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햇살이 연못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은 어느 여름날, 한 송이 연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했다. 겹겹이 감춘 꽃잎은 부끄러움을 안고 천천히 열리고, 속살을 드러내기 직전, 그 곁엔 이미 생을 다한 듯 보이는 연방(연꽃 씨방)이 조용히 서 있다. 하나는 시작의 아름다움, 하나는 끝의 고요한 증거. 둘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함께한다. 누가 먼저이고, 누가 나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꽃은 피어날 때 가장 아름답지만, 씨방은 열매를 품을 때 가장 진실하다. 이 두 존재는 마치 말 많은 세상 속에서 침묵으로 답하는 지혜자 같고, 피어오르는 이상과 이를 감싸 안는 현실 같다. 꽃은 빛을 향해 자신을 열며 말한다.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아름답다." 그러자 씨방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속삭인다. "나는 네가 떠난 후의 시간까지 품겠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어느 날, 한 바라문이 크게 화가 나 부처님을 찾아왔다. 그 이유는 그의 동족 가운데 한 사람이 부처님께 귀의하여 출가했기 때문이었다. 바라문은 분노에 휩싸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처님께 욕설을 퍼부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가만히 지켜보셨다가, 그가 지쳐 언성이 잦아들고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뒤에 부드럽게 물으셨다. “바라문이여, 때로는 당신의 집에도 손님이 찾아오지요?” “예, 물론입니다.” “그럴 때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지요?” “예, 그렇습니다.” “만일 손님이 그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손님이 들지 않으면, 다시 제 것이 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내 앞에서 욕설을 퍼부었으나 나는 그것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욕설은 모두 당신의 것이 될 뿐입니다. 만약 내가 그 욕을 받아 다시 당신에게 욕을 퍼부었다면, 그것은 주인과 손님이 함께 앉아 같은 음식을 나누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음식을 원치 않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바라문은 크게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마침내 아라한阿羅漢, 곧 성자가 되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강가의 물빛은 잔잔했고,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그 아침, 두 마리의 새가 마주 섰다. 흐르는 물 위,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었다. 깃털은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날카로웠고, 날개는 넓게 펼쳐졌지만 진심은 접혀 있었다. 그들은 날아오르지 않았다. 서로의 숨결을 견디며, 먼저 날개를 펴는 쪽이 진 것이란 듯 정적 속에 대치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이 갈라지듯 두 새는 동시에 날아올랐다. 그 날개는 더 이상 비상이 아니라, 공격이었다. 상승이 아니라 충돌이었고, 하늘은 평화의 무대가 아닌 전장의 천장이 되었다. 공중에서 그들은 부딪혔다. 검은 날개 끝이 하얀 가슴을 때리고, 긴 목은 날카로운 부리로 의지를 꿰뚫었다. 짧은 시간, 그러나 강렬한 싸움. 그 싸움에는 말이 없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 짐승은 울지 않았고, 다만 날개로 말하고, 부리로 외쳤다. 지켜보는 이는 없다. 아니, 있었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아래 흐르는 물처럼, 우리는 그저 흘러갈 뿐이다. 이 장면이 어쩌면 지금 우리의 정치와 너무도 닮아 있어 씁쓸한 한숨이 절로 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올해는 광복 80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지난 80년 동안 대한민국은 산업화를 통해 가난을 극복했고, 민주화를 통해 권위주의를 넘어섰다. 이 두 축은 ‘국가의 세기’와 ‘국민의 세기’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이재명정부가 내건 국가비전은 명확하다. 바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다. 헌법 제1조가 밝히는 국민주권과 제10조가 명시한 국민행복의 권리를, 실질적 국가 운영의 비전으로 구현하겠다는 다짐이다. 다시 말해 헌법이 약속한 나라를 현실로 만드는 것이 이 시대정신의 본령이다. 새로운 국정 운영의 원칙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경청과 통합, 공정과 신뢰, 실용과 성과. 경청은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행위이고, 통합은 분열을 극복하고 다름을 포용하는 과정이다. 공정은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정의의 기반이며, 신뢰는 국민과 정부를 이어주는 사회적 자본이다. 실용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이고, 성과는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의 결과다. 이 가운데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어느 날, 한 바라문이 크게 화가 나 부처님을 찾아왔다. 그 이유는 그의 동족 가운데 한 사람이 부처님께 귀의하여 출가했기 때문이었다. 