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법왕청의 설립 취지 유사 이래 전 인류가 갈망하고 추구해오던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은 노력이 증대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결과적으로 기대와 상반된 역 현상의 불행만이 가중되고 있으므로 세계사는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절규해 맞이하는 실정에 놓여 있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 및 행복을 개시할 전 세계 불교지도자는 일대 각성하여 기성 가치관에 대처할 새로운 생명질서를 위하여 일치단결하여 일력 탄생의 세계적 운명을 압정 할 새로운 불교 이념과 방법을 구체적이고 생동성 있게 새로운 각도에서 연합 제시할 의무를 져야 하며 또한 인류평화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다른 종교 지도자(가톨릭, 모슬렘, 개신교 등) 와도 폭넓은 대화를 가지면서 당위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전력고자 함에 있다. 법왕청 주요 목적 사업 1) 전 세계 모든 불교도로 하여금 부처님의 추종자로서 하나의 목표하에 단결하여 함께 모이게 한다…. 2) 전 세계 불교도들의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그들 의 공동이익을 보호 한다. 3)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 보호, 장려한다. 4) 불교의 연구 활동 및 통일 교전 출판업무를 추진한다.. 5) 인류문명의 기초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반인은 승려들의 法力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신통력神通力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일붕은 신통력이란 용어 자체가 불교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난 도교道敎적인 것이라는 전제하에, 신통력을 ①신족통(축지술), ②숙명통(과거를 맞춤), ③천안통·천이통(멀리 보고 잘 들음), ④타심통(독심술), ⑤불안통(부처의 경지) 등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승려는 설사 신통력이 있더라도 국사國事, 부모님, 자기 자신을 위하는 3가지의 경우 외에는 쓰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승려는 술객術客들이나 쓰는 신통력, 사주 감정, 관상 감정 등을 사용하면 본분에 어긋난다고 말합니다. 또한 술術은 신神을 불러 이용하므로 正道로써 사용하지 않고 사심邪心을 가지면 안 된다고 재강조하지요. 과거 현재 미래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며, 윤회는 이 순환의 원리로 설명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업善業과 공덕功德을 쌓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합니다. 신도들이 ‘현세에는 왜 선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잘 되느냐?'고 물으면 그는 미소를 지으며 윤회와 인과因果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일붕은 다시 태어나는 후생後生에 무엇으로 환생하고 싶으냐는 곤란한 질문에 ‘大道人이 되어 세계평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보통 사람은 평생에 한 권을 내기도 어렵다는 저서를 어떻게 9백여 권 가깝게 쓸 수 있었을까요? “처음으로 책을 쓴 것은 종로구 창신동 안양암에서 동국대를 다니며 포교사로 일할 때였습니다. 그때 학생 신분으로 불교 입문, 불교학개설, 석가여래와 그 제자 전, 한국불교 역사 등을 썼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널리 전하자는 차원에서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한 포교의 한 방편으로 책을 펴낸 것이지요. 이후의 여러 책도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겠지요. 다만 한시의 경우는 약간 다르겠지요. 시상詩想이 떠오르면 즉시 메모하는 것을 습관화했습니다. 메모지가 없을 때는 손바닥이나 나뭇잎에도 기록합니다. 한시漢詩는 오랫동안 공부했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운을 맞추고 쓸 수 있습니다. 