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15. 세계적인 불교 올림픽 1990년 10월. 한국의 불교계는 고구려 소수림왕 372년에 이 땅에 불교가 전래된 후 가장 큰 축제를 맞이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바르고 곧게 살겠다고 다짐한 전 세계의 불교 신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손에 손을 맞잡고 서로가 하나임을 확인하는 큰 잔치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세계불교도 제17차 서울대회가 열린 것이다. 공식 명칭이 세계불교도우의회(WFB)인 이 대회는「불교전파와 세계 불교도들의 친선도모, 세계평화실현 등을 달성하기 위한 불자들의 공동협력」을 목적으로 창설된 불교 최초·최대의 국제기구이다. 이 국제기구는 스리랑카 말라세케라 박사의 평생에 걸친 노력 끝에 지난 1950년 5월 27개국 129명이 대표들이 콜롬보에 모여 창설대회를 가졌다. 이때 소승·대승·밀교권이 모두 참가하여 종파를 뛰어넘어 범세계적인 조직으로 키울 것을 다짐했다. 한국은 1956년 제4차 네팔대회에 이청담 스님이 비공식적으로 참가했으며, 제8차 태국 방콕대회에서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978년 제12차 대회를 유치했다가 준비가 부족하여 반환한 수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14. 붕새의 세 가지 기적 일붕스님이 한국에서 호국불교 강연을 마무리 짓고 미국에 갔을 때 세 가지의 기적이 일어났다. 첫째는 사형선고를 받은 급성 종양이 없어진 일이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학장을 하고 있다 미국에 세운 절을 관리하고 포교를 전담할 신정덕 스님과 한국을 떠나기 직전 택시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났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니 가슴 밑에 단단한 혹이 생겼는데 고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에 가서 다시 진단을 받아 보아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신도들이 억지로 병원에 끌고 가 수술을 해달라고 했더니 의사들이 고개를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습니다. 괜히 두 번 죽지 말고 차라리 죽을 때까지 먹고 싶은 것이나 먹고 하고 싶은 것이나 다 하십시오."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일붕스님은 참선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한편 '문수동자는 어디를 가서 이렇게 위급할 때 돌아보지도 않은가' 하고 기도했다. 곧 빨간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났다. "스님 초조하셨지요? 제가 언제든지 뒤를 따르는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스님은 큰 꿈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제가 돌보아 드릴 것이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13. 호국불교 사상을 1969년 미국에서 돌아온 일붕스님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학장과 교수로 있으면서 국내의 강연에도 수없이 참가했다. “한국불교를 서양인에게 널리 알리는 것도 좋지만, 세계적인 대석학인 일붕스님의 말씀을 국내신자들이 들을 기회도 주어야 하지 않느냐.” 이런 불만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붕스님은 외국도 중요하지만 국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장차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어린이들과 청년들에게 호국불교 사상을 심어 주기로 결정했다. 호국불교를 말하기 전에 일붕스님은 항상 홍선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그다음에 왜 호국불교가 필요한가를 역설했다. 홍선이란 쉽게 말해 불교의 수련법인 참선공부로 담력을 기르고 정신을 통일하는 것이다. 신라시대에 김유신이 무열왕을 도와서 삼국을 통일시킨 힘이나 신라의 화랑도가 수행과 정진의 원칙으로 삼는 것이 모두 홍선이다. 원광법사가 귀산과 취향이란 화랑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준 오계도 홍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남북으로 갈라져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단일민족끼리 서로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북쪽의 공산집단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12. 세계를 향하여 1964년.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사찰인 불국사 주지 자리를 너무 바빠 더 이상 못하겠다고 사양한 일붕스님은 미국으로 건너갈 준비를 했다. 우리나라가 후진국에 속하던 60년대 초에 대통령이나 외무부 장관보다 더 많은 나라를 돌아 본 일붕스님은 이렇게 생각했다. “세계의 중심이 대서양 일대의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움직이고 있다. 세계의 중심이 옮겨간다는 것은 문명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한 국가나 한 개인이 막아서 될 일이 아니다. 