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9. 비상하기 위한 붕새의 날개 짓 1935년 가을. 경보 스님이 21세가 되던 해에 전진응 강백의 수제자가 전북 완주군 위봉사의 초청강사가 되어 그 곳을 떠났다. 강백을 따라간 경보스님은 그곳으로 떠났다. 그 강백을 따라간 경보스님은 그 곳에서 사미과와 사집과를 마쳤다. 이때 실제로는 전중에 있는 '송광사'에서 강원을 열었다. 위봉사에서 첫 밤을 맞았던 날이었다. 잠든 스님들 틈에서 살그머니 빠져나와 방 윗목에 있는 호롱불에 불을 켜고 화엄사에서 가져온 <화엄경 현담>이란 책을 꺼내 막 읽기 시작할 때였다. 밖에서 천둥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칠 흙 같은 밤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경보야, 자지 않고 공부하는구나."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예…." 벌떡 일어나 예를 갖추고 싶었지만 목이 막혔고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곧이어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장자에 나오는 붕새다. 내가 날개를 펴면 태양빛도 가려진다."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꿈이었다. “묘한 꿈이었구나. 붕새가 나를 찾아오다니….” 경보스님은 이미 장자의 남화경에 나오는 붕새를 알고 있었다. 또 그렇게 큰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8. 큰 스승을 찾아서 1933년 10월 초순. 경보 스님은 전남 구례군 '화엄사'에 진진응이란 큰 스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여수로 향하는 목선에 몸을 실었다. 조그마한 목선이 망망한 대해에서 세차게 파도치는 물결을 뒤로 하고 둥둥 떠가는 모습은 마치 넒고 넓은 하늘의 한 조각구름 같았다. 목선이 바다 한 가운데 이르자 풍파가 심해졌다. 세찬 파도가 뱃머리를 때릴 때마다 목선이 도리질하여 여자들이 멀미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멀미가 심한사람은 먹은 것을 모두 선실바닥에다 토했다. 파도가 점점 심해졌다. 목선은 심하게 흔들렸고 사람들은 울부짖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무서워 떨었고 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경보 스님은 '이것이 고행의 시작이다'고 여기며 <천수경>과<반야심경>을 소리 내어 외웠다. 파도가 갈수록 거칠어지자 처음에는 태연하던 뱃사공들까지 파랗게 질려서 안절부절 했다. 경보 스님이 뱃사공에게 물었다. "왜 배가 방향을 못 잡고 제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이오?" "너무 짐을 많이 실어 우리가 배를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짐짝들만 없애면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7. 결혼에 이어 출가 일본에서 돌아와 집안일도 돕고 그동안 못 읽었던 책도 읽으면서 훌륭한 스승을 찾아 뭍으로 떠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경보를 찾으셨다. "할아버지, 저를 부르셨습니까?" 무릎을 꿇고 앉은 경보를 보고 할아버지께서는 조용한 말씀하셨다. "경보야, 나는 네가 더없이 자랑스럽구나. 내게 응석을 부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어엿한 청년으로 자랐구나. 이 할애비를 실망시키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더니 서당의 훈장까지 되었으니 그저 장할 뿐이다. 그런데 남을 가르치려면 어른이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이도 열여섯이나 되었으니 혼사를 치르는 것이 좋겠다. 또 나도 많이 늙었으니 증손자를 안아보고 이 세상을 떠나고도 싶고…." 눈앞이 캄캄했다. 경보는 온갖 핑계를 다 말하면서 할아버지를 설득하려 했다가 오히려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경보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권유를 받자 얼떨결에 육지로 나가 신학문을 배우겠다는 말을 했다. "뭐라고! 학교엘 가려고 장가를 못가겠다고? 고약한 놈 같으니라고! 그래 꼭 왜놈의 종살이를 하겠다는 것이구나?" "할아버지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6. 더 넓고 큰 세계로 서당의 훈장으로 명성을 얻어 가족들이 기뻐하는 것과는 반대로 경보는 답답함을 느꼈다.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서 집에 돌아와 뒷밭에 귤을 심던 경보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천하를 노려도 부족하거늘 어찌 좁은 섬 구석에서 코흘리개들의 훈장 노릇이나 하고, 귤나무를 심어 그 열매가 맺길 기다려야 되겠는가? 