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장규호 기자 | 오늘은 거룩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 수행자들에게 있어, 계戒는 수행의 기초이며, 청정한 삶의 근본입니다. 오늘은 ‘일체계행’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함께 마음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일체계행一切戒行'이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모든 계율과 행실'입니다. 이는 단순히 몇 가지 계율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모든 순간에 계戒의 정신을 온전히 실천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외적으로 지키는 데 머물지 말고, 마음속 깊은 곳까지 계의 뜻을 새기고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이는 계율을 지키는 것을 '억압'이라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행자에게 계는 억압이 아니라 해탈을 위한 보호망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 신호를 지키는 것은 자유를 빼앗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안전하고 평화롭게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계는 마음의 혼탁함을 씻어내는 약이며,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입니다. 그러므로 일체계행이란, 계를 삶의 모든 행동과 말, 생각에까지 확장하여 계율을 삶의 근본으로 삼는 전면적 실천입니다. 우리는 몸으로 짓는 업(신업 身業), 말로 짓는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사랑하는 청소년 불자 여러분, 오늘은 "보불은덕報佛恩德", 곧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내가 왜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을까?” "왜 힘든 일도 많고, 기쁜 일도 있는 걸까?" "삶의 의미는 뭘까?" 이런 생각, 해본 적 있나요? 부처님은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을 2,600년 전부터 우리에게 전해주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이 바로 불법佛法이에요. 부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부처님은 왕자의 자리도, 부귀영화도 모두 버리고 온 세상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진리를 찾으신 분입니다. 깨달음을 얻으신 뒤, "나만 홀로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중생이 함께 행복해져야 한다." 이런 큰 자비심으로 45년 동안 걸으시며 가르침을 전하셨어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렇게 불법을 배우고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건 바로 부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은혜입니다. 보불은덕, 즉 은혜에 보답한다는 것은 뭘까요? 보불은덕은 단순히 절에 나와 절을 하고, 기도를 드리는 것만을 말하지 않아요.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가르침을 기억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바로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은 ‘인위사상人爲思想’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인위사상이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사상입니다. 인간의 능력과 창조성을 강조하는 이 사상은 한편으로는 발전과 개혁의 원동력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의 도리를 거스르는 어리석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무위無爲"를 중요한 가르침으로 삼습니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지혜로운 실천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종종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고, 지나친 욕망과 집착 속에서 고통을 자초하곤 합니다. 이것이 인위사상의 그늘입니다. 인위사상은 인간이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키려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류는 이러한 태도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키고, 과학과 기술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출가 전에는 왕자로서 주어진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로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또한 불교에서도 보살행菩薩行은 적극적인 자비 실천을 강조하며, 이는 인간의 의지를 통해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입춘立春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됨을 알리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보통 양력 2월 4일경에 해당하며, 금년에는 2월 3일로서 대자연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고 새 생명이 움트는 때입니다. 불교적으로도 입춘은 새로운 수행과 정진의 시작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법法의 씨앗을 심어 한 해 동안 복덕과 지혜를 기르는 시기입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은 "입춘을 맞아 큰 길운吉運이 깃들기를 기원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대길大吉"은 최고의 길함을 의미하며, 집안과 개인에게 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는 "밝은 기운이 세워지고 경사가 많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예로부터 입춘이 되면 집 대문이나 기둥에 "입춘대길 건양다경"과 같은 글귀를 적어 붙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를 입춘첩立春帖이라 하며, 액운을 막고 좋은 기운을 맞이하려는 의미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이러한 풍습을 수행과 연결하여 "입춘기도"를 하거나 "입춘 법회"를 열어 새해의 복덕과 수행의 길을 열고자 했습니다. 입춘은 단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勿爲受惠者(물위수혜자) "받는 자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勿(물)'은 하지 말라는 경고를, '爲(위)'는 되다, 행하다를, '受惠(수혜)'는 은혜나 도움을 받음을 뜻합니다. 즉, 남에게서 도움을 받는 데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라는 가르침입니다. 恒爲施與者(항위시여자) "항상 주는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恒(항)'은 언제나, 변함없이를, '施與(시여)'는 나누고 베푸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언제 어디서든 베풀며, 나눔의 삶을 실천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받는 자는 순간의 도움에 머물 수 있지만, 주는 자는 영원히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 세상에는 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는 언제나 기꺼이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받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베푸는 데서 비롯됩니다. 받기만 하는 삶은 한계가 있습니다. 받는 데 익숙해지면 감사를 잊고,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됩니다. 