바라문은 분노에 휩싸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처님께 욕설을 퍼부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가만히 지켜보셨다가, 그가 지쳐 언성이 잦아들고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뒤에 부드럽게 물으셨다. “바라문이여, 때로는 당신의 집에도 손님이 찾아오지요?” “예, 물론입니다.” “그럴 때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지요?” “예, 그렇습니다.” “만일 손님이 그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손님이 들지 않으면, 다시 제 것이 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내 앞에서 욕설을 퍼부었으나 나는 그것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욕설은 모두 당신의 것이 될 뿐입니다. 만약 내가 그 욕을 받아 다시 당신에게 욕을 퍼부었다면, 그것은 주인과 손님이 함께 앉아 같은 음식을 나누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음식을 원치 않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바라문은 크게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마침내 아라한阿羅漢, 곧 성자가 되었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청주의 산자락에 자리한 벽사초불정사僻邪招佛精舍는 이제 단순한 사찰을 넘어선다. 삿됨을 물리치고 부처님을 모신다는 그 이름처럼, 이곳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황토 맨발길과 문화 체험의 장을 넘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안식을 위한 도량으로 문을 열어가고 있다. 벽사초불정사에 들어서면 먼저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은 황토 맨발길을 조성 중이다. 약 2km에 이르는 이 길을 걷다 보면, 발끝은 흙의 따뜻함을 전하고, 마음은 고요히 명상으로 잠긴다. 여기서는 걷는 순간이 곧 기도가 되고, 머무는 순간이 곧 힐링이 된다. 시원한 지하 암반수는 길손의 갈증을 풀어주고, 2,000평 규모의 주차장은 누구나 편히 찾아와 쉬어갈 수 있도록 열려 있다. “쉼은 곧 깨달음”, 이곳에서 체험하는 모든 순간은 하나의 수행이다. 불정사에는 세계 각국의 사진전과 고승들의 글과 그림이 전시되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K-민화 체험도 마련되어 있다. 붓을 들어 전통의 색을 입히는 순간, 한국의 미감과 삶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이곳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문화를 잇는 다리이며, 낯선 이웃에게는 한국을 이해하는 첫 관문이 된다. 벽사초불정사는 외국인
법왕청신문 이준석 기자 | 대구 달서구 대구스리랑카불교사원 주지 완사스님이 영천 고경면 삼성산 자락에 새로운 불교 도량을 마련했다. 이름은 ‘한국스리랑카불교사원’으로, 지난 20여 년간 한국에서 수행하며 한국과 스리랑카 불교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원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완사스님은 1,653㎡ 규모의 옛 사찰을 구입해 리모델링을 거쳐 불사를 마무리했으며, 이로써 한국-스리랑카 불자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신행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 지난 24일 열린 창건법회에는 주지 완사스님과 위지트 총무 스님, 대구 삼보사 주지 동훈스님을 비롯해 은장권 함께하는 세상 이사장, 김시오 대구의료원장, 그리고 사윗트리 바나보꺼 주한 스리랑카 대사 등 100여 명의 불자와 인사들이 함께했다. 삼보사 동훈스님은 법어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불자로서의 인내와 희생으로 오늘의 결실을 이룬 완사스님과 스리랑카 불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격려했다. 완사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새로운 공간이 마련되어 기쁘며, 한국과 스리랑카 불자들의 마음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도량이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윗트리 바나보꺼 대사는 헌신적인 불자 13명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며 “한국-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처님께서 석가족 마을에 머무실 때의 일이다. 제자 아난이 문득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좋은 스승善知識과 좋은 벗善道伴, 그리고 좋은 제자善隨徒를 갖는 것은 성스러운 도를 수행하는 데 있어 절반을 이루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바르게 말씀드린 것입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런 말 하지 말라. 좋은 스승, 좋은 벗, 좋은 제자가 있다는 것은 도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이다. 그대들은 나를 좋은 벗으로 삼음으로써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근심과 슬픔,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벗을 만나는 것은 수행의 일부가 아니라 수행 전체를 관통하는 길임을 알라.”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혼자 수행할 수도 없다. 좋은 벗을 만나면 잘못된 길로 들어가지 않고, 바른 길에서 나아갈 용기와 힘을 얻는다. 반대로 나쁜 벗을 가까이하면 바른 마음이 흐려지고, 어리석음과 욕망에 이끌리기 쉽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일러주신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크나큰 울림이 된다. 