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1970년, 법랍 39세, 세수 57세가 되는 경술(庚戌)년 국내에서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신민당 대통령 후보에 김대중 지명, 박정희 대통령 남북통일에 관한 8.15선언, 전태일 분신자살, 마포 와우아파트 붕괴, 한강 변에서 정인숙 여인 피살, 한글학자 최현배사망, 光州경찰서 미니스커트 착용자 8명 즉심 회부 등이 발생했다.
불교계에서는 문공부가 대처승단인 한국 태고종단 등록을 인정한(5.9) 일이 생겼으며, 세계불교 지도자대회가 서울에서 열려(10.10-16) 21개국 대표 76명이 참가했다.
국제적으로는 영국 버트런트 럿셀 사망, 중국 첫 인공위성 발사, 프레이저가 알리를 이겨 헤비급 챔피언 획득,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前 대통령 타계, 로마교황청 재산공개, 낫세르 통일아랍 대통령 타계, 프랑스 드골 전 대통령 타계, 닉슨 유고 티토와 정상회담 등이 있었다.
유달리 전직 원수들이 많이 사망한 해였고 '여성 상위시대'라는 유행어가 나돌고 '검은 고양이 네로'란 유행가가 골목마다 울려 퍼진 70년대의 첫
해였다.
겨울방학을 맞이했음에도 더욱 바빠진 일붕은 전국을 돌며 세미나와 강연을 했다. 1월 11일 오전 10시 30분, 동국대 비교 사상연구소는 마하트마 간디의 직계제자이며 탄신 백 주년 기념 위원장인 디카보다 박사를 연단에 세웠다. 디카보다 박사 옆에는 통역을 맡은 일붕이 '간디의 생애와 사상과 교훈'이란 주제의 강연을 재빨리 우리 말로 옮기고 있었다. 불교연구의 지평을 기독교와 힌두교까지 넓힌 계기가 된 이 강연회를 마친 일붕은 “간디의 무저항주의와 비폭력투쟁이 불타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이 해부터 일붕은 매년 한두 차례씩 미국을 드나들며 포교에 전념했다. 승복을 입은 이래 처음으로 일붕은 이 해에 가장 많은 갈등을 겪었다. 미국을 기반으로 한 해외 포교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원년에 국내에 머물다.
그동안 외국에서 보내느라 몰랐던 불교계의 병폐를 직접 목격한 까닭이다. 대처 측은 세력을 규합하여 1월 15일 자로 태고종(太宗)이란 새 종단을 등록한다는 신청서를 문공부에 접수했다. 문공부는 난처해지자 검토 중이란 이유로 수리하지 않고 끌다가 초파일을 사흘 앞둔 5월 9일 등록을 인정했다.
일봉은 이 결정이 나기 하루 전 한국종교협의회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이 공동 개최한 신문회관 종교세미나에서 '오늘 한국의 불교는 살아 있는가?'란 주제 강연을 했다. 8일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된 이 행사에는 불교 외에 天主敎(천주교), 聖公會, 天道敎, 圓佛敎, 大倧敎 등의 종교 인사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범종교 세미나 형식으로 치러졌다.
조계종을 대표하여 참석한 일붕의 주제는 그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매우 강한 자기부정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국내 주요 신문에서 파견된 종교담당 기자들이 관심을 집중했다. 예상대로 일붕은 상당히 강한 톤으로 한국 불교의 자기비판을 요구했고 이 요지는 <중앙일보>와 <신아일보> 5월 11일 자에 자세히 보도되었다. 불교전문지인 <대한불교>는 5월 17일 자 4면을 특집으로 꾸몄다.
그 내용을 요약한다. 앞의 글은 '성탄의 세계성'이란 기고문이고 뒤의 글은 <중앙일보>의 기사를 줄인 것이다. 4월 8일은 석가의 탄생일이다. 석가는 그 일생을 통하여 무수한 진리의 法을 고뇌로 가득찬 이 사바세계에 남겨두고 갔다.
우리는 이 석가의 유훈에 의하여 비로소 광명을, 유한적 현실에서 무한한 본연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석가의 가르침이 현대에 주는 의의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절대적 주체자인 자신의 철저한 자각을 통한 주체성 확립을 요구한 것은 실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現世界는 '주관에 부수된 객관'이 아니라 '객관에 부수된 주관'으로 몰락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주관인 자아에 앞서 객관인 물질이 존재하는 데서 인간의 무가치로니 등장하게 되고, 여기에서 전쟁과 배금주의가 싹이 트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에 있어서 석존의 가르침인 '절대 주체성 확립'의 사상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중대하다. 이를 禪이라는 언어로 축약한다. 서양에서는 쇼펜하우어 때부터 각국에서 禪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중국, 일본,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티베트, 몽고 등에서 사원을 건립하고 포교에 진력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일본의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쯔박사는 '동서의 조화와 인류의 평화는 禪이 최선'임을 주장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불교 잡지 <미들웨이, The Middle Way>는 '현대에 있어서 한국 선의 재평가'란 글을 싣고 한국 禪은 수행의 엄격함에 특색이 있다고 소개했다.
또 독일의 하르트만 같은 철학자도 선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세계 사조에 맞추어 한국의 선을 미국에 심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버지니아주에 세계선 센터를 건립한 것이다.