반면에 주는 삶은 스스로를 풍요롭게 만듭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나눔의 기쁨이 삶을 채웁니다. 주는 자가 되는 실천의 길 1. 작은 것부터 시작하세요 나눔은 크고 거창하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한 제자가 묻기를, "스승님, 무위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러자 스승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너는 바람을 잡아본 적이 있느냐?" 제자가 고개를 저었다. "바람은 잡으려 하면 도망가지만, 그저 느끼면 온몸을 스쳐 지나간다. 그것이 무위다. 억지로 잡으려 하지 않아도, 바람은 어디든 가고, 그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스승은 손짓으로 숲속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소나무는 누가 그리 곧게 키웠느냐? 백학은 누가 날아오르도록 가르쳤느냐?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자연은 스스로 이치에 맞게 움직인다. 무위란 이렇듯 자연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다." 제자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스승은 조용히 차를 따르며 말했다. "너는 지금 숨을 쉬고 있다. 숨을 쉬기 위해 애쓰느냐?" "아니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 무위는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을 깨닫고 그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무위다." 스승은 다시 말했다. "물을 보아라. 물은 스스로 흘러가며 바위를 깎고, 생명을 적시며, 바다를 이룬다.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 우리는 '자리이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자리이타'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함으로써 타인의 이익도 도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로,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혜와 자비의 길을 제시합니다. 먼저, 자리는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스스로에게 친절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는 자주 자신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여기지만, 이는 결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행복과 평화가 바탕이 되어야만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돌본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면의 평화를 찾고, 자비와 사랑으로 충만해지면, 그 에너지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해집니다. 우리가 행복하면, 그 행복은 가족과 친구, 더 나아가 이웃과 사회에도 전파됩니다. 작은 친절과 배려의 행동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자리이타'의 실천은 일상 속 작은 일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은 청허請許라는 단어의 깊은 의미와 우리가 삶에서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청허의 의미 청허란, '청請'은 청하다, 요청하다의 뜻이고, '허許'는 허락하다, 받아들이다의 뜻을 가집니다. 이를 합치면 “상대방에게 정중히 허락을 구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부탁의 행위가 아니라, 겸손과 배려,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깃든 표현입니다. 청허의 정신은 불교의 가르침에도 닿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 중에는 "겸손과 공경의 마음을 갖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 강요하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허락을 청하는 자세가 바로 청허의 실천입니다. 청허의 마음가짐 세상은 서로 다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이 충돌할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청허의 마음가짐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겸손함을 지니기 청허는 나의 뜻을 먼저 내려놓고 상대방의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겸손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 겸손함은 이기심과 교만함을 내려놓게 하며, 상대방에게 신뢰를 심어 줍니다. 상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혜'란, 단순히 지식이나 경험을 넘어서, 깊은 이해와 통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의 첫걸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의 미흡함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성장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1.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의 중요성 많은 이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외면하고, 그저 겉으로만 완벽해 보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이 배울 준비가 된 것입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약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진정한 강함이며, 참된 지혜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2. 겸손을 통해 진리를 배우다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낮추고 다른 이들로부터 배우고자 합니다. 이는 겸손의 길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 깊은 진리와 깨달음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자기 성찰의 토대가 되며, 내면의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힘이 됩니다. 3. 매 순간 성장하는 삶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삶은 정체된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 순간 새롭게 배우고 성장하는 삶입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삼십이상(三十二相)"은 불교에서 부처님의 외형적 특징을 나타내는 32가지의 특별한 상(相)을 말합니다. 이 상들은 부처님의 위대함과 완전한 깨달음을 상징하며, 모든 중생에게 자비와 지혜를 나누어주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이 사상을 바탕으로 법문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삼십이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삼십이상"은 부처님께서 성불(成佛)하신 후 드러난 32가지의 외형적 특징을 의미합니다. 이 상들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부처님의 내적인 자비, 지혜, 그리고 깨달음의 완전성을 상징합니다. 삼십이상의 각 상들은 하나하나가 깊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의 손발이 바닥에 닿는 부분이 평평하다는 상(상평족상, 相平足相)은 모든 존재와 평등한 자비를 실천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부처님의 혀가 길게 뻗어 있다는 상(설상, 舌相)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리이며, 그 진리가 모든 중생에게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외형적 특징들은 부처님의 내면적 성취와 연결되어 있으며, 부처님의 몸 자체가 깨달음의 완전함을 드러내는 도구가 됩니다. 