더구나 경제발전이 늦은 후진국에서는 국제조류를 재빨리 읽어 거기에 맞도록 대처하는 슬기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약소민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대국의 속국이 될 것이다. 강대국이 되려면 강대국을 배우고 알아야 된다. 괜한 고집을 부리다가는 망신만 당하고 손해만 보게 된다. 어서 빨리 미국으로 건너가자.” 보통 사람 같았으면 명예가 보장되는 대학 교수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절인 '불국사' 주지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에서 만족했을 것이다. 일붕스님은 그렇지 않았다. 항상 보다 새롭고, 보다 향상된 길을 찾았다. 길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11. 최초의 삼장법사 학위 1962년 5월9일. 일붕스님은 영국 런던을 떠나 홍콩을 들려 자유중국에 도착했다. 자유중국에서는 9일간을 머무르면서 불교단체가 초청하는 강연회에 참석하였다. 전국을 도는 강연 일정이 끝나자 중국불교 이사장이며 삼장학원 원장인 백성법사가 삼장법사라는 불교 최고의 학위를 주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태몽을 꾼 지 약 50여 년 만에 삼장법사란 학위를 받은 것이다. 일붕스님은 불교박사라는 최고의 박사학위보다 삼장법사로 인정받게 된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삼장이란 경·율·논의 세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삼장법사란 이 모든 것에 통달한 스님에게 주는 존칭이다. 보통 삼장법사 하면 서유기에 나오는 현장법사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드물기는 하지만 현장스님 외에도 삼장법사로 불리는 분이 있었다. 삼장에서 뜻하는 경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이고, 율은 스님과 신도들이 지켜야할 규율에 대한 가르침이고, 논이란 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보완한 설명인 것이다. 일붕스님이 미얀마, 서독, 스리랑카, 영국, 자유중국의 유명 대학 교수를 마치고 돌아오자 모교인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10. 배운 것을 남에게 나누어주며 일본어를 다 익히기도 전에 일붕스님은 1944년 31세의 나이로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다. 월정사 이종욱 주지스님이 일본 경도의 유종묵씨를 소개해주며 ‘이왕 갈려면 하루라도 빨리 떠나라’고 독촉했기 때문이다. 학비는 이종욱 스님이 도와 주었다. 부산으로 내려가 관부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 유씨의 주선으로 들어간 대학은 임제종 묘심사 경내에 있는 경도의 임제대학 전문 학부였다. 그곳에서도 재능을 인정받아 조교로 일하기도 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조국이 해방되자 일붕스님은 '더 이상 일본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 서둘러 귀국했다. 서울로 와보니 대학원은 아직 안 생겨 대학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붕스님은 '공부처럼 즐거운 것이 없는데, 4년만 더하자,고 생각하고 1946년 동국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동국대학에는 권상로, 김영수, 김인석, 김동화, 등의 쟁쟁한 교수진이 계셨다. 이때 일붕스님은 동대문 밖 창신동 안양암의 포교사로 있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안양암의 이태준 주지스님은 일봉 스님을 여러 가지로 도와주신 분이다. 일봉 스님이 학생의 신분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9. 비상하기 위한 붕새의 날개 짓 1935년 가을. 경보 스님이 21세가 되던 해에 전진응 강백의 수제자가 전북 완주군 위봉사의 초청강사가 되어 그 곳을 떠났다. 강백을 따라간 경보스님은 그곳으로 떠났다. 그 강백을 따라간 경보스님은 그 곳에서 사미과와 사집과를 마쳤다. 이때 실제로는 전중에 있는 '송광사'에서 강원을 열었다. 위봉사에서 첫 밤을 맞았던 날이었다. 잠든 스님들 틈에서 살그머니 빠져나와 방 윗목에 있는 호롱불에 불을 켜고 화엄사에서 가져온 <화엄경 현담>이란 책을 꺼내 막 읽기 시작할 때였다. 밖에서 천둥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칠 흙 같은 밤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경보야, 자지 않고 공부하는구나."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예…." 벌떡 일어나 예를 갖추고 싶었지만 목이 막혔고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곧이어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장자에 나오는 붕새다. 내가 날개를 펴면 태양빛도 가려진다."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꿈이었다. “묘한 꿈이었구나. 붕새가 나를 찾아오다니….” 경보스님은 이미 장자의 남화경에 나오는 붕새를 알고 있었다. 또 그렇게 큰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8. 큰 스승을 찾아서 1933년 10월 초순. 경보 스님은 전남 구례군 '화엄사'에 진진응이란 큰 스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여수로 향하는 목선에 몸을 실었다. 조그마한 목선이 망망한 대해에서 세차게 파도치는 물결을 뒤로 하고 둥둥 떠가는 모습은 마치 넒고 넓은 하늘의 한 조각구름 같았다. 목선이 바다 한 가운데 이르자 풍파가 심해졌다. 