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악업에는 반드시 벌이 있다. 그것은 하늘이 내리는 벌이 아니고 자신이 만든 벌이다. 그 옛날 인도가 두 임금에 의해서 통치되었던 때가 있었다. 한나라의 왕은 14일에 태어났으므로 월 이라고 불렀고, 한나라의 왕은 15일에 태어났으므로 월익 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두 왕은 슈라타라고 하는 강을 경계로 하여 각기 그 강변에 사방 2천의 성을 갖고 백성도 많으며 토지는 기름져 나라가 번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두 임금은 서로 친하여 싸움도 없이 태평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두 왕은 “만약 두 왕 중에서 어느 쪽이 왕자를 낳고 어느 쪽인가 공주를 낳으면 서로 혼인시켜 서로 사돈을 맺읍시다.” 고 언약했다. 월익왕은 강의 이름과 같은 슈라타 라고 하는 동서 12유순(十二由旬), 남북 7유순(七由旬)의 도성에서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왕자도 왕녀도 태어나지 않으므로 마음이 아파서 모든 신들에게 아이를 낳게 해 주십사고 빌게 했다. 그 때 이를 지켜보던 슈라타강의 신이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슈라타강의 변두리에 오신통(五神通)을 가진 선인이 살고 있다. 이 선인을 만나서 왕의 집에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왕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부처님이 지림정사에서 비구들을 모아놓고 연기와 연생에 대하여 설하셨다. 연기란 바꾸어 말하면 인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인연에 의해서 낳고 죽는다. 때문에 삶과 늙음과 병듦이 다 이 인연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이란 풀숲이 타버리면 검은 재만 남듯이 인간의 몸도 그 생명이 다하면 늙고 병들어 죽고 만다. 이와 같이 인간의 생명이란 인(因)과 연(緣)에 의해서 낳고 죽는 것이다. 우리의 생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이 없었으면 태어 날 수 없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이 바로 인연에 의한 것이며 밭에 심은 곡식도 한 알의 씨앗이 떨어져 땅에 묻히면 바로 그 자리에 인과 연이 만나게 되어 나중에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연생이라 하여 이 원리는 서로 인이 되고 연이 되어 우주만유가 물고 물리면서 고리마디와 같이 헝클어져 있기 때문에 크게는 원을 그리고 있다하여 불교의 핵심 원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이 얼음이 되고 다시 수증기가 되어 비로 떨어지는 순환의 이치가 바로 이런 윤회 인연에 의한 것이며 지구를 중심 삼고 달이 돌고 태양을 중심삼고 지구가 도는 것 또한 우주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제자와 왕에게 한 말씀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간 왕의 마음을 아시고 다시 몸을 일으키며 말씀하셨다. 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도 버려야 할 것인데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이랴.” 고 말씀하셨다. “그럼 왜 법과 비법을 버려야 하며 또 법과 비법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비유를 들어 말하면, 병은 깨어지는 것이므로 그 실체가 없는 것이요. 그런데 사람들은 병의 실체가 있는 줄로 압니다. 이와 같이 보는 법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오. 안으로 자기 마음의 본성을 보면 밖으로 집착할 것이 없소. 이와 같은 바른 견해로 법을 보는 것이 곧 법을 버리는 것이오. 비법이라고 하는 것은 토끼풀 이라든지 돌계집의 자식처럼 사실이 없는 논란을 떠나서 있소. 진실한 지혜만이 이것을 증득 합니다.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법을 설하고 차별을 떠났기 때문에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오. 벽에 걸린 그림 속의 사람에게는 감각이 없듯이 중생들도 꼭두각시와 같아 업業도 없고 과보果報도 없는 것이오. 이와 같이 보는 것을 바른 견해라 하고, 이와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