그렇다. 뭍으로 나가자. 넓은 곳으로 나가 훌륭한 스승을 찾아 더 깊은 공부를 하고 큰 뜻을 펼치자! 세계는 나날이 발전하는 데 어찌 옛 학문인 한자만 익혀서 앞서가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이 일어나면<장자>란 책의 <남화경> 첫 편에 나오는 붕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남화경>에는 상상의 새인 붕새를 이렇게 쓰고 있다. "북방의 조그만 새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커져서 날개 짓을 하니 태풍이 일어나고 태양빛을 가릴 정도의 위세로 바람을 일으켰고, 몇 차례 날개 짓을 하다가 남쪽을 향해 구만리 창공을 먹지도 쉬지도 않고 6개월간을 날았다." 경보는<남화경>에 나오는 붕새를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5. 훈장이 된 경보의 가르침 경보는 훈장이 되고 나서 재미있고 쉽게 가르친다는 원을 세웠다. 공부가 너무 딱딱하고 어려우면 학동들이 서당을 '지긋지긋한 곳'으로 여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외우고 쓰라고 하던 옛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예를 들면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가르치면서, 무조건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고 했고 순자는 사람은 원래부터 악하다’고 하지 않았다. 즉 성선설을 설명하면서 ‘어린이가 우물가에서 우물 안으로 떨어지려고 할 때 사람이면 누구나 뛰어가서 그 어린 아이를 구할 것이다.’고 풀어서 가르치는 방법을 썼던 것이다. 부모님의 은혜를 가르칠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해 저절로 깨닫게 했다. 옛날 가뭄이 심하여 나라 안이 온통 가난과 질병이 들끓게 되자, 임금이 '나이가 많은 노인들을 산에 대려가 구덩이를 파고 묻어라' 하는 명령을 내렸다. 어느 아들이 국법을 어길 수 없어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산으로 묻으러 갔다. 아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참고 그저 묵묵히 걸었다. 어머니는 자기를 땅에 파묻으러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이 무거워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4. 마을의 훈장이 되다. 엉뚱한 질문을 자주 하여 스승을 곤란하게 만들던 경보가 15세가 되던 해에 서당의 훈장 선생님이 신경통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자리에 눕게 된 스승이 어느 날 경보를 불러 서당의 훈장을 맡으라고 부탁했다. "경보야, 내가 몸이 아파 더 이상 공부를 가르칠 수 없게 되었으니 네가 나를 대신하여 서당을 끌어갔으면 좋겠구나."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어서 빨리 병을 떨치고 일어나셔서 저희들을 계속하여 배움의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스승님은 곧 일어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다. 내 병은 내가 안다. 다시 일어난다 해도 전처럼 너희들을 호통치고 가르칠 만한 힘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경보 네가 이 기회에 훈장을 맡았으면 한다." "스승님, 저는 아직 글도 짧고 나이도 어려 훈장을 맡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제발 쾌차하셔서 저희들을 다시 가르쳐 주십시오."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네가 이미 나의 수준을 넘어선 것 같구나. 글공부는 나이로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은 경보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스승님, 저도 군사부일체를 스승님께 배워서 스승의 뜻을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일대기 세계일화 3. 할아버지의 가르침 "할아버지, 저는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엘 가고 싶어요. 서당보다 학교를 보내 주세요." "뭐라고, 왜놈들이 가르치는 신학문을 배우고 싶어 학교를 간다고?" "할아버지, 학교엘 간다고 왜놈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안 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안 된다. 학교에 가 왜놈 말과 글을 배우면 왜놈의 종노릇 밖에 할 것이 없는데, 그놈들의 종노릇을 하려고 돈 들여 공부한단 말이냐?" "할아버지, 저는 학교를 다니고 싶어요. 