다른 저서는 생각을 정리하고 포교를 위한 법어나 강연한 내용 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책으로 펴내곤 했습니다. 이런 생활 태도를 보인다면 누구나 많은 책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항간에서는 다른 사람이 글을 쓰고 서경보란 이름만 붙인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양식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얘기한다면 역사적으로 유명한 '게티즈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이 글은 일붕 서경보 법왕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당시 법왕청 담화 이존영 비서실장이 각종 신문, 잡지, 회보, 방송 출연 테이프, 저서, 전기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 검토하여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다. 일붕은 언제 어디서 출생했으며 몇 세에 어떤 스님께 머리를 깎았습니까? “1914년 10월 10일 제주도 남군 중문 면(현 서귀포시) 도순리 301번지에서 할아버지 서봉진(徐鳳辰)아버지 서성현(徐成賢)의 손자와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조부는 3형제 중 장남이었고 아버지는 3남 5녀의 장손이었습니다. 법왕의 형제자매는 3남 2녀인데 장남입니다. 19세에 산방굴사 강혜월 스님을 은사로 하여 불가에 입문했습니다.” 3남 5녀 중 장남. 13대 손孫子:승철·승일가계도(圖)제주목사 서상우(徐相虞)祖父 徐鳳辰祖母(古阜李氏)父 徐成賢母 李卯生本人 徐京保出家 前의 妻 李亥生-3형제중 장남⁺ 京保⁻允保-京垓- 3남2녀중 장남孫女:子 徐松默 子婦 한예선-안나 · 지나 · 후나 利川徐氏 恭度公派 ※ 出生 : 甲寅年 五月 九日 戌時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냈으며 출가 시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습니까?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면서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참선의 요지는 무엇입니까?”“대답이 너무 길어지므로 참선 요결, 參禪 要訣로 대신합니다. 이 참선요결은 수행과 그로 인한 증상, 결과, 상태를 여러모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학인學人은 수행 중에 큰 의심이 나타날 때는 앉아서는 서기를 잊어버리고 서서는 앉음을 잊어버린다.. 빵을 먹되 맛을 모르고 걸어 다녀도 걷는 그것을 모른다. 바보같이 오뚝하게 앉아서 일체를 잊어버려서 가슴 가운데 도무지 한 생각도 없게 되면 사면四面이 텅 비어서 탕탕하여 걸림이 없다. 이때 종래從來로 의심하던 공안公案만 들고 앉았으면 마치 만리萬里나 높은 히말라야의 산정의 얼음 속에 있는 것 같고 또는 허공 위에 서거나 높은 유리 다락에 앉은 그것 같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이 탈락脫落하여 편안함을 얻으면 가슴 속이 청량하여 비할 데가 없도다. 좌선이 만약 이런 경지에 이르면 이는 참선을 반半이나 이룬 것이니 이때에는 두려워하지도 말고, 알려고 하지도 말아라. 그런고로 기운을 번쩍 내어 퇴정하지 않으면 홀연히 맑은 얼음 산이 무너지는 것 같고 백옥으로 세운 누각이 무너짐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에 만족하여 만약에 부처와 조사祖師를 업신여기면 크게 그르쳐 마귀가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선(禪, Zen)이란 무엇입니까?”“선이란 진정한 이치를 사유思惟하고 생각을 고요히 하여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이르는 것인데, 이를 닦는 것을 흔히 참선參禪이라고 합니다. 참선은 자기 마음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깊이 탐구하여 깨닫는 노력으로 타율他律이 아닌 자율적인 수행,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올바른 진리의 세계에 참여시켜서 흔들림이 없고 티 없는 마음의 세계에서 자기의 본성을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이것을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깨달음이란 글자 그대로 자신의 본성을 파헤쳐 보았다는 뜻입니다. 