세찬 파도가 뱃머리를 때릴 때마다 목선이 도리질하여 여자들이 멀미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멀미가 심한사람은 먹은 것을 모두 선실바닥에다 토했다. 파도가 점점 심해졌다. 목선은 심하게 흔들렸고 사람들은 울부짖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무서워 떨었고 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경보 스님은 '이것이 고행의 시작이다'고 여기며 <천수경>과<반야심경>을 소리 내어 외웠다. 파도가 갈수록 거칠어지자 처음에는 태연하던 뱃사공들까지 파랗게 질려서 안절부절 했다. 경보 스님이 뱃사공에게 물었다. "왜 배가 방향을 못 잡고 제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이오?" "너무 짐을 많이 실어 우리가 배를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짐짝들만 없애면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7. 결혼에 이어 출가 일본에서 돌아와 집안일도 돕고 그동안 못 읽었던 책도 읽으면서 훌륭한 스승을 찾아 뭍으로 떠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경보를 찾으셨다. "할아버지, 저를 부르셨습니까?" 무릎을 꿇고 앉은 경보를 보고 할아버지께서는 조용한 말씀하셨다. "경보야, 나는 네가 더없이 자랑스럽구나. 내게 응석을 부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어엿한 청년으로 자랐구나. 이 할애비를 실망시키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더니 서당의 훈장까지 되었으니 그저 장할 뿐이다. 그런데 남을 가르치려면 어른이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이도 열여섯이나 되었으니 혼사를 치르는 것이 좋겠다. 또 나도 많이 늙었으니 증손자를 안아보고 이 세상을 떠나고도 싶고…." 눈앞이 캄캄했다. 경보는 온갖 핑계를 다 말하면서 할아버지를 설득하려 했다가 오히려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경보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권유를 받자 얼떨결에 육지로 나가 신학문을 배우겠다는 말을 했다. "뭐라고! 학교엘 가려고 장가를 못가겠다고? 고약한 놈 같으니라고! 그래 꼭 왜놈의 종살이를 하겠다는 것이구나?" "할아버지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6. 더 넓고 큰 세계로 서당의 훈장으로 명성을 얻어 가족들이 기뻐하는 것과는 반대로 경보는 답답함을 느꼈다.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서 집에 돌아와 뒷밭에 귤을 심던 경보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천하를 노려도 부족하거늘 어찌 좁은 섬 구석에서 코흘리개들의 훈장 노릇이나 하고, 귤나무를 심어 그 열매가 맺길 기다려야 되겠는가? 그렇다. 뭍으로 나가자. 넓은 곳으로 나가 훌륭한 스승을 찾아 더 깊은 공부를 하고 큰 뜻을 펼치자! 세계는 나날이 발전하는 데 어찌 옛 학문인 한자만 익혀서 앞서가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이 일어나면<장자>란 책의 <남화경> 첫 편에 나오는 붕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남화경>에는 상상의 새인 붕새를 이렇게 쓰고 있다. "북방의 조그만 새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커져서 날개 짓을 하니 태풍이 일어나고 태양빛을 가릴 정도의 위세로 바람을 일으켰고, 몇 차례 날개 짓을 하다가 남쪽을 향해 구만리 창공을 먹지도 쉬지도 않고 6개월간을 날았다." 경보는<남화경>에 나오는 붕새를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5. 훈장이 된 경보의 가르침 경보는 훈장이 되고 나서 재미있고 쉽게 가르친다는 원을 세웠다. 공부가 너무 딱딱하고 어려우면 학동들이 서당을 '지긋지긋한 곳'으로 여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외우고 쓰라고 하던 옛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예를 들면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가르치면서, 무조건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고 했고 순자는 사람은 원래부터 악하다’고 하지 않았다. 즉 성선설을 설명하면서 ‘어린이가 우물가에서 우물 안으로 떨어지려고 할 때 사람이면 누구나 뛰어가서 그 어린 아이를 구할 것이다.’고 풀어서 가르치는 방법을 썼던 것이다. 부모님의 은혜를 가르칠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해 저절로 깨닫게 했다. 옛날 가뭄이 심하여 나라 안이 온통 가난과 질병이 들끓게 되자, 임금이 '나이가 많은 노인들을 산에 대려가 구덩이를 파고 묻어라' 하는 명령을 내렸다. 어느 아들이 국법을 어길 수 없어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산으로 묻으러 갔다. 아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참고 그저 묵묵히 걸었다. 어머니는 자기를 땅에 파묻으러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이 무거워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4. 마을의 훈장이 되다. 엉뚱한 질문을 자주 하여 스승을 곤란하게 만들던 경보가 15세가 되던 해에 서당의 훈장 선생님이 신경통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자리에 눕게 된 스승이 어느 날 경보를 불러 서당의 훈장을 맡으라고 부탁했다. "경보야, 내가 몸이 아파 더 이상 공부를 가르칠 수 없게 되었으니 네가 나를 대신하여 서당을 끌어갔으면 좋겠구나."