한문은 다 배웠는걸요." "안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라. 다시는 학교에 간다는 말은 아예 입 밖에도 내지 마라." 경보는 그때까지 할아버지가 그처럼 화를 내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비록 배우지 못해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렸지만 기개가 높고 성격이 강직했으며, 남다른 의리가 있는 행동으로 주위의 신망을 얻는 분이었다. 때문에 결코 사사로운 일로 남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았고 이웃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도왔다. 경보가 태어난 제주도의 이천 서 씨 가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부지런히 일을 해서 비교적 넉넉한 살림을 꾸린 집이었다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존자님의 세계일화 2. 총명한 도사 아이 할아버지는 경보를 틈나는 대로 무릎에 앉혀 놓고 귀여워하고 잠도 데리고 잤다. 그러면서 늘 '우리 도사, 우리 도사' 하며 사랑스러워 했다. 경보는 한번 들으면 잊지 않고, 한번 본 것은 반드시 기억하여 동네어른들로부터 '총명한 아이'라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이런 경보를 잘 가르쳐 뛰어난 인물로 키워 기울어진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고 여긴 할아버지는 일찍 글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경보는 제주도에서 가장 뛰어난 글재주를 가졌다는 외삼촌 이지화 선생께 글을 배우다 동네 서당을 다니게 되었다. 6세가 되자 경보는 이미 어지간한 한문을 다 읽고 쓰게 되었으며, 10세 때에는 그 어렵다는 사서삼경을 줄줄 외우고 풀었다. 이렇게 공부는 잘했지만 경보는 도무지 아이답지 않은 행동을 자주 해 집안 어른들의 걱정거리를 만들었다. 바다와 가까운 마을인 도순동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바닷가에 나가 고기잡이 어른들을 거들기도하고 고기 잡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또 한라산에서 시작하여 서귀포로 빠지는 도순천에 나가 은어나 피라미 같은 고기를 잡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님의 세계일화(태몽에서 열반까지) 글쓴이 : 담 화 발행처 : 담화문화재단 협 찬 : 법왕청평화재단 편 집 : 법왕청신문사 책 값 : 무료배포 배포처 : 법왕청평화재단 초판인쇄 : 2009년 10월 10일(1만권발행) 판권소유 : 담화문화재단 주의사항 : 무단 전제 및 복제를 금함. 참고사항 : 이 글은 초대법왕 일붕존자님의 일대기 태몽에서 열반까지를 정리한 글로서 총25회에 걸쳐 연재해 드립니다. 1. 탄생을 알리는 태몽 20세기 초, 1914년. 국제적으로는 오스트리아가 사라예보 사건을 빌미삼아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우리나라에서는 이화학당 설립, 조선호텔 준공 경원선과 호남선 개통이 있었다. 이보다 1년 전 한반도의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제주도 남제주군 중문면 도순리 331번지(지금의 서귀포시 도순동). 이천 서씨 공도공파의 중시조격인 제주목사 10대 장손 서봉진 선생과 11대 장손 서성현 부자가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50여 가구가 오손 도손 모여 사는 조그마한 마을로, 고기를 잡기도 하고 밭을 일구기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바다바람에 따사로운 봄기운이 실려 오
초대법왕 일붕 서경보 존자예하 비서실장( 현 2대법왕 권한대행) | 三多島에 태어난 慧星 일붕 서경보 큰스님은 佛家에 歸依한지 어언 半白年. 古稀를 넘긴 지금도 國內는 물론, 海外 여러 나라를 쉴 사이 없이 다니면서 布敎 및 講義ㆍ著述에 혼신의 情熱을 다하여 한국 佛敎를 五大洋 六大洲에 널리 傳法하시고, 나아가서 우리나라의 국위를 크게 선양하시는 스님께서는 열반에 드시는 날까지도 우리나라의 國泰民安과 護國理念을 고취하기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정진하고 통일촌 마을회관에 남북평화통일기원 일붕시비를 제막했다. 인생의 반이 넘은 나이에 學院에 다니며 영어를 배워 東西洋을 나들며 布敎活動을 벌인 스님의 강철 같은 의지는 누구나가 다 공인하는 근면과 參禪生活을 바탕으로 해가 거듭할수록 功績이 입증되었다. 1914年(甲寅年) 10월 10일, 그날도 끝없이 맑고 푸른 하늘아래 평화스런 하루가 저물어 가고 밤은 고요한 적막에 싸였고, 이어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영롱히 지구를 위해 비쳐 주고 있었다. 그 같은 수많은 별빛 속에 유난히 빛을 뿜는 별 하나가 제주도 서귀포시 도순동 利川 徐氏가문에 영광을 가져왔으니 섬마을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彗星의 탄생이었