마음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심리학이라면, 마음을 주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선학禪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학을 심학心學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이란 불교 종지의 으뜸가는 선종(禪宗: 敎宗에 대비되는 宗)의 수행을 가르치는 것입니다.”“지금 미국에서 가르치시는 선은 부처님 시대부터 내려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직접 창안하신 것입니까?" “고다마 싯다르타가 살아 계셨을 때는 인도의 요가학파와 비슷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정定과 혜慧를 겸하게 했습니다. 이후 중국의 당唐, 송宋, 명明에서 많은 발전을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붕이 템플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한국 불교의 포교사에 그 유례가 없는 실적을 쌓고 있을 무렵 국내의 불교계와 교육계에서는 일붕을 귀국시켜 불교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한편 대학 강단에서 2세 교육에 매진하도록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한 소식을 접한 일붕은 귀국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 주변을 정리했다. 그러자 미국의 법제자들은 아직 확고한 터전이 닦이지 않았으므로 당분간 미국에서 자신들을 이끌어 달라고 붙잡았다. 양 측의 주장이 다 일리가 있었다. 여러모로 분석한 일붕은 일단 귀국하는 방향으로 결심을 굳혔다. 이미 영주권을 가진 신분이므로 출입국이 자유로운 관계로 언제든지 미국을 드나들며 법제자를 지도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일붕의 뜻을 알게 된 제자들은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그 대신 한국 불교의 참모습을 내외에 내세우는 공개 강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제의마저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일붕은 흔쾌히 응했다. 공개 강연은 불교 신자뿐만 아니라 동양학과 한국에 관심을 가진 지성인들이 대거 참석하여 마치 세계적인 규모의 학술 세미나가 개최되는 대회장을 방불케 했다. 먼저 일붕이 불교의 전반적인 개요를 말하고 나자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붕의 박사학위 취득은 국내외의 매스컴에 뉴스 아닌 뉴스를 제공했다. 구미에서는 논문의 특색에 초점을 맞추었고 국내에서는 박사학위 취득에 비중을 실은 차이점만 있었다. 템플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전 일붕에게는 그해 1월 20일 제3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1월부터 조계종 선원에서 정기간행물로 발간한 '불교지’를 닉슨 대통령의 취임 축하 선물로 보낸 데 대한 답례 형식으로 보낸 것이다. “본인은 올해 벽두에 들어서서 미국의 새로운 지도를 마련하는 책임을 지면서 귀하께서 보내주신 정성 어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귀하께서 주장하고 계신 사상과 베풀어주신 법시 法施는 본인에게 힘과 감명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1969년 2월 27일 리차드 닉슨" 다른 생각과 평가가 남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백악관이 인정하는 신분이 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붕의 대외적인 활동이 그만큼 힘을 얻은 것이다. 이 해에 일붕은 聖龍(요크 헌)과 聖山(로버트 킹)에게 계를 내려 법제자로 삼았다. 이들은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불교 포교단을 결성하는 등의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1969년, 일부의 법랍 38세이자 세수 56세가 되던 해 기유(己酉)년 한국에서는 3선 개헌안 국민투표실시(찬성율 77.1%), 김영삼의원 괴한에 피습, 월남 티우 대통령 방한,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서임, 서울시내 중학교 무시험 추첨, 이성계 호국 원본 발견, 국보급 금불상 4점 도굴 매각한 대흥사 주지 구속, 신상옥, 김지미 제15회 아시아영화제(마닐라)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수상, 대한항공기 납북 등이 있었으며‘서울의 찬가’와 ‘기러기 아빠’란 유행가가 인기를 얻었다. 