갚지 못할 테니, 그 딸을 대신 받는 게 좋겠군.” 는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띠며, 바로 그 집으로 찾아갔다. 그날도 딸과 함께 앉아 근심에 잠겨 있던 홀아비는 노인의 방문을 받고 섬뜩한 예감을 느꼈다.

 

‘이 영감이 이제 와서 빚 독촉을 하려는구나…’ 그러나 손님을 차갑게 대할 수 없어, 겉으로는 반갑게 맞아들였다.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잔을 떨다가 슬쩍 말을 꺼냈다.

 

요즘 살림살이는 어떤가?” “어렵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 끼니라도 잇도록 내가 돈을 좀 더 빌려주지…” 뜻밖에도 돈을 먼저 꺼내려는 태도에 아버지는 더욱 불안해졌다.

 

그러자 노인은 본심을 드러냈다. “이 나이에 혼자 살기가 외롭소. 그러니 그대 딸을 내 곁에 두고 싶소. 어찌 생각하시오?” 갑작스러운 말에 아버지와 딸은 말문이 막혔다. 돈을 앞세워 딸을 요구하는 태도에 치가 떨렸다. 노인은 “며칠간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며칠 뒤, 다시 나타난 노인은 아예 담판을 지으러 온 듯 바둑알을 꺼내 보였다. 그는 검은 바둑알만 서너 개 골라 호주머니에 넣어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내 호주머니에는 흰 바둑알과 검은 바둑알이 하나씩 들어 있소. 영감님의 딸이 손을 넣어 흰 알을 뽑으면 빚을 탕감해드리고, 검은 알을 뽑으면 그 아이는 내 사람이 되는 것이오.”

 

모두가 검은 알인 것을 본 아버지와 딸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총명한 딸은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노인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더니 바둑알을 뽑자마자 곧장 바닥에 떨어뜨려, 주변의 많은 바둑알 사이에 섞이게 했다.

 

 

“아이쿠, 제가 실수로 바둑알을 떨어뜨렸네요. 하지만 남은 바둑알을 보면, 제가 어떤 색을 뽑았는지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놀란 노인이 호주머니를 뒤져 검은 바둑알을 꺼내자, 그녀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 돌이 검은 것이니, 제가 뽑은 것은 흰
돌이었겠군요.”

 

노인은 말문이 막혔다. 억지를 쓰다 지혜로운 처녀의 기지에 스스로 당한 것이다. 그 후 아가씨는 정직하게 살아가며 늙은 아버지를 봉양했고, 마침내 성실하고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 끝까지 가정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어려움 앞에서도 지혜를 잃지 않으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깊은 가르침을 줍니다. 탐욕과 거짓으로 남을 억누르려는 자가 결국 진실한 마음과 지혜에 패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특히 불교의 자기 보호와 정견(正見)의 정신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