좋은 벗은 단순히 함께 있는 이가 아니라, 내 마음을 깨우고 도의 길로 이끌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리는 흔히 묻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는가?" "왜 저 사람은 모든 것을 갖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가?" 그러나 『논어』에도 말했듯이 死生有命, 富貴在天이라 하였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이 내린 명(命)에 따르고, 부와 귀함은 천도天道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운명을 체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교에서는 이것을 전생의 업業, 즉 인연과 인과因果의 결과로 이해합니다. 내가 지은 만큼 받고, 내가 뿌린 만큼 거두며, 내가 베푼 만큼 채워지는 것이 이 우주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주어진 명을 원망하지 말고, 주어진 업을 탓하지 말며,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선업善業을 짓는 것입니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죽음은 두렵고, 가난은 괴롭습니다. 그러나 명命을 바로 아는 사람은 죽음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가난조차 수행의 밭으로 삼습니다. “복은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짓는 것이다.” 진정한 부귀는 마음의 평화에서 옵니다. 참된 성공은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내면의 성장에서 비롯됩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삶의 명을 감사히 여기며, 어떤 순간에도 선업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성라자로마을, 한센인을 위한 한국 최초의 구라사업기관으로 75년간의 여정을 걷다. 1950년 6월 2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경기도 광명리 신기촌에 한 작은 요양원이 설립되었다. 이름은 ‘성라자로요양원’. 이는 성경 속 한센병 병자였던 ‘라자로’의 이름을 따 지어진 것이며,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구라사업기관으로 무의탁 한센병 환우들의 치료와 자립을 목적으로 출발했다. 이 요양원을 세운 이는 미국 메리놀 외방선교회(M.M.)의 조지 M. 캐롤 몬시뇰. 그는 한국 사회에 소외된 이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했고, 전쟁과 가난, 차별 속에서 버려졌던 800여 명의 한센인들이 그의 뜻에 따라 모여들었다. 이듬해 1951년, 마을은 현재의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오전리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적인 복지마을로서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2년, 한 젊은 사제가 이 마을의 역사에 전환점을 가져온다. 이경재 알렉산델 신부(초대 원장)는 성라자로마을에서 30여 년을 헌신하며 한센인의 치료와 인권 회복, 자립 지원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마음이 먼저 치유되어야 몸이 낫는다”는 철학으로 의료·교육·신앙·문화 전반에 걸친 돌봄 시스템을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부처님오신날 축시"曇華總師 담화총사 作" 今此佳辰 如來降誕금차가신 여래강탄 오늘은 여래께서 자비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날. 어둠 깊은 세상에 자비의 등불 하나 켜지니, 그 빛 따라 모든 생명에 희망이 스며듭니다. 세속의 고해에서 헤매던 중생들이 그 손길 하나에 안식을 얻고 그 미소 하나에 눈물을 씻습니다. 부처님, 이 작은 몸과 마음으로 어떻게 그 큰 은혜를 다 갚으리이까. 다만 오늘, 이 연등을 올리며 서원합니다. 고요히 피는 연꽃처럼 성냄 없이 살겠습니다. 자비를 삶의 등불로 삼아 가는 길마다 빛이 되겠습니다. 무명 속에서도 지혜로 깨어 있고,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맑은 향기 머금겠습니다. 불기 이천오백육십구년, 오늘, 이 봉축의 등불 아래 우리는 다시 태어납니다. 연꽃처럼 맑고, 달빛처럼 고요히, 부처님 따라 자비의 길을 걷겠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청주에 위치한 벽사초불정사僻邪招佛精舍가 단순한 불교사찰을 넘어, 민족의 기억과 세계 평화를 품은 복합문화성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이곳은 북관대첩비 복제비, 세계불교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 기념관, 6·25 사진전, 고승 유작 및 미술작품, 세계 외교사진 전시까지 총망라된 공간으로 조성 중이다. 이 대역사의 중심에는 담화 이존영 이사장(북관대첩비 민족운동중앙회 이사장, 외교저널 발행인)이 있다. 철창 속 100년, 다시 국민 앞에 선 북관대첩비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정문부 장군이 함경도에서 일본군 1만여 명을 격퇴한 ‘북관대첩’을 기념하여 1707년(숙종 34년)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이 비는 1905년, 러·일 전쟁 당시 일본군 제2사단장 이케다 마시스케에 의해 강탈돼, 도쿄 야스쿠니신사 구석 철창 속에 1톤의 돌을 얹은 채 방치되는 수난을 겪었다. 이후 국제 불교계와 민족운동가, 문화유산 전문가들의 공동 노력, 그리고 담화 이존영 이사장의 외교적 설득과 협의를 통해, 2005년 비석은 반환되어 2006년 북한 길주군 본래의 자리에 복원되었고, 현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보 제193호로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