국제적으로는 프랑스 드골 대통령 국민투표 패배로 하야, 아이젠하워 미국 전 대통령사망, 로마교황 바오로 6세 5백 년 만에 제네바의 신교연합체 세계선교회의 참석, 월맹 호지명 사망, 아폴로 11호 달 표면 유인착륙, 서독 빌리 브란트 수상 지명 등이 있었다. 한미관계에서는 미국 국무부 주한미군 감축 단행 발표, 애그뉴부통령 방한, 한미국방 각료회의, 하원칼 앨버트 민주당 원내총무 주한미군 감축 전 한국군 현대화 촉구, 최규하 외무장관 한국안보 협의차 방미 등이 있었다. 일붕은 이 해 생애 최고로 기쁜 날을 맞이했다. 오랫동안 고생해온 논문이 정식으로 통과되어 템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1968년, 일붕이 미국에 온 지 햇수로는 5년째, 법랍으로는 37세이고 세속의 나이로는 55세가 되던 해 무신戊申년. 국내에서는 김신조 일당 무장공비 31명 청와대 습격,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피납, 향토예비군 창설, 국민교육헌장 선포, 김종필 정계 은퇴 선언, 조지훈 사망, 제주도 비행장 국제공항 승격 등이 있었으며 국제적으로는 미 흑인 지도자 킹 목사 암살, 로버트 케네디상원인 대통령 후보 경쟁 중 피살, 재클린 오나시스와 결혼, 닉슨 미 37대 대통령 당선 등이 있던 해이다. 한미관계에서는 박정희와 존슨의 한미정상회담, 한미농산물협정 체결, 박정희 대통령 방미 등이 있었다. 장래가 촉망되던 케네디가 42세의 나이로 괴한의 저격으로 숨지기 한 달 전인 8월 초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市의 한 공증인의 서명이 첨부된 한 통의 기증서가 일붕 앞으로 배달되었다. “관계자에게. 우리 델 H. 휘셔, 로이스 휘셔, 그리고 스탠리 휘셔서는 존 왈 코트로부터 델 H. 휘셔라 사들인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 버그 근처 질레스에 위치한 수프 더스틴 장사에 있는 90에이커의 토지를 한국 불교 조계종의 서경 보스님께 기증한다. 이 토지는 서경 보스님이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1967년 일붕이 미국에 뿌린 불교의 씨앗이 나날이 자라는 것이 보인 한 해였다. 박정희 씨의 6대 대통령 당선, 동백림사건, 문무대왕릉 발견, 중동전발발, 정일권 총리 방미 등이 있던 정미(丁未)년이었다. 일붕은 소속된 학교를 벗어나 보다 넓은 범위의 대외활동을 전개했다. 2월 23일 로스만 대학에서 종교지도자(가톨릭, 불교, 이슬람교) 대상의<禪佛敎의 救世主義> 강연, 2월 6일과 16일의 필라델피아 라디오방송(禪을 소개), 2월 24일 국제회관의<선의 근본정신> 공개강연, 3월 14일과 16일 췌스트낫 여자대학의<불교의 역사적 발전>, 4월 4일과 6일의<불교의 인생관과 한국의 선> 강의, 드렛셀공대의 초청강연<한국고승의 열반과 사리><소승불교와 대승불교> 강좌, 법률가 및 종교심리학회 강연, 3월 12일의 필라델피아, 뉴욕, 뉴저지 선원 합동 좌 선회, 7월 뉴저지주 리에 촌의 3일간 특별하기 선회, 8월 뉴욕주 택시도 공원 지대와 펌프킨 지대의 특별 좌 선회, 5월 10일 뉴저지주 아틀랜틱 캄유니대학 초청 <한국불교는 어떤 불교인가> 강연, 4월 2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붕이 하와이에서 일본 불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던 그해에는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고 한미행정협정의 조인 등 한미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험프리 부통령, 버거 국무성 차관보, 러스크 국무장관 등이 잇달아 방한했고 한미평화봉사단협정에 서명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전 내각 수반을 지낸 장면 씨의 사망(6월 4일), 김기수 선수 세계 주니어미들급 챔피언 획득(6월 25일),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7월 29일) 등의 기억할만한 일들이 있었다. 한국과 미국 간에 정부와 정부 또는 각료와 각료 사이에 맹방으로서의 유대를 다지고 있을 때 일붕은 학문과 인격, 그리고 수행에서 우러나온 참선을 갖고 조용히 미국 곳곳을 뒤흔들며 한국의 이미지 제고에 이바지하고 있었다. 다음 글은 일붕이 하와이대학에서 공개강연을 통해 발표한 <왜 불교를 배우는가>란 주제를 간추린 것이다. 불교는 많은 분야가 모여 성립되었으며 깊고 오묘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종교이기도 하지만 철학과 과학이기도 하다. 선을 포함한 불교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먼저 종교로서의 불교는 자비의 종교다. 