삼십이상을 보고 듣는 것은 부처님의 깨달음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상락아정常樂我淨은 불교에서 말하는 네 가지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이 네 가지 경지는 인간이 지향하는 진정한 행복과 평화의 상태를 가리키며,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본래의 상태입니다. 각각을 하나하나 깊이 살펴보며 마음의 의미를 되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상(常), 영원한 본질 ‘상(常)’은 변하지 않고 항상 머무르는 본질을 뜻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무상(無常), 즉 변하는 것입니다. 물질, 사람, 감정, 경험, 심지어 우리 자신의 생각과 마음조차 끊임없이 변하고 사라지지만, 그 변화를 관조하는 우리 마음의 중심, 변하지 않는 자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상(常)’입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서 늘 깨어 있을 때, 마음은 더 이상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과 평화를 찾게 됩니다. 그 깨달음은 삶의 무상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도 불변의 본질을 알아차리는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락(樂), 참된 기쁨 ‘락(樂)’은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참된 기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기쁨은 외부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쉽고 일시적이기 마련입니다. 물질적 만족, 누군가의 인정, 혹은 즐거운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 여러분과 나눌 주제는 지족지계(止足之戒),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경계로 삼다"입니다. 지족지계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멈출 지점을 정해 만족을 아는 법을 익히고, 욕망을 절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삶 속에서 무언가를 더 가지려는 욕심은 끝이 없고, 그 갈증은 채워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를 끝없이 채우려는 그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만족할 줄 아는 데에서 오는 평온함과 기쁨은 외부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길러지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행복이 보장되지 않으며, 때로는 더 가지려는 집착이 오히려 괴로움과 불만족을 불러옵니다. 세상에는 모두 제각기 ‘지족(止足)’의 지점이 있습니다. 욕망과 탐욕을 다스리지 못하면 끝없이 발길을 옮기게 되고, 그 여정은 우리를 지치게 할 뿐입니다. 반면 만족할 줄 아는 지혜를 익히면 우리 마음속의 불안과 갈등이 줄어들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참된 평화가 찾아옵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나는 지금으로도 만족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통해 삶의 욕망을 다스리고, 만족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천고난만千苦難萬은 불교에서 인생이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생의 본질적인 고통과 고난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오늘 우리는 "천고난만"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생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인생이 수많은 고난으로 가득 차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깨달음과 자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법문을 통해 인생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는 길을 찾아봅시다. 1. 인생의 고통과 고난 불교에서는 인생이 본질적으로 고통스럽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사성제四聖諦"의 첫 번째 진리인 "고성제苦聖諦"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인생에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며, 싫어하는 것과 마주해야 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이 모든 고통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2. 고통의 원인 불교에서는 고통의 원인을 "집성제集聖諦"에서 설명합니다. 고통은 우리의 집착과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나은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불교에서는 누겁다생累劫多生을 오랜 시간 동안의 윤회를 의미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인과법과 관련되어 있으며, 불교의 수행과 깨달음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세한 법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영상 법문] 누겁다생累劫多生의 의미 누겁累劫: 여러 겁을 쌓는다는 의미로, "겁(劫)"은 매우 긴 시간을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하나의 겁은 천문학적인 시간으로, 이를 여러 번 반복한 것을 의미합니다. 다생多生: 여러 생을 반복한다는 의미로, 여러 생애 동안 윤회하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누겁다생은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생애를 반복하면서 윤회하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인과법과 윤회 불교에서는 업(Karma)에 따라 생과 생이 이어지며, 이러한 윤회의 과정을 통해 존재가 끊임없이 변한다고 봅니다. 인과법因果法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현재의 행위가 미래의 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르칩니다. 선업과 악업: 선한 행위는 좋은 결과를, 악한 행위는 나쁜 결과를 가져옵니다. 업의 축적: 여러 생애를 통해 쌓인 업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미래의 삶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윤회의 고통과 해탈의 길 불교에서는 윤회의 과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오늘은 불교의 깊은 교리 중 하나인 ‘무명무상無名無相’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개념은 불교의 본질적인 깨달음과 자유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가르침입니다. 1. 무명無名의 의미 ‘무명(無名)’은 문자 그대로 ‘이름이 없음’ 또는 ‘무명(無名)’을 뜻합니다. 이 개념은 세상의 모든 것이 본질에서 이름이나 개념 때문에 제한되지 않고, 우리가 붙이는 명칭이나 구별이 본래의 실체를 표현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불교에서는 ‘무명’이란 우리의 무지, 즉 진리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주 사물의 외적인 모습이나 개념에 집착하며, 이로 인해 진정한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무명은 이처럼 우리의 마음이 실제와는 다른 이름과 개념에 얽매여 있음을 나타냅니다. 2. 무상無相의 의미 ‘무상無相’은 ‘모양이 없음’ 또는 ‘형상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모든 존재가 고정된 형태를 가지지 않으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물은 지속해서 변화하며, 우리가 지각하는 모양이나 형상은 실체가 아니라 단지 임시적 현상일 뿐입니다. 무상은 또한 우리의 마음속에서 형성되는 개념이나 감정이 실체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