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벽사초불, 그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벼락처럼 다가오는 삶의 번뇌와 고통, 어둠 속을 헤매는 중생의 마음을 위하여 이곳에 우리는 ‘벽사’라 말하노니,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함이요. 또한 ‘초불’이라 부르노니,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이끌어 맑은 빛으로 길을 밝히고, 희망과 평안을 되찾게 하기 위함이라. 이 도량은 벗어남과 맞이함이 공존하는 곳이니, 불행은 떠나가고 복된 인연은 다가오는 진정한 귀의처歸依處요, 위안의 터전이 되리라.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당신의 삶 또한 새로운 걸음을 내딛게 되리라. 벽사라 말하고, 초불이라 부르라. 그리하여 이 정사精舎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걷어내고 불佛의 길을 밝히는 곳이 되리라. 벽사초불 정사 낭독문 한 구절씩 천천히, 목탁에 맞춰 낭독하거나 걸음에 맞춰 조용하게 따라해 보세요. 벽사라 말하니, 나쁜 기운 물러가고 초불이라 부르니, 부처님의 빛이 오네 벽사라 말하니, 번뇌와 괴로움 사라지고 초불이라 부르니, 지혜와 자비가 피어나네 이 문을 들어서면, 나도 새로워지고 이 마음 비우면, 복이 다가오네 말하라, 벽사라 부르라, 초불이라 어둠을 걷고 빛으로 가는 길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한때, 마음이 깊은 이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텅 빈 마음입니까?” “무상함을 알아도 왜 우리는 흔들립니까?” 그때, 스승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모든 법은 공空하니, 그대가 붙잡는 모든 것 또한 인연 따라 일어난 환幻이니라.” 여러분, 이 말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고정된 ‘나’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라는 것도, 이 감정도, 다른 조건들이 모여 잠시 생긴 인연일 뿐입니다. 공(空)은 비어 있음이지만, 그 비움 안엔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잡으려 하지 않으면, 이미 자유입니다. 거기엔 원망도 없고, 비교도 없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평안함만이 있지요. 또한 무상無相을 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슬픔도 영원하지 않고, 기쁨도 잠시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이 시간, 이 호흡…모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인연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사랑하고, 용서하고, 깨어 있으십시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수행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선禪은 그 모든 것 위에 깃든 고요입니다. 선은 억지로 무엇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바라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리가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을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로 기쁨과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번뇌를 마주합니다. 타인의 말 한마디, 내 안의 기대, 과거의 상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그 모든 것이 우리 마음을 달구고, 때로는 부서지게 합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그 고통을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괴로움을 억누르지도, 외면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그 불길 속에 스스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느끼는 분노와 슬픔, 억울함과 두려움, 집착과 후회, 그 모든 감정을 선禪의 용광로鎔鑛爐에 넣으십시오. 쇳덩이가 불 속에서 본래의 빛을 드러내듯, 마음의 고통 또한 그 불길을 통해 녹고 다듬어져 마침내 자비와 지혜가 됩니다. 선이란 멀리 있는 특별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선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깨어 있음입니다. 선은 바라보는 힘이며, 선은 마주 앉는 용기입니다. 선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며, 타인을 품는 빈 그릇입니다. 참선은 그 불입니다. 관조는 그 바람입니다. 깨달음은 그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입니다. 선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껴안아 그것을 통찰로 바꾸는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람들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합니다. 모양이 있는 것, 색이 있는 것, 이름이 붙은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요.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거꾸로 말합니다. “無相을 觀하라.” 형상이 없는 것을 보라 하십니다. 왜일까요? 형상은 덧없고, 마음은 움직이며, 세상은 늘 변하기 때문입니다. 무상을 관한다는 것은, 형상 너머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기르는 일입니다. 꽃은 피고 지고, 물은 흐르고 말라가며, 사람의 마음도 매 순간 바뀝니다. 이 모든 것이 상(相)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텅 비어 있으면서도 충만한 '진실한 자리', 그것이 바로 무상이요, 공空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합니다. 겉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좋고 싫음에 얽매이지 않으며, 있다, 없다를 넘어선 참된 자리를 보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무상을 본다는 것은, 곧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해탈로 가는 길입니다. 형상이 없기에, 물들지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으며,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눈을 감고, 생각을 놓고, 무상無相을 관해보십시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볼 수 있을 때, 진짜 나도, 진짜 세상도 보이기 시작할 것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政客정객의 權利권리 다툼에, 主人주인된 民민이 둘로 나뉘어, 寒風한풍 吹雪취설 맞으며, 밤낮 없이 거리에서 울부짖네. 贊찬과 反반은 나뉘었으나, 苦痛고통은 모두가 같으니, 차디찬 道路도로 위에서, 骨髓골수까지 寒氣한기가 스며드누나. 骨切골절인 冬寒동한의 바람 속에서, 誰수를 위함인가 묻노라, 이젠 그만 싸움 멈추고, 國泰民安국태민안을 이루어라. 겨울은 지나고 春來춘래할지니, 무너진 民心민심을 다독여, 國家국가의 主人주인이, 더 이상 哀嘆애탄치 않게 하라. 요즘 우리나라는 政治정치가 아니라! 政恥정치(부끄러울치)이다! 政治정치의常識상식이 五里霧中오리무중이다! 인왕산인 담화 적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벽사초불정사辟邪招佛精舍(불정사)는 이름 그대로 "부정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신성한 공간"으로, 불교의 깊은 전통을 경험하면서 현대 예술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불정사에 "우주를 품은 佛 달"이 뜨다."를 2024년 12월 1일 세워지다. 담화풍월曇華風月 "불정사에 "우주를 품은 부처님 달"이 뜨다." 고요한 밤, 산사의 숨결 따라 달빛이 내려온다. 수백 겹 구름을 뚫고, 영원의 침묵 속에서, 빛나는 부처님 둥근 달, 그 안에 우주를 품고 있다. 별빛의 속삭임도, 은하의 흐름도 모두 그 안에 깃들어, 천상의 정수를 담는다. 불정사의 마루 끝에 앉아, 달을 바라보면 무심한 마음에도, 우주의 숨결이 차오르리라. 그 빛을 닮아가는 나의 마음, 비움과 채움이 하나 되는 순간, 그곳에서 진리가 피어난다. 오늘 밤, 불정사에 뜬 달은 단순한 달이 아니라 우주의 품이요, 삶의 佛 해답이라.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마음愛 자비를! 세상愛 평화를!' 이란 단어는 불기2563년 2019년 부처님 오신날의 봉축기념 주제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갈등과 불안정한 상황을 목격해왔다. 국가 간의 분쟁, 인종 간의 갈등, 정치권의 불신, 경제적 불평등 등 다양한 문제들이 우리의 일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평화와 자비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평화의 필요성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분쟁은 단지 그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현대 사회는 세계화되어 있어, 한 지역의 불안정은 곧바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 중동의 분쟁, 그리고 아프리카 여러 국가의 내전 등은 전 세계 경제와 정치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자비의 힘 자비는 평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자비로운 행동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쌓고, 이해와 화해를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최근 코로나 19 팬데믹 동안 많은 사람이 서로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사례는 자비의 힘을 잘 보여주었다. 의료진들은 자기 목숨을 걸고 환자들을 돌봤고, 이웃들은 서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