자비의 목적은 현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붕은 문화적인 배경과 종교의 성향상 극과 극을 달리는 미국인에게 동양, 특히 한국 고유의 선을 어떻게 이해시켰는가. 이 점은 ‘일붕 붐’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미국에 불교를 소개했던 사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각국이 미국에 진출한 교포를 상대로 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학문적인 차원에서 유럽처럼 지식인 위주로 연구되는 경우이다. 그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포교는 없었다고 보인다. 일본인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쯔 같은 사람은 일본 불교의 학문적인 이식에 성공한 사례고 일붕을 미국에 초청했던 중국 승려 禪師 같은 사람은 교포를 상대로 포교하기 위해 도미 渡美한 상자에 해당한다. ‘일붕 붐’은 이 두 가지의 사례를 겸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미국인 엘리트를 상대로 파고든 전략이 성공한 탓에 일어난 것이다. 포교는 원칙적으로 밑으로부터 위로 향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기독교의 세계화를 성취한 고전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일붕은 현지 상황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여 그러한 포교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예외적인 전략, 즉,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포교에 진력했다. 하지만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1965년 3월 24일. 일붕은 컬럼비아대학을 떠나 캘리포니아대학 동양학과 교환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국내에서는 한일협정 체결과 월남 파병으로 데모가 그치질 않았고 하와이에서는 독재자 이승만이 숨진 을사(乙巳)년. 이 해에 일붕의 미국 포교는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캘리포니아대학은 그 당시 동양 언어학과장인 로저스 박사가 중심이 되어 해인사<팔만대장경>를 英韓 漢文의 3종으로 목록을 작성했고, 도서관에는 해인사 대장경 목판본 3천여 권을 소장하는 한편 대장경의 영인본과 한글본을 마련했을 정도로 불교연구에 대단한 관심을 쏟고 있었다. 일붕이 이 대학으로 옮긴 것은 연초에 道心이란 법명을 얻고 법제자가 된 완델(Wan Del)씨의 주선에 의한 것이었다. 완델씨는 캘리포니아에 사비를 들여 길을 닦아 완델路라고 붙였을 정도로 재력을 가진 미국인이었는데, 일붕의 제자가 된 이후부터는 禁酒, 禁煙, 1일 2식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참선을 하는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 그는 일붕을 흠모하여 자신의 별장에다<조계종 미국불교 선원>을 차리고, 일붕을 집에 모셔다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부인 완델 여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1964년 10월 4일. 미국 뉴욕의 불교회관. 이날은 한국 불교의 미국 포교에 일대 전환점이 된 획기적인 날이다. 연일 지식인을 상대로 선을 강의하던 일붕의 진지한 태도와 求道者다운 엄숙함, 그리고 엄한 계율에 반한 미국인 네빌 워위크(Dr. Neville Warwich) 박사가 자청하여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날이기 때문이다. 네빌 워위크 박사는 20년간 가톨릭 신부로서 가톨릭의 성의聖衣인 로만 칼라를 입고 활동하다가 몇 년 전 神父職을 포기하고 티베트불교 淨土宗에 귀의했다가 일붕을 만나 한국 불교의 승려가 된 것이다. 그는 일붕의 상좌(上佐: 제자)가 되었는데, 일붕이 상좌에게 주로 내리던 돌림자인 道字를 따 도명道明이란 법명을 얻었다. 일붕은 참으로 흐뭇한 마음으로 도명의 건당식建幢式을 치렀다. 건당식이란 눈 밝은 큰스님과 눈 밝은 제자 사이에 법法을 고스란히 이어주고 이어받는 불교의 엄숙한 의식 중 하나이다. 건당식을 마침으로써 네빌 워위크씨는 도명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일붕은 벽 안의 지식인 상좌를 얻었으며, 한국 불교는 최초의 미국인 승려가 생겨난 것이다. 도명으로서는 가톨릭의 신부복인 로만 칼라 대신 승복을, 성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