유엔에서도 우탄트 사무총장의 제의 때문에 석존의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인 룸비니를 성역화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선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禪敎 一致, 知行 合一을 추구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한국 禪을 우리는 더 연구하고 개발하여 외국에 수출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오늘의 한국 불교는 살아 있는가?'란 물음에서 보이는 '오늘'이란 말에는 전통의 계승이란 문제가 포함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한국 불교는 그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채워주고 있는가?' 하는 말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시대와 사회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채워줄 것인가 하는 문제의 핵심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사회는 종교에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고 직접 요구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다. 명확히 무엇을 바라지도 않는 사회 속에 뛰어들어 그것을 계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교가 오늘의 한국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진실을 보는 눈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불교의 교리를 그 시대와 사회에 맞도록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며 그 일은 불교 교단이 맡을 일이다. 한국 불교는 오늘날의 시대성과 사회성을 직시하고 그 안에 뛰어들어 선을 장려하고 악을 퇴치하려는 역사의식을 찾아야 한다. 드러커는 이 시대의 특징으로 매스컴, 컴퓨터, 컨베이어를 들고 있다.
이것이 산업사회의 특징이다. 이것들은 인간과 사회에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과거에 종교가 차지했던 자리를 이들이 대신하고 있다. 매스컴은 세계를 좁히고 대화를 대중화하고 있으며 인간의 사회적응에 공헌했다. 물질의 풍요와 과학의 발달은 인간이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 휘말리게 하고 이기주의화 하면서 정신적인 방황을 거듭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는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켰으며 컴퓨터가 인간의 두뇌를 대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산업사회에 맞는 질서는 생산의 증가를 위한 방향으로 설정되었을 뿐이다.
몰개성화된 인격은 대중사회를 만들었다. 출구가 없는 고립화는 결국 인간을 오직 향락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어 책임의식이 실종되고 있다. 결국, 산업사회가 인간에게 약속한 번영은 외적인 생활의 물질적인 풍요일 뿐 내부에서 타오르는 영혼과 정신의 생명은 가져오질 못했다.
생명력의 계발, 바로 이것이 오늘날 종교가 가진 최고의 임무이다. 이를 위해 敎理가 새롭게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또 종단 내부의 제도와 형태가 대부분 혁신되어야 한다. 그 때문에 교단의 정화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각성 운동이란 입장에서 불교 교단의 정화 운동은 그릇된 가지를 과감히 자르고 禪을 지향해야 한다. 교단의 정화는 부처님 당시를 비롯하여 한국 불교가 늘 대중과 함께 있어 온 전통의 계승이다.
"부처님의 법은 세간의 법과 다르지 않고, 세간의 법은 부처님의 법과 다르지 않다.”라는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이때의 法은 인간의 도리이자 승려의 도리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이다.
윤리가 없는 산업사회에 비하여 자비를 근간으로 하는 보살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 불교의 일이다. 자비는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世間 속에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구사되는 어휘는 점잖고 표현은 무난했지만, 그 이면을 뒤집어 보면 실로 엄청난 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주제 강연을 마친 얼마 후 일붕은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러나 이날을 전후한 70년 상반기에 일붕은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강경한 발언을 자주 구사했다. 비교적 온순하다는 평가를 뒤엎는 발언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5월 13일 자 <전남일보>에 실린 인터뷰가 그 한 예이다. 사월 초파일기념 불교사상 강연차 광주에 간 일붕은 불교 분규란 용어가 불교 정화라는 개념으로 인해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 불교 정화는 재산 외적인 근본이념에 관한 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가 世人의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일본화 불교로 가는 탓이다. 일인들이 중이라면서 마누라를 데리고 절간에서 살고, 심지어 첩까지 얻어 부처님 앞에서 사는 종교 방식은 사실 낮이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승려라면 자식들이나 마누라는 세간에 놔두고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절간에 들어와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문제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부처님의 정법에 따라 살아야 한다." 이 기사는 시내 <신광사>에 여장을 푼 일붕이 냉수로 목을 헹구면서 소금을 손가락에 묻혀 이를 닦았다는 재미있는 내용도 적고 있다.
내분으로 종단 내부가 소용돌이 친 70년의 불탄 일은 이를 만회라도 하듯 각종 봉축 행사를 연이어 열었다. 불기 2592년 사월 초파일(5월 12일)을 전후하여 일붕은 동국대 불교 대학장, <천간사> 조실, <금강사> 주지, 조계종 대표로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했다.
11일 오후 2시와 7시에는 시민회관 봉축 대제에서 양주동 박사, 김혜명 스님과 강연을 했고, 같은 날 밤에는 조선호텔 그랜드 볼륨의 전야제 파티에 나갔다. 12일 오전 11시에는 <조계사, 曹溪寺> 대웅전에서 고암(古庵), 월산(月山), 청담(靑潭)스님,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신범식 문공부장관, 金濟源 전국 신도회장 등과 봉축 법요식을 진행했다. 같은 날 오전 10시에는 불광동 <천간사>에서 '글이 ‘興禪法 護國家’란 글이 새겨진 호국 사상앙양비 제막식(건립은 3월 24일)을 했다. 또 저녁에는 관등(觀燈)놀이를 참관했다.
그런가 하면 1월부터 신문회관 화랑에서 열린 사명(四溟)대사 유작(60점)과 석정(石鼎) 스님 전시회를 관람했다. 초파일 다음 날 오후 1시에는 동국대 불교학생회가 주최한 묵정동 전국대학생 종교제에 참석했다.
이밖에도 일붕은 불탄 일을 맞이하여 서울공대 강연(불교와 대학생), 동국대 대강당 강연(성전과 空思想), 저서 <불문의 첫걸음> 무료 배포, 부산<금강사> 서경보 법어집 출판기념회, 경북 안동 교육대 강연(불교 신앙과 호국 사상), 광주광역시민회관 강연(불교와 새 인간상), 부산 불교청년회 랭커스터 박사 초청행사(한국의 성탄제에 한미 불교 우의를 재창한다), 한국해양대 불교학생회 창립법회(한국의 선 사상과 우리의 主體 등의 각종 행사에 연이어 초청되었다.
다음 호에-기적을 일으키는 ”할“선생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