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어서 빨리 병을 떨치고 일어나셔서 저희들을 계속하여 배움의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스승님은 곧 일어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다. 내 병은 내가 안다. 다시 일어난다 해도 전처럼 너희들을 호통치고 가르칠 만한 힘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경보 네가 이 기회에 훈장을 맡았으면 한다." "스승님, 저는 아직 글도 짧고 나이도 어려 훈장을 맡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제발 쾌차하셔서 저희들을 다시 가르쳐 주십시오."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네가 이미 나의 수준을 넘어선 것 같구나. 글공부는 나이로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은 경보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스승님, 저도 군사부일체를 스승님께 배워서 스승의 뜻을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3. 할아버지의 가르침 "할아버지, 저는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엘 가고 싶어요. 서당보다 학교를 보내 주세요." "뭐라고, 왜놈들이 가르치는 신학문을 배우고 싶어 학교를 간다고?" "할아버지, 학교엘 간다고 왜놈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안 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안 된다. 학교에 가 왜놈 말과 글을 배우면 왜놈의 종노릇 밖에 할 것이 없는데, 그놈들의 종노릇을 하려고 돈 들여 공부한단 말이냐?" "할아버지, 저는 학교를 다니고 싶어요. 한문은 다 배웠는걸요." "안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라. 다시는 학교에 간다는 말은 아예 입 밖에도 내지 마라." 경보는 그때까지 할아버지가 그처럼 화를 내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비록 배우지 못해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렸지만 기개가 높고 성격이 강직했으며, 남다른 의리가 있는 행동으로 주위의 신망을 얻는 분이었다. 때문에 결코 사사로운 일로 남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았고 이웃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도왔다. 경보가 태어난 제주도의 이천 서 씨 가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부지런히 일을 해서 비교적 넉넉한 살림을 꾸린 집이었다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존자님의 세계일화 2. 총명한 도사 아이 할아버지는 경보를 틈나는 대로 무릎에 앉혀 놓고 귀여워하고 잠도 데리고 잤다. 그러면서 늘 '우리 도사, 우리 도사' 하며 사랑스러워 했다. 경보는 한번 들으면 잊지 않고, 한번 본 것은 반드시 기억하여 동네어른들로부터 '총명한 아이'라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이런 경보를 잘 가르쳐 뛰어난 인물로 키워 기울어진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고 여긴 할아버지는 일찍 글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경보는 제주도에서 가장 뛰어난 글재주를 가졌다는 외삼촌 이지화 선생께 글을 배우다 동네 서당을 다니게 되었다. 6세가 되자 경보는 이미 어지간한 한문을 다 읽고 쓰게 되었으며, 10세 때에는 그 어렵다는 사서삼경을 줄줄 외우고 풀었다. 이렇게 공부는 잘했지만 경보는 도무지 아이답지 않은 행동을 자주 해 집안 어른들의 걱정거리를 만들었다. 바다와 가까운 마을인 도순동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바닷가에 나가 고기잡이 어른들을 거들기도하고 고기 잡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또 한라산에서 시작하여 서귀포로 빠지는 도순천에 나가 은어나 피라미 같은 고기를 잡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세계일화(태몽에서 열반까지) 글쓴이 : 담 화 발행처 : 담화문화재단 협 찬 : 법왕청평화재단 편 집 : 법왕청신문사 책 값 : 무료배포 배포처 : 법왕청평화재단 초판인쇄 : 2009년 10월 10일(1만권발행) 판권소유 : 담화문화재단 주의사항 : 무단 전제 및 복제를 금함. 참고사항 : 이 글은 초대법왕 일붕존자님의 일대기 태몽에서 열반까지를 정리한 글로서 총25회에 걸쳐 연재해 드립니다. 1. 탄생을 알리는 태몽 20세기 초, 1914년. 국제적으로는 오스트리아가 사라예보 사건을 빌미삼아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우리나라에서는 이화학당 설립, 조선호텔 준공 경원선과 호남선 개통이 있었다. 이보다 1년 전 한반도의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제주도 남제주군 중문면 도순리 331번지(지금의 서귀포시 도순동). 이천 서씨 공도공파의 중시조격인 제주목사 10대 장손 서봉진 선생과 11대 장손 서성현 부자가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50여 가구가 오손 도손 모여 사는 조그마한 마을로, 고기를 잡기도 하고 밭을 일구기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바다바람에 따사로운 봄기운이 실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